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


 서운명이 돌아오지 않았다.


 오늘 아침 조회에서도 그녀는 출석하지 않았다. 어제까지 잘만 있던 학생이 느닷없이 사라진 탓에, 수색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재형이 속한 조사 4팀은 시간이 남았던 조사 2팀과 연락이 닿았다. 


 할 일이 없던 차에, 그쪽에서 그녀를 수색하기로 했다. 혹시 학생 실종 사건의 연장선상에 있는 현상일지도 몰랐다.


 의외로 수색은 신속히 끝났다.


 2팀에 속한 벨리아에 따르면,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서운명이 있던 곳이 발견됐다.


 오브젝트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의 온도를 각각 62.0도, 10.3도로 유지한 결과 기숙사 C동 904호라고 답변을 얻을 수 있었어. -라고. 알림을 받았었다.


「그곳은 하나의 방인데. 서운명은 어째서 거기까지 찾아갔던 거지?」


 발견 당시의 상황은 난장판이었다. 이재형이 들은 바로는, 머리를 싸매고 패닉한 서운명과 시체처럼 축 쳐진 유하나의 의식을 잃은 몸, 그리고 검게 빛나는 보석 하나가 그 공허하리만치 텅 빈 방에 들은 전부였다.


 소식을 전해 받은 직후엔 불쾌하고도 섬뜩한 기분이 재형의 뇌를 구워 삶듯이 내려 박혔다.


 유하나는 즉시 제 1 병동 응급실로 보내졌고, 지금은 정확한 상태를 분석하는 중이다.


 사람의 의식 수준은 그 위독함에 따라 네 단계로 나뉜다고 한다. 환영 계열 저주에 걸렸다고 의심받는 이상 대략 이 네 단계 중 어딘가에 속한다.


 착란, 섬망, 혼미, 혼수.


 이에 따르면 유하나의 상태는 혼미라고 한다. 현실감이 저하되며 자발적인 행동이 불가능한 상태. 깨어나도 움직임은 제한적이며 현실을 마치 꿈처럼 인식한다.


 지남력 상실, 통제된 사고의 상실, 소재 인식의 안정성 상실. 대표적인 증상들이다. 뇌전도에서는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했지만, 이미 약물로 절여진 하나의 몸에 맞는 치료제는 없었다.


 이재형의 볼에 뜨거운 감각이 느껴졌다. 그 따끈한 감각의 정체는── 


 “뭐가 그리 심각한 건가여?”


 내밀어진 캔 커피였다.


 “벨리아. 너였냐.”


 이미 개봉되어 먹기 좋은 캔 커피는 벨리아의 세심함을 뜻하는 것일까, 생각하며 이재형은 뜨거운 캔에 들어 있는 따뜻하고 달달한 커피를 홀짝 하고 맛본다. 


 캔에 들은 음료라 그런지 설탕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가 있다.


 “혹시 유하나 씨도 저 멀리 하늘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예여?”


 벨리아는 이재형을 빤히 쳐다보며 악의없는 눈동자로 질문했다.


 “그게 무슨 의미지?”


 “흥, 누구처럼 허접 멘탈은 아니거든여. 아무튼, 서운명 씨도 같이 쓰러져 있었는데 지장은 없어 보였어요. 하나는 어떤가여?”


 “맞는 약이 없대. 일어는 났는데,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을 못한대.”


 “…”


 벨리아는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듯 시퍼런 하늘로 고개를 올려다보다가, 이내 남자 쪽으로 시선을 획 돌려 화두를 꺼냈다.


 “1학년 때, 올바른 생각 기르기였나. 그 과목 기억 하시나여?”


 “응? 갑자기 그건 왜?”


 “거기서 어떤 학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누가 이런 얘기를 했었는데에…”


 벨리아는 다시금 천장 위를 지긋이 올려다보며 뭔가를 떠올렸다. 그녀의 검붉은 눈동자가 커졌다.


 “아, 맞아여! 이거였어여! 어떤 이론을 믿는다면, 그 이론을 믿음으로 인해 현상이 달라질 거라고. 오해하시면 안돼여. 플라시보 효과라고 적었던 학생들은 다 틀렸었거든여!”


 벨리아는 고개를 떨구고 재형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조용을 머금은 얼굴을 무시하듯 빨간색 트윈테일 머리카락이 앞뒤로 진자운동한다.


 “음… 그래서, 그게 왜?”


 “제 말은여, 하나가 잘못될 거라고 믿으면 진짜로 그렇게 될 거라는 거에여.”


 그렇게 말하면서 벨리아의 목소리는 왠지 낮아지려 했다.


 살짝. 어색하리만치 살짝. 벨리아가 애쓰듯 미소 짓는다.


 “그러니까, 심각하게 있지 말고…”


 가소롭다는 듯, 재형은 그런 그녀의 말을 끊어냈다.


 “알겠다. 어저께 보였던 추태로 깍인 네 신뢰도를 다시 메꾸려고 이러는 거지.”


 “헉. 이재형… 당신 제법 눈치가 빠른데여?”


 그녀는 남자로부터 획 시선을 돌리며,


 “허접인 줄로만 알았는데. 쳇.”


 작게 불평할 뿐이었다.


 재형은 그런 벨리아에게 작게 꿀밤을 날렸다. 벨리아는 그저


-뭐, 뭐, 뭐하는 건가여?


 라며 역정을 내더니 이내 쏜살같이 도망쳤다.


「벨리아.」


「벨리아와 마지막 대화를 했던 것도 벌써 몇 달 전의 일이네.」


 가면 속에 파묻힌 남자의 멈추었던 백일몽이 재차 이어진다.


 1학년 A반인 시절. 벨리아는 자칭 반 제일의 개구쟁이였다. 꽤나 신경질적이긴 하지만, 하나보다 한 수 아래다. 자존심 세고, 영리한 척 하는 허접. 


 ‘동결’ 마법에 뛰어난 적성이 있으나, 체력은 잼병. 장단점이 확실한 아이. 제멋대로인 척하다가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면 주춤하는 패기 없는 아이.


 작년 이맘때였다. 입학식 후 한 달 쯤이었나.


 엄청나게 많은 공부량이 지겨워 차라리 2학년 선배들이 종종 나가곤 하는 <임무>라는 걸 하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하던 과거의 내가 학교 제2 전투 연습장-다시말해 공터-의 캠프파이어 앞에 서 있다. 


 첫 파티를 이뤘다. 그걸 기념하는 저녁 축하회였다. 


 저녁 치고는 자정에 가까웠지만. 이 파티는 특별한 파티라고 담임 교수가 누누히 이야기했다.


 그는 200명이 조금 넘는 1학년 A반의 모두를 기억했던 사람이다. 때론 친절하게, 때론 엄격하게. 아카데미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결국엔 좋은 인물이었다. 지금은 계약이 끝나 더 이상 아카데미에서 볼 수는 없어졌지만.


 “앞으로, 여러분은 현장 임무에 나가기 위해 파티를 짜게 될 텐데, 지금 파티는 현장과는 전혀 관계없는 파티입니다.”


 새침한 벨리아가 당돌하게 손을 들어 질문공세를 벌였다.


 “어라라? 그럼 파티를 왜 맺는 건가여? 이런 허접들과 파티 맺는거라면 전 사양인데여?”


 그녀 주변의 누군가가 불평하지만, 벨리아는 '허접 맞잖아요?' 라고 응수했다.


 “좋은 질문이예요. 곧 알게 되겠지만, 우리 아카데미는 정말 견디기 힘든 곳이랍니다. 벨리아 양. 옆에 있는 친구는 단짝친구… 맞죠?”


 벨리아는 방긋 웃으며 옷 매무새를 정돈한다. 자랑스레 손날을 펼쳐 옆의 친구를 가리키다가, 이내 어깨를 감싼다.


 “네! 루시는 이몸의 단짝 친구에여. 저런 허접들과는 엘레강트의 레벨이 다르다구여!”


 행복해 보이는 웃음.


 “그렇다면 루시가 현장에서 다친다면 정말 슬프겠죠?”


 “으음… 그럴지도여…?”


 녀석은 잠깐 주춤 하나 싶더니 다시 팔짱을 끼곤 턱을 올리며 씨익 웃어보인다.


 “아니, 흥. 이 몸. 벨리아는 그 정도는 견딘다구여?”


 담임교수는 특유의 친절한 미소를 보였다.


 “하하, 좋습니다. 어찌됐든 벨리아 양은 잘 적응할 것 같네요. 우리가 지금 이룬 파티는「시작의 파티」랍니다.”


 그는 연신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유유히 캠프파이어 주변을 돈다. 몇 번이고 했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처럼. 편안히 눈을 감고.


“「시작의 파티」에서 ‘시작’이란, 시련의 시작. 인연의 시작을 의미해요. 앞으로 임무를 위해 결성할 파티는 시련을 마주하겠지만… 아까, 오브젝트 <운명의 홍실>에 대고 맹약했듯이. 한 번 시작의 파티를 맺은 여러분은 인연으로 이어진 거예요.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친구들로 이뤄진 시작의 파티는 아카데미에서의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자 즐거움으로 남을 거예요.”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유하나, 태창현, 샤킬로나 살비에르, 아르웬 웨니, 아리.


 안타까운 소꿉친구, 못 미더운 양아치놈과 키작고 어눌한 녀석. 왠지 친해지기 힘든 여자애. 어디서나 인기인.


 분명히 벨리아는 시작의 파티 구성원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기억 한 켠에 남아있는 그런 아이였다. 


 하나와는 사뭇 다른 종류의 활기참을 가졌었지. 뭐, 이 정도가 벨리아에 대한 인상일까. 싶다.


「그런데 이 커피… 취향만 봐도 이건 당뇨 환자 암살 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설탕이 많은데. 설마, 캔이 미리 따 져 있던 게…」


 이재형은 캔 바닥에 작은 메모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후 휴식시간 곧 끝이니까 빨리 나오세여!!

-깡!


 재형은 그 캔커피 바닥에 깔린 과포화된 설탕 반죽이 그대로 남은 채로 캔을 구겨 재활용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는 남은 오후 수업을 들으러 갔다.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입력한다.


[서운명 에게 보낼 메시지]

하나가 갑자기 위험해 졌다면서? 네가 첫 발견자라고 하던데. 시간이 된다면 종합치료원 3병동 특무과의 메리 씨에게 하나의 약을 받아와 줄 수 있을까? 이 쪽은 아직 할 일이 많아. 오늘 밤 9시. 1병동 정문에서 보도록 하자.


 서운명은 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 


 어쩌면 대답을 안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을 전달받는 순간. 물어봐야 한다. 그때, 유하나의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이유로 갑작스레 유하나와 만난 것인지. 찝찝한 정황은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예■■■■─


 이재형은 그녀를 시험해 보기로 한다.


 엄지손가락을 휴대폰의 [전송] 버튼에 가져다 댄다.


『전송 완료』라는 메시지가 뜨고, 이재형은 휴대폰을 덮는다.




† 9 †


《컨퍼런스 홀 소회의실》


전략 3팀의 회의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주제는 실종 당시 상황의 자료 확보 방안. 


 실종 당시의 상황을 기록해 두었을 오브젝트 <전시안>을 확인하자, 어째서인지 영상에 노이즈가 섞여 있어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모든 노이즈를 흡수하는 또 다른 오브젝트인 <노이즈 텔레비전>을 찾아보기로 이전 괴현상 대책 회의에서 이야기가 끝났다.


 그러나, <노이즈 텔레비전>은 오브젝트 중에서도 격리가 불가능한 오브젝트다. 사용할 때 마다 제멋대로 위치가 바뀌는 탓에 이 텔레비전을 찾기 위해 조사 5팀이 고생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전시안>의 도움으로 위치는 특정 되었지만 다가갈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교롭게도 함부로 다가가기 어려운 위치에 그 텔레비전이 있었다.


 중앙 마탑연결부의 보안로. 


 자, 이제 어떻게 그곳을 공략할 것인가? 아직 그 답을 내리지 못한 채로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알아듣기 힘든 용어들이 오고 가는 상황 속에서, 한 소녀는 불편한 듯이 어정쩡하게 다리를 모으고 앉아 초조한 듯 탁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검은 장미를 연상시키듯 세련된 흑단발의 소녀. 


 그녀가 입은 세미정장은 정확히 말하자면 밝은 연보라색 즈음이겠으나, 매고 있는 아이보리색의 핸드백 덕에 멀리서 보면 그 정장은 흰색에 가까워 보인다. 딱 어울리는 핏의 단색 바지는 발목에 맞춰 재단되어 있다. 


 아카데미 규정상 교복은 없다. 단정하되, 튀지 않을 것. 그런 단순한 지침만이 유일한 복장 규정이다. 교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순간, 아카데미 학생이 현장에 등장하는 것은 즉 자신의 ‘소속’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군중 속에 섞여 눈에 띄지 않게 암약하라.

─라는 지침일 것이다.


───────쾅!!


 전략 회의가 진행되던 중, 한 남자가 아르누보풍의 목조 테이블을 손으로 차고 일어서며 양손의 주먹을 힘차게 맞댄다.


 19세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다부지고 온몸에, 특히 팔다리에 털이 마구 나 있는 남성이다.


 학생회장 황재정. 그의 단단하고 힘 있는 목소리가 안 그래도 좁은 소회의실에 가득 차올라 고막을 때린다.


 “그리하여! 전략 3팀의 서운명 소저가 오늘까지 1학년 목격자들의 증언을 듣고, 종합해 주면 되는것이오. 자, 소저. 앞의 아그네스 교수께서 목록을 가져오실 테니, 잠시 대기하고 있도록 하시오!”


 “아… 네.”


 서운명의 눈은 탁하니 죽어 있었고, 표정에는 전혀 핏기가 없었다. 마치 끝없는 악몽 속을 헤메이다가 덜컥 일어나 버린 새벽처럼, 어딘가 탈력감에 절어 있고, 영혼이 사라져 있는 것만 같았다.


 두통이 심한 것인지, 머리를 싸매거나 쥐어뜯거나 하며, 서운명은 전후좌우에서 들려오는 대화들을 계속 놓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병적인 상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모두가 회의에 집중한 탓에 서로의 표정이나 안색을 볼 신경이 없었다.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손끝과 창백해진 얼굴색이 무색하게, 이야기는 멈출 줄을 모르고.


 “그리하여! 오브젝트 <노이즈 텔레비전>의 위치는 중앙 마탑연결부 보안로에 있다는 것이 문제로 보이오. 소스는 유지보안부와 마법부이지.”


 “그래. 황재정 학생. 보안로가 왜 보안로라는 이름을 가졌는지는 알고 있나?”


 “그렇소. 아그네스 와츠 폰 메리골드 교수.”


 반투명한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금발의 여성은 자신의 이름을 전부 불러준 것에 감동한 것인지 입꼬리를 길게 늘여 미소 짓는다.


 “좋아, 정답은?”


 “<중앙 마탑연결부> 라는 시설은 본래 제7 부유섬의 에어로 코어 9기 중 핵심이 되는 제1 코어가 있는 부분이오. 모든 에어로 코어는 마탑의 마력 송신부에 접속해 있소. 특히 제1 코어는 그 핵심인 만큼 보안에 심혈을 기울인 마탑 셀레스티아의 역작이라 할 수 있소.”


 이제, 본론을 말할 생각인지 황재정은 자세를 고쳐잡는다. 검지 손가락을 천장으로 향하며, 


 “보안로의 이름은 본래 ○○로라고 하오. 이름조차 보안에 부쳐 있어 보안로라고 불리는 것이오.”


 이에, 아그네스 교수가 덧붙인다.


 “정확해. 한 가지 더 이야기해 주자면, 그 가려진 곳의 이름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지. 하수로가 될 수도, 소각로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야. 변동성의 위험이 아주 높은 곳이지. 거기에, 원래라면 보안로를 담당하는 관리 요원이 있어야 하지만, 어째서일까? 오늘 관리 요원 출근부에는 아무도 이름이 없었어.”


 이에, 조용히 듣고 있던 한가민이 끼어든다.


 “그렇다면, 아그네스 교수님. <노이즈 텔레비전> 수색조 편성에 관해 질문이 있습니다.”


 “아니, 한가민 학생. 누누히 이야기 하지만 나는 아그네스 와츠 폰 메리골드 교…”


 호명에 민간한 그 교수의 말이 누군가에 의해 끊어졌다. 그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음에도.


 회의 내내 초점 없는 눈으로 머리를 쥐어 뜯던 서운명이 손을 번쩍 들고 일어선 것이다.


 “아, 저…”


 순식간에 얼어붙듯 조용해진다. 모두의 시선이 서운명에게 집중된다.


-띠링!


 그 순간, 휴대폰의 알림이 울리며 정적이 깨졌다.


[이재형 으로부터의 메시지]

하나가 갑자기 위험해 졌다면서? 네가 첫 발견자라고 하던데. 시간이 된다면 종합치료원 3병동 특무과의 메리 씨에게 하나의 약을 받아와 줄 수 있을까? 이 쪽은 아직 할 일이 많아. 오늘 밤 9시. 1병동 정문에서 보도록 하자.


그녀는 그 소리를 무시하고 할 말을 이어나가는데,


 “저어… 머리가 아파서요. 그래서, 잠깐-”


우욱, 하고 게워내는 시늉을 한다. 아니, 정말로 구토가 올라오고 있었다. 서운명은 쏟아지는 구토를 막기 위해 손을 입에 갖다 댄다. 이내 모든 것을 쏟아낼 기세로 구역질을 하며 뒷걸음질 친다.


-그붑, 그우우욱…!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서운명의 떨리던 다리조차 곧 바스라지며 코에서는 핏줄기가 이어져 내려왔다.


 이 모든 것을 막을 새도 없이, 그녀는 그대로 정신이 멀어져 가며 기절했다.


 본인의 의지였건 아니었건 간에, 서운명은 그렇게 종합치료원에 이송되었다.


 이재형에게는 답장을 하지 못한 채로. 서운명의 사념 속에, 이질적인 음성이 울려퍼진다.


─의지력이 지나치게 강하군. 하하, 사념 속에서 그 참혹한 꼴을 당하고도 평범하게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를 보이다니. 놀라워. 놀랍다고. 이건 혁명적인 사례야.

─사상감염에 걸려 놓고, 몸부림을 치는 경우는 처음 봅니다.


그리고, 곧 다시 겪게 될 고문의 내용을 읊조리더니, 그 음성은 피식 웃다가 사라졌다.


사상감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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