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할지 모르겠다.
아니, 뭘 할 순 있는가?
시정잡배 마냥, 버러지처럼 살아온 나다.
의미 없는 매 순간을 살았고
그 순간이 쓰레기처럼 적체되었다.
고약한 악취가 풍긴단 말이다.
25년이 짧은가?
25년간 어떤 발전도 개발도 없이 살았다.
줄곧 도부수를 기다리는 죄수가 되어.
그 25년도 짧은가?
나는 무얼 했는가.
아니, 무얼 해야 했는가.
공허함을 느낀다.
나는 과연 공허할 자격은 있는가?
이런 존재도 살아보겠다고 무언가 주워 먹는다.
맛도 잘 모르겠다.
무언가를 잊기 위해 무언가를 먹는다.
100년 좀 못될 찰나.
“나”라는 우주의 티끌에 운수 좋게도 정신이 깃들었다.
내가 우주에 유무형의 가치를 남길 수 있는가.
나는 미안한 사람이 많다.
정확히는 미안해야만 하는 사람이 많다.
난 나의 유년에게 미안하다.
아비를 모른다.
3살 무렵, 빚만 남기고 토꼈다.
꽤 비겁하고 한심하다고 생각한다.
내 습성은 부친에게 배운 것일까.
그래서 늘 도망치고 또 도망친 걸까.
난 엄마한테 미안하다.
그녀는 별 학식도 없이, 요령도 없이 늘 일했다.
이 천치 같은 것이,
무어가 그리도 못내 이뻐
돈이며 시간이며 사랑이며,
무한정 주었는가.
왜, 도리어 늘 나에게 미안해하는가.
보답할 길 없는 마음은 터무니없이 무겁다.
난 날 믿었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티끌 없이 날 바라보던 그 형형한 눈빛들.
나에게 준 기대와 호의와 대가 없는 우의들.
문득 그 광명이 떠오르는 새벽이면,
나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변명 변명하며 도망치길 반복했다.
왜 그들은 그런 나를 아껴주었는가.
수필에 교훈이 있어야 하는가.
그래야 한다면 어떤 교훈을 담아야 하는가.
교훈을 담을 대상이 이 얄팍한 수필 쪼가리인가.
아니면 마찬가지로 얄팍한 내 인생인가.
인공의 교훈은 요상한 부조화만 남길 뿐이다.
그러니까, 이 글은 교훈이 아닌 반면교사이다.
답지가 아닌, 질문 덩어리 문제집이다.
그래, 언젠가의 나에게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