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


 이재형은 약 이십 분 정도를 기다려 겨우 아리와 김지현을 만날 수 있었다. 


 어딘가 지치고 패기 없어 보이는 아리는 이때까지의 고고하고 기품있던 것과 대조되는, 거의 처음 보는 일이었기에. 이재형은 그녀를 걱정했다.


 “아리? 무슨 일 있었어? 표정이 왜 이래. 너답지 않게.”


 “아무것도 아니야.”


 “자, 이제 인원을 교체하자꾸나.”


아무 일도 없었다. 라는 것처럼. 김지현은 무해한 미소를 이재형에게 보이며 상냥히 아리의 팔목을 내밀었다.


 “……”


 살비에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는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한 살기를 가지고, 김지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그녀가 어떤 짓을 했는지. 전부 아는 것처럼. 


 그런 그의 시선을 알아챈 것인지, 지현은 갑작스레 입을 떼었다.


 “하핫. 살비에르. 귀여운 꼬마야. 너무 노려보는구나. 나중에는 네가 납득할 수 있을 거란다.”


 “……”


 굴하지 않는 묵직한 살기는 아리가 이재형과 함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직전까지 김지현을 향했다. 더욱 중요한 것을 잊은 채로, 교체된 2인 1조는 계속되었다.


 결계는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또각

-뚜벅


 조금 다른 울림이 있는 두 사람의 걸음 소리가 공허한 아카데미 가장자리를 배회하고 있다. 


 한 쌍의 남녀가 걷는다. 


 남자.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짧은 검은 머리에 어디가 초점인지 모를 적갈색 눈동자를 하고 있다. 


 여자. 청량하리만치 푸르른 하늘의 머리칼을 바람에 휘날리며 눈앞에 난 길을 향해 또렷이 걷는, 가벼운 미소가 아름다워라.

 

 그 두 남녀는 함께 나란히 걸으며 뭔가를 느꼈다. 이미 둥둥 떠다니는 심리를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 없었다. 


 아리. 겉은 아름답고 속은 유리병처럼 단단하며 무르다. 충격에 약한 그 성질도 닮아있다.


 작년 초여름, 그러니까 이제 막 현장 적합성 검사의 결과가 나오고 하나둘씩 <임무>라는 것을 하게 될 그 시점에. 이재형은 아리의 속을 처음 알 수 있었다.


 아리는 언제나 남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실제로도 아름다우며 실력마저 겸비한 우수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아리는 언제나 남들의 호의 속에서 살아왔기에 호의로 위장한 악의를 알아보지 못했다.


 첫 임무에서 배신자가 나오고, 아리는 저번 주 까지도 함께 시시덕거리던 그 아이가, 위기의 순간 자신을 찌르려 할 줄은 몰랐다. 


 아리는 그 사건 이후 사소한 갈등을 내포한 듯, 횡설수설하던 때가 있었다.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의심이 아리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너도, 저 아이도. 결국 아무도 믿을 수 없어. 붉은 실에 대고 맹약했던 시작의 파티 멤버도. 이 세상에 나를 내놓은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 누구도. 그렇다면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하지? 신조차도 믿을 수 없는데.」


 극단적인 생각들이 계속됐다. 


 그러나 그런 마음속의 눈보라는 스노우글로브처럼 예쁘게 포장되고 만다. 


 괜찮은 척하는 위태로운 미소, 그리고 자신의 그런 추악한 내면을 가리기 위한 두터운 가면으로. 완벽하게 가려진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 학생 중엔 그녀만큼이나 두꺼운 가면을 쓰고 쾌활한 척하는 학생이 있었다. 재형은 자신의 얼굴이 납작하기에 가면을 써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줄 알았지만, 아리는 그런 그를 알아보았다.


 재형 또한 가벼운 미소와 두터운 가면으로 가린 그녀의 분 칠한 내부를 알아봤다. 가면을 쓴 자는 가면 쓴 자를 알아보듯. 멋들어지게 포장된 판도라의 상자 속 온갖 감정들의 폭풍을. 그자는 알아본 듯했다. 


 가장 아래에 눌어붙어 있다는 희망이라는 것을 보았는지, 보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아까 20분이 넘도록 안 오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러나, 재형이 알아챈 그녀의 내면 속 파문을-


 누군가 그런 자신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며. 


 아리는 자신의 가면에 분칠을 계속 하고 말았다. 아직 그를 믿어도 될지, 안될지. 그녀는 몰랐다.


 “음, 있잖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뭐, 나중에 말해줄 거지? 그렇다고 해 둘게.”


 “응… 고마워.”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가면 쓴 자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진실된 자신으로서의 정체는 이미 아카데미 학생으로서의 자신과는 완전히 유리되어 버렸다. 


 진실을 외면하는 자들을 위한 지옥은 바깥이 아닌 가면 속에서의 흐느낌으로 창조되었으니. 새장 바깥의 세상이 아닌, 새장 내부로부터 재앙이 좁혀오고 있었으니.


 한참이 지나도록 두 남녀는 말없이 걷기만을 계속했다. 두터운 가면을 쓴 그들은 크게 소리쳐도 가면에 가로막혀 서로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만 같았다.


 하늘은 푸르고, 새들은 노래한다. 어딘가에서는 앳된 피아노 연습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계속되는 평화 속에 살짝 지루해지려 한다. 이재형은 이 불편하면서도 미묘한 분위기를 농담적인 어조로 타파해 보고자 했다.


 “그나저나 아리, 이상한 점들은 찾아봤어?”


 “둘러보곤 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네.”


 “아, 지루해. 안 그래?”


 “그래도 꼼꼼히 살펴봐.”


정석적인 대화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너무 교과서적인 답변은, 이 미묘한 분위기를 더욱 어색하게만 만들 뿐이었다. 위화감을 느낀 재형은 아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대화를 이어나가 본다.


 “뭐, 한 바퀴까지 다 돌아도 아무것도 없던데. 봐. 저기 지현 선배 쪽도 멀리서 오고 있잖아.”


 둘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 것인지, 농담을 하자는 것인지도 명확히 모를. 그런 생각만이 아리의 사념속에 머무른다.


 “너무 조용하다. 그치?”


 “그건 그렇구만. 아무리 현장 시즌 막바지라 해도 그렇지. 수상할 정도로 조용하다고. 이거. 음모론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하하.”

 “어제 여기 있었던 수리 기사분들도 사라졌어.”


 「어라?」


가만 생각해보니 그랬다. 재형은 전날 복귀 직후 종합치료원으로 향하는 길에서 부유섬 가장자리 쪽에 수리 기사들이 모여있던 것을 스쳐 지나가듯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네? 보안 결계 고장 나서 고친다고 했잖아. 게다가 결계 관리 기사들까지 없어졌어…”


 “재형아, 아무래도 우리 보고할 게 생긴 것 같은데?”


 “뭐. 결계 관리 요원들도 농땡이 치고 있는 거 아닐까? 우리처럼─”


 그때,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살비에르였다. 벌써 약속한 한 바퀴를 다 돌았는지도 잊고 그저 관성에 따라 걷고 있던 아리와 이재형은 문득 들려오는 그의 앙칼진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재형. 네. 그. 안일한. 태도가. 합동. 전투. 훈련. 에서. 마이너스. 요소였다.”


 언제부터 함께 있었는지. 아리의 동공이 커지고, 당황한 듯 더듬는 또박함이 들려왔다.


 “뭐, 뭐야. 언제부터 듣고 있던 거야?”


 “관리. 기사. 들이. 사라졌다는. 소식. 부터.”


 “하아, 깜빡이 좀 켜고 들어와 줘. 살비에르…”


 아리는 안도의 의미로 손바닥을 이마에 대고 한숨을 쓸어내렸다. 그런 아리를 향해 팔짱을 끼고 쏘아붙이는 살비에르의 옆에는 편안히 웃는 김지현이 고고히 서있었다.


 “하하, 농담이란다. 혹시 모르니까 한번 더 확인해 보지 않으련?”


 한 번 더. 둘러봤다.


 어제까지만 해도 여기서 결계를 고치고 있던 수리공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뭔가 지나치게 조용한 감각의 원인.


 아무래도 또다시 실종 사건이 일어난 듯했다.


 우리는 혹시나 싶어 교내 상가에 가 봤다.

 

 여덟 군데의 옷 가게들.

 세 군데의 문 닫은 교내 식당들.

 네 군데의 전형적인 카페.

 두 군데의 유명한 은행.

 두 군데의 학생 전용 서점.

 마도구 상점과 약방.

 테크 센터.

 기타 등등.


 전부 다 문을 열어젖혀 살펴봤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어제는 있었던 핼러윈 풍 교내 식당의 웨이터도, 

 고압적인 서점 주인도, 

 세심한 성격의 마도구 겸 약방 아주머니도.

 조금 부담스러운 옷 가게 직원도, 

 매번 바쁜 척 하는 은행 카운터도, 

 똑같은 패턴의 표정만 있는 테크센터의 AI도, 

 음악 감상에 푹 젖어있던 카페 알바도.

 전부.


 전부. 꿈처럼 증발해 있었다.


 공허한 기운만이 그 자리를 꿰고 있었다.


 보안 결계는 아직 그 자리였다.



결계의 가장자리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알립니다]


□현재 '시작의 파티' 멤버 중 '유하나'양이 쓰러져 위독한 상태입니다. 발견 장소는 유하나 학생의 기숙사 개인실이었으며, 현재 종합치료원 제1 병동에서 처리중입니다. 

□최초 발견자는 2학년 A반 087번 학생 서운명으로─




† 7 †


-똑똑.


 늦은 새벽에 누구지. 생각하며, 유하나는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난다. 깨어난 직후 들린 것은 아카데미 전체에 걸쳐 방송되는 1학년 학생 600명 실종사건의 소식.


-…이에 따라 유지보안부에서는 오브젝트 <전시안>의 탐색결과를 참조하여 중앙 마탑연결부 보안로의 오브젝트 <노이즈 텔레비전>의 위치를 수색하기 위한…


-똑똑


 “하나야. 혹시 자니?”


 “으으응? 누구야?”


 비척비척 걸어나가 바깥을 확인했다. 서운명이다.


 “들어갈게.”


 서운명은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잠깐만! 나 완전 무방비 상태인데. 해코지하려고? 이재형이 내 곁에 없으니까?


-벌컥.


 “괜찮아, 긴장 풀어도 돼.”


 열어주지도 않았는데. 너는 어떻게 내 방 안으로 들어 온 걸까.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서운명?”


 왜 날 찾아온 거야? 저번에 날 돌봐줄 때는 침대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게 해뒀으면서. 인제 와서 그걸 사과하러 온다는 것도 웃겨. 물론 나 따위가 사과 받을 수 있다는 게 더 웃기네.


 버러지 한 마리가 방 안에 살고 있어서, 그 버러지는 네가 있을 때는 쓸모없는 년이 되고, 네가 없을 때는 병신이다. 마음대로 뛰지도, 먹지도, 숨쉬지도, 어울리지도 못하는 병신.


 초등학생 시절에도, 중학생 시절에도 끔찍하게 겪어왔던 일들이다. 지켜주겠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거짓말이다.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건, 이따위 몸이 아닌 너희들의 기만.


 내가 돌에 걸려 넘어지면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내가 지쳐 쓰러지면 둘러싸고 비웃는다. 


 그대로 일어나고 쓰러지고를 반복하다 그제서야 네가 온다. 혼자일 때 나는 언제나 썩은 고기만도 못한 병신이었다.


 모를 줄 알아. 아닌 척하면서, 올바른 척하면서. 기만자들.


 제발 날 아프게 하지 말아줘.


 너는 적어도 친구인 척이라도 해줬던 애잖아.


 그렇지? 우리는 친구 맞는 거지?  


 “나 있지. 하나 너한테 선물로 줄 게 있어서.”


 그렇겠지? 나한테 선물을 주러 왔구나.


 그럼 나도 진짜 친구라는 거지? 가짜가 아니고 진짜.


 “여기. 바깥에서 뭔가 받았는데.”


 헤실헤실. 웃음이 나온다. 그래. 운명은 나를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거구나. 이런 생각까지 하고. 나 많이 망가졌구나.


 걱정할 필요도 없는 건데.


 “에헤헤. 바깥에서 뭘 받아왔을까나?”


 “그게 작년에,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기가 마법사라고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응? 그래서?”


 “소속이 뭐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는 아무 데도 속하지 않는데. 그러면서 나한테 보석을 주는 거야. 길거리 마법사가 공연이라도 홍보하는 걸까 싶어서 그냥 받은 거 있지. 근데 이거, 아카데미에 들어올 때부터 이상해서. 정확히 말하면, 하나 너랑 있을 때만 빛이 나서…”


 “나랑 있을 때만 빛이 나?”


 “응, 지금도 보이지?”


 “그러게. 신기하네. 이게 뭘까?”


 어라? 이건 일곱 살 때 재형이한테 받았던 선물인데. 왜 운명이 그걸 쥐고 있지?


 “혹시 그 마법사는 우연히 떨어진 보석을 주웠는데, 내가 떨어뜨린 건 줄 알고 주워 준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원래 주인이 하나 네가 아닐까? 하고 줄곧 생각해 왔어.”


 “여기, 이거 네 거 맞니?”


 “으음, 못 보던 건데…”


 이건 내가 아주 잘 아는 물건인데.


 손을 뻗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 보석 같은 것을 받아 손으로 쥐었다. 


-번쩍!


빛.


빛. 빛. 빛.


-털썩.


 “…어? 하나야?”


 “…앗.”


-털썩.


다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