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발... 대가로는 뭐든 줄 수 있으니까 한 번만 제니퍼를 살려 줘! 부탁이야! "

덥수룩한 장발을 묶어 올린 남자가 뼈만 남은 앙상한 소녀를 안고 울부짖었다. 소녀의 축 늘어진 팔은 그녀가 이제 곧 마지막을 맞이하리라는 것을 충분히 암시하고 있었다. 곰팡이가 핀 판자집 창문 밖으로는 길거리를 가득 적시는 빗방울과, 비웅덩이 위에 빛을 드리우는 네온사인이 보였다.


" 아아, 킬리언 오코넬, 정말 안타깝지만 그건 안 돼. 아무리 악마라도 죽을 운명을 바꿀 순 없어. 영양실조가 너무 심해. 이 애의 몸은 자기 심장을 분해해서 겨우 유지되는 중이라고.  "

검은 군복과 AR-15 탄창이 가득 찬 방탄조끼를 입은 사람 - 어쩌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는 그것이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은 구멍이 나 있지 않은 발라클라바로 덮여 있었다. 그것이 소녀의 팔을 한 번 들었다 놓아 보았다. 소녀의 팔은 힘없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 살리는 건 안 되지만, 좋아,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어. " 그것이 킬리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의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킬리언은 왠지 그 형상이 자신의 속까지 꿰뚫어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어차피 이 아이는 죽을 운명이니까, 내가 조금이라도 그 고통을 덜어 줄게. 그리고 그 대가로, 네게 내 힘을 일부 나눠 줄게. 계약을 하는 거야. 어때? "


" 씨발... 그건 제니퍼를 죽이겠다는 소리잖아! 좆 까, 절대 안 돼. 그리고 내가 그 힘을 받아 봤자 써먹을 데가 어디 있는데? "

킬리언이 울부짖으며 소녀가 깨어나기를 바라는 듯, 그녀를 세차게 흔들었다. 소녀는 미동도 없었다.


" 써먹을 데라... 이 친구야, 생각해 봐. 네 동생을, 네 불쌍한 인생을 이 냄새나는 아파트 구석까지 내몬 게 누구지? 빈곤층 지원금을 끊어서 네 동생이 말라 죽게 만든 게, 동원령이라는 명목으로 너희 형을 끌고 간 게 누구냔 말이야. 이 아이는 이미 가망이 없어. 네 동생에게 이제 그만 휴식을 주고, 그 대가로 받을 힘을 써서 네 인생을 망친 이 국가를, 불태우고 싶은 마음이 정녕 없는 거냐? " 


킬리언은 그것을 천천히 올려다보았아. 그의 붉은 뺨에는 눈물 두 가닥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정말 고통 없이 끝내 주는 거 맞지? " 

" 물론이야. 그러면, 거래는 성사된 건가?"

킬리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녀를 마지막으로 꼭 끌어안았다. 


그것은 소녀의 머리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을 몇 초간 얹었다가 뗐다. 소녀의 몸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지만,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 거 참 유감스럽구만, 좋아. 거래는 완료야. 무슨 힘을 줬는지는 며칠 있으면 알게 될 거다. 요즘은 거대 기업이니 하는 놈들이, 너 같은 계약자들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거든. 행운을 빈다. "

그 한 마디를 남기고는 그것은 먼지가 바람에 흩날리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킬리언은 이미 싸늘하게 식은 여동생의 시체에 얼굴을 맞대며, 땅에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