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

2년 전, 서울광역시경찰청. 젊은 지원은 건물 외벽에 기대 멍하니 허탈하게 하늘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녀의 곁에 다른 여자 경찰이 다가왔다.


“경위 님~ 왜 또 혼자서 한숨 쉬심까?”


“오혜원 순경, 일 안하고 뭐해?”


“잠시 삶의 여유를 가지는 검다. 어차피 벌레만 한 월급은 변함이 없으니까 말임다.”


“그런 걸 땡땡이라고 부르지, 보통?”


혜원은 실실 웃었다.


“뭐 그런 샘 임다.”


혜원이 품에서 전자담배를 꺼내자, 지원은 손으로 그것을 붙잡았다.


“미안하지만 오 순경, 담배는 피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오히려 담배 피는 게 스트레스라서 말이야.”


“경위님 또 어디서 스트레스를 받길래 그러심까? 그 ‘연구실’ 일임까?”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혜원은 코웃음을 쳤다.


“그딴 사회의 낙오자 조폭 새끼들 패는 건데 뭐 그렇게 스트레스임까?”


“네가 해 봐. 아무리 쓰레기 새끼들이어도 하루 종일 비명 듣고 있자니… 버티기 힘들어.”


“확실히… 저야 현장만 가니까 눈만 익숙해지면 괜찮은데 경위님은 아니겠네요.”


“오늘 일만 끝내면 일주일 동안 좀 쉬려고. 쉬다 보면 나아지겠지.”


“괜찮은 생각임다. 그런데 경위님 없으면 수사부가 심심하겠슴다~”


“나 하나 없다고 재미없어질거면 그냥 해체하라 그래.”


혜원은 씨익 웃었다.


“갈게. 다음주에 보자.”


지원은 차를 몰고 남영동으로 향했다. 사실 지원은 혜원에게 거짓말을 했다.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지원은… 임신을 한 상태였다. 이미 3개월이 지났고, 배는 점점 불러왔으며 몸도 예전만 못했다. 딱히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이왕 생겼으니 최선을 다해 길러보리라. 그녀는 그렇게 맹세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누구도 그녀가 임신한 것을 모르는 건 그녀가 결혼 사실도 숨겼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그녀의 남편 최명훈이 물었다.


“그냥 결혼했다고 알리면 안 돼? 경찰청은 출산휴가도 있다며?”


“내가 결혼했다고 알리면, 자기가 하는 일에도 지장이 생길 걸? 알려도 사실혼 정도로 축소해서 알릴거야.”


어느덧 차는 남영동 건물에 도착했다. 지원은 옷을 갈아입더니 배를 바라보았다.


‘점점 숨기기 힘들어지고 있어. 이제는 그 말대로 알려야 할 때야…’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며 들어온 방에는 이미 부하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지원은 방 한가운데에 매달린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 새끼야? 뭐라고 했더라… 박사파?”


“네, 행동대장이 수배 중이라 ‘심문’ 대기 중이었습니다.”


지원은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갓 성인이나 됐을 법한 얼굴에 깡마른 남자는 이곳의 분위기에 압도당해 벌벌 떨고 있었다. 지원은 팬티바람인 그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조폭 맞아? 뭔가 너무 샌님인데?”


남자가 벌벌 떨며 말했다.


“그, 그래요…! 전 조폭 아니에요 형사님! 그냥 잡혀 왔다니까요?!”


다른 경장이 말했다.


“잡아온 형사들이 맞다고 했습니다. 지난번에 잡은 삼합회 끄나풀도 저렇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확실히 그렇구만. 시작하자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바닥이 물로 흥건해지고, 지원을 비롯한 경찰들도 땀으로 전신이 젖을 무렵, 지원은 지쳤다는 듯이 말했다.


“지친다 진짜. 이 정도면 말해! 말만 하면 풀어준다는데 왜 말을 못하냐고!”


“전… 전 진짜 몰라요… 그냥 학생이라니…까요!”


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돌리고 일단 빵에 넣자. 심문하라고 했는데 저러다 진짜 죽겠어.”


남자의 머리가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갑자기 기계들이 일제히 경고음을 내질렀다.


“경위 님, 심박이 멈췄습니다!”


“뭐 해, 빨리 올려! 최 순경, 아드레날린!”


물에서 꺼내진 남자는 이미 축 처져 있었다.


“경위 님, 아드레날린이 투입됐는데 심박이 안 돌아옵니다!!”


“내려! 내가 직접 한다.”


급히 경찰들이 그를 바닥에 눕히자 지원이 손수 제세동기를 들었다. 그러나, 심박은 돌아오지 않았다.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마를 잡았다.


“제기랄… 죽었어.”


박 순경이 물었다.


“태울까요?”


지원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이 녀석 물건 좀 가져와 봐.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해. 시신은 일단 안치소에 넣어 두고.”


잠시 후, 순경 하나가 남자의 물건을 가져왔다. 지원은 그것을 살폈다.


“책가방, 옷, 전공책…”


하나하나 꺼낼 때마다 지원과 옆의 경찰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끝내 가장 마지막으로 나온 물건에서, 그들 모두가 말을 잇지 못했다.


“학생증… 고려대학교 61학번…”


지원은 바로 옆의 경장의 멱살을 잡았다.


“이게 뭐야!! 조폭이라며! 그 눈깔로 이거 똑똑히 봐! 이게 조폭 새끼로 보여?!”


그러나 그 경장도 충격에 빠진 건 마찬가지였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몰랐스, 습니다! 저도 그냥… 그냥 상부에서 범죄자랍시고 데려온 걸 받았을 뿐이라고요!!”


지원은 그를 내팽게치며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 뜯었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민간인을 죽였어! 내가 씨발 이 일을 3년이나 하면서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씨발… 씨발!!”


지원은 어쩔줄 몰라 하며 거친 호흡을 내뱉더니 갑자기 테이블을 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경위님!”


“뭐해! 빨리 구급차 불러!”


지원의 바디슈트 사이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지원은 병원에서 눈을 떴다. 눈 앞에는 명훈이 있었다.


“여긴…”


“병원이지. 반나절이나 누워있었어.”


지원은 쓰러지기 전 일에 침울해 있다가, 갑자기 문뜩 떠올랐는지 소리쳤다.


“아기는… 우리 아기는?!”


명훈은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지원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내 배에…”


“유산…이래. 안 그래도 임신하기 힘든 몸인데… 한 번에 강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만…”


지원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미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일에 대한 회의감이 물밀듯이 몰려들며 지원을 괴롭게 만들었다.


“미안한데… 잠시만 혼자 있게 해줘.”


명훈이 나가자, 지원의 눈에 그제야 전자 패드가 들어왔다. 그 안에 지원의 부하 경찰들이 남긴 편지가 있었다.


‘경위 님, 깨어나지 않으셔서 이렇게 남깁니다. 사망자는 원래 다른 쪽으로 가야 하는 자인데 행정 착오로 저희에게 왔다고 합니다. 경위 님이나 저희에게 징계를 내릴 생각은 없다고 하고, 사망자는 화장해서 유가족에게 인계했습니다.’


지원은 그 편지를 읽다가 괴성을 내지르며 패드를 집어 던졌다. 벽에 부딪힌 패드가 특유의 소리와 함께 박살이 나서 바닥을 구르자, 다시 명훈이 들어왔다.


“애꿎은 패드한테 화내지 마. 그리고… 자기 잘못 아니야.”


지원은 두 손으로 머리를 싸맸다.


“내가… 내가 죽여버렸어. 우리 아기도, 그 학생도… 내 손으로 죽여버렸다고!”


지원은 눈물을 흘렸다.


“내가 바보 천지였어… 애초에 쓰레기 조폭이라도 사람을 고문하는 것에 조금이라도 의구심을 가져야 했다고! 난… 난 그저 범죄자를 때려잡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뿐이었는데… 이게 뭐야…”


지원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서럽게 흐느꼈다. 명훈은 그런 지원을 꼭 껴안으며 다독였다.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명훈도 무어라 위로해주어야 할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날, 지원은 퇴원했다. 음료수 캔 정도 크기의 금속 통과 함께. 차에 탈 때까지 한마디 말이 없던 명훈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한강으로 가자. 거기가 가장 좋을 것 같아.”


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지 않아 자동차가 한강 둔치에 서자, 둘은 차에서 내려 금속 통을 열었다. 명훈이 물었다.


“내가 할까? 정 힘들면…”


“아니, 내가 해야 해. 내가… 엄마니까.”


지원은 통 안에서 재 한 꼬집을 꺼내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날렸다. 태어나지도 못하고 스러진 아기는 한줌도 되지 않는 재가 되어 사라져갔다. 지원의 손에서 재가 날릴 때마다 그녀의 눈물도 함께 흩어졌다. 마침내 모든 재가 바람이 되어 사라지자, 지원은 통까지 강에 집어 던진 다음 말했다.


“그만둬야 겠어.”


“뭐? 경찰 일을 그만둔다는 거야? 하지만… 자기가 원해서 한 일이잖아.”


“내가 언제 경찰을 그만둔데? 고문하는 자리는 못 맡겠다는 소리야. 차라리 최전선에서 조폭이랑 총질이나 하고 말지, 더 이상 그런 건 못해먹겠어.”


명훈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난… 찬성도 반대도 안 할 게. 하지만 그게 자기의 선택이라면 존중하겠어.”


며칠 후, 지원은 다시 경찰청에 복귀했다. 곧바로 향한 곳은 형사과장실이었다. 지원이 경례를 하자, 그 역시 경례로 화답했다.


“이 경위, 몸은 좀 괜찮나?”


“경위 이지원. 네, 괜찮습니다. 과장님, 부탁이 있습니다.”


“뭔가? 말하게. 어려운 것만 아니라면.”


“전출을 바랍니다. 외곽 경찰서에서 조폭들이랑 총질해도 되니 보내주십시오.”


과장은 놀란 얼굴로 지원을 바라보았다.


“왜… 왜인가? 자네가 간부후보생 시험을 차석으로 들어온 건 잘 알고 있네. 자네가 배치 받은 보직이며 하는 일도… 금방 승진해서 별도 달 수 있는 자리라는 건 알고 있나?”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솔직히 말하죠, 더 이상 사람 비명소리 듣는 건 하기 싫습니다. 차라리 최전선에서 구르는 것이 더 나을 지경입니다.”


과장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알겠네… 그렇게 원한다면. 하지만 자네의 선택일세. 아마 조폭들이 가득한 곳으로 배정될거야. 은평구나 도봉구 같은 곳. 경감으로 진급하겠지만 팀장이 아니라 형사과장 정도는 맡아야 할지도 몰라. 그래도 갈 건가?”


“네, 기꺼이.”


과장의 두 눈이 살짝 빛났다.


“가보게 이 경위… 죽지 말게.”


“네, 당연한 말씀입니다.”


다시 현재, 이야기가 끝나자 조 씨는 멍한 표정을 원래대로 바꾸었다.


“복잡한 과거야… 정말로.”


지원은 크게 개의치 않은 듯 말했다.


“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면 남편이 이 꼴이 될 일도, 당신이나 레나, 인호, 그리고 꼬마랑 알게 될 일도 없었겠지. 하지만 거기 그대로 있었다면 그 전에 내가 스트레스로 죽었을 거야. 일이 이렇게 꼬여버린 건 좆같지만… 내가 다른 길을 택한 것에는 전혀 후회 안 해.”


“미스터 최도 같은 말을 했었지. ‘내가 택한 이 길에 절대 후회하지 않아.’라고… 부부가 천생연분이야. 미스터 최도 이걸 봤어야 했는데.”


그렇게 말하던 조 씨는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아, 이야기 했던 ‘아파트’ 건 말이야. 거의 다 됐어. 원래 집주인만 어떻게 하면 끝이야.”


지원은 다시 담배를 물었다.


“원래 집주인이… 코주부파 간부라고 했었나?”


“그래, 일단은 가서 쉬어. 내일이나 해서 알려줄 게.”


잠시 후, 차가 LAD 앞에 서자 조 씨가 내렸다.


“정리가 되면 연락할 게.”


“그래, 잘 있어.”


지원은 집으로 돌아갔다.

----------

조금만 더 사이버펑크가 됐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