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거 가지고 뭘 하겠다고? 돈을 벌어?"


작은 글씨로 오밀조밀 써 있는 종이뭉치, 후줄근한 츄리닝을 입은 선생은 그걸 읽지도 않고 말아서 앞에 있는 학생의 머리를 툭툭 쳤다.


"수빈아. 아무리 글을 쓰는게 좋다고 해도 말이야. 이런 건 삼류에 불과해. 학생때는 공부를 해야지. 수업 시간에 이런 걸 끄적이고 다니니까 네 성적도 떨어지고 그러지 않아? 공부를 해라. 수업 시간에는... 잉? 공부를 해야 좋은 대학을 가고 그래. 글 쓰는 건 좋다. 근데 수업 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고서 이걸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하지는 말아. 작가로 돈 벌기가 쉬운 줄 아니? 그걸 모르면서 하려고 하지마."


수빈은 주먹을 꽉 쥐며 입술을 세게 깨물었고 수업 종이 울리자 선생은 일어나 종이 뭉치를 수빈에게 주며 돌아가라는 손짓을 했고 그녀에겐 선생한테 들은 얘기는 자신한테 모욕이었고 자신이 쓴 글을 읽지도 않으면서 판단하는 선생이 그저 미워 먼저 가는 선생을 노려볼 뿐이었다.


선생의 담당 과목은 의외로 국어였다. 그렇기에 수빈은 자신에게 응원도 하지 못할망정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모욕감을 주는 선생이 미웠고 어떻게 하면 그를 엿먹일수 있을지 곰곰히 생각을 하다 학교 게시판에 붙은 학생 공모전이 생각이나 거기에 자신의 글을 제출하여 상을 받아오면 공부를 안해도 충분히 돈을 벌수 있다는 걸 증명할 것이고, 그것이 선생에게 줄 최고의 복수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상을 타지 못했다고한 스스로 자백한 소설가였기 때문이었다. 수빈에겐 그는 삼류였다. 자신도 상을 못탔지만, 세월을 비교하며 늙어버린 선생은 삼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 거릴 거라 생각했다. 반면, 자신은 상을 타고 이류가 되어 성인이 되었을 때는 일류가 되어있을 뛰어난 사람일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자신있게 공모전에 자신이 쓴 글을 제출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떨어졌고 선생은 어떻게 소식을 들은 건지, 수빈을 불러 교무실에서 다시 한번 면담을 했다.


"그래, 떨어졌네. 그러한 시도를 하는 건 좋았어. 하지만 공부를 하지 않고서 글을 쓰니까 그런거야. 아쉬우면 공부를 해."


공부, 수빈은 그 단어가 제일 짜증이 났다. 왜 자신에게 계속 공부를 하라는 건지 모르겠고 어째서 공부를 해야하는지 이해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떨어진 것도 속상한데 굳이 자신을 불러 공부를 하라고 재촉을 하는 것인가. 짜증과 분노와 한탄과 슬픔과 억울함이 엮이고 섞여 뱉어졌다.


"공부... 공부 공부 그놈의 공부가 대체 뭔데요! 저는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계속 쓰는 거에요. 근데 왜 계속 공부를 하라는 거죠? 공부의 의미가 뭔데요. 선생님은 삼류잖아요. 상조차 받지 않은 소설가라고 자신을 소개했으면서 왜 저한테는 이래라저래라 하시는 거죠? 선생님이 말하는 공부가 대체 뭔데요! 저는 몰라요. 공부를 하라고 해서 이젠 수업 시간에는 글 조차 안쓴다고요. 그런데 뭐가 부족한데요? 저는요. 반드시 작가가 되어서 선생님의 코를 밟아버릴 거에요. 공부 없이 대성할거라고요!"


수빈은 자신이 내뱉은 말의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했다. 울분이 섞여 나온 말이었기에 어쩌면 선을 넘은 발언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말을 듣고 가만히 바라보는 선생이 두렵고 무서울 정도로 자신이 한 말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선생은 말없이 컴퓨터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수빈에게 보여줬다.

컴퓨터 화면 안에는 선생의 블로그가 나와있었고, 거기엔 시도한 공모전 목록과 떨어진 공모전 내용이 적혀있었다.

120개 가량의 시도한 공모전에서 119개의 실패한 공모전 내용이 같았고 유일하게 상을 탄건 그가 학창 시절에 한 공모전, 그것도 수빈이 처음으로 낸 공모전과 같은 이름의 공모전이었다.


"나는 너와 다르게 처음으로 낸 학생 공모전에서 상을 탔어. 너처럼 공부도 안한 상태로 말이야. 그때는 즐거웠지. 나는 상을 탔고, 다른 아이들보다 글 솜씨가 뛰어나다는 증명이었으니까. 하지만, 너처럼 3학년이 되었을 때 그때는 전보다 더 많이 노력해서 글을 썼지. 하지만 역시 공부를 안해서 그런지 바로 떨어지더라. 내가 공부를 안한 사이에 다른 아이들이 앞서 나간거지. 나는 그때 이후로 낙담하고 글 쓰는 걸 끊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 졸업학기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지. 그리고 이 상태야."


선생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시도한 공모전을 보여주며 말했다.


"작년에 한 공모전이다. 내가 공부를 안한 사이에 격차를 높인 사람들은 나를 앞섰고 결국에는 나는 4등으로 끝이 났지. 장려상 조차도 받지 못했다고."


"그게 왜 공부랑 관련된 건데요. 선생님도 그저 겁쟁이었네요."


"겁쟁이라... 나는 적어도 내 길을 알고 겁을 낸거지. 내가 너한테 공부하라는 건 두가지 의미야. 잘 쓰는 노력을 하던가. 아니면 망했을 때의 길을 파던가. 너가 어떤 공부를 해야할지는 너가 정해야겠지."


"저는 망할 생각이 없어요. 제 글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요. 저는 계속 나아갈 거에요. 고작 처음인데 포기할리가 없잖아요."


선생은 고개를 돌려 책상 맨아래에 있는 서랍에서 낡은 노트를 하나 꺼내어 수빈에게 건넸다.

삼류라고 적혀있는 허름한 노트였는데, 무언가 붙어있는게 많아 보기와 다르게 두껍다고 느껴졌다.


"이게 뭐에요?"


"삼류, 너가 말한대로 삼류인 내가 머리 박으면서 느낀 것들이야. 정말로 공부를 할거라면 이거와 함께 책을 많이 읽도록 해."


"..... 이거면 돼요?"


"될리가... 나는 작년에 절필했다. 절필한 사람이 준 물건인데 좋을리는 없지. 하지만 누군가가 끝까지 한다고 했을때 말해주고 싶어서 쓴 것들이야. 볼지 말지는 너가 선택해. 그리고 내꺼로는 부족할 테니... 조만간 작법서를 사서 너에게 줄게."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까 제가 소리지른 건 죄송해요..."


"괜찮아. 나는 내 일만큼에서 일류니까. 아이들의 응석은 받아줘야지. 이번에 국어시험 잘봐서 선물로 주는 거니까. 나중에 잘되면 너가 날 불러서 한턱 쏴라."


"마치 내일이라도 당장 떠날 사람처럼 얘기하시네요."


선생은 수빈을 보며 아무말 없이 웃었다. 수빈은 선생의 말을 듣고 자신이 선생에게 여긴 마음을 반성하며 다시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자신의 진로를 선생이 이루지 못한 소설가가 되어 당당하게 선생에게 자랑하는 것으로 정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선생은 나오지 않았고 수빈은 그 목표마저 사라진 것 같아 허망함이 들었다. 전화번호마저 알려주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사생활을 숨기고 다니던 선생이었기에 수빈은 그에게 연락할 수단이 아예 없었고 선생과 제일 친했던 수학 선생님 마저 말 없이 사라진 그를 두고 짜증을 낼정도로 사이가 매우 안좋아졌기에 부탁마저 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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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뒤 수빈은 강연을 하고 다닐정도로 소설가로 유명해져 아주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삼류에 적힌 일들과 글 쓰는 법들을 안보고도 말할수 있을 정도로 보며 머리 속에 억지로 넣은 결과, 그녀는 선생과 성격이 비슷해졌고 그의 말투마저 따라할 정도로 그와 동일시 되었다. 문체마저 똑같이 쓰고 완전히 선생이 된 것처럼 살아왔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와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강연을 하면서도 열정이 점차 사그러드는 느낌이 느껴졌다.


"후... 힘들다. 그래도 선생님을 만날 때까진...."


강연이 끝나고 겨우 탄 버스에 올라 자신의 가방을 끌어안고 앉아 선잠을 자다 알람이 울려 잠에서 깬 수빈은 핸드폰 화면을 봤다.

화면에는 선생의 블로그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는 내용이었고 수빈은 놀라 가방을 옆으로 치우고 로그인을 하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눌린 손가락들로 인해 비밀번호가 두어번 틀렸지만, 다시 눌러 블로그를 확인했고 새로 올라온 글들은 시도한 공모전에 올라왔으며 한번에 5개의 글이 동시에 올라왔다.


"선생님....?"


수빈은 오랜만에 활력을 찾았다. 그리고 동시에 불이 붙어 다시 글을 쓰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