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졸려...' 부스스하게 일어난 머리를 부여잡으며 정수가 일어났다. 어제 정수는 부조리에 관한 책을 읽다가 그만 잠잘 시간을 놓쳐버렸다. 애써 졸음을 쫓아내려 눈을 비비지만 졸음은 쉬이 달아나지 않는다. 끼니를 때우려 편의점에서 사둔 즉석식품들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동안 그는 어제 읽었던 책에 대한 생각이 들어 시간도 때울 겸 자신이 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딱히 없다. 따지자면 담배가 주는 즐거움 정도. 남들에 비하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인생인가. 전자레인지가 띵, 하고 소리를 냈다.


점심시간, 정수는 옥상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니 이제야 사는 듯 하다. 할 것도 없어 잡생각에 빠지니 문득 공허감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외로운가?' 정수는 확신이 안 들었다. 공허감의 근원은 우울인가 아니면 외로움인가, 아니면 또다른 무엇인가.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 담배를 거의 다 피워가자 생각을 쓰레기 구겨버리듯 접어버리고는 저 무의식의 건너로 던져 보냈다. 그러고나선 담뱃불을 대강 꺼버리고 담배를 버렸다. 이제는 회사로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또 담배 피우셨죠?" 안으로 들어서자 정수의 후배 남민이 약간 장난스럽게 물어봤다. "응." "어떻게 알아챘는지 안 물어봐요?" "냄새 때문 아니야?" "그것도 그렇지만 선배가 옥상에 오래 있을 때는 항상 담배를 피우시고 계시더라고요, 거기서 알아챈 거죠." 정수가 말한다. "으, 너 나를 관찰하는 게 취미냐?" 남민이 난처한 듯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 전에 어렸을 적 꿈이 탐정이라고 말했잖아요." "홈즈가 상대를 척 보고는 바로 상대에 대해 줄줄이 읊어대는 그 장면들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어서, 그걸 따라하려고 상대를 관찰하는 습관이 들었어요." "아, 그건 그렇고 선배 요즘 지친다는 말을 버릇 수준으로 하시는데, 담배 끊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정수가 딱 잘라 말한다. "안돼." "담배는 내 삶의 원동력이야, 담배를 끊는 건 내게 죽음과도 같다고." "아니 그 정도예요? 담배 말고도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데, 왜 굳이 몸에 안 좋은 담배만 고집하세요?" 남민이 놀라운 표정으로 물었다. "몸도 안 좋아져 가는데 담배만 고집하시다니, 비합리적이잖아요." "얌마 몰라, 그냥 내 마음이 그래." "그러는 너도 만날 어린 시절 꿈 얘기를 하잖냐." "이젠 이룰 수도 없는데 왜 그래?, 그것도 비합리적이긴 마찬가지야." "왜 이룰 수 없어요?" "탐정 일은 불법이거든." "이젠 합법이에요, 2020년에 합법화됐거든요." "그래, 너 잘났다." "아니 뭐 그래도 이제 전 탐정이 될 일은 없으니 선배 말도 맞죠." 정수의 말에 짜증이 섞인 것을 뒤늦게 알아챈 남민이 당황해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일이나 하자." 나름 걱정해 준 후배에게 짜증을 낸 것이 한심해진 정수는 이만 대화를 끝냈다. 


그날도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정수는 적적한 집에 들어섰다. "..." 정수는 저녁도 거른 채 바람이나 쐬러 아파트 옥상으로 간다. 담배갑 안을 들여다보니 이제는 한 대밖에 안 남았다. 물끄러미 아래를 바라보던 정수는 순간 후배의 말을 떠올린다. '담배는 그만 끊을까?' 담배를 끊는다면 공허감이 묻힐 것도 같다. 이쯤 되니 아래로 떨굴까 싶어진다. 오늘따라 옥상이 위태롭다. 놓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자 문득 후배의 다른 말이 생각난다. '혹시 모르지.' 정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남은 담배를 물고는 다시 불을 붙였다.


다음날 퇴근길이었다. 웬일로 한산한 도로에서 차를 타고 달리던 정수는 한 트럭이 조금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봤다. 아니나 다를까 트럭은 불안한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전복되어 버렸다. 차에서 내린 정수는 트럭으로 가 운전수를 빼낸 뒤 그를 데리고 트럭에서 멀리 떨어졌다. 얼마 안가 트럭이 폭발하고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정수는 트럭으로 다가가고픈 충동을 느꼈다. 트럭으로의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운전수가 소리친다. "당신 미쳤어? 위험하다고!" 순간 정신이 확 들어왔으나 잠시 주춤하기만 한 뒤 계속 걸어간다. 무언가의 확신이 있었다. 어느덧 트럭에 가까워진 정수는 담배를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트럭에 난 불에 담배를 댄 뒤 입에 물었다. 뒤를 돌아보니 운전수가 아연실색해 있다. '당신 미쳤어?' 모르겠다. 어쩌면 그럴지도. 확실한 건 이건 정수에게 일어난 가장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것이였다. 트럭이 전복된 것도, 그래서 폭발한 트럭에 대고 담배를 피우는 것도. 지루한 일상이 순식간에 변모한 것은 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손에 든 담배를 다시 한 번 들이마신다. 후우우. 역시 담배는 끊지 않는게 좋았다.


다음날, 부스스하게 일어난 머리를 부여잡으며 정수가 일어났다. 정수는 어제 일어난 사건을 되새겨보다가 그만 잠잘 시간을 놓쳐버렸다. 짧은 하품을 한 뒤 끼니를 때우려 편의점에서 사둔 즉석식품들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동안 그는 가끔씩 들었던 공허감을 생각해 본다. 이제는 사라졌다. 아니 어쩌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자레인지가 띵, 하고 소리를 냈다. 


점심시간, 정수는 옥상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붙이는 찰나 후배 남민이 다가오는 게 보인다. 남민이 말한다. "선배, 여전히 담배는 안 끊으셨네요?" "그렇지 뭐." "...며칠 전에는 죄송했어요." "아냐, 나도 그땐 미안했어." "아, 그러고 보니까 네 말도 들어맞는 구석이 있더라." "뭐가요?" "그런 게 있어, 인마." 정수가 웃으며 말했다. 한 손에는 담배를 든 채였다. 담배에는 여전히 불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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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본 것 같다면 맞습니다. 전에 올린 소설에 내용을 좀 추가해서 올려봅니다.


처음 써본 소설인데다 처음엔 짧게 마무리 했던 소설이 주변인들의 조언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덧붙여지다 보니 형태가 처음 구상과는 조금 달라져 완성도가 좀 떨어져 보이네요.


부족하다는 것은 알지만 고칠 점을 파악하기가 어려워 이렇게 또 올려봅니다. 많은 지적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