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하는 지명, 용어는 모두 실제와는 무관하며, 저의 순수 창작입니다.) 





                                                         



충청북도와 남도가 만나는 경계를 따라 차를 좀 몰다 보면 아무도 굳이 찾지 않는 문동면의 작은 마을에 이르게 됩니다. 개 짖는 소리 하나 나지 않고, 몇 없는 노인들만이 굳은 표정으로 소멸을 기다리는 이 마을을 처음 찾으신다면 소름이 워썩 돋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풍수를 배워서 먹고 살 적에, 내가 이 마을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사흉(凶)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무척 궁금해하시는 표정입니다. 꺼림칙하시기야 하겠습니다마는, 잠시 얘기를 해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당신도 나와 다니며 대충은 들어보셨겠지요. 땅의 정기가 순환하는 혈맥은 용맥과 지맥으로 나눕니다.


보통 용맥만 폐(廃, 혈맥이 끊기어 못 쓰게 되는 일) 할 경우에도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고, 역병과 재앙이 그 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고 합니다. 다만 선남선녀가 여럿 모여 덕을 쌓으면 다시 회복되는 용맥과 달리, 지맥이 폐하면 그 길로 그 땅은 영영 불체용(用, 몸으로써 기능하지 못하는 것. 땅이 불체용이 되면 오곡이 자랄 수 없고 사람이 살지 못한다.) 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러면 당신은 묻습니다. 풀 한 포기, 흙 한 줌에도 깃들어 있어 강건한 이 지맥을 끊는 방법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그것이 바로 사흉입니다.


사흉은 일종의 주술이고, 저주입니다. 지독하게 땅을 괴롭히는 대흉의 주술이지요. 사흉의 사는 죽을 사()와 삿될 사()와도 통하며, 네 가지 흉한 일이 하나의 땅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네 가지 흉한 일이란,

첫째, 사람을 먹은 자가 묻히는 일이요,

둘째, 많은 사람을 죽인 자가 묻히는 일이요,

셋째, 자식을 죽인 부모가 묻히는 일이요,

넷째는 파묘(墓, 무덤을 부수는 일)하여 훼시(屍, 주검을 해치는 일) 한 자가 묻히는 일입니다.


이 네 가지 모두가 참으로 괴이하고 참혹한 일입니다.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궁금하십니까.


예전에, 조선 시대에 큰 기근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참혹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이 산골짜기 마을에도 계곡이 범람하여 수재가 발생하고 돌림병이 돌았습니다. 그 다음 해가 신해년이었는데, 이때에는 쌀이 부족해져 부모를 버리는 자식들도 흔한, 그런 지옥도 같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사씨 여인으로 시작합니다. 이 여인은 어느 날 이웃에게 제안을 받습니다. '내 딸이 병이 들어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 집안에 쌀이 떨어진 지 오래고, 진휼미로도 굶어 죽는 것을 면하기 힘드니, 자기 자식을 먹는 사람도 나오는 지경이다. 그러나 난 도저히 그러지 못하겠으니, 우리 서로의 자식이 죽으면 그 자식들을 바꾸어 먹도록 하자.'

사씨는 흉한 소리를 들었구나, 미친년이라고 그 여인에게 온갖 욕지거리를 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들은 집에 가만히 누워 있습니다. 사씨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그 비루한 입술을 벌리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사씨가 죽을 입에 머금고 들어오면, 아기새가 그러하듯 죽을 그대로 받아 먹는 것입니다.

가끔, 사씨는 아들에게 젖을 먹이려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빈약하디 빈약한 사씨의 가슴 멍울에는 아기에게 먹일 젖이 나올 기미라곤 없었습니다.

나무 껍질도 없어서 먹지 못하는 시절이었습니다. 사씨에게 장작 값 따위는 없었지요. 추울 때면 사씨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잠을 자곤 했습니다. 까마귀 우는 날 어느 밤, 아이를 끌어안자마자 사씨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너무나 뜨거웠던 것입니다. 아이는 다음 날 아침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그날 죽을 받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먼 산만 쳐다보고, 또 땅을 보고, 머리를 긁적거리거나 눈을 깜빡거렸습니다. 당신 같아도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밤이 되자, 부끄럽게도, 사씨는, 배가 고팠습니다.


사씨는 무엇엔가 홀린 듯 죽은 아이를 안아 이웃집을 찾았습니다.


그날 밤은 나름대로 사씨에게 잔치일이었던 모양입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물을 올렸습니다. 다른 재료는 딱히 없었습니다만, 아주아주 맛있는 연기가 오랜만에 피어 올랐습니다. 


배고픔을 달래자 사씨는 스스로가 저지른 일을 깨닫고 말았습니다. 대야 안에는 살점이 떨어져 나간 여자아이였던 것의 시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웃의 대야에는, 예, '아아!' 소리를 지르며, 사씨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그녀를 계속 살아가게 했을까요, 기근이 끝나고도 사씨는 용케 살아남았습니다. 그녀는 용하다는 무격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녀는 도가 높은 스님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영이 떠난 이를 다시 인간도로 불러들이는 것은 역천의 금기를 범하는 일. 그러나 그녀는 이 업을 씻을 길은 그것밖에 없다는 생각한 모양입니다.


산 속의 허름한 오두막, 비가 내리는 날 밤, 사씨는 영남 지역의 큰 절인 서제사를 찾아 나서던 길이었습니다. 한 그림자가 슥 오두막을 비추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씨는 불현듯 잠을 깨어 그 그림자를 따라갔습니다. 기묘한 인연이지요. 한 중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달빛이 그 중이 걸어가는 곳을 사악 비추는 것이었습니다. 중의 발걸음은 아무리 보아도 속세에 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씨는 따라가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더니, 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녀는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습니다. 톡톡, 누군가 사씨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습니다. 사씨가 뒤를 돌아보자, 사람은 없고 책 한 권만이 있었습니다.


그 책 한 권은 이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씨의 악연이 영남 서제사 직전 야산에서 멈춘 것으로 보아, 사씨는 그 책을 받고 돌아간 모양입니다. 저는 주문을 몰라 그런 요술을 행하지 못하지만, 대강 아는 바에 따르면, 시신을 모아 주문을 외는 것입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신이 좋다고 합니다.

주술이 불러들이는 것은, 원하는 사람의 영이 아닙니다. 이 근방에서 죽은 사람의 인연을 무작위로 시신에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주술에는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요, 처음 술을 행하는 술자는 하나의 시신만을 필요로 하지만, 두 번째 행할 때부터는 두 사람의 시신의 일부를 가져와, 서로 붙여 온전한 시신을 직접 만들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셋, 그 다음에는 다섯, 그 다음에는 여덟... 시신의 수는 점점 늘어만 갑니다.


사씨는 어렵지 않게 시신 하나를 구해서 술을 행했습니다. 기근 직후엔 비석 없는 묘가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호환을 당해 죽은 한 장정이었습니다.


두 번째 술을 행할 때도 건장한 남자 둘의 몸을 붙여 술을 행했습니다. 시신은 하나만 구해도 되었습니다. 첫째 사람을 독살하여 발가락 하나만 떼어 붙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기근 때 죽은 한 노인 여자였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술을 행했습니다. 곧 열 번째, 열한 번째 술을 행했습니다. 곧 구할 시신도 없어졌습니다. 짝짝이 젖꼭지를 가진 남자의 상반신과 여자의 하반신을 붙이는 것도 익숙한 일이 되었습니다.


열두 번째 술을 하고 나서, 그녀에게는 더 이상 파헤칠 묘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꾀를 내었습니다.

시신에 독을 타 절이고, 마을 사람들에게 개고기로 가장하여 그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배가 아프다며 시름시름 앓다가, 거품을 물고 죽은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사씨는 책을 불태우고, 시신을 긴밀히 모아, 살인한 여인 잡는 나졸을 피해 산으로 산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열 세 번째 술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간절히 빌었습니다.


이제 다음은 없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시신이 눈을 떴습니다.




"어머니...?"


오, 오오, 사씨는 감격에 젖은 채로 아이를 끌어안았습니다.


"어머니, 여기가 어디에요? 저...배가 아파요..."


사씨의 눈이 커졌습니다.


"잠시만..."


아이는 두 눈을 감고, 밥을 받아 먹던 그 모양으로 쓰러졌습니다. 사씨의 눈이 커졌습니다.


사씨는 계곡물을 퍼다 아이에게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씨도 알았을 것입니다. 이런 걸로는 독을 지우지 못한다는 것을....


그웍, 그우욱, 그어억거리며 거품이 아이의 입에서 끓어오르더니, 아이의 눈이 허옇게 뒤집혔습니다. 사씨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산천이 떠나가도록.


그리고 아이는 두 번 다시 숨을 쉬지 않았습니다.







저 산이 보이십니까? 저 산이 바로 사씨가 묻힌 곳이랍니다. 밤이 깊었지만 우린 이곳에서 묵지 않을 겁니다. 조금 더 달리면 큰 절이 나온답니다. 사흉의 기를 누르기 위해 저 산의 동서남북에 절을 지었는데, 남쪽 절이 가장 크답니다. 우린 그 절에서 묵을 겁니다. 자, 조금 지쳐 보이십니다만은 캔커피 한 잔 하시고 계속 운전해 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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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습 이벤트 때 내려고 했는데 늦어서 완성 못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