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고 싶을 때에는 간짜장을 먹으러 간다. 일반 짜장면은 안된다. 양파를 조금 더 썰어넣고 일반 짜장에 볶은 유사 간짜장도 안된다. 젊은이들 보다는 어르신들이 많은 중국집으로, 갓 볶아 양파가 아삭아삭 씹히는 간짜장을 먹으러 가야 한다. 밑반찬으로는 꼭 짜사이가 나와야 한다. 단무지만이 나오는 중국집은 언제나 특별하지 않았다. 물론 냉수가 아닌 따뜻한 차가 나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안다 인생이 쭉 괴로움의 연속일 것을. 불교를 어줍짢게 공부할수록 나는 더 괴로워졌다. 나는 내가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내가 죽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은 살고 있는 것이다. 삶의 도중에는 언제든지 죽을 수 있지만 죽은 뒤에는 살 수 없기에. 알베르 카뮈의 말도 잘 이해가 안된다. 부조리를 어떻게 인정하라는 말인가. 어느 경지에 다다른 사상들은 나의 짧은 소견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웠다. 그 자체로 모순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나의 상태를 표현하자면 번아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나의 삶을 본다면 ‘너가 무슨 번아웃이냐, burn할만큼 뜨겁게 살아오지 않는 것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조차도 나를 비웃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발화점도 낮고, 장작도 적다. 금세 훅 타올라 사라져버린다. 타고 남은 재는 찬란했던 순간을 되새김질하며 점점 거멓게 변해갈 뿐이다. 

 사람이 자기혐오가 심해지면 굉장히 폭력적으로 변한다. 나는 도덕관념과 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법과 도덕을 지키는 이유는 오직 내 자신의 영달을 위함이다. 자기혐오가 심해진 나는 더 이상 나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감정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용납하는 것 이상으로 폭력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지금이 한계인 느낌이다. 길을 걸으며 발을 구르기도 하고 소리를 지른다. 혼잣말을 지껄이는 것은 다반사다. 조금 더 자제력을 잃으면 자학적인 성향을 띌지도 모르겠다. 그게 조금 두렵다. 

 아무리 보아도 정신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허나 내 사회적인 신분상 그리 녹록지 않다. 더욱이 이미 한번 갔을 때에도 대화 몇 번을 하고 약을 처방하는 모습에 그리 신뢰가 가지 않았다, 물론 의사는 전문가니까 나름의 판단 하에 행한 일이었겠지만. 흔한 일이라 하더라, 솔직히 목뼈를 으스러뜨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쨌든 의욕을 잃은 사람은 항상 말초적인 쾌락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간짜장이 쾌락의 유일한 합의점이다. 일반 짜장은 덜 즐겁고, 나머지는 위법적이다. 사실 이미 저녁으로 한 그릇 먹고 왔다. 하지만 오늘은 맛이 별로 없더라. 분명 맛있는 집이었는데, 내가 너무 맛을 기대해서 그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