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갔다.

 

딱히 중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저 마음을 정리할 계기가 필요했다. 

마음이 혼잡한 이유는 흔한 이유. 누구나 겪는 이성문제다.

 

이성과 만나 그 연을 이어나가는 것. 만약 그게 회사 일로써 내게 주어졌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으리라.

그렇지 않았으니, 오래 이어나가지 못했다.

 

절로 오르는 계단 하나하나 오르면서 이젠 과거가 된 결혼 생활도 떠올렸다.

나쁜 남편이었는가? 글쎄. 가족에 있어서 남편이라는 역할은 충실하게 이행했다고 생각한다.

집안일도 분담해서 했고, 육아를 외면한 것도 아니다. 수입도 일정하게 벌어왔다.

 

'남편의 기능' 으로써는 충실했다고 본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럴 것이다.

그럼 왜 이혼하였는가? 아마 그 외적인 이유. 감성적인 영역을 케어하지 못했으리라 추측한다.

 

왜 추측이냐 하냐면, 내게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계단을 모두 오르자, 아담한 절 건물 하나가 보였다. 절이라곤 하지만 그렇게 까지 전통적이지도 않다. 

흔히들 생각하는 속세와 완전히 연을 끊고 수행을 하는그런 모습은 전혀 아니다.

 

말하자면 동네 뒷산에 있는 정자에라도 올라가는 기분인 것이다.

절의 주지스님이 맞이해준다.

 

"왔는가?"

"예."

 

개인적으로는 친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저쪽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스님은 눈짓으로 절 본당을 가리키고는 슥 지나간다.

지금은 그러는 편이 나도 편했다. 본당으로 들어갔다.

 

약간은 촌스럽게도 느껴지는 황금빛 부처상이 있다.

거기서 잠깐 절을 몇번 하려고 보니, 웬 여자 아이가 하나 있었다.

 

동자승인가? 그래보이지는 않았다. 

절에는 참 안어울리는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있었다. 머리를 곱게 빗질하고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은 어딘가의 규수인가라고 생각될 정도로 우아했다.

그 모습이 이질적이라 눈길이 가기는 했으나 대뜸 너 뭐냐? 라고 물어볼 수는 없었으므로 나는 볼일이나 보기로 했다.

 

절을 세번 하고 나서, 본당의 뒤로 물러나 앉았다. 수행자들도 그런 나를 딱히 터치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절 관계자는 아니지만 내가 종종 오는 지인이라는 점은 알기 때문이었다.

딱히 불교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행을 하려고 온 것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공원에 산책하러가는 감각에 더 가깝다.

그런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알바는 아니었다.

 

목탁을 두드리며 부처님께 예를 표하는 수행자들을 본다. 아니, 보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환경과 안어울리는 인물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그 여자아이는 딱히 절을 하려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거기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얼굴은 제법 이쁘장하게 생긴 것이 남자 꽤나 홀릴 것 같이 생겼다.

 

옷을 보면 꽤 부티가 나는 것이 부잣집 딸일까, 싶은데 그런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절에서 저런 것을 챙겨주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뭐에요? 관심있어요?"

 

쳐다보자, 수행자 S 였다. 나와는 그럭저럭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아니, 이상해서. 누구야?"

"자세히는 몰라요. 큰 스님이 어느날 데려왔어요."

 

그러곤 내 옆에 슬쩍 앉은 S. 

스님이라는 놈이 이렇게 방탕해서 되는가? 싶지만 역시 내 일도 아닌데 굳이 입 밖에 낸적은 없다.

 

"어느 날? 뭐 숨겨진 딸 그런거야?"

"어이구, 그런 소리 마세요. 농담으로라도 하다간 대가리 깨집니다."

 

그러면서 제 머리를 슥슥 문지르는게 아마 한번 해본 소리인 모양이다.

 

"젊은 여성분이 그러는건 드물긴 하지만 출가하려는 사람들은 꽤 있긴 한데, 딱히 출가하려고 하는 것도 아닌것 같아요."

 

그 소리도 듣자 호기심이 동했다.

 

"그럼 왜 저기 가만히 앉아있대?"

"원래는 손님방에 묵게 했는데 자기가 자꾸 답답한지 여기에 있으려고 해서요."

 

외모만 봐서는 20대 초반. 아니 10대라고 해도 믿을만한 수준이다. 

 

"그거 참 이상하네."

"이상하죠? 안그래도 주지스님께 안그래도 불평 하는 놈들이 많이 있어요."

 

하기사. 저런 요물이 하나 앉아있으면 생물학적 남자인 수행자들도 눈이 안갈수가 있을까.

 

"안그래도 주지스님이 곧 내보낼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진짜로 딸은 아닌가봐요."

 

아깐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말라더니 자기는 예외인 모양이다.

범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주지스님이 들어왔다.

 

그리곤 두리번 거리고 내게 곧바로 왔다.

내 옆의 S 는 벌떡 일어나더니 후다닥 도망치듯 떠났다.

 

"에잉 쯧쯔 부처 되긴 글렀구만."

 

내가 알기론 당신도 뭐... 라는 생각은 했지만 마찬가지로 굳이 입밖에 내진 않았다.

 

"거, 볼일은 봤는가?"

"예. 봤습니다. 덕분에."

 

"궁상 적당히 떨으라. 뭔 그 나이 처먹고 뭔 난리여? 그럴거면 출가를 하등가?"

"하하, 그럴맘은 없습니다."

 

실 없는 농을 끝내고 주지스님은 스윽 하고 시선을 그 여자아이에게로 돌렸다.

 

"누군지 아나?"

"알리가요."

"그라겠제. 안 그래도 골칫거리여. 은사께서 하도 부탁을 하셔 며칠 묵게 한다마는 뭐 어떻게 보낼 구실도 없고만."

"사람보고 골칫거리라 해도 됩니까?"

"니도 골칫거리여."

 

나는 할말이 없어서 하하, 하고 멋쩍게 웃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도 또 여자 문제가?"

"예 뭐."

"보나마나 또 젓번처럼 울어쌌겠제 사람의 맴을 모른다느니 말여."

 

긍정의 뜻으로 잠깐 침묵.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걸까? 슬픔도 기쁨도 모르는 건 아니다. 단지 그 포인트를 잘 모르겠다. 

 

"에혀. 니는 사랑하긴 했나?"

 

주지스님의 그 말이 누군가의 말과 오버랩 되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기는 해?"

 

"....."

 

그 모습을 본 주지는 더 책망하지는 않았다.

사랑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마 아니라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나는 내 의무는 충실하게 다했다.

그 밖에 뭐가 필요했던 거겠지.

 

"다 니 업이다마."

 

그러면서 혀를 쯧쯔 차는 주지. 그런걸까? 정말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가 작용하는 걸까.

피식, 하고 웃었다.

 

"니는 그게 웃기나?"

"그냥 제 팔자가 그렇지 않나요?"

"쯔쯔, 드뎌 돌아뿟구만."

 

주지는 나와 여자아이를 번갈아보더니 다시 입을 뗐다.

 

"니, 덕좀 쌓으라."

"무슨 덕이요?"

"이번에 덕좀 쌓아야 다음엔 마누라도 생기고 애도 생기고 행복해야하지 안긋나?"

"그런가요?"

"그렇담마. 저거 좀 니가 치와뿌라."

 

주지가 말하는 '저거' 는 말할 것도 없이 여자아이였다.

 

"치우라고요?"

"니가 델꼬 살든가. 어쩌든가 하여간 여기서 좀 데려가라 이말이다."

 

......이렇게 해도 부처가 될 수 있는건가? 싶었지만 역시나 입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그.. 괜찮나요? 입양이라든가 그런건 문제가 있을텐데."

"아가 아니고 다 컸다."

 

애가 아니라는 말은 쉽사리 믿기는 어렵지만, 20살 초반쯤이라고 생각하면 납득은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누군데요? 은사님께서도 맡기면서 하신 말씀이 있으실거 아닌가요."

"머라머라 하긴 캤는데 그냥 좀 불쌍한 아다. 그 정도만 알면 된디야."

 

"그런 불쌍한 애를 저한테 맡겨도 되는 겁니까."

"찰떡아니가? 골치덩이가 골치덩이니깐."

 

그러면서 껄껄껄 웃는다. 마이너스 곱하기 마이너스는 플러스다 이건가.

 

"하아... 그렇지만...."

나는 힐끗 하고 여자아이를 봤다. 흥미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대뜸 데려가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긴 했다.

얼굴은 이쁘장하니 마냥 싫지만은 않다고 해도 그랬다.

 

"짜피 여자 땀시로 온거 아이가? 부처님이 점찍어줬다 카고 데가라."

 

아무리 그래도 산책하러 와서 여자를 데려가지는 않는다는 말이지.

 

"그렇게 적당히 해도 됩니까? 좀 더 제대로 된 시설이나 사람이 있을거 아닙니까."

"말 한번 섞어보면 그 말 안나올끼다."

 

" 어디가 좀 아픈가요?"

"그건 아인디... 함 보믄 안다. 하여간 아는노마가 데가면 어딨는진 알거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더더욱 일반인이 아니라 시설 같은데에 보내야 하는게 아닌가.

내가 여전히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주지는 목청을 높혔다.

 

"봐라봐라 이노마. 나가 그 동안 봐준기 얼만디 청 하나 못들주나?"

"아니 그게, 이건 부탁의 스케일이..."

 

무슨 심부름도 아니고 사람을 데려가라니.

 

"니가 아주 데리고 살라는게 아니꼬 여서만 꺼내달라꼬 하는기다."

 

한마디로,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일단 니가 데려가서 같이 살든지 다른데로 보내든지 알아서 하라는 말이었다.

이게 진짜 주지라고 하는 직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지 의심되기는 했으나, 그건 둘째치고 실제로 이 주지에게 은혜를 입은게 꽤 되었으므로 아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힐끗 하고 여자를 보았다.

 

이런 마음으로는 데려가서는 안된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묘한 고양감과, 흥분감과, 호기심이 섞여 내 등을 떠밀었다.

 

"...알겠습니다."

 

주지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흐 좋다. 그라믄 바로 말이나 섞으봐라. 여, 얘야. 얘야."

 

주지는 여자아이를 불렀다. 여자아이는 고개를 슬쩍 돌리고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일어섰다.

그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부스럭부스럭 하는 소리가 들릴만도 한데, 사라락 하며 우아한 소리가 났다.

머리카락은 부스스할법도 한데 비단처럼 챠르르 미끄러져 내렸다.

 

"저분께 가라. 니 델꼬 가실분이다."

 

여자아이는 주지한테 살짝 목례하고 내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여자아이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푹 숙여 인사했다.

나는 엉겁결에 자리에서 일어나 같이 인사했다.

 

"아, 안녕?"

 

그리곤 여자아이는 내 옆에 와서 서서, 손을 잡았다.

 

"?!"

 

깜짝 놀라 손을 뒤로 빼자 여자는 자신을 손을 보고 나를 번갈아봤다. 그리곤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아니야, 아니야. 그냥 놀라서 그런거야."

 

쩔쩔매면서 다시 고개를 들라고 했다. 그제서야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여자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아왔다.

이번에도 역시 당황했지만, 이번에는 손을 빼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닿는 여자의 온기는 자극이 적지 않았다.

 

그 광경을 주지는 껄껄껄 보고 있었다.

진기한 광경이라는 듯 말이다.

 

"이노마가 이러는 건 또 첨본다카이."

 

주지가 즐기는 듯한 모습은 열받았다. 하지만, 주지가 했던 말은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겨우 한 두 마디만 들었을 뿐이지만 일반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광경은 다른 수행자들도 보고 있었다. 부럽다는 듯이 보는 자도 있었고, 그저 신기하게 보는 자도 있었다.

이런 구경거리가 되는 느낌은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얼른 나가기로 했다.

 

"그럼 주지스님, 볼일도 봤으니 가보겠습니다."

"그려. 어디가서 버려뿌지만 말그라."

"예."

"진짜데이?"

 

나는 주지스님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의 장난기 있던 눈빛은 찾아볼 수 없다.

내게 다짐을 요구하고 있었다.

 

".....노력하겠습니다."

"거 대답보그라. 에잉 쯧쯔"

 

그럴거면 내게 맡기질 말던가. 그런 볼멘소리 하나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다른 수행자들의 시선이 따가웠기 때문에 가볍게 목례를 하고 절을 나서기로 했다.

 

여자가 손을 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의 손은 꼭 쥔채로 나섰다.

마치 연인의 손을 이끌듯이.

 

 

여자를 거의 끌다시피 해서 차에 태웠다.

우선은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서 시설에 맡기든지 진짜로 데리고 살든지는 모르겠고, 우선은 집에 돌아가는게 순서였다.

 

돌아가는 길, 여자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본래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은 아니긴 하지만, 유독 이 숨막힐듯한 공기는 차 연식이 오래되서 그런 것만은 아닐 거다.

 

할 수 없이 나는 부담을 안고 한 마디 하기로 했다.

 

"이름이 뭐야?"

 

우선은 기본적인 프로필 부터다. 야, 너 라고 부를 순 없잖는가.

 

"첫 이름은 세클. 둘 이름은 싱케입니다."

 

.....

이름부터가 쉽지 않았다.

 

"첫 이름하고 둘 이름이라니 뭐야? 성하고 이름?"

"아니요. 성이 아닙니다. 첫 이름은 처음 받은 이름이고, 둘 이름은 두 번째로 받은 이름입니다."

 

주지의 말이 떠오른다. 왜 그런 식으로 말했는지 이제 조금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적어도 평범한 삶은 아니리라 추측했다.

 

"...그래서 뭐라고 부르면 되는데?"

"예전에는 세클이라고 많이 불렸습니다만, 저택에서 나오고 나서부터는 싱케라고 다들 불러주십니다."

 

저택이라든가 예전이라든가 신경쓰이는 말은 엄청 많았다. 하지만 지금 한꺼번에 물어봐야 알지도 못할테니 차근차근 하기로 했다.

 

"그래. 그럼 싱케로 괜찮지?"

"예. 좋으실대로. 그럼 저는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나? 나는...."

 

오빠? 좀 닭살 돋는다. 음... 방금 만났고. 연인관계도 아니고.

 

"그냥 F 라고 불러."

"예. F님"

"아니, 님 자는 빼."

"....F씨?"

"그냥 편하게 F 라고 해."

"네. 그럼 F."

 

대화를 많이 해본 적은 없지만 유독 진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다.

 

"그럼, 싱케는 몇살이야?"

"내일부로 성인이 됩니다."

 

아이는 아니라고 하더니 (진) 이었냐. 망할 파계승.

 

"그렇구나. 절에는 왜 있었어?"

"저택에서 나와서 갈 곳이 없었던 차에 신사분께서 도와주셔서 잠시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신사분?"

"예. 저택에서 나와서 제게 여러가지를 알려주신 분입니다."

"누군데? 아는 사람?"

"아니요. 처음 뵙는 분이었습니다. 스스로 신사분이라고 하신 것 외에는 잘 모릅니다."

 

....복잡한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말을 섞어 보니까 점점 더 어지러웠다.

 

"그래... 그래서, 저택은 어디야? 집이야?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자라온 곳입니다. 집이라고 하는 정의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그러지 않을까 합니다."

"집이면 집이지, 그럴 것 같은 건 뭐야."

 

"말 그대로입니다. 집이라는 것의 정의를 잘 몰라서 단순 추측으로 말씀드린 겁니다."

"집이면 집이잖아. 네가 나고 자란 곳."

"그런가요? 그렇다면 자라기만 했을 경우에도 집인가요?"

"....? 나지 않았다고?"

"예. 아마 저는 어렸을 때 납치를 당했다고 하는 모양이라."

 

나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납치?"

"예. 신사분이 말씀 주셨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납치 당해서 다른 분에게 키워진 모양입니다."

"모양입니다?"

"예. 저는 기억 나지 않을 적 이야기라서."

 

기껏해야 입양이나 친척이나 뭐 그런 것을 예상했는데 상상을 초월했다.

 

"뭐야 그게 대체."

"저도 모릅니다. 그냥 그렇다고만 들었습니다."

"그럼 진짜 부모님은?"

"진짜 부모님은 한번 뵈었습니다."

"만났다고? 그럼 부모랑 같이 살면 되잖아. 왜 절 같은델 간거야."

"처음엔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그럼 나중에 마음이 변했다는 말이야?"

"예. 아무래도, 제 부모님은 제가 마음에 안드셨나 봅니다."

"그럴리가 있어? 애초에 부모님이 널 싫어했다면 널 만났겠어?"

"저를 찾은건 맞으실 겁니다. 부모님의 신고로 저를 수색했다고 하셨으니까요."

 

"그럼, 왜-"

"아마."

 

명확하게 구별되는, 단호한 목소리로 내 말을 끊었다.

무감정한 듯 하지만, 내려치는 목소리로 단언했다.

 

"제가 잘못한게 있었던 거겠죠."

 

- - - - - - - - - - - -

 

집에 도착했다. 

그 말 이후로 오는 내내 한 마디도 안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는데 익숙한 장소에 오니까 한 결 편해졌다.

 

다만 집에 온 건 좋은데, 아무 대책이 없었다.

 

"이런."

 

남자 혼자 사는 집이니, 일단 지저분한건 그렇다 치고 여자가 잘 만한 곳도, 방도 없었다.

호텔에라도 데려가는게 나았을려나.

 

무엇보다 지금 얘는 짐도 없고 몸만 온 모양이라 갈아입을 옷도 뭣도 없었다.

배려가 부족했다고 느끼면서 더 늦기전에 나가서 뭐라도 사와야겠다 생각했다.

 

"으음, 일단 여기에서 대충 쉬고 있어. 너 입을 옷이랑 먹을거라도 사올테니."

"그럼 저도 가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아, 아냐아냐. 피곤할텐데 너는 일단 여기서 쉬고 있어. 지저분하지만 마음대로 써도 되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그러더니 고개를 푸욱 하고 숙였다.

나는 어줍짢게 어어, 하고 답례를 하고 내 집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사실 같이 나가는게 여자애 옷 사기에는 나았지만, 아무래도 같이 있으면 불편해서 편하지가 않았다.

잠깐이라도 혼자 숨 돌릴 시간이 필요했다.

 

근처 슈퍼에 향했다.

집 근처 익숙한 길을 걷고 있노라면 지금 이 상황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괜히 데려간다고 했나.

 

개인의 사정은 둘째치고서라도 데리고 살려면 얼마든지 가능할거 같긴 했다. 집의 크기나 생활방식이나 이런 현실적인 문제는 어떻게든 맞춘다고 치고.

그러나 그게 맞는 걸까?

말을 섞은건 불과 몇분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싱케라는 인간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알 수 있었다.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감당 해야만 할까?

얼굴 이쁘장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장점이 없다. 직장도 없어, 연도 없어, 부모도 사실상 없어. 식충이 하나를 데리고 키우는 거다.

 

“…하아.”

 

무엇보다 거기에 거북한건 싱케 라는 인간 본인의 의지가 없는 듯한 모양새다.

어쩐지 같이 살래? 하면 예. 하고 대답할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거기에 대고 이유를 물어보면, '권유했으니까.' 라는 말을 할 것 같은 느낌.

 

머리를 벅벅 긁었다.

모르겠다.

일단 슈퍼에서 얼른 뭐라도 사서 돌아가기로 했다.

나 혼자서 결정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본인과 더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다.

 

- - - - -

 

집에 돌아가니, 순간 집에 잘못 들어온 것 같았다.

 

"오셨습니까."

 

싱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인사했다.

 

"어, 어 그렇게까지 인사할 필요는 없어."

"예."

 

집안은 언뜻 봐도 엄청나게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내가 나갔다 온 시간은 해봐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래도 눈에 보이는 것들은 거의 치워져 있었다.

게다가 싱케는 지금도 청소를 진행중이었던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아니아니아니 하지마 하지마 이리와."

 

나는 청소기를 들고 있는 싱케의 팔을 잡고 침대로 이끌었다. 

다른 뜻은 없었다. 그저 앉을 만한 장소가 거기 말고는 없었기 때문에. 

내 의도는 거기 앉아서 쉬라는 거였다.

싱케는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아, 그렇군요. 실례를. "

그리곤 자연스럽게 자기 옷춤을 스르륵, 하고 헤치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 얼른 말렸다.

 

"그만해! 뭐하는거야!"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싱케는 그 소리에 놀란 듯 했다.

 

"죄송합니다."

 

동시에 싱케는 그 자리에서 내게 엎드렸다.

 

"아니아니아니아니"

 

나는 더더욱 당황해서 절하는 싱케를 일으켰다.

싱케를 일으키자 싱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F?"

"아니 그게 그....."

 

말문이 막혔다. 이 행동은 분명히 누군가에게 교육 받은 것이다.

납치 당했었다고 했지.

무슨 목적이었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불쾌하다.

동시에 복잡미묘한 감정도 섞여들었다.

아주 약간의, 고양감이 있는 것도 같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내 감정이 얼굴에 드러난 모양이었다. 싱케는 거듭해서 사죄를 한다.

 

"아니야 아니야 싱케 잘못이 아니야."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그것을 부정했으나

 

"다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싱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싱케는 사죄하는 것조차 부정당한채로 거기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안쓰러움을 넘어서 이것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싱케 잘못이 아니야. 그냥 쉬어. 너 일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뭔가 요구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습니까? 그럼 뭘 하면 됩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어떻게 하는 겁니까."

 

나는 우선은 해쳐진 옷 품을 고쳐주고 침대에 앉혔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 고 하는 건 싱케에게 오히려 고역일 것이겠지.

구체적으로 말을 해주기로 했다.

 

“우선, 침대에 앉아있어.”

"예."

그제서야 싱케는 조금 편안하다는 표정으로 침대에 앉았다.

나는 한숨 돌리고서, 사온 것들을 그제서야 하나씩 꺼냈다.

그 중에는 싱케가 임시로 입을 옷이 있었다.

여자 옷에 대해서는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실내복으로 입힐 넉넉한 사이즈의 잠옷을 하나 사왔다.

속옷이라든가 세면도구라든가 더 필요한게 있긴 하겠지만 우선은 오늘만 이렇게 입히고 내일 본격적으로 쇼핑을 하려고 생각했다.

 

"하-하아.."

 

막막함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애완동물도 아니고 사람이다. 주민등록이 되어 있는지나 모르겠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가지 절차들이 필요할 것이다. 내일 성인이라면 더더욱. 일자리도 필요하겠지.

말이 성인이지 사실상 성인도 아니다. 일을 하러가는 건 둘째치고,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접근하면 너무나도 쉽게 거기에 넘어가버릴 것이다.

별 말도 안했는데 스스로 옷을 벗으려고 한 부분이 오버랩 되었다.

 

…어딘가에 맡긴다는 것도 방법이 없다. 스스로 사고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맡길 수도 없다. 아는 사람도 없고.

주지가 내게 데려가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알빠노? 라는 마인드로 내던져버릴 수는 있었다. 그러나 아예 관계되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미 데려와버린 이상 나도 책임이 생겨버렸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폐가 되는거겠지요?"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싱케를 쳐다봤다.

 

"뭐?"

"저는 폐가 되고 있는 거겠지요?"

 

그제서야 내가 엄청나게 인상을 쓰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한숨까지 쉬면서 그런 표정을 지었을 때, 어떻게 보였을지 깨달았다.

 

"아, 아니 그게-"

 

당황했다.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차마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정도의 강인함이 내게는 없었다.

 

나는 구체적으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싱케에게는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죄송합니다. 바로 나가겠습니다.”

“뭐-”

 

싱케의 반응은 빨랐다. 소지품이랄 것도 없어서 싱케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 터벅터벅하고 현관을 향했다.

 

“잠, 잠깐 갈 곳은 있어?”

“없습니다.”

 

싱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알아서 나가준다? 골칫거리가 해결된다?

아니. 그럴리가 있냐.

 

나는 전력으로 달려가 싱케의 팔을 붙잡았다.

 

싱케가 휙 하고 돌아보았다. 한순간 눈이 마주쳤지만, 이내 싱케는 시선을 돌렸다.

 

"....."

"....."

 

이 여자를 사랑하는가? 만난지 하루 된 여자를 사랑할리가.

그렇다면 이건 동정일까? 조금 정도는 있겠지.

아니면 단순한 성욕일 지도 모른다.

 

그래, 단적으로 이 여자의 얼굴이 흉측했다면. 못 생겼다면?

붙잡지도 않았겠지. 애초에 데려오지도 않았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스스로 혐오감이 들었다. 싱케의 팔을 잡은 손이 조금 떨렸다.

 

전 아내가 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사랑이란게 뭔지도 몰랐기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그러니, 내가 싱케를 붙잡은 것은 사랑도 뭣도 아니다.

본질적으로 납치범과 별로 다르지도 않은 이유인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알았다. 그 고양감이란, 그저 단순한 본능에 기인한 것이라는 걸.

 

나는 싱케를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한심하게도 싱케를 놔줄 수도 없었다. 싱케는 반항하지 않는다. 잠자코 있었다.

 

아주 잠깐의 정적.

 

"...괜찮으신가요?"

 

머리가 하얗게 되었을 때, 먼저 말을 꺼내 준 것은 싱케였다.

그제서야 싱케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었다.

 

그 얼굴에 떠오른 것은 혐오도 동정도 아니다. 무엇인지 모르겠다. 

알 수 없다. 

알 수 없지만 감정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나, 확실한 것은 나는 거기에 매료되고 말았다.

 

싱케는 손을 뻗었다. 자기를 붙잡은 손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떨고 계십니다.”

 

걱정.

자기가 나를 걱정할 처지인가.

 

싱케가 얹은 손으로부터 온기가 느껴졌다.

여자와의 스킨십은 참 오랜만이다.

이 와중에 피가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참 최악인 남자다.

 

"제가 필요하신가요."

 

싱케는 자기 팔을 붙잡은 내 손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 하나 떼기 시작했다.

아기라도 달래듯.

 

"필요하다면 여기 있겠습니다."

그리곤 이어 덧붙였다.

 

“폐가 아니라면.”

손가락을 모두 뗀, 내 손은 싱케가 두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뜨겁다.

싱케의 양손은 뜨겁다.

 

싱케는 나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훑어본다. 그리고 눈을 마주친다.

 

내게 대답을 요구했다.

 

필요하냐니?

그건 마치, 내가 너를─

 

"저는 괜찮습니다."

싱케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담담히 이야기 했다.

꼭 쥔 내 손을 싱케는 자신의 얼굴로 가져갔다.

정말로 소중하다는 듯이.

 

싱케는 살짝 눈을 감고 나지막히 말한다.

 

"오히려 그것이 저를 기쁘게 합니다."

 

피가 솟아올랐다.

나는 부정했다.

 

네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 지 알고 있다.

넌 나를 연모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해도

 

심장이 뛴다.

그게 뭐가 되었든 괜찮지 않은가.

전 아내는 사랑해서 결혼 했었나?

애당초 사랑하는 법 따위는 모르지 않나?

그렇다면, 똑같은 것 아닌가?

 

싱케는 눈을 뜬다.

눈을 마주쳤다.

 

깨달았을 때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

싱케를 폭 하고 품에 넣어 안았다. 싱케는 깜짝 놀란 모양새였지만, 이내 같이 나를 안아주었다.

 

“…있어줘.”

나는 욕망을 가까스로 토해냈다.

 

“예. 감사합니다.”

싱케는 기꺼이 받아내었다.

 

- - -

 

어두운 방 안의 침대.

싱케는 나를 향해 누워있다. 나는 그 싱케의 머리를 몇 가닥 누운채로 만지작거렸다.

말은 없다.

다만 침묵이 별로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이상하다. 만족감 때문일까.

 

이런 나날은 꽤 오래 지속 되었다. 싱케가 온지 몇 달이나 지났을 것이다.

집안일을 도맡아 해준다는 물리적인 편안함 외에도, 퇴근하고 집에 오면 누군가 맞이해준다는 경험은 언제 겪어도 썩 괜찮은 경험이다. 처음이 아니어도 괜찮은 경험은 얼마든지 있다.

 

“괜찮으셨습니까?”

“뭐가?”

“저, 오늘은 조금 서툰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새삼스럽게 무슨.”

 

처음에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신뢰하긴 어려웠지만 내가 처음이라고 했던가.

그런주제에 밤기술은 엄청나게 좋으면서.

 

“괜찮으셨다면 다행입니다.”

그러면서 에헤헤, 하고 웃는다.

기분이 좋아보인다.

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그래서 풀어졌을지도 모르겠다.

“F.”

“왜?”

 

그런 질문을 가볍게 받아서는 안되었다고 후회했다.

 

“F는, 저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순간 숨이 막혔으나, 이내 침착하게 숨을 내쉬었다.

 

“…왜 갑자기 그런걸 물어?”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 종종 생각을 합니다만.”

 

싱케는 내 몸을 쓰다듬었다.

“생각을 아무리 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확인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겠지. 아마.”

 

“…아마 입니까?”

“….”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싱케는 따지거나 질책하는 타입은 아니므로, 내가 입을 다물면 더 재촉해오지는 않았다. 나는 비겁하다.

 

“…괜찮습니다. 필요로만 하셔도.”

 

싱케는 그리 말하고는 나를 꼭 껴안았다.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나는 마음 한 구석이 찔렸다.

몰랐다면 차라리 사랑으로 착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이 사랑이 아님을.

나는 사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름을.

그렇기 때문에, 너를 필요로 하는 것은 순수한 욕망임을.

 

나는 그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싱케 너는 어때.”

그래서, 그걸 싱케에게 쏘아주고 싶었다.

아프기 때문에 무심코.

“너는 날 사랑하고 있어?”

“그건….”

 

싱케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보라. 너도 비슷하지 않느냐. 그런 생각에 위안을 삼았다.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와버렸다.

 

“사랑이, 누군가를 위한 마음이라고 한다면.”

싱케가 대답을 이어나갔다.

 

“아마 그 분께서 하신 것도 사랑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분?”

“예. 저를 세클이라고 부르신 분.”

 

나는 순간 몸이 조금 굳었다. 기분이 갑자기 불쾌해졌다.

“그 납치범?”

“예. 맞습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싱케도 덩달아 일어났다.

 

“걔가 너를 사랑을 했다고?”

“…예. 아마도.”

싱케는 내가 불쾌해졌다는 것을 알았겠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이야 그게.”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고, 연인이 서로를 연모하는 것도 사랑이라면. 그 분은 저를 사랑했다고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해서.”

 

거기엔 악의가 없다.

그건 정말로 순수하게 그리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 납치범은 너를 어릴 때 납치해서 자기 욕망을 위해서 너를 세뇌시킨거야. 그래서 너는 평범한 생활도 못하게 된거고. 그게 사랑이야?”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은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아닐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아이는 그런 것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건 나를 기분 나쁘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이건 내가 이해하고 넘어가야하는 문제였다.

허나 그럴 수가 없었다.

 

“뭐라는거야 너.”

나도 모르게 말에 힘이 들어갔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나는 싱케를 보았다. 싱케는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싱케에게 순수함은 이제 별로 없다. 나라고 하는 속세에 물들어서, 상당히 내 색깔이 묻어나오고 있다.

 

시선을 돌리는 것도 그 색깔 중 하나다.

 

“싱케. 그럼 내가 너를 대하는 건 뭔데.”

“…저는 모릅니다. F 의 생각이기에.”

“그게 뭐야. 그럼 그 납치범 새끼는 어떻게 아는 건데?”

“그저, 저는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말을….”

“야!”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싱케는 눈을 질끈 하고 감았다.

 

“이- 이-“

때리진 못한다. 싱케가 악의가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너무 불쾌했다.

왜?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쁠까.

 

답은 간단했다.

나는 싱케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들킨 것이 부끄러운 것이었다.

내가 해준 것이, 그딴 새끼와 비교해서 더 못하다고 말하는 것에 더욱.

 

“꺼져.”

“…예?”

“꺼지라고. 당장.”

싱케는 뭔가 말을 하려고 했으나, 단념했다.

“…예. 그럼.”

싱케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주섬주섬 옷가지를 주워 입었다.

현관으로 나서는 싱케는, 한번 뒤돌아보았다.

나는 그것을 내버려두었다.

 

“안녕히.”

덜컹.

문이 닫히는 소리.

세계와도 단절되는 소리.

 

- - - - - - - 

 

다음날 아침에도 싱케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짚으면서 깊게 후회했다. 이렇게 될 것 같은 느낌이 없었던 건 아닌데.

나가려고 할 때 말렸어야 했는데 화가 나서 아무말도 안했다. 나란놈은 진짜 멍청한 놈이다.

아니 꺼지라곤 했지만 화나서 그런건데 진짜 나가는 놈이 어딨어?

 

나는 일어나서 간단한 그루밍만하고 싱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사준 휴대폰은 갖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신호음조차 가지 않았다.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말과 함께.

나는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체감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최소한의 옷가지만 입고 집을 뛰쳐나갔다.

집을 나오긴 했지만 싱케가 어디로 갔을지 짐작조차 가지도 않았다. 평소에 싱케를 가능하면 집에만 두었고, 외출할때는 항상 내가 같이 있었으니까.

싱케 혼자라면 도대체 어디를 갔을까?

밤새 어디를 계속 떠돌았을까? 그러고도 남는다.

우선은 평소 싱케와 걸었던 거리부터 다 돌아보기로 했다.

 

슈퍼, 시장, 옷가게, 빵집 등 싱케와 같이 갔던 곳을 다 돌아다녀보았다. 별로 나가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참도 많이 돌아다녔다.

요령이 없는 싱케라면, 모르는 길 보다는 아는 길 위주로 다녔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곳에서도 싱케를 찾지도 못했다. 혹시 몰라서 주인에게도 싱케의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봤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실종신고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사정이 사정이다보니 실종신고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가지 찔리는게 없진 않기 때문에.

하지만 따질때가 아닌 것 같다.

 

실종신고를 하려고 했을 때,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주지였다. 주지가 내게 먼저 연락할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예외가 하나 있었다. 내가 싱케를 만난 곳. 

그제서야 싱케가 어디로 갔을지 생각이 미쳤다.

 

- - - - - -

 

“등신놈이. 참말로 빨리도 오는구마”

“….”

 

절에 도착한 나를 맞이한 것은, 욕을 내뱉는 주지였다. 나는 거기에 대꾸할 수가 없어 고개만 슬쩍 숙였다.

 

“손님방에 있다. 빨리 가뿌라.”

주지는 휙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 방향으로 향했다.

 

절의 손님방 앞에 도달한다. 문을 열었다.

싱케가 있었다.

 

싱케는 나를 보더니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F?”

“그래 나다.”

“왜 오셨습니까.”

“널 데리러 왔지 왜 오긴.”

“꺼지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게 그 말이냐 답답하네.”

“…다른 뜻이었습니까?”

“몰라. 일단 여기서 나가자.”

나는 얼른 데리고 가고 싶어서 싱케의 팔을 잡고 떠나려고 했다.

“싫습니다.”

그러나 싱케는 그것을 뿌리쳤다.

이런 적은 처음이라서 당황했다.

 

“뭐, 뭐?”

“싫다고 했습니다.”

“뭐야. 돌아가자고.”

“돌아가기 싫습니다.”

못 알아들었냐는 듯이, 다시 한번 더 또박또박 말했다.

“뭐야. 왜 그러는데.”

“그러는 F 야 말로 저더라 꺼지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랬지.”

“그런데 이제와서 다시 돌아가자는겁니까?”

“아니, 그러니까 그건…. 아이씨. 됐고 돌아가서 이야기 하자.”

“싫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삭혔던 화가 슬슬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왜. 이유가 뭔데.”

“먼저 저더러 꺼지라고 하셨으면서 이제는 다시 오라고 하는 건 너무 멋대로 하시는 것 아닙니까?”

“아니, 그건-.”

“사과하십시오.”

“뭐?”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저런 말은 어디서 배운거야?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여줬나?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니 하.. 그래 미안해.”

“그게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입니까?”

“아니, 미안하다고 했잖아.”

“정말 미안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 그래, 니 마음대로 해라.”

“네. 알겠습니다.”

더 있다가는 한대 칠 것 같았다. 우선은 자리를 뜨기로 했다.

자리를 뜨는 내 뒷통수에 대고 싱케가 한마디 던졌다.

“F 는 저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나는 그 물음은 못 들은척 했다.

그리고, 손님방을 완전히 나왔다.

 

나는 늘 하던 것처럼 본당으로 향했다. 저번에 왔을 때 처럼 심각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머리를 좀 식혀야 할 필요가 있었다.

본당의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주지가 금새 와서 내 옆에 와 섰다.

“니 뭐꼬.”

“뭐가 말이에요.”

“왜 안데가고 여서 왜 또 궁상이냐고.”

“가기 싫댑니다.”

“뭐라꼬? 니랑?”

“예.”

“참말 골아파죽것구만.”

딱!

그 직후 머리에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악!”

주지가 갖고 있던 목탁봉으로 내 머리를 때렸다.

“이 등신아. 가서 빨리 싹싹 빌어뿌라. 여서 지랄하지 말고 빨리 데꼬 가라꼬.”

“아니 지가 가기 싫다는데 어쩌라구요?”

딱!

“아이, 씹 왜 때려요?”

“니가 하도 등신이라 요 달린 이게 돌은 아닌가 확인해볼라꼬. 왜? 아프나?”

“아프죠! 당연히!”

“그럼 점마는 안아프것나? 적당히 해라 임마 적당히.”

“아니 저는 때린 적은 없어요!”

딱!

“아이 증말!”

“때린 거나 다름이 없다꼬. 마 임마 계집아를 데려갔으면 책임을 질줄 알아야지 아직도 머스마처럼 요처럼 있으면 아이고, 마 화통나 뒤지뿌껏네.”

“댁이 왜 뒤져요?”

딱!

“요요요요 요고 때문에 죽겠다꼬.”
 그러면서 내 머리를 통통통통 두드렸다.

나는 그걸 손으로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아니, 지를 사랑하냐고 묻는데 거기에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머라꼬? 사랑?”

나는 또 때리려는 줄 알고 방어자세를 취했지만 주지는 오히려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이고 이놈아.. 그럼 거따대고 뭐라켔노?”

“아, 아무말도….”

“등신아…. 등신아. 그럼 사랑한다고 후딱 말해뿌야지 뭐 그걸 말을 안해싸꼬 계집아를 삐지게 만드노? 진짜 등신이다 등신.”

“자꾸 등신등신 하지마시고….”

“그럼 등신짓거리를 하지 말라꼬.”

“아니 그래도, 진짜 사랑하는지 확신이 안서는데….”

“사랑이 별거가? 그냥 니가 사랑한다꼬 하면 그게 사랑이지 뭐 무슨 대단한 사랑을 찾아싸뿟노? 니가 뭐 부처라도 되는기가? 아가페가?”

“아니, 그건 그렇다고 해도요. 저쪽이 나를 사랑하는지도 모르잖아요.”

“그란데?”

“그런데 내가 사랑하라고 하면 그건 가스라이팅이 아니겠어요? 그게 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뭔가 죄 짓는 것 같잖아요.”

따아악!

주지의 목탁봉이 내 머리에 크리티컬 히트 했다.

나는 너무 아파 비명도 못지르고 머리를 감싸고 데굴데굴 굴렀다.

“그걸 왜 니가 결정하는디야? 본인에게 물어야제.”

“아니 애초에 사랑이 뭔데요!”

 

“니 지금 하고 있는거. 제정신이면 못 하는 거. 그게 사랑이다.”

 

“그게 무슨—.”

주지는 거기에는 대답해주지 않고 휙 하고 가버렸다.

나는 머리를 계속 문지르면서 바닥에서 움찔거렸다. 통증이 좀 가시고 나서야 고쳐 앉을 수 있었다.

“젠장 땡중 같으니라고.”

나는 궁시렁거리면서 주지의 욕을 했다. 동시에 주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주지가 더 짜증나는 이유는 그 말이 하나 하나 틀린말은 아니어서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하아. 젠장.”

곰곰히 생각을 하다가, 이대로 있어봐야 아무것도 진전되지 않았다.

나는 결심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손님방에 왔다. 안에는 여전히 싱케가 있었다.

“뭔가요?”

나는 당장은 대답하지 않고 일단 싱케의 앞으로 가서 앉았다.

싱케는 거기까지 지켜보고만 있었다.

나는 그 후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미안하다.”

“…그런가요?”

“그래. 그러니까 이제 돌아가자.”

“꺼지라고 하셨잖습니까.”

“…그건 충동적으로 한 말이야. 진심이 아니었어.”

“그랬습니까? 왜 그러셨는데요.”

“그건…”

나는 잠시 말을 끊고 나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눈을 꾹 감고 말했다.

“질투 했나봐.”

“예?”

“네가 이전 그 납치범 이야기를 해서…. 그거 때문에 나, 나를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화가 났던거야.”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슬쩍 싱케를 쳐다봤다. 그러자.

“풋.”

싱케는 웃었다.

“엑.”

싱케는 그리고는 깔깔깔하고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박장대소를 하였다.

“하, 하하핫. 정말인가요?”

나는 차마 말로는 못하고 고개만을 조용히 끄덕였다.

“그렇군요. F 는 나를 사랑하고 있군요.”

나는 이번에도 고개만을 끄덕였다.

“왜죠?”

“응?”

“왜 저를 사랑하고 있으시죠?”

“그건 그야….”

이유가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전아내에게는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싱케에게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해도, 왜 느끼는지는 모르겠다.

그건 아마도

“아마… 제정신이 아니라서?”

딱히 무슨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주지가 했던 말이 그냥 떠올라서 해본 말이었다.

그 대답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싱케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유쾌하게. 대답한 사람이 민망해질 정도로 웃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틀린 말도 아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성인이 될때까지 연고도 없고 수입도 없고 쌓아놓은 학력도 없는 완전 제로상태의 여자를 데리고 사냐고.

“F. 저도 그렇습니다.”

실컷 웃은 싱케가 그리 말하며 내 귓가에 다가왔다.

그리고 속삭인다.

“저도, 제정신이 아닙니다.”

나는 온몸에 타고 흐르는 전기를 느꼈다. 나는 싱케를 가까이에서 쳐다보았다.

“질투하실 필요 없습니다. F.”

싱케의 손길이 내 목덜미를 훑어지나갔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기로 결정했으니까요.”

싱케는 내게 완전히 안겨들었다.

“제 결정은 변하지 않습니다.”

나를 밀어 넘어뜨리는 싱케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받아들였다.

“그러니, 안심하시길.”

 

- - -

 

밤.

F 는 진즉에 잠들었다.

싱케는 그 옆에서 F 를 슬쩍 쓰다듬어보았다.

다부진 몸. 여전히 싱케를 흥분케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렇지만 절제했다.

절조가 없어도 너무 없다.

그리 생각하고는 후후, 하고 속으로 웃었다.

 

그 이전의 부모- F 는 납치범이라고 부르는 그 자는, 악인이라고 하기에는 미묘하다고, 싱케는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을 체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싱케는 물론 법에 대해서 알고 있다. 자신이 납치당한 것은 악이며, 자신은 불쌍한 아이라고. 그리 생각해야 한다고.

하지만 싱케는 잘 알 수 없었다. 모르는건 모르는거다.

자연스러운 만남 따위는 모른다. 학교를 다닌 적도 없다. 기본적인 지식은 책으로 배워 알고 있지만, 학교는 모른다. 다른 이성 남자를 만날 기회는 지극히 적었다.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은 지식으론 알아도 지혜로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으니

사랑이라는 것을 정의하기로 했다.

 

F 만 보면 마음이 들뜨는 것.

이것이 사랑이라고.

 

물음이 아니다.

그저 순수한.

사랑이라고.

 

단순한 성욕일지도 모른다.

어떠한 정신착란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사랑이라고 하기로 했으니.

틀림없는 사랑이로다.

 

“나무아미타불….”

그저 사랑했었냐고 물었을 때

네, 라고 대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용서해주십시오. 아미타.

 

언젠가 봤던 염불을 슬쩍 외며

싱케는 눈을 감았다.



한 없는 순수함 싱케 사랑광기의 꿈을 꾸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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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 알았는데 정확하게는 몰라도 글자수 한 1만 정도 넘어가면 아카라이브 게시판에서는 쓸 수 없을 정도로 렉이 엄청나게 걸립니다. 글자 하나 쓰는데도 10초 이상씩 걸립니다. (진짜임)

제 브라우저 문제 일 수도 있긴 한데 하여간 렉 때문에 워드에서 써서 복붙했습니다.


저는 관종이라 관심주시면 정말 좋아합니다.

부족한 작품이지만 잘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신분들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