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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째서 이런 일이······!”



곳곳에 파고들던 탄환들은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짙은 밤의 경색만이 생명들을 잠재울 뿐. 그리고 이 아래, 깨어있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한명은 긴 총을 들고 있는 사내와 또 한명은 짧은 단검을 들고있는 소년이 우뚝서서 서로의 눈빛이 엇갈린 채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바람 한점 불지 않는 데에 외로이 가로지르던 두 사람의 질주가 이윽고 막을 내려 조용히 올리던 열기를 차츰 식어간다. 과연 피어오르는 열기의 끝자락은 누구에게로 향하는가. 그것은 목아래로 흐르는 송글 맺힌 땀 한방울이 한밤중에 비쳐주는 성광에 반사되어 희미하게 빛을 내던 단소한 칼날에 결정을 이루어, 흐름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 움직이지 마. 끝나지 않았으니까. 【LV.0/용사】


- 그럼 이런 상태로 뭘 어찌 하겠소. 상대에게 목을 보여버렸으니 말이지. 그래도···· 전. (철컥) 【LV.39/음유시인】


- (!) 움직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 놓을 순 없소, 반기를 든 어리석음을. 놓칠 순 없소, 제게 붙은 아명을. 무기를 들은 검게 얼룩진 본신은 포기할 수 있다 할지라도, 희망을 엿보던 한서린 은신만은 포기하지 못하겠소. 봉오리가 개화하기 전까지, 쓰러져 가는 폐육신을 위해서라도.


- 이런데도, 총을 들고 있겠다고···?


- 승부는 났지만, 숨은 붙어있으니까. 아직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소.


- ······하.



“그렇게 말하면 내려놓고 싶어도 못 하겠잖아. 여전히 말이 안통하네, 당신은.”



쓰윽



한숨과 같이 한마디를 푹 내뱉고 그의 등뒤에 바짝 붙어 서서 목에 가까이 대었던 단도 한배검을 달막거리며 내려놓고 나서야 간신히 몸을 땔 수 있었다. 긴장감이 흐르던 상황에서 발 한걸음 앞으로 내미니 그도 이제서야 쥐고있던 마지막 총 한 자루도 몸에 걸친 판초 사이로 집어넣는다. 서로를 확인하자 전의가 차츰 가라앉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쉴수 있었다. 뻣뻣했던 몸도 풀어지면서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가 직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봤다. 어디까지나 승부에 불과했고, 어차피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태도만 보이면 굳이 쓰러트릴 생각도 없었다. 자연스레 대화로 오고갈수 있었던 것이다. 


(목숨에 집착하던 그의 행동은 예상외였지만)



- 그럼 우리가 협력하는 범주가 초원에서 다가오는 검은 요정들을 처치하면 되는 거야?


- 검은 요정···· 예. 그들을 잠재우고 숲으로 보내드리면 되겠소.


- 하지만 그걸로 될까. 이전에 되살아난 요정에 의해 수모를 겪었지. 이건 나혼자만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언젠간 요정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어. 예그리나. 당신은 수십번 그들을 막아왔다는 거지.


- 그것이 소인의 마지막 천명이자, 그것이 현재의 나로서 할수밖에 없는 일.


- 그렇다는 건 그들이 초원말고도 ‘근원지’가 따로있다는 말인 거잖아. 이정도 상대해왔으면 깨닫고도 남았을 텐데 왜 그러고 있던 건지 몰라도, 우릴 거기로 보내줘. 도와줄거면 확실히 해줘야지, 안 그래?



그러자 그는 선듯 답을 내놓지 않았다. 모자를 내리며 한참을 엉거주춤하며 쉽게 입을 때지 못하는 그 모습에 아직도 내가 모르는 진실이 그의 안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사실을 즉각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어쩌면 마지막 의문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이미 해답을 쥐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에게 천천히 다가갈 때 슬쩍 본 게 어쩌면—



- 그보다도 용사여.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소만.


- 그거, 어떻게 당신의 뒤로 다가섰는지 얘기하는 거지.


- 맞소. 분명 빛이 났던 것까지 봤지만, 사격후 빛이 사그라들 때 당신은 그자리에 없었지. 그런데 어느새 제 뒤로 나타나서 선공을 가하셔서 놀랄 따름이었소.


- 그거 당신에겐



“처음이 아니었을 텐데?”











제 26화. 요정대야행(了定代夜行) 下편











- ······예?


- 사실 내 옆에 남들에게 안보이지만 내게만 보이는 수호령이 하나 있거든. 그 수호령은 내가 쓰러져 있을 때, 즉 당신이 쓰러져있던 내게로 총을 겨눌 때도 쭈욱 지켜보고 있었지. 그때 당신이 착각이라던 그순간이 궁금해서 그때의 상황을 물어봤거든. 그런데 기억이 안난다 했어. 그래서 다음 질문으로 당시 내가 무엇을 했냐고 물어봤지. 그랬더니—



*********************



“아! 그거라면 기억해. 네가 분명히——“



- 거꾸로 떨어져 있던 검을 고대로 쥐려고 하고 있었어.


- 거꾸로? 칼날을 잡으려고 했었다고?


- 그랬다니까. 하필 다 쓰러져 가던 판에 자칫하다가 검까지 잘못 들어서 아프게 끝날 뻔했다고.


- 뻔했다니? 안 잡았다는 얘기야?


- 글쎄···· 이상하게 그 다음 기억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거 있지. 가물가물한 것도 아니라 완전 싹. 기억이 날아간 건가. 그게 의문이야.



그 말을 듣자, 난 그 당시 상황으로 빠르게 필름이 돌아갔지. 당신이 총을 쏘려던 그 때 나의 행동이 쏜살같이 되풀이 되면서 말이야. 총성이 들리지 않는 탄환에 관통해 쓰러진 나에게로 다그닥 다그닥 다가와서, 철컥하고 장전하였지. 그 소릴 듣고 난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어.

진짜 죽이려고 한다. 싫다는 데 계속해서.

난 눈꺼풀이 감겨오는 눈에 비친 희미한 물체가 검일거라 생각해서, 잡은후 눈이 반동으로 떠졌어. 그런때 눈 앞에 들어온 ‘그것’으로 인해 결국 쓰러진 걸로, 눈이 세상을 외면한 걸로 간주해버렸어. 그런데 알고보니 아니었어. 혹시나 하고 든 나사 빠진 생각을 애써 부정하려 하다가 결국 동료들을 먼저 보낸 다음에 시험삼아 시도해봤어. 정말 미친 짓이라 생각했는데.



“(!) 이민, 지금 뭐하는 거야. 뭐?”


“시험삼아 자신에게 위해를 가해보겠다니??”



칼날을 잡은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거든. 그래서 똑같이 날카로운 칼날을 달빛을 조명삼아 힘껏 잡아보게 됐어. 그렇게 해보면 확실히 알 것 같았거든. 이때 난 깨달았어, 새로운 사실을. 그날에 잡았던 그날의 칼날이 안 보였던 건 순전히 손에 가려서가 아니라, 사라진 거였어. 검 뿐만이 아니라 쥐고있던 손도, 이어진 팔도, 육체도, 뭣도, 아무것도. 만약에 시험삼아 했을 때 틀린 거였다면, 그 순간의 기억의 실체를 전부 부정했겠지만, 아니게 되면서 잠식되어 있던 고통섞인 뿌연 회상들이 선명해지며 귓가로 들린 환청마저 믿어 의심치 않게 됐어.

뒤어 들려온 탕, 하는 소리를. 당신이 내게 쏜 한발이 이제 고의였든, 중간에 사라져 놀란 바람에 실수로 쏜 거 라든지 아무 상관없어. 그러니까 그렇게 ‘자신도 순응한다’는 듯 침묵을 유지하지마. 예그리나,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마. 무엇을 보고 쐈는지 따지러 온 게 아니니까.



“····예. 용사님.”



오히려 당신을 만나서 많은 걸 배울수 있었어. 특히 모순이라는 단어 하나가 머릿속을 지나가거든. 어설픈 태도와 대답없는 침묵, 숨기려드는 감정들에 의해 수많은 모순적인 상황들을 일으켰고 그로인해 발생한 당신과의 오해를 비롯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서 예상 밖의 결과에 도달하게 됐지. 자기자신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게 미친짓이란 걸 넘어서 그 누구도 생각하지도, 하려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난 다르잖아. 남에겐 틀린 방식이라도 나에겐 이게 해답이었던 걸. 나에게 당신의 이해못할 행적들이 당신에겐 그만한 선택이었단 걸. 이런 모순된 걸 보면 멀게만 느껴지지만 때로는 좋은 기회가 되어 마침내 이자리에 서있게 할수있다고.



LV.0인 내게로 꽂은 단검이, 일순간의 고통도 모습도 기척도 느껴지지 않고 당신에게 다가갈수 있었던 이유이자, 모순중의 모순, 아직까지도 아슬아슬하게만 느껴지는 이 기술을, 난 이렇게 명명하겠어.













전신폐신화全身蔽身化 『아스라이 모드』













“쿠에에엑—!!!”



쏘아진 불꽃에 무너져 내린 철장과 튀겨대는 파편들을 사이사이를 유유히 통과한 난, 사방으로 번져가는 불씨에 휩싸인 나간들과, 검은 요정들에게로 가까이 거리를 좁혀 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이때 휘두르던 단도 한배검의 칼날은 없는, 손잡이만 잡고있던 상태. 하지만 곧이어 베어내겠다는 대상을 행한 전의에 반응한 단검은 이윽고 날을 드러냄과 동시에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내 모습까지 드러내어 몬스터들을 차례대로 처치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라졌다가 갑자기 자신과 떨어진데서 나타난 날 보고는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는 리내. 그렇다. 

이것이 바로 『아스라이 모드』. 즉 투명화(透明化) 상태. 한배검으로 나에게 데미지를 주면, 어떤 경우에서인지 육체는 물론 기척까지 사라져 모두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예그리나와의 재전에서 이미 증명된 바. 단, 몸에 스친 칼날까지 같이 사라져 버려 LV 격차로 얻는 힘을 받지 못한다. 따라서 전투 불능 상태로 본 능력치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 그래도 상대방을 향해 휘두르면 바로 풀리는 모양이고, 이상태동안 상대의 모든 공격이 통과한다. 마치 유령처럼. 유령하니 마침, 옆에 있던 혜움도 이때동안 사라지는 듯하여 풀리자마자 재빨리 말을 걸어온다.



- “정말 실감이 안 나는군. 볼수록 신기해, 이거.” 【LV.15/용사의 수호령】


- 나도 내심 놀랬어. 이런 게 가능하니까, 흣! (댕겅)


- “그래도 모드를 유지하는데도 제한시간이 걸려있는 듯 하네. 전투시엔 그렇다 쳐도, 시험한 다음 곧장 그에게로 갔을 뿐일텐데 도중에 풀린 걸 보면 말이야.”


- 그런 것 같아, 읏! (휙) 그래도 허투로 쓸 수 없어. 아직 몇번 쓰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댕겅) 적의 속력이 상당해서 시전하다가 저지당할 우려가 있어. 우선은 무찌르는데 집중하자고. 리내! 난 나간들을 맡을테니, 넌 요정들을 맡아줘! 요정들이 너에게로 모여드니까!


- 으응! 알겠어! (방금 무슨일이 벌어진 거지?) 【LV.18/마법사】


- 후훗. 전보다 사기가 넘쳐흐르네. 용사에게 무슨 짓이라도 한 거야, 시인? 【LV.43/무녀】


-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소. 그가 스스로 일어선 것이지. 대단한 분이요. 이런 혼잡한 환경 속에서도 절개를 지키시다니.


- 괜히 용사라는 칭호를 쓰는 건 아니지. 할땐 하는 아이니까. 이때가 가장 주인공 같달까? (웃음)


- 용사····· 그렇소. 그는 훌륭한 용사였지. 어서 그를 도와 저들을 진정시킵시다!



빠르게 움직이는 몬스터들을 따라 잡으면서 점차 괴성을 잠재워 나간다. 유달리 검은 요정들이 마법사 리내에게로 모여드는 까닭은 요정 마을 촌장님께서 느끼셨다던 리내한테 내재된 힘이 그들을 이끌리게 만든 것 같다. 요정이 느낀다던 에너지를 그들도 동일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도 그럴게 이들도 요정이니까·····. 질러대는 괴성마저 자지러지는 통곡으로 느껴진다. 나간이나 요정이나 검게 질린 흉측한 얼굴로 찡그린 표정조차 왠지 모르게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미 손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흉악하게 변해버린 그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체력을 소진시키는 것뿐. 나간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나무에 요정은 깃들어 편히 잠들수 있도록 눈을 감겨주는 것. 하필 죽음으로 몰 수밖에 없는 이들을 마주하게 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예그리나의 갑옷을 타고 게 도착할 때 쯤, 나지막히 들려오던 외성과 함께 미친듯이 울려댔던 차고있던 단검의 진동소리. 이 진동은 신세계로 떨어지기 이전에 소환됐던 이세계에서 마물, 마왕군, 마왕한테만 울렸던 것과 일치하는 진동음이었다. 그럼 여기서 짐작 가능한 부분은 단 하나, 나간족에게도 갖고있지 않은 힘으로 요정과 나간들까지 저렇게 만들어 버린 주원인이 마왕군과 관련된 것일지도 모른다. 여태까지 이세계와 현세가 부딪힌 반동으로 여기에 떨어진 이래로 보지 못했던 그들. 마왕을 해치우는데 성공했지만, 그게 끝이라고 단정지을수도 없는 노릇···. 어찌됐든 지금은 확실치 않은 추론보다 부딪히고 있는 현실에 팔을 걷어붙여 맞서 싸울 뿐이다.



(무슨 일이 생기려는진 몰라도, 그들을 저렇게 마왕군이라, 이리 강조하는 걸 보면····)



그렇게 대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비를 넘기고 결착에 다다른다. 하늘에 수놓은 달과 별들은 깊고 깊은 새까만 바탕에 먹혀버렸는지 자취를 감춰버려 한줌의 빛도 보이지 않았고,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전장의 땅에도 숨을 고르던 그들의 육신들도 자연으로 돌아가 남아있는 건 천공을 보는 우리들뿐. 천지에는 정적만이 흐를뿐이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었다면 좋았겠지만.



- 이제··· 다 끝난 건가? 이걸로 전부 다 막아낸 거지?


- 이미 다 휩쓸었으니, 남은 건 여깄는 요정들을 나무에 묻어주면 되는 건가, 시인?


- ····용사님.


- 리내, 제나 잘들어. 이제부터 우리는 적의 본거지로 향해 갈거야.


- 적의 본거지?


- 그래. 예그리나가 그들의 본거지가 나간들의 서식지, 폐허 동굴 안에 자리잡아 있다고 했어. 지금부터 그가 우리를 거기로 인도할 거야.


- 흐음~ 그러니까 적의 소굴로 잠입해서 아예 뿌리채 뽑자는 얘기인거지. 그거 재밌겠네.


- 그렇지만 적의 소굴로 무턱대고 가자니, 오히려 위험에 빠지는 거 아니야?!


- 충분히 여기있는 몬스터들보다 훨씬 많은 상대와 또다시 겨루게 되겠지. 위험에 빠질지도 몰라.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야. 또 내일이 찾아오면 습격해 올거야. 그가 매일매일 쳐내온 것처럼.


- 무, 물론 그가 여태껏 혼자 싸워왔단 건 알아. 나도 요정들을 지키고 싶어. 그치만 지금도 벅찬데, 도리어 당하기라도 한다면···.


- 그래도 난 갈거야. 어차피 결국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네가 안 간다면 뭐, 날 치료해줄 사람 한명 없다고 생각하고 가야겠지.


- (!) 누가 안 가겠데?! 하두 막무가내니까 걱정되서···· 큼! 어찌됐든 갈거야. 바보 혼자 보내는 건 무모하니까.


- 좋았소. 의견이 조율된 것 같으니 자, (갑옷을 보이며) 어서들 탑승하시길. 한꺼번에 이동하겠소.



다그닥 다그닥



음유시인 예그리나는 말형상을 띈 갑옷 마갑(馬甲) 『류거흘』 위에 우리 세명을 동시에 태우고는 목적지로 향해 바람을 가르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저편에 우리가 물리쳐야 할 모든 역경의 최종이자, 요정들과 나간들을 역변시킨 모든 사태의 원초가 거기에 있기에. 조금이라도 긴장을 놓아선 안됐다. 특히 난, 빠르게 몰아쳐오는 격습에 휘말려서는 안된다. 래버력 0인 난, 한대만 스치기만 해도 끝이니까. 힘든 기색없이 판초를 펄럭이며 묵묵히 뛰어가는 그를 앞세우고 쓸쓸한 질주만이 발굽 소리를 타고 고조되어 갈 때, 거리상으로 무뎌진 날카로운 음성, 빛 한점없어 대신 뜨지않은 해의 빛을 옅게 물들인 하늘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어두운 실루엣이 감돌아 온다.



- 모두가 예상은 하였겠지. 자, 준비하시오. (철컥)


- 이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마을에 지금쯤 깨어났을 요정들에게 들키고도 남았겠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니 상관없겠지, 후후.


- 그런 요정들을 대신해서라도 우리가 막아서야 해! 그들이 모르게!


- “정말로 끝이 없네. 이번에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 이미 마주했으니까. 일단은, (척) START다!



그리고 달려오는 적진을 향해 그대로 돌진. 제각기 다른 무기들을 치켜들어 덧없이 펼쳐진 고요했던 초원이 다시 전장으로 바뀌어 우리는 용감히 참전한다. 단검은 그들을 배어가르며, 한걸음씩 나아간다. 그들의 재빠른 행동을 맞춰가며 생사를 넘나든다. 나간들의 격퇴는 순조롭게 이어가지만, 역시나 벅찬 건 검은 요정의 기습. 그들 자체가 상대적으로 체구가 현저히 작아서 빠른 역공이라고 가할시엔 인지하기 조차 어려워 쉼없이 움직이며 피해야 했고, 칼로 베어넘기기엔 유연하게 피해가는 유연한 몸놀림에 근접에도 무리가 갔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부분의 요정들이 전에 언급한 이유대로 리내에게로 집중되어 있는 상황. 옆에서 제나가 거들어주고는 있었지만, 정작 리내는 쉴새없이 날아드는 공격에 지쳐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두번째 전투라서 모두가 지쳐가는 건 피해갈 수 없었다. 나도 주어진 힘으로 버티는 데도 머지않아 한계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우선은 나간들을 해치우고, 리내를 도와 검은 요정들도 서둘러ㅅ—(!)



파라락



갑자기, 리내를 중심으로 모여있던 요정들이 일제히 내가 있는 방향으로 틀더니 검붉게 젖은 날개를 빠르게 털어대며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런 그들의 태세에 난 반사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소용없단 걸 깨닫게 된다. 거의 가까이 온 요정들을 피하기엔 너무 늦어, 틀렸다는 생각이 들 틈에,

어째서인지 요정들은 나를 재치고 뒤로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방물케 하는 예상에 빗나간 행동들에 어떻게 된거지 하고 지나친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예그리나가 보였다.



탕! 탕! 탕!



끼에에엑—!!!



두 자루의 총으로 맞서던 그의 주변으로 검은 요정들이 점점 모여들고 있었다. 이상했다. 달라진 것 없이 말없이 그들을 상대하고 있던 그에게로 리내보다도 이상하리만큼 불어난 숫자가 동시에 달려들고 있었다. 요정들이 몰려들 때마다 빨라지는 난사 소리. 거칠어 지는 숨소리에 뒤로 밀려가는 그. 어째서 예그리나에게로 만 달려드는 거지?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왜. 그한테서 무슨 기운이라도 감지한 건가. 그런데 갑자기 지금 와서? 리내처럼 안에 숨겨진 무언가를 느낀 것도 아닐 텐— 잠만, 안에 숨겨진 무언ㄱ-(!!!)



- (설마···!)


- 라비앙 딥 키스— 윽!


- 키에에에엑!


- 예그리나!! (팟)


- (움칫) 안돼···· 그··· 그만!



두둑



예그리나에게로 황급히 몸을 돌려 뛰어가고 있던 찰나, 가까이에서 밧줄이 끊겨진 것과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그가 두르고 있던 판초 사이로 검은 요정 몇명이 튀어나오더니 이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더니 그의 곁에 있던 요정들까지 동시에 위로 날아오르더니 그한테서 튀어나온 그들을 중심으로 모여든다. 분명 그의 옷자락 사이로 나올 때, 들고 나온 걸 목격했다. 식물의 뿌리로 이루어진 그 뭉텅이를. 그러고나서 요정들이 갑자기 어디론가 빠르게 날아가려 한다. 잠깐, 안돼! 난 그들을 쫓아가려 했으나 그럴수 없었다. 다시금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을 때, 계속해서 총을 그들에게로 고정한 채로 방아쇠를 당기지도 못하는 그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떨리는 두 손으로, 하염없이 서있기만 하는, 그를.



- 예그리나, 뭐하고 있어! 어서 저들을 붙잡지 않고! (버럭)


- ····그러고 싶지만.


- 이렇게 지체하고만 있다가 저들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고!


- ····알지만, 그래도····.


- 이러고 있는다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대체 왜 그러고 있는 거야. 예그리나, 정신 차려!!


- ···그러고 싶소. 총으로 저들을 막아서야 하는데. 도저히 안되겠소. 만약에 쏘았다가··· 쐈다간···· 같이 휘말리기라도 했다가는.


- 그럼. 저대로 날아가는데도 놨두고, 이대로 서있기만 할 거야?


- 쏠 수 없소···. 맞았다간·····.


- ····



“거짓말쟁이에다 겁쟁이였군. 당신은.”



- ·····!


- 요정들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다짐은 다 거짓이었던 거야. 알아?


- 아, 아니요. 전 그저!


- 됐어. 나라도 그들을 쫓을거야. 평생 그러고 서있어. 겁쟁이하고 상종하고 있을 시간 없어.





난 그를 뒤로 한 채, 벌써 저멀리까지 날아가버린 요정들의 뒤를 뒤늦게 밟으며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단검은 멀어져 가는 요정들의 래버력으로 고정하여 얻은 힘으로 간신히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시야에서 벗어나기라도 했다간 그 자리에서 멈춰 서게 된다. 내 본연의 속력으로는 절대로 저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도 넘어설수 조차 힘들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뛰는걸 멈추지 않을 것이다. 놓지는 걸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뛴다고 달라질 게 없다 하여도, 서있으면 정말 달라질 게 없다고, 그처럼. 티끌만한 확률의 기적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도 오지 않았다.



- 변태 용사! 지금 어디가는 거야!


- 리내야. 너도 서둘러서 따라가는 게 좋을 것 같아.


- 뭐? 따라가야 한다니. 지금 여기에 있는 나간들은 어쩌고!


- 그건 나한테 맡겨. 그리고 (지잉) 됐다. 『식신(式神)』. 내 힘의 1/3정도 네게 양도했어.


- 왜 이러는 거야, 제나! 네가 맡는다니, 읏! (휙)


- 또 저기있는 시인도 같이 데려가줘, 후훗. 그를 이용하면 금방 용사를 따라잡을 테니까. (씨잉)


- 너 혼자서 여길 막겠다는 거야?! 너무 무모하잖아!


- 그럼 용사가 혼자 이탈해서 방금 날아간 요정들을 쫓아가는 건 괜찮고? (웃음)


- 그거야, 안되지만···.


- (씨잉) 그리고 시인 혼자 저렇게 두는 것도 옳지 않아 보여. 보이지?


- 어? (그런데 예그리나, 왜 가만히 있는 거—)


-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저깄는 나간들이, 무방비 상태인 그에게 접근하고 있어.


- 뭐라고?! 잠깐만! (타다닷)



“마법구술 『진홍』 제 3장의 격, 『화영(火英)의 새』—!”



제나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간 수마리가 그에게로 달려들려 하자, 황급히 달려가 마법을 날려 그들을 저지시켰다. 그렇게 맞은 공격에도 버텨낸 나간들이 이번엔 표적을 바꿔 금방 날아온 방향에 서있던 리내에게로 동시에 뛰어간다. 반격은 생각지도 못하고 간발에 차로 막아냈다 안심하는 그녀에게로 달려드는 그들. 그들과 마주한 리내는 이러지도 못하고 그대로 피격 받는가 싶었지만, 다행히도 그녀가 쏜 마법에 정신이 든 예그리나가 탄환으로 명중시켜 가까스로 쓰러트리는 데 이른다.



- 괜찮소?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신지.


- 고마워, 예그리나. 덕분에 무사해.


- 그렇담 다행이오. 잠시 한 눈 판 사이····.


- 그보다 예그리나, 지금 용사. 요정들을 따라간 거지, 그치?


- 에(!) 잠깐만, 그들이 벌써 가버린 거요!


- 그러면 얼른 서두르자! 용사를 따라가야 해!


- 예···. 그래야 되겠죠. 하지만 이미 늦은 건 아니—


- 그게 뭔 상관이야! 늦었어도 용사가 혼자 뒤쫓아가고 있다고!


- 맞아. (씨잉) 그러니 빨리 가는 게 좋을 거야. 당신이 용사에게 입은 은혜, 갚기 위해서라도.


- (번쩍) 그렇지. 또 씻지 못할 죄를 지을 뻔했소. 제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군.


- 은혜?


- 당장 쫓아가지요. 분명 그들은 자신들의 거처로 갔을 거요. 서두릅시다!



그 한마디에 그는 서둘러 용사가 가버린 쪽으로 즉시 리내를 태우고 전장은 라온 제나에게 맡긴 채 서둘러 뒤쫓아갔다. 그녀의 말에서 무엇이 그를 움직였는진 모르나, 발을 구르며 거리를 좁혀가는 건 변함없었다.



•••



····헉헉



“(역시 글렀나···! 더이상 뛰어가는 건 무—)”


“바보 용사! 혼자 가면 어쩌자는 거야, 정말!”



다그닥 다그닥



- 헉, 리내?? 리내 목소리가 왜 여기서 (휙) ···예그리나. 이제야 온거야.


- 죄송하오. 자, 이제 타십시오. 마저 그들을 쫓아갑시다.


- 헉, 헉···· 싫어. 당신같은 사람이랑 왜—


- 괜한 고집피우지 말고 당장 타지 못해! 매번 혼자 다하려고 들지말고! 내가 걱정끼치게 하지말라고 했어, 안했어?! (버럭)


- 윽; 그건 헥헥—····


- 그때 무례함을 용서해주시오. 저도 순간 판단력을 잃었소. 하지만 정신이 들었소. 그것은 내가 해왔던 일과, 그것은 그대에게 입은 은혜를 말이오.


- ····그래. 사적인 감정에 얽매이긴 글렀지. 알았어. 빨리 가자, 앗!



그순간, 기진맥진한 상태로 발을 헛디뎌서 앞으로 구를 뻔했지만, 그가 손을 잡아준 덕분에 넘어지지 않고 간신히 갑옷 위로 탑승할 수 있었다. 머쓱했지만 실제로는 반응할 시간은 없었다. 무작정 박차고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을 달려가는 통에 숨은 목구멍까지 차서 입으로 숨을 거칠게 몰아내쉬며 땀으로 흠뻑 젖은 몸과, 식어가는 발바닥. 무엇보다 검은 요정들은 대화하는 틈에 떠나버렸기에 그를 탑승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현재는 그들을 붙잡는 게 시급하니까. 왜냐하면 그들을 쓰러트려야 하는 목적은 변함없지만, 뭣보다도 그들이 뺏어간 것을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들이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마침내 우리들은 도착하고야 만다. 오는 중간 정도에 제나는 어디갔냐는 말에 떠난 그곳을 맡기고 리내를 대신 보낸 것까지 듣고 있을 쯤에 푸르른 초원의 잔디가 어느순간 보이지 않고, 끝내 내리고 나서 보니 납득이 됐다. 주변에는 싱그러운 나무 하나없이 오직 썩어서 다 쓰러져 가는 나무 한두 그루만이 죽지못해 살아남았을 뿐이었고 거무틱틱한 흙이 깔려있으며, 회색깔로 묻어나는 탁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도저히 생명체가 살고있단 게 믿기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보고있는게 진짜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바로 저 멀리 떨어진 중압감과 퇴폐함이 절로 자아내는 폐허 동굴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전보다 전보다 2배를 능가하는 수십때의 요정과 나간들이 가득 메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 “확실히, 녀석들의 본거지라는 느낌이 물씬 드네. 이거 뚫기 더 힘들겠는 걸.”


- 대체 저게 다 몇이야?! 지금껏 상대해온 몬스터들을 훨씬 뛰어넘잖아!


- 이렇게나 많은 요정들과 나간들이 이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니···. 그래도 우리는 해야만 해.


- 이제. 저들이 우릴 감지한 것 같소. 한시라도 그들을 빨리 찾아야만 하오. 반드시, 구해야만 하오. 반드시!


- 가자. 분명 폐허 동굴 안 일테니까. 날아가 버린 요정들이 가지고 가버린—








유일한 생존자마저 앗아가는 걸 어떻게든 막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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