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

세수를 하던 도중 작은 나방이 화장실에 들어오는것이 아닌가.

힘이 없어 보였다. 

나방은 세수를 하던 나의 손 위에 앉았다.

평소 같으면 기겁을 하고 손사래를 쳤겠지만 

왠지 나쁜 느낌이 아니었다. 이놈이 가야할 곳 어딘가 중 한 곳이 내 손이라면 잠시 내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러나 금세 나방은 날아 화장실 전등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밝은 전등에 몇 번 몸을 톡톡 부딪히더니 포기하고 주변을 날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세수를 마친 후  화장실 불을 끄고 나왔다. 

화장실을 나오자 보이는 모습.

이게 아늑한 나의 집이다.

4평남짓한 작은 쪽방 , 햇빛도 잘들어오지 않지만  나에겐 과분한 방일지도 모른다. 

일을 가기 위해 식사를 했다. 

편의점에서 사온 작은 컵라면 하나와 삼각김밥 

이정도면 아침도 많은 편이다. 

컵라면을 먹으려하자 냄새를 맡았는지 나방도 내 옆으로 날아든다. 

창문을 열어주어야 하나 ? 잠시 생각이 스쳐간뒤 나는 식사를 계속했다.  

입맛이 없다.

싱크대에 컵라면을 버리면서 보니 음식물이 꽤나 쌓였다. 이래서 나방이 꼬인건가 ?

다녀와서 버려야겠다.

문을 열고 나왔다.

똑같은 풍경 , 매일 타는 버스를 타고갔다. 창밖 비치는 환한 햇살과 사람들.

그러나 점점 잿빛으로 물들어가는것 같다.

기분탓이겠지. 

회사책상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어려울것이 없다. 

내가 앉아야할 곳에 앉아 해야할것을 하는것일뿐. 

그나마 내게 위안이 되는건 내가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조금은.. 아주 조금은 돈을 많이준다는것일까. 

지금은 쪽방에 살지만 내가 있어야할 이 자리에 앉아 시간이 흐르다보면 언젠가 다른 집에 내가 살고 있겠지. 그나마의 희망인걸까.

"최 대리님!  이거 좀 대신 해주실래요?" 

"아..네.." 

이곳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아 일도 많이 도와주곤 한다. 이정도면 난 잘하고 있는 놈이 아닐까...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잠시 회사 앞 공원을 바라 보았다. 

'잠시 쉬었다 갈까 ? ' 

공원에는 예쁘게 되어있는 벤치도 , 나무에 둘러쌓인 산책로도 있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조금 전 부탁 받은 업무가 생각나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아 있던 와중 , 부장님이 들어오셨다. 

"최대리 주말에 뭐해 ? 나랑 같이 교회 안 갈래 ? 이게 말이야..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부장님의 말씀을 들었다. 무어라 말하는지는 몰랐다. 내 자리는 이곳이니까. 이곳에 앉아 듣기나 해야겠지.

"어쨌든 내일부터 주말이니까 잘 생각해보라고. 회사생활도 말이야. 올라가고 하려면 윗분들 계시는 곳에 가서 ..."

"네 이번 주말에 나갈게요."

내 자리에 앉아 난 내 역할을 했다. 

부장이 윗분들한테 잘 보이기 위해 전도하는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게 내 역할이니까. 

그곳도 내가 가야할곳이라면 가야하지 않나.

어릴적에는 교회를 다녔었다.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신은 나에게 사명을 주었고 그 사명을 위해 노력하면 신은 분명 나에게 길을 열어준다고 하였다.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주말에 딱히 하는것도 없으니까. 주어지는 상황에 충실해야지.

신은 나에게 조금이나마 시간과 공간을 주었고 
나는 그안에서 자유롭다 생각하니까. 

이윽고 회사 밖 창문으로 어둠이 내렸다. 

아직 환한곳은  내 사무실 뿐이다. 

남아서 업무를 하던 도중 , 전화가 울렸다.

"어 그래 최대리, 아직 회사야 ? 열심히하네, 이번 주말에 교회 꼭 나와 내가 주소 찍어줄테니.. 
아 그리고 미안한데 이번 승진은 좀 힘들거같네. 하하 , 이게 우리 회사가 규모도 작은데 새 사람 뽑기 힘든 거 알잖아 ? " 


"어쨌든 이번만 기회가 아니니까.. 경기도 풀리고 하면 분명히 자리 내가 만들어줄게. 그리고 교회를 나와야..."

핸드폰 넘어 들리는 부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난 손으로는 업무를 계속 했다. 

"괜찮아요 부장님. 감사합니다." 

괜찮다. 그깟 승진이 뭐 대수랴. 

내가 일을 기 막히게 하는 놈도 아니고, 
부장 말대로 지금 취직하기 힘든 세상인데, 이렇게 벌어먹고 사는게 어딘가. 

사무실 불을 껐다. 

불꺼진 복도를 따라 걸어나갔다.

'그래도 이런 얘기는 오늘 만났을때 해주면 안됐나..'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 

"이제 퇴근하시죠? 고생많으십니다.. 피곤해보이시는데 쉬어가며 하십쇼.. 허허.." 

고개를 들어보니 경비원 아저씨였다. 당신도 피곤하실텐데 나를 보며 환히 웃는 얼굴. 

복도를 보니 회사에 남은 불빛이라곤 경비실 뿐이었다. 

날 기다리고 계셨나. 금요일 밤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밝게 인사해주시는 환한 미소를 보니 가슴이 울컥했다. 뭔가 몇마디 대화를 더 나누고 싶어졌다. 고충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경비아저씨께 말한다고 달라질것은 없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저 꾸벅 인사를 드리고 회사 밖으로 나왔다.

버스 정류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어라 ? 지갑이없다.  막차버스인데..
사무실에 두고온 모양이다. 

당황스럽지만 괜찮다. 어차피 다음주에 또 가야하니까.  피곤한 몸이었지만 그냥 한걸음씩 걸어 나갔다. 

어둑한 밤이었기에 가로등 불빛을 따라 걸었다. 

가로등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들어가고 싶지 않다. 남들은 재밌게 즐기고 있을테니깐. 

 괜히 짜증이나  더 걸어나갔다.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저 멀리 밝은 빛이 보였다. 

환한 불빛을 따라 도착하자 보이는 전광판. 

'신이 천국을 본 따 만든 섬, 모리셔스로 떠나세요'

환하게 빛나는 전광판, 멋지다. 

모리셔스가 어디지 ?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 이번 휴가때 저기로 가고 싶다. 빛나는 태양 아래서 수영도하고 .. 칵테일도 마시고.. 

그래 , 세상 모두가 오늘 노는것도 아니다.
난 저때 나에게 보상을 주고싶다.  조금만 참아내고 돈을 모은다면...

아래 적혀있는 기본 여행료는 내가 감당할수 있는 수준을 넘었지만 아무래도 좋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니깐. 

빛나는 저 곳으로 가고 싶다.

상상속에서 빙빙 돌다보니 어느새 다시 집에 도착했다. 

집으로 도착해 불도 키지 않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차 , 오늘 음식을 사지 못했지.

빈속이지만 괜찮다. 내일은 쉬는 날이니깐. 금세 깡소주 두병을 해치웠다. 속이 뒤집어 질거 같았지만 오늘은 내가 그러고 싶다. 

벽에 등을 대고 누웠다. 

환상의 섬을 상상하며 잠시 잠에 빠졌다. 



눈이 부셨다. 





부스스 눈을 떠보니 핸드폰 화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회사 단톡방 메세지였다. 

'제가 내일 나갈게요. 어차피 지갑도 놔두고 와서요' 

답장을 보낸뒤 다시 등을 댔다. 아직 남아있는 술기운 때문일까. 울컥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어차피 내일도 할 게 없었는데 나간다고 다른게 있나 싶다. 

씻고 얼른 자야겠다. 

화장실 불을 켜고 들어가 세수를 하려고 물을 틀었다. 세면대 위로 무언가 둥둥 떠다니는게 아닌가. 

나방이었다. 오늘 아침에 본.

내가 물을 아끼려고 받아둔 물에 빠져 죽은것이었다. 

참 웃긴 녀석이다. 

멍청한 나방. 하긴 나방이 뭘 알겠는가. 아침엔 이곳저곳 돌아다니더니 고작 하는건 물에 빠져 죽는것이라니. 

바보 같은 녀석, 멍청한 벌레들은 이래서 안된다. 
하긴 전등 빛이 환하다고 달려가다 타 죽는 멍청한놈들 아닌가. 

불빛은 자신을 반기지도 않는데..
  
형광등이 그저 밝게 빛난다고 몸을 매번 들이박고선 뜨거움에 놀라는 바보같은놈.

빛을 감당하지도 못할거면서. 


내가 창문을 열어 자유를 주었다고해도 이놈은 여기서 이렇게 끝날 놈이었다. 

난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세면대 물을 내렸다. 


창밖이 어둡다.

술기운 탓은 아니다. 그렇지만 괜한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그저 한번은 생각해야할 문제였으니까...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할까. 



신이 나에게 준 사명은 어디에 있을까 ? 


문득 아까 본 전광판이 생각이 났다.  

다시금 환히 빛나는 그곳에서 잠시라도 환상에 빠지고 싶다. 


집을 나와 가로등 빛을 맞으며  전광판을 향해 힘차게 걸었다. 

신이 주신 빛나는 나의 사명. 나의 행복. 


지금처럼 빛이 비추는곳으로 향하다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저 그렇게 조금씩 따라가다보면...

 나도 언젠가 조금은 빛날수 있을것이다. 
















'어제 밤 한강 물에 청년이 투신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설화산업에 다니는 직장인 최모씨로...'






                                                           나방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