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일인 걸 알고도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침대에서 뒤척거리다가 팔굽혀펴기를 하는 듯한 요령으로 일어난 것도 10시.

대학에 붙고 나면 백수처럼 된다는 말이 정말이구나, 아니 이 경우는 다른가, 하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다행히도 오늘은 주말이기에, 아버지도 회사에 가지 않고 나를 기다려주셨다.

소파에 앉아 있던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어도 다른 날이 아닌 오늘만큼은, 아버지의 마음도 칙칙한 채겠지.



2년 전의 오늘이 어떤지 나는 기억에 그다지 없다.

그 날의 나는 내 앞가림 하는 데 바빴던 것이다.

행운인지 불운인지 모를 것 같다는 생각만이 머릿속과 안구 사이를 오가는 와중에서,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서야 어머니의 소식을 들었다.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을까.

믿고 싶지 않았을까.



그날, 화장실에서 다시 교실로 돌아왔을때...

내 반의 25명 중 23명이 죽어 있었으니까.


*


예상대로 장례식장 건물은 북적북적하면서도 질서정돈했다.

100명 쯤 될 것 같은 사람들이 줄지어, 각자 간격을 두어, 고인의 위패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오늘이 어머니의 2번째 기일이라는 것은, 오늘이 그 '재난'이 일어난 지 2년이 되었다는 뜻일 거고,

당연히 오늘이 누군가의 2번째 기일인 사람들도 천지일 것이다.

당장 저 멀리에, 내가 알고 있던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보인다.

다가가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로의 표현을, 이미 2년 전에 말해냈으니까.

지금 와서 얼굴을 마주본다고 해도 어떤 말을 드릴 수 있을까.

아무 의미도 없지, 하고 마음 속으로 고개를 젓는다.

그런 것은 결국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의 핑계야, 하고 다른 내가 비웃는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버린다.


하지만 역시 다가가지는 않는다.


자리에서 벗어났다가, 죽을 지도 모르니까.




2년 전 오늘 일어난 '재난'.

그 날부터, 다른 사람과 거리가 15cm 이내가 된 모든 사람들은 죽어버렸다.

15초 안에, 심장마비로.



*



안내위원들이 위압적 태도로 주위에 꼿꼿이 서 있었다.

조금이라도 규칙을 안 지키는 사람들이, 최소한 2명을 죽게 만들 수 있으니까.

아마도 수상 안전요원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책임이겠지, 하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상대와 반경 15cm 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조건은, 양 쪽 모두에게 해당되었다.

즉각 심장마비가 일어나, 정확히 15초 안에 죽는다.

그리고 한 번 마비가 일어난 사람은 15초 동안 여기저기 움직일 테니, 그동안 또 다시 15cm 안에 들어가게 된 사람들이 죽는다.

그 반복.

그리고 또 반복.

누군가는 웅얼거리며 자리에 쓰러지도, 누군가는 몇 걸음을 비척비척 움직이다가 다른 누군가에게 다가가버렸을까.

어떤 기운이 떠돌고 있었을까.

비명 소리 하나 내지 못하는 죽음이었을까.

우리 반에 일어난 일도 그 덕분이라고 들었다.

생존자는 나 이외에 2명. 2명이 살은 것은, 어디까지나 도망이 빨라서 라고 들었다.

그리고 나는, 화장실에 가 있었기 때문에.



그 날 짝궁이었던 우민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난 전화기를 귀에 댄 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분은 울다가, 침묵하다가, 한숨을 쉬다가, 다시 울고 계셨다.

뭐라고 해야 할까, "저희 어머니도 돌아가셨어요" 같은 말은 절대 엄금이라는 것 말고는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말을 찾지 못했던 사이 그 분은 자신만의 말을 입에 담았다.


"왜 너만.. 너만 살았니?"


그건 정확하지 않아요. 저 이외에도 2명이나.

하지만 그 시간에 하필이면 화장실에 가 있느라 목숨을 산 것은 어떻게 보면 미움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행운은 결국 미움을 받는다.

그것이 아무리 비이성적이라도.

그런 것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 분이 쏟아내기 시작한 오열과 미움과 화를 품고 나는 내 생각에 빠져들 뿐이었다.

나라도 어머니의 동료가 운 좋게 살아났다면 이랬을까.

그 분에게 분노를 돌리면서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런 생각 사이를 전자음이 섞인 오열이 비집고 들어오고, 그 오열을 내 앞으로의 걱정으로 덮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제 "대학교는 어떻게 되려나" 같은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내 미래가 무엇보다 궁금해진 어머니의 사망일이었다.


인류 전체의 재난이라니, 내 뇌로 생각하기에는 너무 벅찼기에.

난 나만의 오열과 어머니의 빈자리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기에.

나의 꿈같은 미래 속으로 빠지려고 했던 걸까, 하고 회상했던 것은 1년 후의 일이었다.





그날, 같은 류의 전화를 15명의 어른들로부터 받았던 기억이 난다.



*



어머니의 위패 앞에 아버지와 둘이서 같이 선다. 우리 사이에도 거리를 둔다.

조금 넓은 방 안에는 우리 외에 7명쯤 사람이 더 있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잘 들리지 않는 말들을 중얼거리듯 말해주기 시작했다.

근황보고라도 하는 것일까. 과연 어머니는 이걸 듣고는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인류에게, 장례라는 문화가 과연 필요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위패 앞에 고개를 숙였다.



인류의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고 들었다.

흔한 아포칼립스 세계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세계관에서 꼭 등장하는 신흥종교 같은 것은 그리 존재감이 없었다.

인간의 접촉이 온전히 차단된다는 것은 디메리트가 너무 컸다.

종교는 이미 사라져갔다.

사람들의 애욕이라는 감정은 불타기만 할 뿐 그에 물을 끼얹어줄 해결책은 없었다.

인터넷이라는 유용한 도구가 있었지만, 이미 수많은 인재가 사망한 상태에서, 그리고 15cm의 룰로 인해 제대로 된 협력은 어려워진 시점에서,

이 상황을 타개할 행동은 조금씩밖에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장 고쳐야 하는 것은 물론 교통이었다.

각자에게 15cm가 닿지 않는 그런 교통 체계. 

인도 안에도 울타리를 또 설치하고.

그리고 자동차의 하드웨어 및 안전장치 역시 교정해간다. 그 기술의 방향도 많이 달라졌다.

모든 작업은 협업이 어려웠기에, 속도는 느리기만 했으나,

인류는 '일단은' 노력했다.



그동안 누군가는 인류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일했을 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을 누르고 있던 감정은, "어쨌든", "일단은" 뿐이었다.

발등뿐만 아니라 다리 전체를 집어삼키는 불똥을 무표정으로 다들 끄려고 했다.


교통 체제는 1년만에 교정이 성공했다.

그 1년동안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발달한 드론 기술과 공장의 자동화된 기술 덕분일 거다.

시골의 농부들과 낙농업자들은 사망률이 적었던 것도 컸겠지만.



1년동안 반강제로 방에 유폐당해 드론으로 보내주는 무언가를 먹는 그 시간은, 가면 갈수록 끔찍하게 느껴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거리를 걸었을 때는, 누군가에게는 어이없게 들릴 수 있겠지만 '기쁨'을 느꼈다.

겨우 인간들이 이동의 자유를 찾은 거였다.



인류가 기본으로 잡은 목표는 '원래 체제를 최대한 되찾자'라는 취지였다.

인류의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한 발악으로 보아도 되지 않을까.

시신들이 넘쳐났지만 장례만큼은 포기하지는 않았다.

애도의 기운이 집마나 넘쳐나는데도 엔터테인먼트의 제작은 끝나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이 1인제작이 되었다 해도.


그 발악 덕분에 지금 모두가 각자의 고인들의 위패에 고개를 숙일 수 있는 거겠지.

다행인 일이야, 하고 속으로 말했다.

대학이 부활하여, 진학하게 되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인류가 어떻게 가야 할지 난 모른다.

그저, 아무 감정 없는 오늘을 보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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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소재로 나중에 장편소설 써보고 싶네

원래는 여기서 주인공 남자애가 칼로 살해당하고, 아버지가 범인 추리하는 추리소설로 기획했는데

릴레이소설로 쓰기에는 너무 길어져서 뺐음

그랬다보니 결말이 너무 어중간해진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