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자는 나를 반겨 맞아주었다. 나는 그 동안 확보한 늑대 눈알 36개를 담은 수집함을 넘겨주었다. 

"거기에는 모두 36개의 눈알이 담겨 있어요."

"그럼 눈알 하나에 15피코로 계산한다면 모두 합쳐 540피코군요."

"그 중에서 10개는 풍토병 치료제로 만들어주시겠어요?"

"눈알 2개로 치료제 하나를 만들 수 있답니다. 마침 저한테 치료제가 좀 남아있거든요. 그 중에서 5개를 드리죠."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풍토병 치료제는 요즘 인기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하나에 50피코를 받아야 하죠. 하지만 특별히 40피코에 드리죠. 5개니까 200피코로군요. 그럼 그 차액인 340피코를 드리겠습니다."

제약업자는 내 연락을 받고 미리 치료제를 준비한 듯 서랍에서 새끼손톱보다 조금 더 작은 캡슐형 약품을 꺼냈다. 나는 캡슐 5개를 조심스럽게 보호필름에 감싼 후 호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단말기로 사모아 형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형사님, 바이러스 전문가를 확보하셨죠?"

"한누리, 전문가는 확보했고 내가 간략하게 사건의 개요를 설명해주었다네."

"혹시 오늘 제가 만나볼 수 있을까요? 제가 메가로폴리스에 있거든요."

"곧 근무시간이 종료되는데.... 나야 괜찮지만, 전문가한테 만날 수 있는지 물어봐서 연락을 주도록 하지."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경찰청 주차장으로 가서 기다렸다. 사모아 형사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한누리, 바이러스 전문가는 오늘 늦기는 했지만 사무실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하는군."

"잘 됐군요. 저는 경찰청 주차장에 있어요. 지금 바로 사무실로 올라가겠습니다."


사모아 형사와 나는 사무실의 면담공간에 앉아 바이러스 전문가를 기다렸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전문가가도착했다. 

"형사님, 이분이 한누리님이신가요? 첨 뵙겠습니다. 한누니님, 저는 미생물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수전이라고 합니다."

"수전, 만나서 반가워요. 근무시간이 지났는데 이렇게 뵙자고 해서 죄송해요."

"조사팀에 합류하게 된 이상은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밤낮없이 일해야죠."


수전은 맵씨있는 옷차림에 귀여운 얼굴을 지닌 휴먼 여성이었다. 

"수전, 제가 늑대 눈알로 만든 풍토병 치료제를 갖고 있는데, 그 성분을 분석할 수 있나요?"

"마침 간이 분석기를 휴대하고 있어 다행이군요. 만나자고 하시길래 혹시 몰라 갖고 왔거든요. 간이 분석기이기는 하지만 성능이 좋아 분석결과를 신뢰할 수 있으실 거에요."


수전은 내가 건내준 캡슐을 받아 그 안에 들어 있는 분말을 페트리 접시에 담았다. 1리터 들이 물병처럼 생긴 간이 분석기의 홈에 페트리 접시를 밀어넣었다. 곧 분석장치가 작동하는 음이 들리더니 분석완료를 알리는 신호음이 들어왔다. 수전은 자신의 단말기에 전송된 분석 결과를 쭉 읽어나갔다. 

"한누리, 치료제를 분석한 결과 일종의 항생제 성분이 발견되었군요.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생제입니다. 범용 항생제는 아니고요, 특정한 분자구조를 가진 바이러스를 죽일 수 있어요."

"이 약품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바이러스에는 어떤 종류가 있나요?"

"바이러스의 종류는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라고 말하기는 어렵네요. 하지만 지성체에 질병을 발생시키는 일반적인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삼마 행성의 풍토병에 대해 아시나요? 죽음을 얼마 안 남겨둔 쇄약한 노인에게 정신질환을 일으켜 이상한 행동을 하게 한다는 풍토병이죠."

"최근에 그런 질환의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저도 관련 논문을 읽었죠. 질환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보통 풍토병 바이러스라고 하는데, 그 분자구조가 이 치료제와 잘 반응할 수 있겠어요."

"수전, 그렇다면 이 치료제는 퐁토병 바이러스와 비슷한 분자구조를 갖는 다양한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겠지요?"

"맞아요."

"혹시 늑대 눈알을 보신 적이 있으세요?"

나는 말을 하면서 늑대 눈알을 꺼냈다. 

"이 눈알로 풍토병 치료제를 만든다고 하더군요."

"눈알의 성분을 분석해드릴까요?"

"아닙니다. 이 눈알에 치료제 성분이 있겠죠. 그것보다는 눈이 작동하는 방식을 알고 싶어서요." 

"눈이 작동하는 방식요?"

"숲속에서 만난 오크 장로는 늑대가 정신지배를 당하는 생명체를 알아볼 수 있다고 하더군요. 보통 사람은 눈으로 봐서는 생명체가 정신지배를 당하는지를 바로 알아낼 수 없지만, 늑대만 가능하다고 하네요."

"한누리, 혹시 정신지배를 당하는 생명체가 풍토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수전, 제 생각을 잘 짚으시네요. 퐁토병 바이러스가 다양한 돌연변이를 일으켜 정신지배가 가능한 바이러스로 진화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풍토병의 증상이 정신착란이나 이상한 행동이거든요."

"한누리,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아무리 진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정신지배까지 가능할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수전, 혹시 바이러스끼리 교감이 가능하다면 숙주에 대한 정신지배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바이러스가 서로 통신을 하고 집단행동을 할 수 있다면요?"

"바이러스가 집단행동을 한다? 저는 바이러스 전문가이지만 그런 바이러스에 관해서는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어요."

"혹시 바이러스가 집단 교감 능력을 가진 숙주를 감염시킨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이러스 또한 집단 교감 능력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적어도 숙주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상상력에 의해 다양한 가설을 세울 수 있겠지요. 하지만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증거가 있다면 그런 가설이 사실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한누리, 당신은 참 상상력이 풍부하시군요."

"수전, 아무튼 늑대 눈알의 생리적 구조에 대해 알아봐 주세요. 혹시 이것으로 우리도 정신지배를 당하는 생명체를 알아보는 장치를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누리, 당신은 참 흥미로운 분이시군요. 저는 생물학자로서 생명현상에 관심이 많아요. 꼭 어떤 장치를 개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늑대의 특이한 능력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생기네요."

"제가 늑대 눈알 2개를 갖고 있거든요. 우선은 그것을 들릴 텐데, 나중에라도 눈알이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요. 어떻게든 구해드릴 테니."


나는 내일 숲 조사와 관련해서 사모아 형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형사님, 오크 장로는 다시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고 한 것 기억하시죠?"

"한누리, 그렇다면 정신지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다른 지역을 조사하면 되겠지."

"오크 장로는 자기 마을 주변에 어둠의 세력이 존재한다고 하니까 그 주변 마을을 조사하면 되지 않을까요? 곰이 주로 출현하는 지역을 통해서 진입하면 주변 마을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곰이 출현하는 지역이라.... 좋아, 나는 용병으로 일할 당시 단독으로 곰을 잡은 적이 있지. 우리 팀이라면 충분히 곰을 상대하면서 사건을 조사할 수 있을 거야."

"제가 오늘 곰이 출현하는 지역에 갔다왔어요.  곰도 한 마리 잡았습니다."

"대단하군."

"형사님, 제가 곰이 출현하는 지점을 단말기로 전송할께요. 내일 수전과 함께 그곳으로 나오세요. 혹시 아침 9시에 출발하실 건가요? 그렇다면 11시경에 만나뵙는 걸로 할까요?"

"그렇게 하지."


나는 사모아 형사와 헤어져 오크 스파링의 숙소가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메갈로폴리스를 벗어나 2시간을 오는 동안 한숨을 잤다. 요즘 오토바이를 탄 채로 선잠을 자는 것이 습관화가 되다보니 정작 숙소에서는 깊은 잠을 못 자는 것 같다. 

아파트의 16층까지 뛰어올라갔다. 단숨에 뛰어올라가니 숨이 찼다. 자기 전에 하는 운동으로는 충분할 것이다. 스파링의 아파트 문은 열쇠로 잠가놓지 않았다. 뭐 훔쳐갈 물건도 없는데 16층을 올라올 도둑은 없을 테니까. 

스파링은 잠들어 있었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 값싼 빵과 음료수를 마시며 저녁을 때우고 단말기로 테트리스 게임을 계속하다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자 스파링과 나는 곰이 출몰하는 숲 지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쪽으로 가서 사모아 형사와 수전 연구원을 기다렸다. 오전 11시 정각에 일행이 모두 모였다. 승합차에서 내린 사모아 형사와 수전 연구원은 전투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신축성 있는 전투 슈트를 입고 각자 예리한 검을 허리에 찼다. 


숲으로 10분쯤 들어가자 스파링은 휘파람과 비슷한 신호를 숲속을 향하여 보냈다. 얼마 걸어가지 않아 늑대 두 마리가 저 멀리서 다가왔다. 사모아 형사와 수전 연구원은 늑대 두 마리가 함께 달려오는 것을 보자 극도의 경계태세를 취했다.

"형사님, 저 늑대들은 스파링이 길들인 늑대들입니다."

"길들였다고? 오크 장로가 늑대를 길들인 것처럼? 스파링에게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나?"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어제 발견했어요. 스파링은 특별한 오크니까요."

스파링은 늑대쪽으로 걸어가더니 낯선 형사와 연구원을 보고 으르렁거리는 늑대를 진정시켰다. 늑대는 1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멈추어 얌전하게 뒷발을 구부려 앉았다. 스파링은 우리에게도 돌아왔다. 

"스파링, 자네가 형사님과 연구원님께 설명을 드리라구."

"어제 늑대의 눈을 바라보며 서로 감정을 교류하려는 제 간절한 마음을 담아 보냈더니 교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차례 실패를 한 끝에 성공했어요. 저는 평소에 아침마다 명상호흡을 했는데, 그 수련으로 동물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나 봅니다."


사모아 형사는 스파링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전 연구원도 호기심을 나타냈다. 

"스파링 용병님이라고 하셨지요? 저는 수전 연구원입니다. 참 놀라운 능력을 갖고 계시네요."

"과학적으로 제 능력을 설명하실 수 있으신가요?"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삼마 행성처럼 문명과 원시자연이 공존하는 곳에서는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기도 하니까요."

"그럼, 제가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초자연적인 현상이라는 말인가요?"

"연구가 진행된다면 동물과 교감하고 인간의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조차 궁극적으로는 해명이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아직까지 동물과 대화를 나누는 기술이 개발되지 못했으니 스파링님께서 갖고 계신 능력을 초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자부심을 가지셔도 될 것 같아요."


나는 생물학에 대해 조예가 깊은 수전에게 물었다.
"수전, 이곳에서는 곰이 자주 출현합니다. 곰이 집단 행동을 하는 사례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지요?"

"아직까지 곰의 집단행동이 보고되지 않았어요. 곰은 단독행동만 해요."

"사모아 형사님, 곰이 집단행동을 한다면 우리가 대항할수 있을까요?" 

"곰이 얼마 큰 규모로 집단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달려있겠지."

수전은 나를 향해 자신감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누리,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곰은 어떤 행성에서도 단독행동만 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니까요. 본래 속성이 무리짓기를 좋아하지 않거든요."


우리 일행은 늑대를 앞세우며 숲의 더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늑대가 으르렁거리며 제 자리에 멈췄다. 저 멀리에서는 숲의 그늘 아래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움직이며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