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지난번보다 더 춥네... 방한복을 입었는데도 바닥의 냉기가 몸을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방한복을 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겨울 냉기에 절로 몸이 움츠려진다. 


“하늘에 열린 워프 폭풍 때문인가?” 매서운 추위에 카리스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푸른 하늘은 어느새 피를 머금은 것, 마냥 시뻘겋게 물들였다.


워프 폭풍을 바라보자 잔혹하게 살해당한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찌푸려졌다.

우리들에겐 비타민이었고 산소였으며 달콤한 간식과도 같았다. 그중에서도 어머니는 내게 유일한 낙원이었다. 여동생만 편애한 아버지완 달리 평등한 사랑을 베푸셨다. 앞으로는 행복한 삶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행복하고 아늑한 미래를 그려 나가며, 하늘 높이 펼쳐진 희망으로 가득 찬 내 세계는 부서졌다.

무너진 낙원, 깨져버린 세계. 아무것도 남지 않아 비어버린 마음은 허전하게 시렸다.

허전하게 시린 마음을 대변하듯 핓빚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무엇보다 



나는 반대쪽으로 목이 부러져라. 다급하게 본다.


꾹. 꾹. 꾹. 꾹.


아리엘은, 어느새 그녀의 손으로 내 소매를 꾹꾹 잡아당기고 있었다.


“오라버니. 나 버리지 마.” 아리엘은, 나를 보고 아이처럼 울먹이고 있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파도처럼 크게 일렁이다가, 이내 눈을 감는다.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는 듯이.


콤바인의 침공으로 인해 부모님이 살해당한 이후로 여동생의 정신은 망가져 버렸다.

버림받을까 두려워 공포에 떨며 유일한 버팀목인 나에게 매달린 채 사랑과 애정을 요구하는 어린아이.


정신이 망가진 여동생의 손을 붙잡은 채 터덜터덜 카리스는 눈앞을 향해 나아간다.


바른길은 어디일까.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이 깊어진 카리스.

절망이 드리우던 그때 하늘을 가로지르는 빛줄기가 보인다. 


“저 빛은 뭐지?” 회색 구름을 가로지르는 황금 빛줄기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음울한 회색으로 물든 하늘을 꿰뚫는 빛줄기는 실로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찬란하게 드린 황금 빛줄기를 바라보니 절로 밝은 미소가 나왔다. 


“아리엘. 황금빛 줄기를 따라가자.” 밝은 미소를 지으며 카리스가 말했다. 


“오라버니가 좋다면 나도 좋아” 카리스의 밝은 미소에 화답하듯 아리엘은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태양처럼 밝은 미소가 아닌, 어둠에 침식된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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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오라버니밖에 없습니다. 내 영혼이 심연의 바닥을 헤맬 때도, 오라버니는 늘 곁에 앉아 

나를 지켜주었습니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이, 어둠에 있는 곳에 빛이 드리웠습니다. 


중장갑을 입고 푸른 안광의 방독면을 뒤집어쓴 채, ‘반시민’을 사살하러 마을을 돌아다니는 콤바인 솔져.

2층 건물만 한 크기에, 등에 기관단총이 장착된 채 전자기계음이 섞인 울음소리를 내는 스트라이더.


위험한 존재들로부터 오라버니는 저를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보호해주었습니다. 

오라버니는 늘 곁에서 절 지켜주었으니, 저는 마침내 오라버니를 존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름다운 목소리가 속삭였습니다.

-자신에게 솔직해지자. 오라버니를 사랑하는 거 아닌가? 


저는 저와 닮은 목소리를 듣고 제 생각을 정리합니다.


의존증에 대해서 아시나요?

심리적 의존이 있어 계속 물질을 찾거나 특정 행위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의존증이 발발하면 복종적이고 매달리는 행동과 분리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납니다.


앞서 말했듯 오라버니는 저에게 있어서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존과 집착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렇듯, 오라버니가 그들에게 살해당하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평화롭고 아늑한 삶을 누리며, 평범한 삶을 살던 우리 가정이 무너진 것이 떠올랐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하며 상당히 많은 콤바인 솔져들을 막아내던 그때, 

워프 폭풍에서 나타난 스트라이더 무리로 인해 낙엽처럼 바스러져 가던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콤바인의 압도적인 물량 앞에선 힘을 합쳐 저항한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알고 있으시다시피 이 당시의 저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혹은 알고도 외면했지만.

저는 넘으면 안 되는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입안 가득히 오빠의 우유 즙을 빨아 마셔버리기 12시간 전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