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하늘이 좋았다. 하늘을 올려보며 자유로이 항해하는 꿈을 꾸는 것이 소년의 일상이였다. 맑고 투명한 아침의 하늘과 해질녘의 분홍빛 하늘, 해가 막 넘어가면 이내 스르르 다가오는 진한 색의 푸른 저녁하늘. 소년에게 하늘은 항상 함께하는 동무이자 언제나 포근히 덮어주는 어머니의 품 같은 것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넘어간 내지에서도 소년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물전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소년의 부모는 그의 자식이 가난의 굴레를 이어받지 않았으면 했다. 판자촌에서 근근히 이어나가는 가난한 살림에도 부모는 그에게 공부를 시켰다. 글자도 잘 들어오지 않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에서 소년은 공부를 했다. 그러다 지치고 힘들면 예전에 그러했듯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너른 하늘은 소년의 지친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그렇게 소년은 약학 대학에 들어가 졸업까지 했다. 개천에서 용났다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축하해주었다. 기뻐하며 눈물짓는 부모님을 보며 소년은 뿌듯함을 느꼈다. 행복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시대는 소년을 그냥 두지 않았다.

천황 폐하의 영광스러운 군대에 자식을 바치시오. 물론 거부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소. 그렇지 않다면 뭐,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 

방학을 맞아 집에 내려온 그는 부모님이 순사들에게 협박을 받고있는 것을 보았다. 자랑스러운 첫째 아들에게 부담가지 않게 필사적으로 집안 사정을 숨기던 노력이 무상하게도. 가족들은 눈물로 앞을 막았으나, 그의 결정은 변치 않았다.

입대한 그곳에서는 저보다 어린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조선인은 그뿐이었다. 매일이 고통이었다. 대놓고 하는 욕설은 애교였다. 매일 밤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주먹과 발이 날아들었다. 신성한 천황이 다스리는 국가에, 한낱 망국의 후예따위가 설 곳은 없었다.

고통의 와중에도 시간은 그렇게 가 2년이 흘렀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그에게 남은 것은 거의 없었다. 가족의 소식은 들어본지 1년이 넘어갔다. 그 와중에도 그를 지탱하던 것은 오직 하늘 그 뿐이었다.

1945년 5월의 어느 봄날, 벗꽃이 막 비내리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날에 그는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술을 한 잔 마시고 전투기에 올랐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

누군가 소리쳤다. 허나 그가 느끼기에 적어도 그것은 자신들의 군주를 칭송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늘이 미친듯 푸르렀다. 바다도 푸르렀다. 시선을 멀리 두면 어디가 바다고 하늘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푸르른 하늘 위로 이내 검은 꽃들이 피어났다. 황홀하게 치명적이어서 더 매혹적인 검붉은 꽃이었다. 

머리 위에는 푸른 하늘을 두고 옆에는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며, 소년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가. 

바람에 흐드러지는 벗꽃잎 처럼, 하늘을 좋아하던 식민지 청년은 그렇게 흩날려 날아갔다. 24살, 꽃다운 나이였다.

여담이지만, 마지막 사진을 본 가족들은 그가 울고 있었노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