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달은 이미 보름이 지나 절반이 넘게 삼켜져 있었으나 이곳은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보통 때였다면 잠들지 못하는 자들만이 깨어 서성이는 고요한 자정이었을 터이나 오늘의 콘스탄티노플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늘, 차마 잠에 들 수 있는 사람들은 없었다. 


성벽 안에 있는 모든 성당의 종이 울리고 있었다. 댕그렁, 댕그렁. 그 종소리에는 말미의 희망과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절박한 종소리는 이내 성벽 밖에서 들려오는 파묻혀 흩어졌다.


알라후 아크바르, 

아쉬하두 안 라 일라하 알랄라,

아쉬하두 안나 무함마단 라술룰라!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곧 하늘을 찢어발기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물들었다. 오스만의 신무기ㅡ우르반의 거포가 거대한 돌덩이를 뱉어냈다. 그것을 신호로 오스만 군 5만의 선발대가 달려들었다. 공성전의 시작이었다.


성벽 위의 횃불의 빛도, 막사를 밝히던 불도 닿지 않는 어두운 성벽 사이에서 두 무리의 병사가 쥐고있는 무기를 내질렀다. 두려움 때문인지 악에 받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성벽을 기어오르던 오스만 군사가 수비군이 내지른 창에 가슴팍을 뚫려 절명했다. 봄 무렵에 꽃잎이 흩날리듯, 아리따운 생명들이 삶의 마지막에 아름다운 피 꽃잎을 어지러히 흩뿌렸다. 두 번째 파상공쇄를 막아낸 수비군이 한숨을 돌릴 틈 없이 세 번째 무리가 몰려왔다. 오스만 최고의 정예, 예니체리였다. 술탄은 마지막까지 아껴두던 그들에게 제국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을 것을 명했다.


서서히 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예니체리는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수비대장이 화살에 쓰러졌다. 황제는 그에게 다시금 나아가 싸워줄 것을 요구했다. 허나 용맹했던 전사의 눈에서는 두려움만이 들어차 있었다. 황제는 동이 터오는 하늘을 보며 탄식했다. 패배를 직감했다. 


곧 어디선가 성벽이 뚫렸다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1,000여년간 19번의 공격 속에서도 제국을 굳건히 지켜온 3중 성벽이 무너진 것이다. 총신 요하네스는 여기서 탈출하여 후일을 기약하자 청했으나, 황제는 그의 상징과 보랏빛 망토를 벗어 건네주면서 말했다. 여기가 나의 영지요, 성모 마리아께서 보호하시는 나의 도시이거늘, 이곳을 버리고 어디를 간단 말인가? 그리곤 그는 흰 말에 올라타고 한 손에 창을 꼬나들고 달려나갔다. 그의 뒤에는 황제의 근위대가 함께했다.


이 성벽을 나의 수의로 삼겠노라, 성은 함락되었으나 나는 여전히 살아있도다, 라는 것이 황제로 났으나 전사로 산화한 사내의 유언이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이스탄불이 되기 1여 년 전, 비잔티움 제국 정벌에 반대하던 오스만의 재상 할릴 파샤가 젊은 술탄 메흐메트 2세에게 물었다.


주군이시여, 그대에게 콘스탄티노플이란 무엇입니까?


창 밖을 보고있던 술탄이 툭 던지듯 뱉었다.


아무것도 아닐세.


그리곤 할릴 파샤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주먹을 말아쥐며 말했다.


모든 것이기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