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1등이라 기분좋아서 쓰는 게 아님

소설은 솔직히 쓰고 싶은 거 많은데 너무 무거움ㅋㅋㅋㅋㅋㅋ시간 되면 해보겠음




 남십자자리 


 친구가 주제를 하나 던져주면서 그걸로 시를 써 보래서 쓰게 된 시...인데 그 주제가 난민이었음 난민

시상 전개 자체는 뭔가 그...외노자 한 명이 서울 빌라촌 내리막길을 걷는데 이제 옆에는 전봇대 있고 황색등 켜져 있고 그런 뭔가 삭막한 빈민 도시의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썼음ㅁ 

1연은 빛공해 때문에 별도 별로 없는 도시 하늘? 정도고 2연은 외노자를 향한 차가운 시선, 3연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외노자 남십자자리가 뭔지 모르는 챈럼들을 위한 설명 하나 하자면 남십자자리는 남반구에서 북극성 역할을 하는 길잡이별임. 1등성이 2개 있고 해서.

외노자 입장에서는 고향 별 같은 느낌이라고 봤음. 어쩌면 밝은 별이 가득한 하늘이 있는 곳에서 온 순수한 이들은 서울의 인공위성 몇 개 있는 어두운 하늘에, 심지어 밝은 빛 때문에 어두워진 하늘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쓰게 됨. 

청자설정 명사종결이 버릇이라 3연에 있는 '너'는 사실 별생각 안 했는데 굳이 따지면 외노자라고 볼 수 있겠음


결론: 외노자를 향한 연민, 슬픔, 도시의 삭막함...뭐 그런 거




 묘정의 찬송가 


 동월 WBN에 이거 리뷰하는 수필이 올라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일단 바탕은 김수영 시인에 대한 찬양인 걸로 보임. 전체 시에서 김수영 시인에 대한 시어를 정말 수없이 찾을 수 있음. 

먼저, 김수영은 1946년에 '묘정의 노래'로 등단했고, '풀'은 68년 6월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수영의 유작임. 

1연부터 2연 1행까지는 반복적으로 연결어미만 사용하는 모습이 마치 고수레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음. 전통적 어조와 죽은 이에 대한 경례와 같이, 담담하면서도 확실하게 조문하듯 시인을 기리는 문체가 마음을 먹먹하게 함. 분명 시인이 죽어도 시는 살아있다는 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표현이지만 '우리의 시'가 '시인을 죽였다'는 건 솔직히 말해선 단박에 와닿지 않음. 김수영이 죽음을 자주 노래한 시인은 맞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죽은 것도 아니고, 혹시 김수영의 시에 영향을 받은 후대 문인들에 의해 김수영이 시만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건지, 여러모로 글쓴이가 유동인 게 아쉬울 따름임

 

결론: 무겁고 아름다운 조의로 찬 시문, 전통적인 죽음에 대한 사유를 떠올리게끔 하는 흥얼거림





 세이레 


 대부분은 눈치챘겠지만, 견우직녀 설화를 바탕으로 한 시임. 기상현상과 천체를 통해서 설화를 재해석하고자 했음. 사실 올초에 쓴 거라 칠월 칠석이랑은 전혀 연관이 없긴 한데 뭐 상관없잖아 8월의 크리스마스는 그럼 8월의 크리스마스에 썼나 

시를 효과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개 알아야 할 게 있음

1. 여름의 대삼각형

2연 1행에 등장하는 삼각(三角) 별자리임. 여름 밤하늘의 1등성들인 베가, 데네브, 알타이르가 이루는 삼각형을 뜻하는 단어로, 이 중 베가와 알타이르는 각각 직녀성과 견우성으로 불림. 

2. 세이레

세이레는 삼칠일(21일)의 다른 표현임. 보통은 애 낳고 21일이 되는 날을 이르는데, 뭐 나같은 애새1끼가 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음력 달력 보는데 올해 8월 21일이 음력 7월 6일이길래 그리 써 봄...시도 운이 좋아야 쓰지 참 이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님 


결론: 견우직녀 설화를 굳이 천문학적으로 씀




 소국 


 이번 분기에는 왜 이렇게 김수영 팬들이 많나요. 3연 보자마자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가 바로 떠오르는 유려한 패러디 운문. 현실에 소극적인 소시민인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화자의 태도는 원본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 오히려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했던 원본에서 범주를 더 넓혀서 아예 풀과 먼지와 나비와 애벌레들을 추키며 자기 자신을 작다고 하는 자조적 태도를 보임. 근데 이제 자기만 작다고 하는 게 아닌 게 골때림 읽다가 보는데 갑자기 모두랑 같대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읽는 사람까지 같이 반성해야 할 것 같잖아...아 맞다 방학 계획 세워둔 거 해야 하는데? 하게 되는 시. 전체적으로 건드릴 곳 없는 무난한 시임. 


결론: 김수영의 유지를 이어받았으나, 읽는 사람까지 뜨금하게 하는 시




 어느 저급한 소설가에게 


 에...여러모로 찔린 시임. 위에 있는 소국보다도 더. 솔직히 말해서 내가 쓰는 소설이라곤 죄다 1960년대풍 시대극이라 시 내용에는 별로 해당되는 부분이 없지만서도 뭔가 그런 찔리는 느낌 있잖아. 내용에 공감이 가는 건, 최근에 인스타 광고에 나오는 소설을 몇 권 사다 읽은 적이 있었음. 으, 읽다가 버렸음. 사실 그 책들 중에는 몇 개 유명한, 소위 수작 취급받는 것도 있긴 했는데 내 눈엔 그냥...으응 쓰레기였음 솔직히...여사친이 추천해서 읽은 것도 있는데 욕하려다 말았음 챈럼들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함. 모두가 공감했거나, 찔렸거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론: 썩어가는 문학을 단도리질할 마지막 끈을 일깨우는 시. 인스타 광고충들아 이것 좀 읽어봐라




 춘곤 


 3연의, 상당히 간단한 시. 내가 쓴 것 중에도 손에 꼽을 정도로 짧음. 물론 내가 시를 좀 길게 쓰는 이유도 있는데, 에...하여간 짧음ㅇㅇ 어떻게 보면 시상 전개 자체는 상당히 간단한데, 봄을 의인화해서, 겨울이 지난 것을 잠이 깼다고 변용한 것뿐임. 사실 대응관계만 알면 이해하기 쉬운데, 봄=사람, 겨울=잠, 눈(雪)=눈물(하품하면 눈물 나잖아 눈물 다들) 아침 해=눈(眼), 한 해=하루. 봄에게는 1년이 하루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서 쓴 시임.


결론: 천방지축 잠꾸러기 봄님은 하루가 피곤해!




비애


 여러모로 읽으며 김상민의 <You>가 생각났던 작품. 비가 오는, 아니 파도가 밀려오는 사랑의 정경을 아슬하게 녹여낸 시상 전개에 감탄하게 됨. 2행씩 8연이나 연달아 쓴 간략한 시 구조가 오히려 더 애상감을 자극하게 함. 올해 본 시 중에 가장 발라드 가사로 쓰기 좋은 시. 어디 작곡가 없나. 슬픔이 비에 씻기기는커녕 비가 그칠 때에야 찾아와서는 아픔을 심화시키는 듯한 모습이 너무...거시기함 울 것 같아. 근데 여기서 또 새롭게 바라볼 만한 점은 뭐냐면, '비애'랑 '비에'의 발음이 유사하다는 거임. 운율감도 운율감이겠지만, 이걸 이용해서 시에 있는 '비에'와 '비애'를 서로 교환해 보면, 지금까지 얘기한 내용이 반대로 흘러감. 1연부터 '비'가 아닌 '비애'가 쏟아지는 모습, 8연에서는 '비'가 그치고서야 '비'가 내리는 역설 문장인데다가, 문장이 끝맺어지지 않아서 여운을 남김. 간단한 애상적 정서가 아니라 다른 해석도 생길 수 있는 좋은 시. '너'가 떠난 뒤에도 결국 '나'의 옷가지는 비에 젖어선 '너'를 잊지 못한다는 감상을 받았음. 진짜 미쳤네 글쓴넘 최근에 이별했냐?


결론: 차가운 비에 차오르는 비애. 슬픔과 이별을 누구보다 감각적으로 형용한 운문.




「 추함


 어...추하다. 제목대로 자기 자신에 대해선 한없이 추해 보임. 이게 뭔가 청자나 관련 시어가 있으면 연시라고 생각은 들 텐데, 그냥 아름다움은 많고 그 사이에 소수의 추함이 있고 그 한 '마리'의 추함이 화자 자신이라고 하니까 그냥 자존감 낮아 보임. 그거랑은 별개로 헌신의 태도를 드러내는 관념적인 시어가 눈에 띔. 의미로서는 분명 아름다움을 창조해내지만 정작 그 자신은 추한, 그것도 영원히, 필연적으로. 그런 모습이 안쓰럽고 슬픔. 나도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최근에 힘든 일이 있었는지, 글쓴넘이 걱정되게 하는 시임. 시 주고받고 하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가끔 시만 보고 서로 무슨 일 있었는지 짐작이 가는 경우가 있음. 에...걱정이 됨


결론: 남의 의미에 취해 자신의 의미를 잃어버린 화자에의 연민. 글쓴넘 먼일있었냐? 





오독 가능성 多. 아무쪼록 고까워하지 않고 읽어 주면 ㄳ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