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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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수로 향하는 열차는 하품 나올 정도로 느릿느릿 철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노을이 지고, 기차 왼쪽으로 얼음이 언 압록강과 멀리 초록 안개가 낀 새하얀 대륙이 보이자 열차 내부의 AI가 말했다.


“왼쪽으로 보이는 강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강인 압록강입니다. 그 너머의 산지가 현재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 중인 구 중국 지대입니다. 현재 압록강 이북 약 15km 지점은 ‘옐로우 존’으로 지정되어 있어 허가 받은 인원 만이 통과할 수 있으며, 그 너머는 ‘그린 존’으로 현재도 생화학무기와 방사능 낙진이 산재하여 출입이 불가합니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회양역에 도착하겠습니다.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지원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은 기차는 끼이익 거리는, 옛 열차 특유의 소리를 내며 정차했다. 노인 몇몇이 타거나 내리는 와중에, 자다 깬 레나가 비몽사몽한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 도착했어요?”


“한참 남았어. 다시 자.”


오래지 않아 옛날 tv 채널에서나 보던 특유의 소리와 함께 기차가 움직이자, 지원 역시 여태까지의 피로가 몰려왔는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 까, 갑작스러운 폭음에 지원은 잠에서 깸과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기차 내부는 바닥에 주저앉거나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금세 레나와 인호도 깨어나자, 총격음과 함께 또 폭음이 울려 퍼졌다. 지원이 근처에서 벌벌 떠는 노인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입니까?!”


“강도… 렬차 강도가 왔수다… 로탄역부터는 속도가 느려서 밀기(뿌리치기) 어렵지비… 그래서 온 것 같…”


그 순간, 총성과 함께 유리창이 깨지더니 노인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영감님! 이봐요!”


지원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레나, 인호… 준비해.”


지원은 고개를 살짝 들어 창문 너머 강도들을 바라보았다. 매드 맥스에서나 나올 것 같은 오토바이를 탄 그들은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야간투시경을 그대로 박은 듯 기괴한 기계 안구를 번뜩이면서 끈임없이 소총과 박물관에서 꺼내 온 듯한 RPG-7을 쏴 대고 있었다.


“현대판 마적이구만… 2063년에 서부극 찍는 미친놈들.”


지원은 유리창이 깨진 부분에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은 정확히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갱의 이마를 맞췄고, 갱이 바닥을 구르자 자연히 오토바이도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쓰러지며 뒤에 탄 갱과 뒤따라오던 오토바이를 덮쳤다.


“눈대중으로 남은 놈은… 아홉, 열… 12명.”


그때, 갑자기 기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뭐야?! 기차가 왜 멈췄지?”


곧바로 갱들이 기차 문으로 다가가자, 지원과 인호는 최대한 총을 쏴 저지하려 했으나, 그들은 이미 이 열차에 저항하는 이가 둘 뿐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그쪽으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레나! 빨리 뭐라도 해 봐요!”


“그러고 싶지만… 저 새끼들 방화벽이 생각보다 튼튼해! 그냥 맨몸으론 한 명 해킹도 불가능하다고!”


“그럼 기차를 해킹해! 문을 잠궈버려!”


“안 돼요! 기차가 너무 구식이라 전자식으로 열리는 물건이 아니예요! 놈들이 비상 손잡이를 열고 들어오려 해요!”


지원은 하는 수 없이 복도로 나와 놈들이 몰려오는 입구를 바라보았다. 인호도 지원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그녀와 등을 마주댔다.


“여러분, 죄송하지만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머리를 푹 숙이고 있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믿는 신이 있다면… 지금부터 기도하세요.”


지원은 놈들이 기차에 올라탄다면 가장 먼저 머리가 있을 그 자리를 겨누었다. 그리고, 특유의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선두의 갱이 모습을 드러내자… 즉시 방아쇠가 당겨졌다. 총알은 가장 처음 기차를 탄 갱의 관자놀이를 관통했고, 놈은 그대로 쓰러졌다. 그 너머가 소란스러워짐과 동시에, 인호의 총이 불을 뿜었다. 인호와 지원은 등 뒤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예상대로, 선두에 선 놈이 당하자 급격히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이건 회광반조, 폭풍전야일 뿐…’


‘곧 빡친 놈들이 물밀듯이 넘어온다.’


“그 순간!”


분노한 갱들이 좁은 통로로 물밀듯이 몰려오자, 두 사람의 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지원의 쌍권총과, 인호의 자동소총이 이 상황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도 총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호 쪽은 그의 사격 실력에 더해 레나의 해킹으로 인한 부분적인 시야 방해가 있었고, 지원 쪽은 아무리 그녀에게 총을 쏴도 먹히지를 않았다. 지원은 몸을 숨기며 주머니에서 새 탄창을 갈아 끼웠다.


“경찰은 언제 오는 거야?!”


레나가 답했다.


“마을이 가까워요! 곧 올 거예요!!”


“오긴 하는 거죠?!”


“이런 시골 동네에 경찰이 얼마나 유능하겠냐…”


지원은 다시 총을 갈겼다. 갱 하나가 소리쳤다.


“비싼 사이버웨어다!”


“틀림없어!”


“다 털고 사이버웨어도 털어버리자!”


“오랜만에 젊은 여자다아아!!”


지원은 슬슬 탄약이 부족해지는 것을 느꼈다.


“탄약이 부족해… 수류탄도 챙겨 올 걸…”


“누님, 슬슬 탄약이 부족해요.”


“너도? 거긴 얼마나 남았어?”


“대 여섯 명 정도요. 대체 열차 하나에 갱단이 얼마나 모인건지…”


“나도 그래. 네 다섯 정도 남았어.”


레나가 물었다.


“어쩌죠?”


“어쩌긴, 주먹질을 해서라도 박살 내야지.”


지원은 권총을 거꾸로 들었다.


“인호 너, 총 맞아도 괜찮아?”


“얼굴만 아니라면 어찌어찌…”


“그럼 가자, 돌겨…!”


그 순간, 총성과 함께 갱들이 볼링핀처럼 쓰러졌다. 지원은 미소를 지었고, 동시에 안심했다. 아슬아슬한 순간 근처 경찰들이 도착한 것이었다.


“시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경찰이 왔습니다. 감히 열차를 공격한 범죄자들은 현 시간부로 전부 사살되었으니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원은 총을 집어넣었다.


“인호, 총 집어넣어. 갱으로 오해받기 싫다면.”


“시골 경찰들은 출동하면 돈을 요구한다던데… 괜찮겠죠?”


“글쎄다… 내 전직으로 해결이 되면 좋겠는데 말이야.”


직후 경찰들이 나타나 시체를 치우고, 기차에 올라탔다.


“현재 기관사가 살해당해 지금 급히 대체 기관사가 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선 안심하시고 자리에서 기다려 주세요.”


그 중 가장 계급이 높은 이가 말했다.


“여러분… 잠시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만.”


그 경위 계급을 단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희 노탄서가 ‘지원금’도 적은데 이런 일은 잦으니… ‘활동비’가 부족하단 말이죠. 시민 여러분께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는 소총을 들며 천천히 승객들을 바라보았다. 승격들은 매우 불만에 찬 표정이었지만, 하는 수 없이 그에게 송금을 해주었다. 지원 옆에 있던 중년 남자가 귀띔을 했다.


“아가씨, 좆같겠지만 만원이라도 주는 게 나아.”


그러나,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경위에게 다가갔다.


“음? 아가씨는 뭐죠? 돈이 없다면 ‘몸’도 가능한…”


지원은 그 남자의 제복에 붙은 명찰을 바라보았다.


“승혁철 경위. 아무리 목숨 걸고 돌아다니는 동네라 해도 노인들께 돈을 뜯는 건… ‘상관’들께 예의가 아니지 않나?”


경위는 화가 난 듯한 얼굴이었다.


“앙?!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야! 내 상관이라도 되는 줄…! 되는 줄…”


경위의 말투에서 점점 자신감이 사라지자 지원은 더욱 목소리를 내려 깔았다.


“왜 그러나, 승 경위? 뭐가 두려운 건가?”


‘보, 보, 본 적 있어… 이 여자! 분명 경찰 쪽에서 봤어! 설마…!!’


“추… 충! 성!! 경위! 승! 혁! 철!”


지원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어 그래, 충성.”


“겨, 경정님께서 여긴 무슨 일로…”


‘경정? 이 새끼, 날 완전히 다른 사람이랑 착각한 건가?’

“친구들이랑 삼수에 갈 일이 있거든. 가능하면 오늘 안에 도착하고 싶은데, 뭐 좋은 거 없나?”


“있습니다! 의전용 소형 비행정입니다!”


“빌려줄 수 있나?”


“네, 그렇습니다! 이리로…”


지원은 레나와 인호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셋은 경위가 모는 차를 타고 지구대까지 가서는, 비행정에 올라탔다.


“고맙네, 승 경위.”


경위는 각 잡힌 경례를 하며 지구대가 떠나가라 소리쳤다.


“아닙니다! 경정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비행정이 지구대에서 이륙하자, 레나가 가장 먼저 웃음을 터뜨렸다.


“와~ 저 새끼 얼굴 봤어요?! 무슨 신이라도 본 양 헤벌레~ 해서는. 하하하!”


“솔직히 알아차리면 어쩌나 했는데… 그 정도로 멀쩡한 놈은 아니라 다행이야.”


“그나저나 누님, 대체 경찰 시절에는 뭘 한 거예요? 이런 작은 동네 경찰도 어렴풋이 알고.”


지원은 잠시 말이 없었다.


“여기서 말하기엔 좀 더러운 일… 이라고 해둘게.”


직후, 조종사의 무전이 들려왔다.


“곧 삼수군에 도착합니다. 어디에 내려드릴까요?”


“삼수역. 그 근처에 내려줘.”


“네.”


잠시 후, 비행정은 셋을 삼수역 앞에 내려준 뒤 하늘로 날아올랐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자그마한 기차역은 낡아서 과연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 까 싶었다. 펄펄 내리는 눈에 아이처럼 즐거워하며 뛰어다니던 레나를 두고, 인호가 말했다.


“이제 전화해 보죠.”


지원은 담배를 물더니 마선형에게 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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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3년에 무궁화호/현대판 마적이라는 미친 동네 양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