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 창녀와 포주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 입니다. ㅋㅎㅋㅎㅋㅎ 

선곡도 했으니 음악과 함께 읽어보세요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NuBrdpbSr4




83년 부산 사창가, 나는 조그마한 쪽방으로 들어가 앉으며 식탁을 폈다.


“밥묵자.”


“밥묵자고.”


몇 번을 말해도 숟가락 조차 들지 않고 벽만 쳐다보고 있다. 건방진 모습에 화가 나 말했다.


“안들리나 ! 밥묵으라고!”


그러자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는 연희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깡패새끼들은 지 맘대로 안되면 소리부터 지르나? 왜? 니도 나 때리라! 양아치 깡패새끼야!”


순간 욱했지만 차분하게 다시 말했다.


“짜증나게 하지말고 얼른 밥묵으라. 식는다.”


직접 숟가락을 들어 연희에게 건네자 연희는 겨우 숟가락을 들었다.


나도 국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정신머리가 사나워 그런지 맛이 도무지 느껴지질 않았다.


꺠작깨작 거리는 연희를 보며 물었다.


“니 남은 빚이 얼마고?”


“내 빚이 아니라카이.”


“어쨌든! 죽은 니 아부지고 지랄이고 간에 빚이 얼마냐 묻는거 아이가.”


“삼백육십만원.”


엄청난 액수를 담담히 말하는 그녀였다. 하지만 이 동네에 사연 없는 사람...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는가... 연희도 다를바 없다. 난 단지 내 일을 해야할뿐.


“아직 갚을 돈도 한참인데 좀 맞았다고 성내고 하면 니 오래 몬 버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제때묵고 해야 어떻게든 나갈거 아이가... 우리 같은 놈들 식사라도..”


“깡패새끼가 착한척은 와하노? 그 입 닫고 니나 많이 묵어라.”


나는 크게 한숨을 한번 내쉬곤 밥 한숟갈을 힘껏 떠서 그 위에 김치를 올려 연희 앞에 놔주었다.


“아나, 얼른 묵어라. 오늘 일은 내도 잘못이 없는건 아이니까.. 담부턴 손님 잘 가려받을게.”


나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때 연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숟가락을 들었다. 시퍼렇게 멍든 눈에서 서럽게 흘린 눈물이 수저 위로 떨어지는데도 악을 써대며 제 입에 집어넣었다.


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화장고치라.. 장사 다시 시작해야지..”




다음날


해가 저물어 갈 때쯤 어제 일도 있고 괜히 신경이 쓰여 연희의 방으로 찾아갔다.


문을 열며 말했다.


“연희. 장사 준비하고 있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연희가 화들짝 놀라며 무언가를 숨기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가온나.”


“아.. 오빠야.. 이거 아무것도 아이다.. 내 금방 치울게 미안하다.”


“가오라 했다.”


연희는 어쩔줄 몰라하며 쭈뼛쭈뼛 서 있었다.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서서 연희가 무언가를 숨긴 서랍장으로 갔다.


연희는 뒤에 서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나는 단숨에 서랍장을 열었다.


그러자 안에 보이는 것은 꽃병과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몇송이의 꽃들. 그냥 대충한 것이 아니라 꽤나 공을 들여놓은 느낌이었다.


“이게 뭐고?”


“그게... 그냥 이뻐가 몇 송이 모아봤다..미안하다..”


“그냥 모아보기는... 니 여 안에 뭐 숨긴거 아이가?”


나는 병 안에 있는 꽃송이들을 들어 꽃병 안을 헤집어 보았다.


그러나 안에는 그냥 물과 약간의 흙만 떠다닐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오빠 그냥 내 취미라 생각하고 넘어가주면 안되나.. 미안하다.”


“취미? 뭔 놈의 취미?”


“내 아빠땜에 여 오기 전에는... 그냥 꽃집하고 싶었거든... 그냥 어릴 때 꿈이라 가지고...미안하다...”


나는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런걸로 정신 팔려 있음 장사가 되겠나? 꿈은 임마 어? 빨리 열심히해가 여서 나가는게 꿈이어야 되는거 아이가? 니가 지금 제정신이가?”


그러나 내 말을 듣곤 연희는 화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라믄! 그라믄 내 늙어 빠져 죽어도 여기서 못 나갈텐데.. 늙어 나갔을때... 그때 되어서도 내 이 짓거리 하고 살라 이 말이가? 이게 뭐 대단한거라고.. 내 힘들 때 이거라도 있어야 쪼매 버티는 힘이 생기는데... 진짜 너무한거 아이가..? 장사 방해 안되게 할테니 나가라! 그냥 !”


연희는 내 가슴팍을 쎄게 밀치더니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곤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니 짜증이 확 밀어 올랐다.


'이년이고... 저년이고 씨팔 뭔 제정신 박혀 있는 년이 없네.'


난 꽃병을 바닥에 던져버리려 했으나 눈물을 흘리는 연희를 보니 도저히 마음이 허락이 되지않았다.

집었던 꽃을 다시 꽃병에 담은 뒤 서랍장에 넣고 조용히 서랍 문을 닫았다.


난 담배를 물며 연희를 뒤로한 채 나갔다.

문을 열고 나가자 보이는 다른 계집들.


“마!”


계집들이 화들짝 놀라 뒤돌아 보며 말했다.


“오빠야 아 씨.. 와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고?”


“느그도 뭐 꿈 같은 소리 하면 직이삔다이.”


“꿈? 갑자기 뭔 꿈 같은 소리하노? 자다깼나?”


옆에 있던 다른 계집도 입을 열었다.


“뭔 꿈? 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그런거?”


“됐다.”


“나도 꿈은 있지요~ 여기서 빚 갚아가 돈 왕창 벌고~ 나중에 술집 차리가 내도 마담소리 들으면서 살끼다.”


“언니! 언니! 내는?? 내도 끼어도가! 깔깔깔..”


나는 한심하단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꿈.. 꿈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그러나 아까 나에게 소리치던 연희의 눈빛에는 정말 간절한.. 그런 진심 어린 눈빛이 들어 있었다.


 내가 그런 눈빛을 본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곰곰이 되짚어보니 내 어릴적 꿈은 그냥 폼나게 사는 것. 그 정도였다. 고작 그게 끝이었던 것 같다... 그냥 성질대로 살다보니 어느새 나이를 먹고 이제는 그냥 하루하루 사는 것 뿐...


담뱃불을 끄고 다시 돌아가려 몸을 돌리자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은 그저 영락없는 깡패, 사창가 포주였다.


난들 뭐 어쩌라는 건가. 나는 남들처럼 살기에는 글러 먹은 팔자이다.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고 터벅터벅 들어가 장사를 알리는 빨간 조명을 켜 둔채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새벽이 되어서야 장사를 마쳤다. 오늘 하루 시끄러운 일이 없어 다행이다.


정산을 하기 위해 연희의 방으로 들어갔다.


홀복을 입은 채로 꽃잎을 다듬고 있는 연희. 연희의 정말 아낀다는 듯, 사랑한다는 듯한 표정과 눈빛을 보았다.


꽃처럼 별 것도 아닌것에 저렇게 애정어린 시선을 가진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크흠.. 큼..!“


내가 헛기침을 하자 연희는 놀라며 뒤돌아봤다.


”연희야. 정산하자.“


다소곳이 서랍장 안에서 현금을 꺼내와 나에게 건네주는 연희.


괜히 미안한 마음에 한마디 해주고 싶었으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때 연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용담오빠.. 아깐 내가 미안했다. 그리고 매번 밥 챙겨줘서 고맙다.“


의외의 이야기에 놀랐다. 내가 일하며 한번이라도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나.


”아이다. 내도 미안타. 그냥 나는 느그 고생하는거 아니까 그러는거다. 고맙다 하지마라.“


연희의 표정이 밝게 바뀌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연희는 금세 쿨럭쿨럭 기침을 해댔다.


”니 어디 아프나?“


”아이다.. 괜찮다.“


”괜찮기는! 니 일라면 내 방으로 온나.“


”진짜 별거 아이다.."


"장사 망칠라고 하나! 일라면 바로 와라!"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침대에 누워 잠든지 몇시간은 되었을까.


누군가 방에 노크를 해대었다.


”오빠, 내 연희다.“


”아 연희가? 알았다. 좀만 있어라.“


엉거주춤 옷을 갈아입다가 괜히 거울을 한번 쳐다보고는 머리를 몇 번 빗질을 하고 문으로 나가었다.

사복을 입은 연희의 모습은 풋내기 대학생과 다를 바 없었다.


연희가 평범한 길을 갔더라면 정말 자기가 원하는 꽃집 사장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나온나. 병원으로 가자.“




병원에 도착하여 연희에게 접수를 하라 말하고 물 한잔을 떠 가져다 준 뒤 함께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기다린지 30분쯤 되었나.


”연산홍씨~ 진료실로 들어오이소~“


그러자 연희가 일어나 진료실로 향하였다.


어리둥절했다. 연산홍을 부르는데 연희가 일어나다니..? 그러나 이내 연희는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연산홍이라... 무슨 사내자식 이름이 아닌가... 갑작스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음을 참아야하는데도 계속해서 껄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주변 사람들이 눈치를 주었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그냥 나오는 웃음을 계속 뱉어내었다.


연희가 나와 함께 약을 타고는 다시 가게로 향하였다.


같이 길을 걷던 도중 연희가 말하였다.


”오빠야.. 내 이름 웃기제?“


나는 당황하며 말했다.


”무슨 이름? 뭔 이름?“


”다 들었다이가.. 연산홍... 완전 웃기지 않나.. 내 이름이 산홍이다.“


”산홍이가 와. 좋기만 하구만.“


그러나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씰룩 댔다.


”어어? 오빠야 웃기나? 내 이름이 그렇게 웃기나? 그래 ~ 내가 산홍이다 뭐 우짤래???“


”푸하하하하!“ 나는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그래! 임마! 여자 이름이 산홍이가 뭐고 산홍이가 연희가 훨 낫다!“


그러자 연희는 내 어깨를 팍 치며 앞서 걸어나갔다.

그 뒤를 한참 따라가다 갑자기 연희가 뒤돌며 말했다.


”오빠 저 다리밑에 잠깐 갔다가면 안되나.“


나는 영문을 모른채 이끌려 읍내 다리 밑으로 향했다.


연희는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서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더니 이내 한 송이를 꺾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오빠 이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 손에 꽃을 쥐어주었다.


”오빠 오늘 병원 데려가준거 고맙다.“


”당연히 해야 되는건데 뭘.“


연희는 꽃 한송이를 더 꺾더니 자기 귀 옆에 꽂아놓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노? 내도 이래노니 이쁘제?“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한채 그냥 멍하니 서서 쳐다보았다.

이쁘긴 하지만 부끄러워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연희의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대강 나이 차이도 많이 날 것이고 사내가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큼...! 큼! 씨잘데 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가자.“






가게로 들어와 장사 준비를 하고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 입었다. 그 순간 자켓 안쪽에 무언가 만져졌다.


오늘 연희가 준 꽃이었다. 이런걸 가지고 있다 들키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책상 위에 올려 둔 채 그대로 누워 잠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본능적으로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차, 벌써 정산할 시간이다. 허겁지겁 일어나 책상 위 짐을 정리하다 뭔가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

책상 위엔 가지런히 꽃병이 놓여져 있고 그 안에 연희가 준 꽃이 들어 있었다.


”하...지랄...“


나는 방을 나와 연희의 방으로 갔다.

홀복을 입고 있는 연희는 낮에 본 것과는 역시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피곤해 보이는 연희.


그러나 나를 보더니 밝게 웃으며 말을 했다.


”오빠 꽃을 그래 놔두면 바로 시든다이가. 한번씩 물도 좀 갈아주고 해래이. 그래도 내 선물인데...“


나는 피식 웃으며 말하였다.


”뭐 꽃이 그마이 좋나?“


”응? 아... 뭐 기분나빴나..? 미안하다...“


진심어린 연희의 성의를 생각하니 무어라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떻게 표현을 해야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해도 될까? 그래도.. 갇혀 하루종일 고생만 하는 것 보단 한번씩 바람을 쐬는 것이... 그게 사람다운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용기내 겨우 입을 떼었다.


”내.. 내일부터 일라면 같이... 그... 저... 다리 밑에 가자.“


내가 말하자 연희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껴안고는 어린 아이처럼 방방 뛰었다.


뭐 대단한 말을 했다고... 그러나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들어 나도 같이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매일매일 일어나 연희와 함께 꽃을 보러 다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한번씩은 꽃에 대해 설명을 듣고...

항상 연희는 밝게 웃으며 언젠가는 여기 있는 꽃들보다 훨씬 많은 꽃을 기르며 아름다운 꽃집을 열거라고 이야기 했다.


연희와 함께 하는 잠깐의 낮 시간은 나에게 뭔가 인간으로서 부족했던...잊고있던 그 어떤 무엇인가를 배우게 되는 시간이곤 했다.


하루는 연희가 한 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빠 용담꽃이다! 오빠 이름이 꽃 이름인거 알고 있었나?“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공갈 치지마라 그런 꽃이 어딨노.“


”진짜다! 저게 용담 꽃이라니깐? 근데 오빠야 꽃에는 꽃말이 있는거 아나? 근데 오빠랑은 안 어울리긴 하다.“


”꽃말? 그게 뭔데?“


”으이구 이 무식아... 이 봐라, 이 용담의 꽃말은 애수다 애수.“


”애수? 그게 뭔데?“


”어휴 무식 무식!“


”무식하다 할 게 아니라 설명을 해줘야 될 거 아이가.“


그러자 연희는 지긋이 날 바라보았다.

나는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져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연희도 약간 당황한 듯 보였다.


”아이다.. 오빠 얼른 들어가자.“


그런 연희의 모습을 보며 왜일까.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상하게 끓어오르는 가슴에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가 손을 잡자 연희는 잠시 당황하는 듯 했지만 이내 천천히.. 자연스레 깍지를 끼우는 연희.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행동한것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연희의 행동에 나는 또 한번 고마움을 느꼈다.


부끄러움에 서로를 쳐다보지 못한 채 손을 잡고 다리 밑이 아닌 저 멀리 냇가까지 걸어갔다.






내가 어떻게 된 것일까.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영문도 모르는채 점점 연희에게 끌려갔다. 


형님으로부터 월봉을 받으면 연희와 함께 낮에는 맛있는 것을 먹으러가고... 길 가다 보이는 예쁜 꽃을 꺾어와 연희의 방에 걸어 놓았다. 꽃으로 가득 채워지는 연희의 방을 보며 내 마음의 뭔가도 채워지는 듯 했다.


연희와 함께하며 빠르게 세월을 흘려 보내니 나 또한 변해갔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아침마다 꽃병의 물을 갈아주는 것이 나의 습관이 되어 있었다.


언제까지고 이 행복이 계속해서 이어 질 수 있기를... 그저 꽃집 사장이 된 연희의 옆에서 꽃을 다듬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며 잠 드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지나가던 하루 중 갑자기 연희의 방에서 큰 소리와 함꼐 손님이 화를 내며 나갔다.


놀란 마음에 단걸음에 달려 연희의 방에 들어가자 깨져 흐트려진 꽃병과 꽃이 널브러져 있고 연희는 바닥에 주저 앉은 채 다리에 피를 흘리며 눈물을 참고 있었다.


그대로 내 방에서 붕대와 소독약을 가져와 연희의 다리에 감싸주었다.


연희는 계속 입을 틀어막은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무어라 할 말 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자연스레 입이 열렸다.


”울지마라 연희야. 울면 진짜 슬픈 일이 되버리는거니깐... 그냥 털어 넘겨야지...“


연희를 치료해주고 방을 다시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나지막이 연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잠깐만.. 아주 잠깐만 나랑 같이 있어주면 안되겠나...“


흠칫한 나는 잠시 고민했으나 고민과 상관없이 그대로 연희를 안아주었다.


연희를 품에 안자 연희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엉엉 소리와 함께 통곡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난 그저 더 꽉 안아줄수만 있을뿐...


어느새 연희는 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오빠는 내가 더럽지 않나? 나 솔직히 오빠가 날 그렇게 생각할까봐 너무 무섭다... 요새는 일할때마다 죄책감이 든다.“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연희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던 날들이었지만 서로 말하기 꺼려하며 조심하던 우리의 관계가, 우리의 이런 생활이 연희의 입 밖에서 나온 것이었다.


난 말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내가 오빠 좋아한다 말하는게 죄 짓는 기분이 든다. 오빠가 나한테 잘해줘도 그걸 그대로 못 받겠다... 오빠를 사랑한단 생각이 들어도 말로 표현 못하겠다. 내가 몸파는 여자니까. 창부가 사랑한다는게 웃기니까...내가...“


나는 순간적으로 연희의 말을 끊으며 입술을 맞추었다.


아차 싶었다. 이런 식으로 선을 넘어 버리면 안되는것을 알기에...


내가 어쩌다 이렇게 충동적인 사람이 된 것인지...


당황한 연희의 눈을 바라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미어터질 듯이 아프고 무엇인가 후련하게 말하고 싶은 게 목구멍 끝까지 차올라 그런것 같다. 난 무슨 말을 해야할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걸까.


연희의 말이 맞다. 우리가 과연 남들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혹시 이대로 도망가버린다면 난 정말로 연희를 진실되게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러다 연희와 잠자리를 가진다면... 그때 과연 내가 온전히 연희만을 바라볼수 있을까... 연희가 이 생활을 끝낸다고 내가 연희의 과거에 집착하지 않을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덮었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 뿐이었다.


”내도.. 니 사랑하는 것 같다. 아이다. 내 니 사랑한다.“


그 말을 듣자 연희의 눈빛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날처럼. 그날 꽃들을 바라보던 연희의 진심어린 눈빛...


그 눈빛을 보자 나는 마음의 확신을 얻었다. 사창가 포주라는 핑계 속에서 비겁하게 숨기고 있던 감정이 폭발하듯이 올라와 연희에 부드럽고 따스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거부하지 않는 연희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나는 이성을 잃은 듯 연희에 대한 나의 사랑을 표현해주었다.


그날 밤 우리는 진실된 마음을 확인하며 격렬하게 서로의 몸을 느끼었다.


금세 땀범벅이 되었지만 그런 모습의 연희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아니, 연희와 상관없이 내 타오르는 마음을 진실되게 표현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토록 기쁜 마음이 들었다. 솔직한 하나의 인간으로서... 남자로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우린 겨우 흥분을 가라 앉힌채 침대에 누워 서로를 껴안고 바라보았다.


그때 품안에 안긴 연희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오빠.. 오빠는 계속 여기 있을거가..?“




왜 나는 연희가 물어볼 때마다 대답을 망설이게 될까. 나도 나의 생활이 평범함과는 멀다고 느껴온지 오래이다.


그렇지만... 나란놈이 어쩔수 있겠는가.


그러나 항상 내 맘속에 있던 응어리들을.. 내가 인간으로서 외면해 오고 있던 것들을 연희가 짚어줄때마다 마음 한켠으로는 불편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줌에 고마움을 느꼈다.


”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냥 내랑 어디 도망가서... 그래 살면 안되겠나... 나는 꽃집하고..오빠는 내 옆에서 같이 꽃 키우고...그럼 안되겠나?“


뻔한 이야기다. 창녀와 포주끼리 눈이 맞아서 도망을 쳤다. 그런 이야기를 한 두 번 들어본 것이 아닌데도 왠지 그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게 나의 이야기가 되니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게 됐다.


”그라믄 행님이 가만 있겠나... 그 인간 성격에 끝까지 쫒아올기다...“


”그렇겠제... 괘안타. 오빠 우리 같이 힘내자.“


나는 미안하고 울컥한 마음에 한마디를 꺼냈다.


”아이다. 인자 니 고생하지 마라. 이거 일도 정리해라. 내 돈으로 니 빚을 조금씩 갚을테니깐... 그리고 큰행님도 늙어가 인자 나한테 한 주먹도 안된다.“


연희가 웃으며 내 입에 손을 대며 말했다.


”아이다 오빠.. 그런 뜻으로 얘기한 거 아니다.. 그냥.. 그냥 우리 푹 자고 내일도 꽃보러 가자.“


나는 슬픈 눈의 연희를 감싸 안으며 그대로 잠을 청했다.


뭔가에 빨려 들어가듯... 그 포근함에 빠져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다음날,


연희와 함께 외출하기 위해 옷을 갈아 입던 도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행님 저 망치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망치? 어 그래, 들어 온나.“


망치는 조심히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선 어정쩡한 자세로 말하기 시작했다.


”행님... 그...“


”왜? 뭐 문제 있나?“


”행님 죄송하지만 어제... 제가 우연히 소리를 들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망치의 말에 깜짝 놀랐으나 애써 태연하게 물었다.


”뭘? 뭔 소리를 들어?“


망치는 입맛을 한번 다시더니 말을 이어갔다.


” 그 행님 연희 방에서... 행님 근데 그러시면 안됩니다. 자가 도망가자고 안하덥니까? 행님 지지배들 한 두 번 저러는거 아입니다. 원체 믿을 수 없는 아들 아입니까... 행님... 그리고 듣기에 연희가 전에 있던곳에서도 아마...이런 식으로...“


나는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었으나 이내 흥분을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망치야, 니는 내 믿제?“


”예? 행님? 당연하지요 행님.. 그렇지만“


”그라믄 그냥 햄 함 믿어도가.. 햄도 바보 아이다. 니가 걱정하는 그런거 아이니까 걱정하지마라.“

 

당황한 표정을 짓는 망치. 그 모습에 괜히 망치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는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망치가 인사를 하고 나감과 동시에 곧바로 연희의 방으로 향했다.



”산홍아, 오늘은 다른 곳으로 가자.“







그렇게 나와 산홍은 택시를 타고 저 멀리 시내로 향하였다.


택시에서 내리며 다리를 다친 산홍을 꽉 붙잡아 안고는 유명한 경양식 집으로 들어갔다.


경양식 집에 들어가 엉거주춤 어찌 앉은 뒤 어색하게 주문을 했다.


산홍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맨날 해장국만 먹는 촌놈이 뭐 별 수 있나?“


어줍짢은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산홍은 깔깔 웃으며 테이블 위에 얹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오자 난 어설픈 칼질로 돈가스를 잘라 산홍에 입에 넣어주었다.


창밖에 보이는 안경을 쓴 사내와 그 옆의 유모차를 끌고 있는 밝은 웃음의 아내... 가게 안 흘러 나오는 색소폰 음악까지...


잠시 새장 안에서 탈출하여 이렇게 있으니 평범한 사람들은 이렇게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려 나가는 것인가 하는...

그런 감상에 흠뻑 젖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연희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누군가 에게 인사를 했다.





”황사장 오빠! 요새 어찌 잘 안 오십니까?“


황사장이란 이름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가게 단골인 황사장이 있었다.


나름 주먹에서도 알아주는 사람이라 나도 벌떡 일어나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그런 우리를 황사장은 몇 번 훑어보더니 영문 모를 웃음을 지으며 산홍의 옆에 가 앉았다.


”아 그래! 오랜만이다. 요새 일이 너무 바빠가.“


황사장은 산홍의 옆자리에 앉아 당연하다는듯 산홍의 다리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연희는 오랜만에 봐도 억수로 이쁘네. 저녁에 어째 한번 질펀하게 놀아야 안되겠나?“


”오빠야 부끄럽구로...“


산홍은 미소를 지으며 황사장에게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웠다.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표정이 도무지 관리가 되지 않는다. 괜히 머리를 몇 번 위로 쓸어 넘기고 마른 세수를 하게 되었다.


눈 앞에 보이는 황사장과 산홍... 둘은 이미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용담이! 어이 용담이!“


부르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황사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예 사장님 죄송합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고...“


황사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이다. 많이 피곤한가베? 오늘 마 장사하제?“


”예... 장사...합니다...오늘 오시렵니까?“


”그래! 마 오늘 연희보니... 돌아뿌겠다. 니도 알 거 아이가. 연희가 오입질을 억수로 잘한다이가. 남자를 홀리뿐다이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끓어 올라 무릎이 덜덜 떨렸다.


아니다... 이건 일이니까... 그래... 그저 일 이야기 일 뿐이다.


산홍의 직업을 차마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낮의 산홍의 모습과 그 이면에 가려진 밤 거리의 산홍을...


”아... 사장님 죄송합니다만 산... 아니 그 연희가 오늘은 몸이 안 좋아가...“


”그렇나? 연희 몸이 어디가 안 좋은데? 몸이 안 좋은데 여서 이래 있어도 되나?“


그러자 다급하게 손을 흔들며 대답하는 연희.


”아니에요. 오빠 지 멀쩡합니더... 어제 장사 열심히 했다고 용담 오빠가 그냥 사주는 겁니더... 오늘 밤에 꼭 오이소.“


산홍의 대답에 황사장은 산홍의 엉덩이를 툭 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저녁에 오겠다고 다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고개를 들지 않았다. 지금 산홍의 얼굴을 보면 심한 욕지거리를 하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욕할 자격이 있을까...?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리고 나라고 해서 별반 다른놈일게 있을까. 


아니. 나는 지금 이런 것 때문에 화가난 것이 아니다.


내 여자라고 생각한 산홍이 다른 남자에게... 자신에게 푸대접을 하는 남자에게 저렇게 헤프게 웃음을 파는 것에 분노 하는 것이다.


나는 터져 나오는 분노를 끓어 삼키며 겨우 입을 열었다.



”그래 헤프게 웃어주고 싶나?“


산홍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오빠 왜 그러는데... 그게 아니라 저 황사장은 팁도 억수로 많이 주고... 젠틀하단 말이야...그래도...어떻게든 빨리 빚 갚아야... 오빠랑...“


”내가 니 빚 갚아 준다 했잖아! 근데 무신 소리하노? 그리고 내가 니 몸 아프다 말하는데 왜 니가 거기서 나서노? 내도 생각이 있어가 말하는데 니가 그걸 와 무시하노? 어?“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었다. 아까까진 달콤했던 색소폰 음악이 도저히 시끄러워 들을 수가 없었다.


”주인장! 여 음악 소리 줄이라!“


내가 힘껏 소리치자 가게 안 손님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았다.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까지... 감정이 뒤얽혀 설쳐 왜 이러는지도 모른 채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산홍을 뒤로 하고 계산을 하고 밖을 나섰다.


밖을 나오니 소나기인지 비가 주룩주룩 내려오고 있었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려 했으나 비에 젖었는지 불도 붙지 않았다.


”씨팔... 기분 좆 같네...완전히...“


나는 비를 맞으며 택시를 잡아 타고 먼저 가게로 돌아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심란한 마음에 담배를 몇 개나 태웠는지도 모르겠다.


산홍은 또 왜 이렇게 안 오는지... 그렇게 내버려두고 가서 뭔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한참 걱정을 하고 있었다


산홍이 돌아오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겠다 다짐하던 찰나였다.


그때 고급 승용차 한 대가 가게 앞에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나가 살펴보니 황사장이 차에서 내리며 다리가 불편한 산홍을 데리고 나왔다.




”용담이! 우리 연희 몸이 불편하담서 깜박 냅두고 가면 어야노?“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사과하겠다는 마음은 전부 사라진 채... 그저 연희를 증오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바로 들어가도 되제?“


황사장이 내 가슴팍에 돈을 얹으며 산홍을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 말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처럼 한참을 꼿꼿이 서 있었다.


산홍은 나와 눈을 맞추지도 않은 채... 그저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불을 키고 앉아 또 다시 줄 담배를 태웠다.


다리가 덜덜 떨리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해하려 노력했다. 산홍이 이런 생활을 하는 것이 본인이 원한 것도 아니고... 나 또한 산홍이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던 조력자 이니까...


산홍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뭇 남자들에게 몸과 웃음을 파는 것이 단지 일이니까... 억지로 하는 것 이니까...


일과 사생활을 잘 구분해서... 그렇게 생각한다면 산홍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나 이내 그런 생각들은 결국 산홍에 대한 분노와 짜증, 그리고 실망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저런 창부 계집에게 잠시라도 마음을 내어준 것이... 나의 실수다. 더러운 거짓 덩어리가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을지 생각하니 배신감에 화가 들끓어 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울컥하는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한마디 하고픈 맘에 산홍이 있는 방 앞으로 걸어갔다.


방 앞으로 가까워질수록 들리는 희미하지만 거친 호흡소리... 엄청나게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방 앞에 다다르자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도대체 나는 무슨 자신감으로 이 방 앞으로 온 것일까. 내가 원하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알고자 하는 진실을... 보게 될 진실을 뻔히 알면서도... 스스로가 정말 나약하게 느껴졌지만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내게 진실 된 사랑을 느끼게 해준 그녀가 안에서 어떤 표정, 모습...그리고 어떤 감정으로 다른 남자를 대하고 있을까...


일터에서 이런 짓을... 이런 감정을 가지는 것이 엄청나게 위험하다는 것을 머리에서 수십번 경고를 보냈지만 터질듯한 가슴 때문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문에 대고 귀를 붙이자 황사장의 거친 목소리와 약간은 날카로우면서 가녀린 산홍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연희! 내 연희 억수로 사랑해! 연희도 내 사랑하제??“


”오빠! 오빠! 나도... 나도 사랑해!!“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다. 나에게만 말해주는 것 같던... 그런 연희의 다정한 목소리가 저렇게 더럽고 추잡한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하는것에...


나는 멍하니 서서 자리를 맴돌며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씹어 삼켰다. 그러나 어쩔수 없이 줄줄 흘리는 눈물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다.


”내가 니 오늘 장사 몬하게 만들어줄게!“


퍽퍽퍽... 들려오는 더러운 오입질 소리와 고통스러워 하는 듯한 산홍의 신음에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렸다.


방문을 발로 박차고 들어가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쾅!!!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자 보이는 모습에 나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황사장을 들어내고 얼굴을 한 대 후려쳤다.


맥없이 쓰러지는 황사장을 구둣발로 마구 짓밟았다.


황사장의 얼굴이 피떡이 될 때까지 마구 짓밟을 때 뒤에서 산홍이 소리쳤다.


”오빠 !!! 제발!!! 제발 하지마라!!!“


말리는 산홍의 목소리에 더 짜증이 났다.


산홍이 내 팔을 붙잡으며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산홍을 뿌리치며 방구석을 향해 밀어냈다.


”이거 놔라! 놓으라고!“


소리 지르며 산홍을 뒤로 밀어내자 산홍은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곧바로 다시 황사장을 짓밟자 황사장은 기절한 듯 해보였다.


거친 숨을 내몰아 쉬며 방안을 한 바퀴 돌며 버럭버럭 뭐라하는지도 모를 욕과 함께 소리를 질러댔다.


다시 돌아와 황사장에게 다가가자 연희가 벌거벗은 몸으로 달려 나와 내 앞을 가로 막았다.


”오빠... 제발 이러지마라... 이러면 오빠가 큰일 나잖아... 내가 미안하다... 그런데 그냥 일이잖아... 평소처럼... 평소처럼 그냥 아무렇지 않게...“


내 마음이, 내 심정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저 돼지 같은 놈의 편을 드는 산홍을 보곤 화를 참지못하고 산홍의 뺨을 후려갈겼다.


그대로 맥없이 쓰러지는 산홍.


그대로 방을 박차고 나오자 부하놈들이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시뻘개진 얼굴을 한 채 가게 밖으로 나와 내리는 비에 흠뻑 젖으며 얼얼해진 손을 씻어나갔다...


"씨팔... 좆같은년..."





일이 있은 후 나는 큰형님 호출을 받게 되었다.


큰형님에게 불려가 개 맞듯이 맞음과 동시에 형님은 잠시 사창가 일을 쉬고 나이트구락부 관리를 하라고 하셨다.


구락부 일을 시작하면서 이따끔씩 이기적이게도 산홍을 걱정하는 마음이 잠시 일었지만 그것도 잠시일뿐... 그렇게 난 구락부에서 일하는 창부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산홍에 대한 추억은 그저 불장난 같은 실수로 치부해버렸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것이란 다짐을 하며...




6개월 쯤 세월이 흐르고 난 뒤...


다시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때와 달라진 모습은 전혀 없었다.


망치와 부하들의 인사를 받고 내 방으로 들어섰다.


방으로 들어서자 그때 일이 떠오르는 것 같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잊겠다고... 순전히 나의 멍청한 실수라 인정했기에 더 이상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방바닥에 누워 담배를 물고 천장을 향해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그러다 얼핏 보이는 책상 위 꽃병...


꽃병 안의 꽃은 이미 시들대로 시들어 마른 꽃잎만 책상 위에 흩뿌러져 있었다.


담뱃불을 끄고 일어나 책상 위를 정리하려고 보니 꽃병 아래에 귀퉁이가 약간 물에 젖은 듯한 쪽지가 하나 있었다.


무엇인가 하고 책상에 걸터앉아 쪽지를 열어보았다.


쪽지 안은 굉장히 정갈한 글씨체로 장문의 편지가 적혀 있었다.


몇몇 글자는 물을 흘린 것인지 잉크가 번져 있었다.


‘용담오빠에게...

오빠 나 산홍이다. 오빠가 보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쓴다.

그런데 무슨 말을 적어야 할지 모르겠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다 거짓처럼 보일 것 같아서.

나는 항상 거짓되게 살아온 사람이니까.

그러나 오빠한테만큼은 진심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어.

그냥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멀어지게 되니깐 너무 아쉽네.

오빠 나는 항상 두렵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오빠 덕분에 조금은 희망을 느끼고 살았던 것 같아서... 좋은 추억이 많은 것 같아서 너무 고맙다.

그런 오빠 옆에 있으면서도 나는 참 거짓된 사람이라... 진심으로 날 대하는 오빠의 순수한 모습을 보면서도 혹시 나를 벌레 취급하진 않을까. 나를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 걱정만 항상 앞섰던 것 같아.

오빠가 나를 이름으로 불러줄때... 나를 꽉 안아줄때...

연희가 아닌 산홍으로... 행복한 여자가 될 수 있겠다란 상상을 하곤 했어...

그렇지만 한낱 창부인 내가 오빠의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을까. 그게 두려워서 더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했어.

나 같은것에게 자격 없지만 꼭 진심을 담아 말해주고 싶었어. 오빠 사랑한다고. 여기서 나가게 되면 꼭 평생 함께 있을거라고. 오빠랑 같이 꽃집 차려 오순도순 살고 싶다고. 이렇게 욕심 많고 거짓된 나라도 옆에 있어주면 너무 고마울 것 같다고.

언젠가 웃으며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할게. 사랑했고 고마워. -용담을 잊지 못할 산홍이.’


어안이 벙벙했다.


잊었다고 생각 했는데...


분노에 흽싸여 그냥 무시하고 있던 나의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듯 눈물이 흘렀다.


이 계집이 또 한번 나를 가지고 노는구나. 이런 개수작에 넘어가면 안된다...


그러나...  사실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산홍과 난 서로를 진심으로 바라봤고, 그녀는 나에게 항상 진심어린 사랑을 주었단 걸. 그저 비겁하고 옹졸한 가슴을 가진 내가  그 진심을 피하려고만 했다는 것을. 


 정말 한심한 나의 편견 때문에, 무식하고 무지한 나 때문에 어린 산홍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준 것인가.


왜 나는 조금이라도 더 산홍과 대화하려 하지 않았을까. 


왜 조금만 더 용기를내 산홍을 알아가려 하지 않았을까. 


 정말 그 날 마음 먹고 도망쳤더라면... 아니... 그날 내가 황 사장을 입구에서 막아섰더라면...  


 그러지 못했다 해도 그저 황사장에게 안겼던 산홍을 내가...  그저 따스한 마음으로 안아주었더라면...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산홍을 원망 했던 마음과 동시에 그리운 산홍의 진심어린 눈빛과 목소리가 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한심한 나 자신의 모습과 산홍에 대한 주체할 수 없었던 애증의 마음이 그대로 흘러나와 편지 위를 적셔냈다.


산홍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니.. 우선 사과를 먼저해야지... 나도 사랑했다고... 제발 다시 나를 사랑해줄수 있겠냐고... 


울부짖는 마음을 가득 안은채 이성을 잃은 듯 방에서 나와 산홍의 방을 찾아 들어갔다.


그러나 산홍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놀란듯한 아가씨가 나를 보며 꾸벅 인사를 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말했다.


”산홍이.. 아이다 그 연희! 연희 어디갔노?“


”예? 연희 언니예? 연희 언니는 몸이 많이 안 좋아가 입원했다 카던데...“


”뭐라고?“


난 방문을 닫고 가게 밖으로 나와 망치를 불렀다. 이성을 잃은 채로 망치를 붙잡고 흔들며 산홍이 입원한 병원을 물었다.


망치는 거듭 미리 말씀 못 드려 죄송하다며 시내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말해주었다.


"택시! 택시!!!"


그대로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동안 택시 안에서 모양 빠지게 엉엉 울며 기도를 했다.


어떤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지도 모르는 채...


산홍의 건강을 왜 더 신경 써주지 못했을까. 왜 나는 또 그저 현실을 외면한 채 인간으로서 해야할 일을, 한 남자로서 내 여자에게 해줘야 할 일을 하지 않은것일까.


정말 사소한 행동 하나인데... 나의 못난 자존심 때문에... 거짓된 그녀일거란 바보 같은 걱정 때문에...


 그저 구락부에 틀어 박혀 외면하기 급급했던 스스로가 너무나도 한심해 눈물만 흘릴뿐이었다.


후회와 걱정만을 가득 담은 불안한 마음 때문인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창구에 연산홍이란 이름을 묻자 창구 직원은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으니 마음의 준비가 되면 만나보라고 말했다.


그런 말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일단 그녀를 보아야 한단 마음뿐이었다.


산홍이를 만나야 한다.


그녀가 입원한 중환자실로 단걸음에 뛰어 올라갔다.


그렇게 보이는 연산홍이란 이름이 적힌 팻말. 


산홍과 함께하며 매일 맡던 익숙한 꽃 향기와는 달리 코를 쎄하게 찌르는 소독약 냄새만이 복도에 가득 했다. 


 막상 병실 문 앞에 서자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과연 내가 산홍을 만날 자격이 있을까.


그녀의 진실된 마음을 짓밟은 나에게... 나 자신도 용서하지 못할 잘못을 과연 산홍이 용서해줄수 있을까.


그리고... 그녀의 편지는... 아니... 나를 향한 그녀의 마음은 정말... 지금도 진심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손에 쥔 편지를 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산홍과 상관 없이 진심을 터놓고 말하지 못한 과거의 나와 같아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진정한 마음을 또 한번 그저 거짓이라고 치부하고 숨는다면 그만큼 비참한 것 이 없다는...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산홍의 진심에  더 이상은 거짓으로 보답하고 싶지 않았다. 


노크를 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힘없이 누워 있는 산홍의 모습이 보였다.


수척한 산홍은 희미하게 눈을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보자 힘없이 미소를 지어보이는 산홍.


많이 야윈 산홍 옆에 서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니.. 니 왜 말 안했노? 이렇게 아픈데 왜 내랑 있을 때 말 안했노..“


산홍은 힘겹게 손을 들더니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오빠... 울지마라... 울면 진짜 슬픈일이 되는거니깐...“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을 다시금 듣게 되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오빠... 그래도 오빠 보니까 너무 좋다... 이제야 솔직하게 대할수 있는 것 같네...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 많은데... 입 밖으로 안 나오네.“


산홍은 힘 없는 눈으로 날 지긋이 바라봐 주었다.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네... 조금만 더 빨리 봤으면 좋았을텐데... 그럼 더 많이 얘기 할 수 있었을걸..."


산홍이 말을 마치자 항상 따뜻하게만 느껴지던 산홍의 손이... 

점점 차갑게 식어지는것을 느꼈다. 


난 당황스러운 마음에 산홍의 손을 더욱 꽉 잡으며 고개를 숙이며 울부 짖었다. 


”산홍아...내가...내가 미안하다... 내가 어떻게든 병원비도 내고 할테니 일단 살아만 주라... 제발...제발... 내가 진짜 미안타..."


산홍이 애처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빠가 우니깐 나도 슬퍼지잖아. 오빠... 오빠는 역시 용담이란 이름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역시 애수다... 애수...“


”그래. 산홍아 얼른 나아가지고 내랑 같이 다시 꽃도 보러가고 그렇게 하자... 이렇게 힘없이 있지마라... 나도 니랑 같은 꿈을 꿨다. 내도 평생 니랑 함께하는 꿈을 꿨었다....

그게 뭐 부끄럽다고 말 못했는지 모르겠다. 이제... 지금이라도 다시 힘내서 다시 시작하자. 제발... 어떻게든 힘을 내보면 안되겠나...“


”애수... 뜻 모른다 했제...?“


”그래... 모른다. 나 같이 바보같은 놈은 그런거 모른다...“


산홍은 희미하게 끊어질듯한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이게 애수 뜻이다... 오빠... 그러니깐 더 이상 울지마라..."


나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며 산홍의 손을 꽉 잡았다.


”산홍아... 산홍아...니 말이 맞다... 난 용담이 아니라 애수다... 진짜 바보같은 놈... 애수...“




그러나 말을 끝마친 산홍의 손이 점점 더 차가워졌다. 그렇게 산홍은 옅은 미소를 띈 채 눈을 감아갔다.


”산홍아..! 산홍아! 이거 와이라노! 눈 떠봐라... 내가 미안하다...진짜 억수로 미안하다...제발!!!..제발!... 의사선생님!!!“


그 뒤로 울고 불며 병원 안을 헤집고 다니다 겨우 의사를 불러왔지만 의사는 오히려 담담한 표정을 지은 채 내 옆에 서있을뿐이었다.

.

그렇게나 따뜻햇었던 산홍의 손은 완전히 얼어붙어 더 이상 생기를 띄지 않았다.


그러나 얼굴만은 옅은 미소를 띈 표정으로... 그 때의 아름답고 순수한 얼굴이라 산홍의 죽음이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의사가 차가운 목소리로 사망선고를 하고 흰 천으로 산홍의 얼굴을 가리자 하늘이 무너지는듯 했다.


산홍아. 미안하다. 내 진짜로 니 사랑하는데... 난 또 이 말 한마디 못해주고 너를 보내는구나.




나는 병원 1층으로 내려와 멍하니 초점을 잃은채 산홍이만을 떠올렸다.


이름 모를 꽃을 머리에 꽂은 채 바라봐주던 그녀의 애정어린 모습을... 그 눈빛을...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고 산홍의 장례식 날이 찾아왔다.


주변 가족도 없고 찾아올 사람이 몇 없다고 했다.


아직 그녀가 살아있는것 같은데... 그 밝은 얼굴을 전혀 잊지 못한 나에게 가혹한 현실은 그런 내 맘을 무시라도 하는듯

산홍과의 때 아닌 이별을 억지로 받아들이게끔 했다.


길거리에 보이는 꽃들 마저도 산홍이 함께 없으니 그저 흑백사진 처럼 보일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 길 만큼은 아름다운 꽃길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장 좋은 꽃을 선물해주고자

장례식장 앞에 있는 꽃집으로 들어가 둘러보았다.


꽃집을 보니 떠오르는 산홍의 꿈... 이렇게 작고 소박한 꽃집을 원했을터인데...이 조차도 그녀에겐 큰 욕심일수 밖에 없었구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꿈을 이루지 못한채로 떠나간 산홍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 왔다.


그러던 와중 어딘가 익숙한 꽃이 눈에 들어왔다.


산홍이 내게 선물해주었던 그 꽃.


꽃병에 담아 내 책상 위에 놔주었던...


그녀가 제일 좋아한다 했던 그 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겨우 입을 떼어 말했다.


”사.. 사장님 그... 저 꽃은 무엇입니까?“


”저 꽃이요? 장례식장 가시는 것 아닙니까? 장례식에는 어울리지 않는 꽃입니다.“


”어떤 꽃이길래 그렇습니까? 그 친구가 저 꽃을 가장 좋아했어가지고...“





”아 저 꽃은 연산홍입니다. 연산홍.“


”예?“















”꽃말이 첫사랑입니다. 연산홍은 첫사랑을 뜻합니다."






                                                                                                                                   용담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