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침은 그의 근원적 고통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비틀대며 거리가 시작되는 곳으로 걸어갔다. 낙엽과 단풍과 초목이 공존하는 늦여름에도 아직 열기는 건재하여 계속해서 그의 시야를 흐트려놓았다. 몇 개의 상이 겹쳐 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곳을 가리키곤 했지만 억지로 한눈을 감싸며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영겁에 가까운 듯한 행군이 지나고, 그는 거리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그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가려면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그는 어둑한 계단에서, 콘크리트 벽을 갸날프게 짚으며, 여섯 자리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 문의 잠금을 풀고, 이내 겨우 먼지 냄새가 나는 침대에 몸을 던지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눈물을 흘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을 눈치챌 수도 없었다. 그는 너무 지쳐 있었던 것이다….

 

첫 기억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는 저를 무릎에 앉혀 놓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어머니를 기억했다. 어머니는 대체로 그에게 상냥했다. 하윤이라는 이름을 그에게 붙어준 것도 그의 어머니였다. 하지만 언제나 상냥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고통스러웠다. 그의 어머니의 태도가 바뀌는 기준은 그가 알 수 없는 곳에 있었다.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질책을 들을 때도 있었다. 예의 없는 장난을 쳤는데 부드럽게 넘어갈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불안했다. 기준이란 것은 그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 아니었다. 언제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질지 몰랐고 미소지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웬만하면 그에게 상냥한 사람이 그녀였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마음이 토하는 불신에 고민하면서도, 그녀의 가슴에 안겨 있기를 좋아했다.

 

그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언제부터였냐고 묻는다면 아마 처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자기 안에 어질러진 생각들의 조각을 짜맞출 수 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고통스러웠던 것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믿음과 현실이 상충으로 하여금 발생하는 고통은 신자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그는 구원자로부터 눈을 돌리는 대신 성서의 말씀을 확장하는 길을 택했다. 이제 어떤 것이든 그에게는 특별의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약간 낮은 성적도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 나왔으니 그가 똑똑하다는 증거였으며, 협소하고 얕은 인간관계도 그가 범인은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상징했다. 물론 그 증거품들이 대개 논리의 비약임을 그가 알지 못하는것은 아니었으나, 생각이라는 것은 확정이 없었고 어디까지나 경향성을 띠는 법이었다. 그도 자신의 망상이 거짓일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반대로 진실일 확률이 0이 아니라는 사실에 더 주목했다. 그는 자신의 증거들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그는 행복할 수 있었다. 그 위안 덕분에 중학교를 무사히 넘기는 데 성공했고, 고등학교도 약간만 불행한 채 넘어갈 수 있었다. 그는 대학에 진학했다. 남들과 같이 스무 살에, 좋은 대학은 아닌, 그렇다고 수도권 밖으로 완전히 넘어가지는 않는 적당한 대학에 진학했다. 그 즈음에 그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거의 믿지 않았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완전히 불신하지도 않았다.

 

대학은 그 전까지의 학창생활과는 약간 달랐다. 자유롭지만 미래의 수난을 암시하는 중학교 생활이나, 모든 최종적인 목표가 진학으로 맞추어져 있는 고등학교의 생활과도 사뭇 달랐다. 그에게 가장 체감이 컸던 것은 더 이상 공부라는 것이 제 일의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전까지 그는 시끄럽게 놀던 다른 이들을 보며 솟아나는 불쾌함을 자신은 저럴 시간에 공부를 한다는 비웃음으로 넘길 수 있었으나 (물론 그런다고 딱히 그가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다) 이젠 그럴 수도 없어졌다. 그의 눈에 사랑과, 우정, 꿈과 비전과 같은 청춘의 조각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에게 그 조각들은 사뭇 날카로웠다. 때문에 그는 눈이 찔리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조각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그러니까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이제 와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피곤하다고… 지쳤다고, 그 안의 어떤 것, 대체로 열정과 비슷한 그것이 고갈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땅을 보며 걸었다. 눈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성적에 맞춰 들어온 과여서인지 수업은 재미없었다. 그는 수업을 듣는둥마는둥했다. 성적은 당연히 잘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성적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물론 그는 그 이념에 따라 성적을 제 인생에서 배제하며 살아온 참이었다. 그러나 대학마저 그리한다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조금씩 공부를 했다. 극적인 상승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평균을 왔다갔다 했는데, 그는 이 정도로도 투자한 시간에 비해 꽤 괜찮은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는 남자들보다 1년 빨리, 여자들보다 1년 늦게 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해야만 할 것은 여전히 없었으나, 어째서인지 시간이 많이 생겼다. 그는 부모님의 눈가에 이전에 없던 주름을 몇 개 발견했다. 부모님은 그에게 아직 기대하고 계셨다. 그 기대가 얼마나 큰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것을 정확히 마주하기도 싫어서, 그는 자취를 시작했다. 월세를 부모님이 내주신다는 이유로 용돈은 줄어들었다. 그는 가끔 그것에 대해 불평하고 싶기도 했으나, 자신이 뭐라 입을 열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잠자코 있었다.

 

방은 작았다. 덕분에 모니터의 좁은 빛으로도 방안을 가득 밝힐 수 있었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모니터 앞에서 보냈다. 유머와 가십과… 오로지 웃음만을 위해 만들어진 사람들의 망가짐과 캐릭터의 움직임은 하루를 빠르게 보내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시간을 죽이는 일이라는 것은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물론 있었다. 수 일간의 고민과 가늠을 거쳐 나온 그 생각은 수 초의 욕망에 빈번히 유보되곤 했다. 처음 생각이 행동에까지 닿은 것은 시간이 제법 흐른 뒤였다. 평소와 같이 유백색 빛을 내는 액정에 눈을 맞추던 중, 흥미로운 구인 광고가 있었다. 자신이 평소 즐겨 하던 온라인 게임의 모회사에서 QA(QA:품질관리 담당자)를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정확히는 그 모회사의 QA를 맡는 아웃소싱 기업에서. 공고를 보니 계약직이었지만 오히려 정해진 기간만 채우면 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수입 또한 적었는데, 마찬가지로 별로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무엇보다 부모님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슬슬 월말이 될 때마다 부모님의 감정을 살피며 용돈을 더 줄 수 없겠느냐고 전화를 거는 것이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그는 고교시절과 대학 말미의 기억을 더듬어 지원서를 작성했다. 며칠 후 그는 회사로… 는 가지 못했지만, 대신 근처의 사무실에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약간 기대한 채 면접에 들어갔다. 준비된 정장이 없었기에 최대한 단정하게, 청바지와 셔츠를 입고 들어갔다. 확실하지도 않은 면접에 굳이 비싼 정장이라는 투자비용을 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그 투자비용이 면접에 있어서 그리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의 판단은 맞아떨어졌다. 다만 그것이 그에게 있어 호재는 아니었다. 면접이 끝이 났다. 그는 28분 44초 동안 면접을 빙자한 재판을 받았다. 면접관(그리 직급이 높아보이지는 않는)은 사무적인 투로 그의 지원서를 들고는, 천천히, 명확한 발음으로 그의 경력을 나열했다. 그리 좋지 않은 대학의 그리 좋지 않은 성적과, 그의 나이가 지금 스물 일곱이라는 것과, 그 사이의 경력이 전부 비어 있다는 것을, 그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아주 천천히 열거했다. 그는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눈앞의 남자에게 꼭 발가벗겨지고 희롱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지만 면접관은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작은 사무실, 3층에서 내려오는 동안 그의 걸음은 약간 흔들거려 불안했다. 물론 그 자신도 어느정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스스로 깨닫지도 못한 연민과 자기위로와 무지로 자신의 치태를 포장지에 감싼 채로 인지하는 것과 남의 손으로 그 포장지가 풀어헤쳐지는 것은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딱히 기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확실히 정장은 필요없었다. 다만 머릿속에 문득, 정장을 입었으면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뇌를 찔렀다. 당연히,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0은 아니었다. 그가 항상 하던 자기위로와 마찬가지로.

 

그의 집은 서울 외곽에 있었고, 면접을 본 사무실과는 제법 먼 거리였다. 그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갔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문득 여기까지 올 때 제법 고생한 기억이 떠올랐다. 사람에 잔뜩 치여서, 테트리스가 된 것처럼 낑겨 지하철을 타고 왔었다. 돌아갈 때도 그 취급일까.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다행히 돌아가는 길은 한적했다. 지하철에도 자리가 많았다. 그는 지하철의 맨 끝자리에 앉아서- 허리를 구부정하게 움츠리고 벽에 기댄 채로 눈을 감았다. 귀에 꽃은 이어폰에서 시끄러운 덥스텝 음악이 흘러나왔다. 세 번째, 네 번째, 벌써 여러 번 바뀐 데시벨의 살벌한 강도에도 불구하고 점점 졸음이 오던 참이었다. 그때, 시끄럽지만 일관되게 시끄럽던 음악의 흐름을, 동시에 그의 수마를 깨는 소리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에게 온 전화였다. 그는 별로 의식을 두지 않고… 늘 가족에게 그래왔던 것처럼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의 목소리도 평소와 비슷했다. 그는 약간의 권위가 섞였지만 평이한 목소리로 담담히 그에게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머니가 쓰러졌으며, 지금 병원에 있지만 과로일 뿐 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라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그에게 전해왔다. 그러나 아버지의 의도는 그에게 완전히 반대로 작용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은 곧 어느 정도는 걱정하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그는 아버지의 말에서 부담을 찾아내었고, 곧 그런 자신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 감정은 몇 가지가 더 겹쳐져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그러나 그리 크지 않은- 걱정과, 불안과, 걱정과 불안의 너머에서 까닭모를 웃음을 발견해버린 자신에 대한 깊은 혐오가 모두 뭉쳐 역겨운 보라색을 띄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감정은 시간의 체감이었다. 이십칠 년이 지나 있었다. 그의 의식과 기억이 유지되었던 시점으로 한정하더라도 이십 년 전후의 시간이 지났다. 시간은 끊임없이… 잔인하게도,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변한 게 하나 없었다. 이제 그는 자신의 특별함이 그저 소망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가능성은 한없이 0에 가까워져갔다. 점점 목이 죄어오고, 숨쉬기가 쉽지 않았다. 단 한 번이라도 그가 특별했던 적이 있을까? 태생적인 특별성이 없다면 인공적으로라도, 후천적으로라도 특별성을 취득할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전부 걷어찼다. 노력의 특별성을 긍정하면서, 재능의 격차 또한 긍정하면서, 희망을 제 손으로 버린 채로.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매순간 구원해왔던, 어쩌면 생존본능일지 모를 불확실성은 끝내 0이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는 자신을 그는 눈치챘다. 구토감이 몰려왔다. 그는 굳이 참지 않고(못하고) 지하철 바닥에 속을 게워내었다. 그리고 도망치듯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집까지는 두 정거장뿐이 남지 않았건만… 그저 역 밖으로 뛰어갈 뿐이었다. 근처에, 눈에 보이는 마트로 들어갔다. 셔츠 목에 토가 튀어서인지 주변에서 그를 거북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으나 개의치 않고 기름 한 통을 사서 나왔다. 그는 특별함이-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해도 좋을 이유가 필요했다. 불가항력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래, 바로 오늘이었다. 그는 도망쳐온 것이다. 거리에서, 그를 적대하는 이 세상으로부터, 안전한 그의 은신처로 도망쳐왔다. 방금 그는 불을 질렀다. 사람이 없는(그럴 거라 추정되는- 확실하지는 않았다) 폐건물에 기름을 붓고 라이터를 던졌다. 여름이었다. 열기만큼이나 비대한 물기로 인해 그는 방화에서마저 몇 번 실패를 겪었다. 네번째 시도에서 그는 솟아오르는 불길을 뒤로 하고 도망갔다. 그의 집,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작은 반지하 단칸방으로 뛰어갔다. 손이 고통으로 욱신거렸다. 불을 붙이던 중 화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걸음을 멈출 정도의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그는 멀쩡한 왼손으로 문을 잠궜다.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이제 곧 누군가 올 것이다. 추격자이든, 경찰이든, 어쩌면 그가 아는 사람이든간에 상관없었다. 반지하의 좁은 창문으로도 치솟는 불길이 잘 보였다. 그는 저 불이 영원토록 꺼지지 않기를 기도했다. 추레한 몸뚱아리를 가리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