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계속 업데이트)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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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아주 오래전 이야기


승리의 구릉, 차원문에서 ‘토트’가 나타나자 구릉 전체에 주둔한 군대가 일제히 전투 태세를 갖추며 명령을 기다렸다. 레드암스가 소리쳤다.


(“우리 군대의 준비가 모두 끝났네!”)


총사령관 프리드리히 4세는 자신의 막사 뒤편에 놓인, 과거 미카엘 드래곤배인이 썼다는 거대한 대검 ‘불멸의 몰락’을 슬쩍 바라보더니 이내 자신의 검을 꺼냈다.


“지금 그대들은 무엇을 위해 여기 모였는가? 오랫동안, 우리가 전설로 여겨왔던 것은 이제 역사가 되고, 다시금 현실이 되어 우리의 고향과 가족을 짓밟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타난 것은, 오래전 위대한 영웅 미카엘 드래곤베인께서 그랬던 것처럼, 푸른 검을 들고 온 젊은이였다. 그는 목숨을 바쳐 우리의 적을 쓰러뜨렸고, 이제 남은 것은… 저 자 하나뿐이다. 제군들이여! 최후의 전투가 눈 앞에 있다! 우리의 멸망을 바라는 자에게… 반대로 멸망을 선고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곳에 모인 수많은 병사들이 하나되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프리드리히 2세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칼 끝을 ‘토트’에게 겨눴다.


“전원 전투 준비! 놈이 다가온다. 깃발을 높이 들어라! 눈을 적에게 고정하라!”


‘토트’가 천천히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프리드리히 2세의 칼이 허공을 갈랐다.


“가라!!”


한편, 아인은 귓가에 울려 퍼지는 충격음에 눈을 떴다.


‘여긴…? 난 분명 놈의 공격에 쓰러졌는…’


“베르너! 왼쪽이다!”


폭발음이 울려 퍼지더니 창을 든 남자가 왼쪽으로 달려갔다. 그제야 아인은 이곳이 그 절벽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아인의 집이 있는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들이 수없이 몰려드는 용과 비룡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특히 그들의 선두에서 비룡과 네 다리로 달리는 용 비슷한 것들을 수 없이 배어 넘기는, 자기 키보다 거대한 검을 휘두르는 남자는 계속해서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베르너! ‘토트’가 온다!”


마침내 그 용, ‘토트’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거대한 검을 든, 회색 수염이 성성한 남자는 칼을 겨누며 소리쳤다.


“이제 끝이다! 비룡도, 네 부하 용들도 대부분 쓰러졌다. 네놈의 마지막이 왔다!”


“어리석구나, 네가 무슨 짓을 하든 하찮은 인간에 불과하다!”


‘토트’의 입에서 검은 안개가 모이자 아인은 다급히 몸을 움직여 남자와 ‘토트’의 사이를 가로막고, 빠르게 자신의 방패를 들어 놈이 뿜어내는 안개를 막았다. 그 남자가 소리쳤다.


“가브리엘라!”


아인은 깜짝 놀랐다.


‘가브리엘라? 그게 누구야?’


그러나, 왜인지 말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의지와 다른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그래, 조심하거라. 놈이 다시 전열을 갖추면 죽은 것들이 되살아난다.”


‘아버지? 대체 이 사람은 누구지? 난 뭐야? 왜 여기 있는 거지?’


“망할 아쿠아메탈 같으니라고! 허나 그것 만으로는 나 ‘토트’를 이길 수 없다!”


흙 아래에서 해골 병사들이 튀어나오고, 죽은 용들이 다시 움직이며 그들을 공격했다.


“시간을 더 끌어야 한다! 놈을 더 묶어 둬야 해!”


베르너 라는 자가 아인에게 손짓했다.


“가비, 검을 줘!”


‘누구? 난 아인이야! 대체 그 사람이 누군데?’


하지만 여전히 아인은 말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인 스스로 검을 베르너라는 남자에게 던져주고 있지 않은가. 베르너는 그 검을 받아 빠르게 자신에게 달려들던 해골 병사들을 수없이 베어버린 다음 뼛가루가 하얗게 묻은 검을 다시 건냈다.


“뒤에, 온다!”


아인은 아무런 힘도 쓰지 않았는데, 몸이 스스로 움직여 바로 뒤까지 다가온 시체 비룡의 얼굴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녹색 피가 아인의 온 몸에 튀자 아인은 짜증을 내며 얼굴에 튄 피를 닦았다. 베르너가 말했다.


“가비, 피 좀 닦아줄까?”


“그래, 좀 도와줘.”


베르너가 손을 뻗자 허공에서 물이 쏟아져 피를 씻어냈다. 그리고,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를 바라본 아인은 경악했다.


‘뭐야… 이게 나라고?’


물웅덩이에 아인이 비쳤다. 하지만 아인이 아니었다. 물웅덩이에 비친 것은 아인과 똑같이 생긴, 특히나 눈매가 비슷한 검은 머리칼의 여인이었다. 여인이 갑옷을 입고 아인의 것과 똑 같은 검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설마… 이 여인은!’


“가브리엘라! 놈이 온다!”


아인의 방패가 ‘토트’의 불덩이를 튕겨내는 순간, 남자가 소리쳤다.


“일카이, 지금이다!”


절벽 너머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솟아오르더니, 그 자리에 아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탑이 나타났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용들이 마치 개미귀신이 개미들을 사냥하는 것처럼 탑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토트’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이 개자식! 이런 수를 쓰다니!!”


“끝이다, 이제 네놈들이 우리를 지배할 일은 없을 것이다.”


“어리석은 것…! 우리는 반드시 돌아온다… 그리고 나 ‘토트’, 내 모든 것을 걸고 네놈들을 저주하겠다…! 네놈들의 피는 절대로 순탄하게 흐르지 않으리라… 한 곳에 모여 있는 네놈들의 피는 반드시 틀어 막혀 흐르지 못하리라!!”


그 말을 끝으로 ‘토트’는 탑 안으로 사라졌고, 탑은 그 즉시 굉음과 흙먼지를 풍기며 지하 깊숙한 곳으로 내려 앉았다. 모든 것이 끝나자 남자는 거대한 칼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우리의 승리다!!”


절벽 아래 있던 수많은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베르너도, 아인(가브리엘라)도 모두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아인이 정신을 차렸을 땐 그에게도 익숙한, 트리움피한의 왕궁 안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황금 왕관을 쓴 남자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고, 옆에선 아까 전에 봤을 때 보다 더 나이가 든 베르너가 계속 그를 설득하고 있었다.


“아버지, 저희 둘 중 한 명이 희생해야 합니다. ‘토트’가 거짓으로 저주를 걸 존재는 아니지 않습니까?”


“알고 있다, 하지만 너희 둘은 내 자식이다! 아비로서 어찌 자식을 버린단 말이냐?!”


“그렇다면 제가 희생하면 될 일입니다! 어차피 전 검의 선택조차 받지 못했으니까요!”


“베르너! 말을 삼가거라!”


“아니요, 맞는 말입니다. 어차피 아버지가 신경 쓴 자식은 데니스 형님뿐이지 않습니까?!”


“오라버니! 아버지께 말이 너무 심해!”


“넌 조용히 있어! 형님은 가비랑 함께 검에게 선택받았지요. 아버지가 전장에서 쓰러지셨다면 형이 그 검의 후계자가 될 거니까! 하지만 전 달라요. 저 망할 검을 들 수도 없는 존재고… 함부로 가비의 검과 방패도 제대로 다룰 수 없지요. 제 손에선 그저 평범한 검과 방패일 뿐이니까! 그러니 제가 이 자리에서 죽으면 다 되는 일 아닙니까?!”


그 순간, 남자의 거대한 손이 베르너의 뺨을 갈겼다. 아인(가브리엘라)는 경악했다.


“말 조심하거라. 난 데니스가 죽은 이후 한시라도 널 내 후계자라고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


하지만, 그런 베르너의 얼굴에는 분노와 증오가 서려 있었다. 이는 오로지 아인(가브리엘라)만이 눈치챘고, 그녀는 곧바로 결심했다.


“아버지, 제가 떠나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경악해 그녀를 바라보았다. 남자가 가장 먼저 언성을 높였다.


“절대 안된다! 설령 대의를 위해서라도 자식을 희생시킬 수는 없어!”


“제가 언제 죽는다고 했습니까, 떠나겠습니다. 대의를 위해서.”


베르너가 물었다.


“떠난다니? 어디로?”


“지난날 우리가 ‘토트’를 봉인시킨 곳, 대삼림 말입니다. 이젠 다들 그곳을 ‘경계의 숲’이라 부르더군요. 그곳에서 살며 놈이 한 ‘예언’을 대비해… 놈들을 감시하겠습니다.”


남자는 눈물을 훔치더니 이내 말했다.


“좋다, 가거라.”


그렇게, 가브리엘라는 트리움피한을 떠나 경계의 숲으로 부마(그러니까 가브리엘라의 배우자)와 함께 떠났다. 몇 년 뒤 1대 카이저가 사망하고 베르너가 그 자리에 올랐다는 것을 들은 가브리엘라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그녀 역시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칼과 주름진 피부를 가졌을 때, 그녀는 자신과 달리 여전히 처음 그때의 빛을 가진 검과 방패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이 검에 다시금 검은 피를 묻히는 자가… 우리 왕국과, 대륙과, 사람들을 구원하리라…”


가브리엘라의 눈이 감기는 순간, 아인은 이제 아무것도 없는 암흑 속에서 눈을 떴다.


“그래… 잘 보았느냐?”


허공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십니까?”


그러자 눈부신 빛과 함께 그 여인, 가브리엘라가 나타났다.


“네가 예언의 그 사람이구나.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가브리엘라 드래곤베인.”


“그래, 그리고 네가 든 검과 방패의 첫 주인이기도 하지. 참… 그 검은 나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구나. 그 검은 어디서 얻었느냐?”


“아버지가 물려준 것입니다. 집안에 대대로 내려온 가보라면서요.”


가브리엘라는 가까이 다가와 아인의 얼굴을 만지며 그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역시… 넌 나와 닮았다. 난 1000여 년간 이곳을 지켜봐 왔다. 나의 후손은 전란에 휩싸여 600년 정도 전에 사라졌었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제야 할 것 같구나. 이제 눈을 뜨거라… 나의 자랑스러운 아이야.”


“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냐? 넌 나 가브리엘라 드래곤베인의 자손이다. 너도 어렴풋이 알아차렸을 텐데?”


“아…!”


아인은 그제야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비룡의 맹독에서 살아 돌아온 것도, 용들의 강력한 공격에 고통받을 지언정 죽지 않은 것도, 모두 혈통과 관련이 있던 것이다.


“하지만… 전 ‘토트’에게 당해 육신이 영원한 잠에 빠졌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진실한 사랑을 할때만 피는, 그 어떤 저주도 풀어내는 장미가 있다지. 너는 곧 깨어날 것이다.”


“그게 무슨…!”


갑자기 공간 전체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균열 너머로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원래 아인이 있던 곳이 보이기 시작하자 가브리엘라의 형태도 점점 희미해졌다.


“너와 만나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구나. 그리고 내 예언도 이걸로 마지막이니 난 아버지와 니클라스가 있는 곳으로 갈 때다. 잘 있거라.”


가브리엘라가 사라지는 순간, 찬란한 빛이 아인을 감싸고, 다시금 눈을 뜨자 눈 앞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마리…?”


눈물을 흘리던 마리가 미소를 짓는 순간, 한 명이 아인을 와락 껴안았다. 아인은 그제야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깜짝 놀랐다.


“프레야?!”


프레야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지도 않고 계속 흐느꼈다.


“아인… 걱정했잖아…! 네가! 네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까봐!”


“어떻게 된 거야?”


마리는 눈물을 닦은 다음 새빨개진 눈가를 감추며 말했다.


“주변을 둘러봐, 이게 다 프레야 씨가 한 거야.”


아인의 주변으로 수없이 많은 붉은 장미가 피어 있었다. 아인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어…어떻게…”


마리는 조용히 일어나 차원문을 열었다.


“나중에 설명해 줄게. 가자, 이미 모두가 ‘토트’와 싸우고 있어.”


아인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차원문으로 걸어갔다. 프레야가 소리쳤다.


“아인!”


아인이 프레야를 돌아보자,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기다리고 있을게, 꼭 이기고 돌아와.”


아인 역시 미소로 화답했다.


“그래. 꼭 돌아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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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전장에 나설 무렵의 가브리엘라 드래곤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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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후반부 즈음의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