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렸을 땐 모든것이 끝나있었다. 그들이 말하길, 회생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주어진 기회를 걷어차 버린 것은 나라고 하였다.


아니, 그것이 정녕 회생이 맞았을까. 내가 저지른 것은 부적응일까, 아니면 적응을 위한 발버둥일까. 나는 무엇이며, 나는 무엇을 해야 했던 것이었을까.


모든 것이 의문이며 다만 풀리지 않을 난제였으나, 지금에 이르러선 그것들은 그저 지나간 대로 흘려보내면 될 것들에 불과하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해야할 것은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기저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최초는 어디였는가? 지금은 다만 그것을 생각해보고 싶다.


음. 나쁘지 않다. 한 번에 그 뿌리를 잡아내진 못하였으나, 적어도 뿌리에 근접한 답은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유리창을 깼기에 이렇게 된 것이었다.


얼마 전의 내 앞엔 유리창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깨부수었다. 강해게 내질러진 내 주먹은 그리 크지 않은 저항을 이겨내고 유리창을 산산조각 내었으며, 깨어진 유리창은 밝은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며 이리저리 비산했다.


몇 개는 내 허벅지를 긁었으며, 몇 개는 발등 위에 얹어졌고, 몇 개는 살짝이지만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주먹이 닿은 자리로부터 멀지 않은 지점의 유리 조각들은 다른 것들보다 크게 깨어져 내 오른팔을 사정없이 긁어냈으며, 긁힌 상처로엔 순식간에 피가 몽글몽글 맺히기 시작했다.


아프지는 않았다. 그 때의 나는 잔뜩 흥분해 있었기에. 아니, 잠시만. 나는 흥분해있었나? 잠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흠. 으흠. 그렇다. 다시 생각해보니 흥분한 게 맞았다.


아프지는 않았다. 그때의 나는 잔뜩 흥분해 있었기에. 상처로부터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피보다도 선행하여 솟아오른 아드레날린이, 내가 그 창상으로부터 느껴지는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게 하였다.


사위가 시끄러웠다. 깜짝 놀라 욕을하는 사람, 너무 놀라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뻐끔거리는 사람, 옆의 누군가에게 무어라 말을 하던 것을 멈추는 사람, 무어라 말하고 싶은게 있는 듯 하였으나 당황했는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말을 절던 사람, 펄쩍 뛰며 물러나던 사람. 얼추 그 정도의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들또한 신경쓰지 않았다. 내 신경이 쏠린 곳은 내가 깨어서 만들어낸 큼지막한 유리조각이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주웠다. 음. 허리를 숙여 그 적당히 큰 조각을 하나 쥐어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그것을 휘둘렀다. 그것이 휘둘러진 궤적은 사람을 향했을까, 아니면 사람이 아닌 무언가를 향했을까. 나는 무엇을 위협하고, 베고 싶었던 것일까.


아, 그렇다. 나는 무언가를 베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유리창을 깨어서지만, 그 이전의 나에겐 유리창을 깨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무언가를 베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베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건이었을까, 형태를 지니지 못한 무언가였을까, 아니면 사람이었을까.


음. 모두였던 것 같다. 나를 흥분케한 요소는 단순히 어느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나는 허공을 가르고 싶었고, 내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고, 내 불쾌함을 베어 없애버리고 싶었으며, 사람 또한 베어버리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 날은 날이 더운 날이었다. 또한 비가 내린 직후였기에 습하기까지 했으며, 내 휴대폰엔 내게 돈을 빌리는 누군가의 문자와 내 송금 이력이 적혀있었다.


나는 화가 났던 것이었다. 그래서 유리창을 깨부쉈고, 그래서 유리조각을 휘둘렀던 것이었다.


또한 답답했던 것이었다. 또한 슬펐던 것이었다. 어쩌면 기뻤던 것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유리조각을 휘둘렀다.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유리조각을 휘두르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심히 위협으로 받아들여질 만 했다.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보다 높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나는 그렇게 그들에게 잡히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유리창을 깨부수고 유리조각을 휘두르셨습니까. 나는 그들에게 답했다. 어제 비가왔으니까요.


그들은 되물었다. 뭐라구요? 나는 또 그들에게 답했다. 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여, 이번엔 더 길게 이야기 해주었다.


어제 비가 와서 공기가 습했고, 날이 더웠으니까요. 또 내게 돈을 빌려달라는 누군가가 있었고, 나는 그에게 돈을 보내주었으니까요.


아, 이유가 더 있었다. 이제야 생각이 났다. 거기에 더해 나를 놀리는 누군가가 있었으며, 하던 게임의 뽑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생각해낸 것은 지금이지만, 그 때의 나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그것까지 더해 이야기 해주었을것이다.


그들은 말을 조금 다르게 하여 다시 되물었다. 뭐라구요? 그러니까... 그게 갑자기 유리창을 깨고 유리조각을 휘두른 이유라구요?


나는 그들에게 답했다. 네.


그들은 심히 당황한 눈치였다. 내가 말한 이유들이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이유'가 되기엔 너무도 하찮은 것이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을까.


음. 그렇다면 그들은 무례했다. 나에겐 정말로 그것들이 '이유'였으니까. 그들의 잣대로 내 '이유'의 경중과 타당성을 재단할 순 없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들은 심히 당황하여 저들끼리 무언가를 속닥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돈을 혹시 많이 빌려주셨나요? 아니면 혹시 사기를 당하신건가요?


아니요. 그는 친구였고, 제게 오만원을 빌렸습니다.


그들은 또다시 당황했다. 그리고는 다시금 저들끼리 무언가를 속닥이더니, 이번엔 갑자기 선생으로 돌변하여 자기들의 상식을 내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그런 사소한 이유로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해서는 안돼요. 오만원이면 그리 큰 돈도 아니지 않지 않습니까. 음. 그런가요.


그렇고 말고요. 선생님도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셨을 거 아닙니까. 지금까지 화날 때마다 유리창을 깨부수고 유리조각을 이리저리 휘둘렀습니까? 그렇지는 않았지요.


이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들은 정말 무례했다. 그때의 나는 다만 그러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니까 그러했던 것이었는데, 이전까지의 내 삶을 비교대상으로 가져오다니. 왜 그 때의 나는 그들에게 한 마디 해주지 않았던거지?


흠흠. 아아아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저들의 상식을 내게 가르쳤다. 어쩌구 저쩌구 이러쿵 저러쿵. 아시겠습니까, 선생님? 네에.


이번엔 다친 사람이 없으니까 풀어드리는 거지만, 다음엔 그러면 안돼요. 아시겠죠? 네에.


나는 그렇게 풀려났다. 그들과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니, 문득 모든것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나는 왜 그들에게 설교를 들은것이며, 왜 그들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거지?


갑자기 또 다시 유리창을 부수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나에게 설교한 그 둘의 눈 앞에서 부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왜 돌아오셨냐고 묻는 그들의 질문을 무시하고, 그들의 옆에 있는 유리창을 부쉈다. 오른팔은 아까의 상처로 붕대를 칭칭 감아두었기에, 이번에는 왼팔로 부쉈다. 양 팔에 붕대를 감는게 조금 더 균형이 맞아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또 다시 유리조각을 주워 휘둘렀다. 이리저리 휙휙. 딱히 맞추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이번엔 유리조각이 그들 중 한 명의 얼굴을 베고 지나갔다. 그의 얼굴은 이전의 나의 오른팔이 그러했고 그 당시의 내 왼팔이 그러했듯이 베인 상처에서 피를 뿜어내기 시작했고, 그들은 누군가에게 무전을 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들과 같은 제복을 입은 다른 사람들이 뛰어나와 나를 제압했고, 나는 이번에도 순순히 그들에게 제압당했다. 나는 그 사람을 해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 앞에서 유리창을 깨부수고 유리조각을 휘두르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 나는 이미 하고픈 것을 모두 끝마친 상태였다.


그들은 이번엔 내 손목을 묶고는 내게 질문했다. 이번엔 도대체 왜 그러신겁니까. 집에 가니 문득 당신들 앞에서 유리창을 부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그렇게했죠.


...그냥 그러고 싶었다구요? 네.


저희한테 보복을 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아니요.


그럼 왜 그러신거죠? 왜 그랬냐니요. 방금 말했잖아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구요. 그래서 그랬어요.


하... 알겠습니다.


그들은 아까와 같이 저들끼리 무언가를 속닥이더니 나를 어딘가로 보내었다. 그곳에서 나를 맞이한건 흰 가운을 입은 누군가였고, 그는 내게 이런저런 질문과 함께 여러 종이를 작성하게 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과는 파란 제복을 입은 사람들보다 오래 이야기를 나눴지만,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파란 제복을 입은 사람들과 이야기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가 없었기에 딱히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굳이 기억에 남는거라곤 그곳에서 나올때 나눴던 짧은 대화일까.


정상입니다. 네에.


당연한 소리였다. 나는 지금껏 멀쩡히 살아왔고, 그 순간엔 그저 하고싶었던 것을 했던 것일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그 건물에서 나와 파란 사람들의 인도 아래 세로줄이 가득한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은 저들끼리 속삭였다. 내가 정신병자라고, 또는 비정상이라고, 또는 미친놈이라고, 또는 사이코라고.


나는 귀가 밝았기에 그 이야기들을 모두 들을 수 있었지만, 그것들이 내게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하였다. 그들이 나를 무어라 칭하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나는 그저 나 일 뿐인것을.


그들이 아무리 뭐라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는 나였고, 나는 그저 하고싶은 것을 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