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도로 누웠다.
이불에서는 아직 갓 말린 빨래 냄새가 옅게 남아 있었다.
바닥에는 얼마간 돌아갔을 보일러 때문인지 아니면 뒤척이지 않는 자세에 눌린 탓인지 모를 따스함이 감돌았다.
내 머리맡에는 항상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이걸 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제 두꺼운 뭉치는 내가 직접 쓴, 정확히는 아직도 끝마무리하지 못한 소설이니까, 그리고 아직도 저 이야기의 매듭을 어떻게 묶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끝이 바랜 종이 뭉치는 아직도 공모전 따위의 곳에 내바친 적이 없다.

바깥에서는 구식 테레비 소리가 조곤댄다. 아버지가 나와서 뉴스를 보고 있는가 싶다.
앵커의 말을 들어보겨 신경을 곤두세우려는 때에 벽 너머에 위치한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 웅웅대는 음이 말뜻을 가로막는다.
차라리 안 들리는 게 낫겠어.

내 삶이 혁혁히 엉킨 이유는 뭘까 싶다. 친족 간에 탓이 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도리어 내가 해를 끼쳤으면 끼쳤지, 병자가 되도록 구태여 타박을 주거나 할 법이 있기나 하겠을지.
좁은 한 무리에서 시작된 걱정은 점차 경우의 수를 늘려 나간다. 가족에서 친족으로, 친족에서 고을로, 고을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국가로, 국가에서 세계로, 세계에서 우주의 어떠한 장대한 힘으로.
답을 뼈저리게 알면서도 눈이 아려 직시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못날 뿐이라는 답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설령 사회가 나를 저주한대도 내가 직접 알 정도로 공부한 적이 없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었나?

세탁기가 그새 조용해졌다. 어머니는 잠시 졸았다 막 깨었는지 방금 종종걸음으로 빨랫감을 널기 위해 세탁기로 향했다.
집 바깥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린다. 나를 볼 도리가 있는 사람은 저기에 없었다. 차라리 나를 보며 악담을 퍼부어 주지 싶기도 했다. 헛들은 동냥거리만을 주워 먹고 버텨서는 아닐 것이다. 기차 소리도 뒤에 들린다.

오늘따라 기적 소리가 크다. 귀가 뚫렸는지, 아니면 운전수가 신이 났는지, 아니면 나보고 오라고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