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꿈은 젊은이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고, 젊은이를 곧 늙은이로 만든다. 내가 이야기할 것은 그런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니 노래의 여신이여, 나의 혀를 풍요롭게 하소서. 보물과 함정이 잠든 땅, 폭풍이 끊이지 않는 바다, 함성과 흐느낌이 뒤덮은 하늘을 노래하소서. 피로하고 수고하는 어린 머리들의 모험을 노래하소서.


 이야기는 대륙 변방의 성에서 시작한다. 변방의 땅이 그렇듯 배 곯는 농부들이 낡은 지붕 아래 오래된 노래를 흥얼거리는 고루한 풍경이다. 작고 낮은 성벽 안에는 지위 낮은 귀족과 서기와 하인들만이 지루함에 꾸벅꾸벅 졸고 있다. 이런 마을은 보통 조용하며, 고요한 하늘 아래에는 닭이나 소 따위의 짐승 울음소리, 예배 때를 알리는 교회탑의 종소리, 어쩌다 장터나 축제가 열리면 들려오는 아낙네들이 흥정하는 소리나 음악소리가 고작이다.


 이처럼 평화롭고 행복한 권태를 깨는 사건은 어디나 가끔씩은 일어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새벽 꿈결에 나타난 푸른 별을 보고 계시라고 여길 만큼 낙관적이거나, 혹은 그만큼 멍청한 자에게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

 하늘에 고고히 박힌 별에 홀린 채 무릎을 꿇은 퍼머슨은 그런 이였다. 평범하디 평범한 농부의 아들. 모든 농부의 아들들은 기사가 되어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깃발을 휘날리는 꿈을 꾸지만, 퍼머슨은 다른 젊은이들보다 아주 조금 겁이 없다는 점이 특별했고 퍼머슨의 아비는 다른 늙은이들보다 아주 조금 관대하다는 점이 특별했다.


 “아버지, 어젯밤 하늘에 크고 푸른 별이 나타났어요.”

 “크고 푸른 별이라. 맑은 날이 이어지려는 징조로구나. 당분간은 물을 많이 길어와야겠어.”

 “아버지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평범한 징조가 아녜요. 그 별은 제게 무언가 말하고 있었어요.”

 “별이 네게 말하고 있었다고?” 아비는 껄껄 웃었다. “너도 별자리점에 푹 빠진 모양이구나. 내가 어릴 적에도 많이들 믿었단다. 사랑의 신께서 다스리시는 별자리가 뜨던 날 너희 어머니와 내가 맺어지지 않았겠니?”


 그건 사실이었다. 한적한 마을에도 여흥이 필요한 법이고, 무료하고 앞날이 궁금한 사람들은 점치기에 의존하기 쉬웠을 것이다. 자연히도 어느덧 별점은 하나의 관습이자 믿음으로 자리잡았고 마음이 맞는 남녀라면 별자리가 좋다는 밤에 만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어젯밤의 별은 무슨 뜻이었을까요?”
 그 말을 듣자 소년은 더더욱 궁금해졌다.

 “나는 모른단다. 그건 네가 직접 알아맞혀 보는 게 좋겠구나. 정말로 네가 생각하는 대로 신비로운 징조가 맞다면 네 마음이 저절로 그 뜻에 이끌리게 되겠지.”

 어느 새 아비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었다.

 “하늘이 참 맑구나. 어서 가자꾸나. 물을 길러 가야 하지 않겠니.”


 그 날 이후로도 소년은 밤마다 별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낮의 해와 흙과 땅은 소년에게 적막함만을 안겼지만 달과 별들은 소년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에게는 아쉽게도 별들이 말하는 방식은 소년의 것이 아니다. 아비의 말과는 달리 소년은 별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다. 다만 꿀벌이 해를 따라 꽃을 찾아가고 나방이 달을 따라 날아가듯, 땅에서 태어난 이 소년은 별에 이끌려 갈 뿐이다. 소년은 꿀벌도 나방도 아니었기에 그는 대신 앎을 찾아갔다. 소년은 농삿일을 잘 아는 노인들에게 물었다(농삿일에 조예가 깊은 이들은 천도를 읽을 줄 안다. 계절과 날씨를 말해 주기 때문이다). “북쪽 하늘에 뜬 크고 푸른 별을 보셨나요?” 그러면 노인들은 그런 별은 보지 못했지만 만약 떴다면 하늘이 맑으려는 징조라고들 말한다. 별점을 특히 좋아하는 집에서는 돈을 많이 벌게 되리라는 뜻이라고 기뻐했다. 

 소년은 잠시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고선, 밤이 되면 또다시 궁금해한다. 그때마다 소년은 다시 물었고, 대여섯 번을 물었을 즈음에는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별은 그냥 별이야. 그게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이라고 그러느냐?”


 보통 변방의 꿈은 그 정도 꾸짖음에서 끝나게 된다. 꿈에 손길을 올려놓을 수 있는 것은 왕자나 공주, 거상의 후계자 정도가 고작이라고 여겨지며, 그것은 분명 몽상가들을 꾸짖기 위한 억지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건 대부분의 사람은 조용하고 평탄하게 자기 앞길에 주어진 것만 씹어 삼키는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아주 온건하고 올바른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니까.


 그러나 장작이 타기 시작하는 것은 불씨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불씨라고 해도 집채 하나를 집어삼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무꾼과 짚꾼들은 헛간에 불을 들이기를 극히 꺼린다. 소년들의 꿈이라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젊은이들이 조용하게 살기를 바라는 그 어버이들이 아무리 찬물을 끼얹어도, 꿈틀대기 시작한 불길은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설혹 그 불씨가 터무니없이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왔더라도 말이다.

 그런 한 차례 실랑이가 있고 나서 퍼머슨은 평소처럼 지냈다. 해가 뜸과 같이 깨어 장작을 팼고, 보리죽으로 배를 채운 뒤 밭을 갈았다.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정오에는 빵을 지어 먹었다. 그러고 난 뒤에는 텃밭에 물을 뿌렸고, 달걀과 건락을 조금 먹은 뒤 모포를 덮고 잤다. 이런 생활은 농촌마을에서 난 사람이라면 불평할 만한 것이 못 되었으며, 배를 곯지 않는 것은 으레 신의 축복에 공이 돌려졌다. 이상하게 여길 것은 없다. 옛부터 대륙 곳곳에 살던 현자들은 입을 모아 농부의 삶을 찬미하고 숭상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던 현인들은 대부분 보라색으로 옷을 지어 입는 귀족들이라는 사실은 잘 잊혀지곤 하지만 말이다.

 그런 식으로, 농부들은 고장을 지키는 삶에 익숙해졌다. 도시에서 이곳저곳의 소문을 들으며 산 학자들이나 대륙 저 너머까지 딛어봤다는 모험가들은 이들을 비웃기도 하지만, 하나의 땅을 일구며 사는 삶에서 농부들은 그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할 만큼 많은 것을 배운다. 흙에서 돌을 솎아내고, 돌 같은 흙을 부수는 시간들을 통해 그 자신은 부서지지 않는 바위와 같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농부들이 제 땅을 떠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그 날 밤 이후 매일 자리를 지키기 시작한 그 별은 퍼머슨의 깊은 곳에 작은 불씨를 떨어뜨렸다. 그런 불씨가 커지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바람 한 줄기면 충분하다. 운이 좋은 젊은이라면 그런 바람을 만날 수 있을 테였다.

 퍼머슨은 운이 좋았다. 애 티가 벗겨지고 혼인할 무렵이 다가올 무렵, 그는 궃은일에도 알맞아 보이는 총명한 눈과 단단한 몸을 가지고도 여전히 소년인 채였다. 그의 기억에서 별빛이 조금씩 사라져 가기 시작할 때즈음 마을에 유랑 상단이 찾아왔다. 그리고 유랑자들이란 바람이 불듯 자유로이 살아가는 족속인 법이다. 세대를 이어 같은 땅을 지켜 가는 이들에게 이처럼 떠도는 삶은 드문 새로움이고, 소년의 눈을 뜨이기에 충분한 모범이다.


 마을사람들은 먼 길을 거쳐 온 이들 이방인을 환대했다. 닭과 돼지를 잡아 잔치를 열고 노래를 불렀다. 곡물 항아리와 포도주를 나눴고 그들은 이국의 귀걸이와 머리빗을 받았다. 낯선 나라의 춤과 음악으로 마을의 분위기는 한껏 뜨거워졌다.

 퍼머슨에게는 이 모든 것이 새로웠다. 북쪽 하늘의 푸른 빛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소년의 눈은 반짝였다.


 “아버지, 저 사람들은 다 누구죠?”

 “이방인들이란다. 저들은 물건 파는 일을 하는 모양이야. 우리 마을에 이렇게 많은 이방인들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로구나.”


 아비의 말대로 유랑 상단이 마을에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비록 이들이 대륙의 방방곡곡을 누빈다고는 하지만, 상인들은 가야 할 이유가 있는 곳에만 가기 때문이다. 보통 이들은 큰 나라들 사이를 횡단하며 진기한 물건들을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실어나른다. 그래서 유랑 상인들은 어쩌다 시골마을에 들를 일이 있어도 언제나 도시로 가는 길목에서 그런 마을들을 찾는다. 퍼머슨이 사는 땅은 그런 길목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렇다 할 특산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촌장이 궁금해하자, 수염이 덥수룩한 상인이 마을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는 수도로 향하는 중이었소. 출발지와 수도 사이에는 모래사막이 하나 있소. 그 사막을 건너려면 별을 이정표 삼아 걸어야만 하지. 우리 중에는 하늘 보기에 능한 이들이 많은지라 자신했소만, 하필이면 긴 모래폭풍이 밤하늘을 모두 가려 버리지 뭐요.

 사막을 횡단하는 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방향을 잃어서는 안 되오. 폭풍 속이라 하더라도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는 뜻이오. 하지만 몇 날 며칠을 기다려도 바람은 잠잠해질 낌새가 없더구려. 그때에서야 우리는 살기 위해서는 한 방향으로 무작정 걷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무거운 짐들을 모두 버렸소. 그대들의 눈에는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우리가 할 법한 행동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소만, 아무리 비싼 교역품이라도 목숨값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오.

 마실 물이 다 떨어질 때쯤에야 우리는 사막에서 벗어날 수 있었소. 그리고 거기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 여기였던 것이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대들의 관후한 환영과 잔치에 감동받았소. 그대들에게 남은 교역품을 모두 헐값에 넘긴 것도 그것 때문이오.”


 그뿐만 아니라 상단의 다른 상인들, 길잡이들, 칼을 찬 경호원들까지 이 방랑자들은 모두 마을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그러니만큼 축제 분위기는 아주 뜨거웠고 시골 아낙들과 나그네들까지도 한데 모여서 춤을 추었다.


 밤까지 상인들의 천막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천막은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수를 놓았고 낙타가죽으로 벽을 삼았다. 각지고 커다란 것부터 둥글고 작은 것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런데 그 중 소년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천막들 중 가장 작고 가장 허름하여 낡았지만, 보라색으로 물들인 직물로 지은 막과 얇게 둘러친 금테하며 술 끝에 단 방울들은 누구의 눈길이라도 끌었을 것이다. 퍼머슨은 홀린 것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유리구슬들을 꿴 실들을 헤치고 천막에 들어가자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이국의 향신료 같기도 했는데 음식에 쓸 만한 물건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머나먼 곳의 향수를 자극하는 신비로운 향이었다. 비록 소년은 머나먼 곳까지 가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진 탓에 퍼머슨은 천막 구석에 어떤 사람이 작은 원탁 앞에 앉아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누구냐?” 어둠 속에서 한 노파의 목소리가 물어왔다.

 “거기 누구 계셨습니까?” 소년이 되물었다.

 “안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들어온 거냐? 쯧쯧.” 노파는 성냥으로 탁자 위의 양초를 켰다. 그러자 깊게 주름진 얼굴과 온갖 색의 천으로 지은 화려한 로브가 눈에 들어왔다. 탁자 위에는 투명한 공과 두껍고 낡은 책들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이 가득했다.

 “갑자기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 곳은 뭘 하는 곳이죠?”

 “여기는 점술을 하는 곳이다. 나는 이 천막에서 사람의 길흉화복을 점치지. 그것을 모르면서 왜 들어왔느냐?”

 ‘점술집이라고?’ 소년은 그런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앞날을 내다보고 싶은 사람은 교회당에 찾아가 신탁을 청하곤 했고, 마을 사람들이 별자리점을 볼 줄 알기는 했지만 점을 쳐서 돈을 버는 가게는 있을 리 없었으니까.

 “그럼 점을 봐도 되겠습니까?” 소년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어쩌면 이 노파가 푸른 별의 비밀을 풀어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노파는 잠깐 눈을 감고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너희 사람들 덕에 우리 목숨을 구했으니, 특별히 돈은 받지 않으마.”


 “무슨 점을 보고 싶으냐?” 노파가 상자를 뒤지며 물었다.

 “별점도 혹시 보실 줄 아십니까?”
 “물론 칠 줄 알지. 내 말은 무엇에 대해 알고 싶으냐는 말이다.”
 “몇 해 전에 북쪽 하늘에 크고 푸른 별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제게 무언가 말하려는 듯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에게도 물어봤지만 그 큰 별을 보지 못하기라도 한 듯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몇 해 전에 별이 떠올랐다고?” 노파는 상자를 뒤지던 것을 멈추고 천천히 뒤돌아 소년을 보았다. “하늘에 없던 별이 갑자기 생기는 일은 없다. 멀쩡히 있던 별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야. 만약 정말 생겼다 해도, 나나 우리 사람들이 봤다면 뭔가 큰일이 벌어질 징조라 여겼겠지.”

 노파가 쇠붙이로 된 원통 하나를 가져와 탁자에 놓고 앉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문제다. 그것도 운명의 문제가 되는 게야.” 노파가 밧줄을 잡아당기자 하늘을 가리고 있던 천이 벗겨졌다. “이건 망원경이다. 밤하늘을 크게 볼 수 있지. 네가 말하는 별을 찾아 내게 보여다오.”라 말하며, 노파는 원통을 건넸다.




 그 이방의 물건은 매우 신통했다. 달이 한 치 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고, 별이 손바닥만하게 보였다. 퍼머슨은 망원경이 푸른 별을 바라보도록 두었다.

 “보이시나요?”
 “전혀 아무것도 안 보인다. 이 방향이 맞는 거냐?” 소년이 다시 망원경을 들여다보자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저기에 있는걸요. 이상하게도 이 별만은 커지지 않지만.”
 “이상하다. 내 눈이 침침하다고는 해도…” 노파는 머리를 긁적였다. “기다려 봐라. 저 별은 커지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이냐?”
 “말 그대로에요. 맨눈으로 볼 때와 크기가 똑같다구요.”

 “그럴 리 없어. 망원경은 별뿐만 아니라 뭐든 커 보이게 하는 물건이야.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저 별이 네 머릿속에 자리잡은 것일 게다.” 노파는 망원경과 하늘을 번갈아 들여다보았다. 소년의 눈에는 별이 뜬 하늘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노파가 이상하게 보였다. 하늘을 쏘아보던 노파는 어딘가 짚이는 데가 있는 것인지 소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머릿속에 자리잡은 별이라…” 노파는 그 쭈그러든 손으로 소년의 얼굴을 끌어오더니 눈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무언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인지 노파는 소년의 눈꺼풀을 벌려 크게 뜨이곤 이리저리 살펴보았고, 이내 읊조렸다. “찾았다.” 라고.


 하늘의 텅빈 자리를 비추는 소년의 눈에는 작은 별이 비쳐 있었다. 그와 같이 눈에 신비가 새겨지는 젊은이들은 드물지 않다. 다만 그들 중 더러는 별을 보고, 더러는 꽃향기를 맡고, 더러는 노랫소리를 듣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조차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뿐.

 “점쟁이들처럼 마법에 지식이 깊은 치들만이 눈 속의 빛에 대해 알고 있지.”

 “별이 제 눈에 들어 있다고요? 아니, 제 눈에 별이 들어 있단 말입니까?” 소년은 크게 놀랐다.

 “암. 늙은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니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을 게다. 그들도 새파랗게 어렸을 적에는 가졌을지 모르는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제 눈에 별이 들어 있다는 게 무슨 뜻이란 말이죠?” 소년은 박동하는 심장을 구태여 잠재우려 들지 않았다. 그는 분명 자신이 답에 가까웠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간단하지. 내 말했잖니. 이건 문제다. 그것도 운명의 문제지. 하지만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것은 너의 운명의 문제라는 게야. 나머지는 네가 온전히 운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절로 알게 될 거다.”


 천막에서 나오며 퍼머슨은 생각했다. ‘기분이 이상하군.’ 사람은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답을 얻고 나면 으레 그렇게 느끼곤 한다. 보통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답이 원래 기대하는 것에 비하면 변변치 않은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만족했더라도 새로운 시작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년은 원래보다 조금 더 소년이 된 기분을 느낀 채 점쟁이의 천막을 뒤돌아보았다. 그 자리에는 흙과 먼지뿐 아무것도 없었다. 어찌된 일인가 하면 물론 기대하는 것에 비해 변변찮은 답밖에는 줄 수 없다. 점쟁이들이란 원래 운명의 인도를 받아 이 사람에서 저 사람에게로 이끌리는 법이라고.

 다음 날 퍼머슨은 교회당에서 기도를 올렸다. 사제들은 먼 곳에서 온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려 애쓰느라 다들 나가 조용했고, 그의 마음은 반대로 제법 복잡했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아 기도를 하는 둥 생각을 하는 둥 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소년이여, 들리는가?]

 ‘그렇습니다. 누구십니까?’

 [내가 누구인가, 무엇인가, 그것은 중요치 않다. 나는 너를 인도하러 왔다.]

 ‘인도하다니? 어디로 말입니까?’

 [네가 가게 될 곳으로.]

 ‘제가 어디를 가겠습니까? 저는 평생 이 마을에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어디로 떠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렇다, 소년. 너는 별빛을 보았다.]

 [나는 밤마다 지평선 너머로 달음박질하던 너의 꿈을 안다. 떠올려라. 너도 그것을 알고 있다.]

 ‘...사실입니다. 예, 그러합니다. 제게는 꿈이 있습니다.’

 [떠올렸다면 따르라.]

 ‘하지만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아버지의 밭을 물려받아야 하고, 마을 처녀와 결혼도 해야 합니다. 길을 떠나려면 이 모든 기대를 내팽개쳐야 합니다.’

 [그리하라.]

 ‘하지만,’

 [그리하지 못하겠다면 포기하라. 다만 명심하거라. 내 경고하건대, 포기한다면 다시는 누구의 기대도 내팽개칠 수 없을 것이다.]

 ‘...’

 [두려운가?]

 ‘두렵습니다. 마을에서 제 삶을 꾸려나가는 것조차 제게는 버거운데, 세상 밖으로 나가 방랑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아버지를 어찌 설득해야 할지…’

 [걱정하지 마라. 기억하라. 나는 너를 인도하러 왔다고 하지 않았느냐.]

 ‘제 꿈 역시 앞날이 확실치 않습니다. 세상을 모험하며 모든 것들을 보겠다는 소망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한단 말입니까? 무엇으로 목숨을 연명하며 어떻게 제 꿈을 이룬단 말이지요? 이 곳에 남는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매일 고되게 일해야겠지만 신께서 주시는 축복으로 양식을 얻을 수 있겠지요. 훌륭한 여인과 혼인하여 가정을 꾸리고 이치에 맞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떠난다면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살아남는다는 것이 네게 그렇게도 중요하더냐? 안전히 숨쉰다는 것이 네 구미에 그렇게도 당기던가? 그래, 네 말이 맞다. 너는 이곳에 남아 있으면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너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삶을 원한다는 것을.]

 ‘도대체 누구시기에 제가 아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모두 알고 계십니까?’

[나는 너를 인도하러 온 목소리다.]


 ‘꿈속의 목소리여,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십니까?’

 [소년이여!]

 [길을 떠나라.]


 짧은 꿈이었다. 교회당은 여전히 조용했다. 소년의 마음도 제법 고요했다.

 “아버지!”

 퍼머슨은 마음을 굳게 다진다. 세상에 제 자식이 품을 떠나기를 탐탁찮아하지 않는 어버이는 없고, 자식들은 본능적으로 이를 알게 된다. 그러나 이르든 늦든 때는 오게 되어 있다. 소년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비를 설득할 준비를 한다.

 아비는 느릿하게 그에게 걸어온다. 손에는 나무 지팡이와 작은 주머니를 들고 있다.

 ‘아버지께서 어쩐 일로 힘이 없으시지?’ 아비는 슬픈 듯, 그럼에도 무언가 결심한 듯 얼굴에 바위 같은 표정을 띄운 채다.

 ‘어쩌면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짐작하셨는지도 몰라.’ 아비의 표정을 보고 소년은 조금 움츠러든다. 어쩌면 어버이를 모시며 살아가는 것이 정말로 나을지도 모른다, 애써 고개를 휘저어 그런 생각을 몰아내고는 아비 앞에 굳게 선다.

 먼저 운을 뗀 것은 아비 쪽이었다. “아들아,” 그의 목소리는 힘차고, 떨리고 있다. “내가 걱정하는 것이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아비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사실이냐는 것인지, 소년은 구태여 묻지 않았다. 소년이 보이지 않는 별을 보기 시작할 때부터 운명은 차츰 그 베일을 벗기 시작했으니. “저는 이 마을을 떠나 모험하기로 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주름이 잡혀가는 눈을 감고, 아비는 한숨을 내쉰다. “막으려 해 봐야 소용없겠지.”

 어버이는 자식이 품을 떠날 때를 직감적으로 안다. 대부분의 어버이들은 그것을 온 힘을 다해 막으려 한다. 그러면 대부분은 순순히 따르고, 속에 불씨를 가진 소수만이 그 손길을 뿌리치고는 제 길을 찾아 떠난다. 농부의 아들들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상인의 씨는 상인이 되고 사제의 씨는 사제가 되며, 황제의 씨는 황제가 된다. 반대로 더욱 형편없는 어버이들은 때가 되기도 전에 자식을 내쫓고 다시는 품어 주지 않는다.

 “그것이 네 뜻이라면 네 뜻을 따르거라. 너희 어머니는 그게 무엇이건 너의 뜻을 존중하라는 말을 남겼단다. 유언이었지.”

 그의 눈시울은 붉다. 하지만 결코 눈물을 흘리지는 않는다. 눈물을 흘린다면 두 사람 중 적어도 하나의 마음은 약해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자면 네가 하필 모험을 떠나는 꿈을 꾼 것이 오히려 좋을지도 모르겠구나. 나도 젊을 적에는 보물을 찾아 여행하는 꿈을 꾸었지… 아들아, 받거라. 나의 꿈을 네가 물려받았구나.”

 늙은 농부는 아들에게 유산을 쥐어 준다.

 “그 안에 든 것은 지금까지 내 일손을 도운 삯이라고 생각하거라. 또 한 가지…”

 “듣고 있습니다.”

 “여행의 목적지는 출발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네가 어떤 산과 골짜기를 다녀도 너의 고향은 하나뿐이란다. 나도 어느 성 어느 마을 어느 바다에 있을 너를 잊지 않으마.”


소년은 농부의 배웅을 받으며 길에 나선다. 그의 출발을 축복하는 행렬과 꽃다발은 없다. 그는 귀족도 개선한 장군도 아니기에. 하지만 그가 걷는 길마다 그의 아버지가 지켜보고 별꽃이 피어난다.


 독수리가 걸어나가는 소년의 오른편으로 날아간다. 이는 예부터 점쟁이들 사이에서 승리를 뜻하는 길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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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처음 써보는데 부족한점 있으면 말해주셈

읽히는것보다 쓰는게 목적인 소설이라 고칠점은 많이 알면 많이 알수록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