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 이상적인 복귀 소식 ::

통합 목록 및 소개 링크

https://arca.live/b/writingnovel/88236336



Chapter 3

:: 보안결계-기묘한 멜트다운-움직임 ::


12화 :: 이상적인 복귀 소식 ::




† 0 †


[알립니다]

□학생회입니다. 조사팀에 할당된 긴급 업무 <노이즈 텔레비전 수색>을 위한 파티에 2B037 이재형이 편성되었습니다. 명일 19시 중앙 광장에 모여 작전 세미나를 마친 뒤, 20시 경 편성된 파티가 작전에 투입될 예정이니 아래 정보를 숙지해 두십시오.


편성 인원 : 2B037 이재형 포함 2학년 6인

업무 내용 : 오브젝트 회수 임무

준비 사항 : 무력체계를 미리 동기화 하고, 무장을 정비해 주십시오.


[태창현 으로부터 온 메시지]

5시쯤 복귀다. 중앙 광장에서 보자. 내가 이번 시즌엔 너보다 많이 벌었을 걸?


"..."


메일이 두 통 왔다. 첫 번째 메시지는 적색 괴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 업무 지시. 그리고 두 번째 메시지는... 


「복귀?


이재형은 그 메일을 읽고 어떤 위화감을 느꼈다. 복귀? 복귀라고? 보안 결계는 고장 난 상태로 방치되는 중이다. 이쪽에서는 바깥으로 어떤 것도 나갈 수 없었다. 마탑 측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조치를 취할 때까지는 아카데미는 닫힌 새장 꼴이다.


한 번도 확인하려고 든 적은 없었지만, 뭔가 이상하다. 혹시 결계가 고장 나도 일방 통행은 가능했었을까? 


이재형은 짧게 올라오기 시작한 턱수염을 엄지손가락으로 비비며 1학년 때의 보안 결계 고장 사건을 떠올렸다.


보안 결계라는 물건은 작년 1년 동안 아홉 번이나 고장났었다. 물론, 이재형이 현장에 나가 있는 시즌을 제외하고 스쿨 시즌 동안에만 아홉 번. 즉 정확히 하자면 반년에 아홉 번 고장이다.


이번 건은 그 아홉 번과 무엇이 다른가. 바로 시간. 이전의 사태에서는 대부분 수 시간 이내로 고쳐졌고, 가장 복구가 느렸을 때가 하루 하고 반나절이 걸렸을 때다.


그러나, 이제는 복귀 후 이틀을 넘어 사흘이 다 되어가는데 결계가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뜻이었다. 아마 실종사건 탓일 것이다.


실종 사건 때문에 결계를 수리할 줄 아는 수리기사들이 사라졌고, 아무도 결계를 손 볼 수 없게 됐다.


보안 결계는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물건이라, 아무리 기술개발부 부장이나 그 윗선에 있는 테크놀로지 특화의 상임 권한을 가진 교수가 손 봐도 특별한 장비가 없으면 조작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이미 그 장비들은 수리기사들과 함께 증발해 버렸기 때문에, 아카데미 내부에서는 결계를 해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마탑 측에 이 상황이 알려지고 나서야 해결될 것이다. 이재형은 아카데미의 비상 매뉴얼에 그런 식의 문구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정상적으로 복귀한 거지?"


의문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IHTM을 통해 복귀한다면, 아카데미의 보안 결계가 고장나는 즉시 우회 착륙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그런 확정적인 메시지를 이재형에게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수상함을 감지한 이재형은 온갖 상상을 해 보지만, 현실성이 없어 모든 상상을 부정했다. 휴대폰의 해킹 때문이었다던가. 보안 결계가 방금 전에 고쳐졌다던가. 태창현이 아직 보안 결계의 고장을 모른다던가. 아마 태창현이 고장을 모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일 텐데. 


시계를 본다.


[4시 54분]


아니, 복귀 6분 전의 지금이라면 고장을 모를 리가 없었다.


교육동 쉼터 끝자락에 눌러앉아 있던 이재형은 즉시 중앙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 1 †


중앙 광장.


네모 타일과 가로등만이 있고, 텅 비어있는 원형의 공터. 


아무리 필드 시즌 막바지라 해도, 다음 주면 스쿨 시즌이 돌아올 텐데.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 보인다. 1학년 학생들이 너무 많이 실종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학년은 이제 400명 정도가 고작이고, 그 400명 조차도 대책 회의 막바지에 한가민이 발표한 주의사항에 따라 5시에 (1학년 1학기는 고등학생의 수업시간을 따라가니까)수업이 끝나고서는 기숙사로 돌아가 조용히 있으라는 규칙을 잘 지키고 있었다.


다음주 2학년의 스쿨 시즌이 시작되면, 아마 1학년들은 시작의 파티 결성식을 할테지.


이재형은 문득 초등학생 때 있었던 크라운 바이러스 판데믹 사태를 떠올렸다.


그때 학생들은 억울하게 학교와 집만을 반복했다. 새로운 법규가 만들어져 저녁 시간이 되면 학생들은 돌아다닐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왜 학생만 그랬는지는 알 법도 했다. 어린 학생은 투표권이 없으니까.


만 16세가 되기 전에는 투표권이 없으니 아무래도 좋다는 얘기다. 이곳의 1학년 학생들도 투표권은 있을지 몰라도, 아직은 학생회 권한도 없고, 아는 교수님도 없고, 어떤 권한도 없는 입학 3주차의 어린아이들일 뿐. 아카데미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좋다는 똑같은 결론이 날 것이다.


잡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거의 한가운데에 도달했다.


이재형은 위를 올려다본다. 가로등이다. 그 가로등은 중앙 광장의 가장 중앙에 있는 가로등으로, 맨 아래엔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가로등>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 역시 오브젝트. 이 세계 누구나 아는 역사 상식으로 비추어 보아, 아마 그 가로등은 최소 500년 이상 연식을 자랑할 것이다. 대격변이라는 사건이 터지기 전의 물건으로 보이니.


꼴이 엉망이다. 여기저기 녹슨 자국이 흥건히 젖어있고, 전구 주위의 캡 역시 아카데미의 최신식 마력공급체계를 적용한 예쁘장한 것과는 달리 교류 전원을 사용하는 이질적이고 투박한 형상이었다.


"이봐, 이재형! 어딜 보는 거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카카카 웃으며 재형을 부른다. 이재형은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뭣. 어떻게... 무사히 복귀한 거지?」


금발. 태닝. 그리고 양아치. 줄이면 금태양이 놈의 생김새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시작의 파티 동료로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지내다 보니 놈이 그렇게 양아치같은 놈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재형은 그가 양아치는 아니지만, 한량은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태창현은 허세가 가득한 그의 양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한 쪽 엄지손가락을 뺀 채 재형이 서 있는 가로등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전투용 실드코트가 바람에 날려, 무슨 느와르 영화의 고독한 주인공처럼 보였다.


"네가 그저께 복귀했다고? 보나마나 대충 끝냈겠지."


지금 아카데미의 상황이 어떤지 알려주게 되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이재형은 잠시 보안 결계와 대규모 실종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접어 두고, 가볍고 일상적인 이야기만을 하기로 했다.


「목소리가 큰 것을 보아, 한 건 했나 본데」


"흐흐흐. 이십 칠만 포인트! 이번 시즌의 -운급 임무를 세 개나 처리했지. 이번엔 내가 이겼을 거다!"


터무니 없이 작은 액수. 이 멍청한 남자는 자기 과시에 푹 빠져 있어, -운급 임무를 이야기 해 놓고 구체적인 등급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포인트의 액수로 보아 -운급 최하위권 임무를 처리 한 것으로 보였다. 이재형은 코웃음쳤다.


"뭐야. 난 오십만 쯤인데?"


"뭐, 뭣? 어떻게 된 거야? 너. -성급 임무라도 한 거냐? 하지만, 아직 2학년 첫 시즌이라 그 정도로 위험한 임무는 금지일 텐데?"


"아마 층운(層雲)급 임무를 세 건 처리한 모양이네."


"이 새끼... 어떻게 안 거냐?"


"네가 방금 얼마 벌었는지 알려 줬잖아 멍청아."


"아. 그랬지 참."


"난 권운(卷雲)급 두 개랑 적색성(赤色星)급 하나였어."


"벌써 -성급 초반 까지도 도전하는 거냐..."


"하하, -성급 초반 건이 여러 모로 차라리 깔끔했달까. 마지막에 좀 무리해서 권운급 하나를 더 도전했는데, 일이 꼬여서 생사를 넘나들었지."


"아아, 젠장. 또 졌구만. 그래도 올 여름쯤엔 나도 학생회 할당량을 채울 것 같아."


"뭐, 그 때쯤이면 지원자가 많아서 준비 좀 해야 할 걸? 양만 채운다고 가입이 수월한 건 1학년 때 미리 할당량을 달성해서 후보 그룹에 든 경우에 한해서야. 난 작년에 채웠지만, 그... 알잖아. 하나 때문에 포인트를 거의 전부 써 버린 적이 있는 거. 그거 때문에 작년 겨울에 입회 처리가 안 돼서 올해 입회 예정으로 밀린 것 뿐이라고."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3학년 진급시험 보고 나서 채워도 상관 없지 않냐? 규정엔 학생회 가입에 학년은 따지지 않는다고 하잖아."


"3학년 진급시험 볼 때 쯤이 할당량 채우기가 가능한 마지막 기간일걸. 그 이후로는 경우에 따라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수준까지 할당량이 치솟아. 할당량을 채우고 선발 준비까지 가능한 시점은 2학년 중반... 많이 봐줘서 중후반까지가 마지노선이라고 볼 수 있지."


"난 그럼 어느 정도를 목표로 해야 돼? 솔직히. 스쿨 시즌은 정신도 없고, 포인트 관리도 왠지 더 빡센 느낌이라고. 넌 잘 하잖아. 좀 알려 줘. 임마. 저녁은 내가 산다."


"지금 네 상태로는 권운급 세 건 수준이 돼야 빠르게 입회 할 수 있을 거다."


"이럴 땐 애매한 재능을 저주하게 된단 말이지. 넌 그래도 레드 쪽에 재능이 몰려 있잖아. 난 어중간하게 블랙 적합성이 떠서 말야. 솔직히 포지셔닝이 어려워."


"뭐, 포지셔닝 잘 하는 방법은 네가 맛있는 저녁을 사면 알려줄게."


"하하하. 그래. 그럼 밖에 나가서 먹는게 좋지 않겠어?"


"아아, 아니. 지금은 사실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어. 그렇게 됐다."


"무슨 소리야?"


"미안하지만, 금방 알려줄 테니까. 오늘은 아카데미 안에서 해결하자."


"교내 식당은 조오올라 맛 없다고. 알잖아?! 포인트 긴축 할 때나 먹는 거지 거긴."


"이런... 곤란한걸. 생각 좀 해 보자."


이재형은 떠올린다. 지금은 그다지 배고프지 않다. 거기에, 아까 전 받은 또 다른 메시지. 


그 메시지대로, 무장을 정비하고 무력체계를 동기화해야 했다. 그러려면 아시아 층으로 올라가는 인증절차가 필요했다. 


심지어 오늘은 저녁 시간에 종합치료원에 들러 서운명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 있었다. 유하나가 쓰러진 채 발견된 것에 대해서. 


그리고 어째서 그 때 방송실에서 돌아오지 않고 하나를 만나러 간 것인지도. 


또, 서운명과 이야기가 끝나면 하나가 잘 있는지 확인해야 하므로, 늦더라도 3병동 특무과에 방문해야 했다. 


3병동은 저녁 시간 방문에 금기가 걸려 있어서 방문하기 전에 미리 알려둬야 하므로, 박사님에게 전화도 걸어 둬야 한다. 기숙사에 쌓인 과제들은 덤이었다.


할 일이 정말 많았다. 하루만에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제처럼 저녁 따위를 여유롭게 먹으며 놀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재형은 결정했다. 간단히 때워 버리는 것으로. 그러는 사이에 태창현이 빈정대고 있다.


"생각은 언제 끝나는 거야? 뭐, 어쩔 수 없군. 내가 사는 거지만, 가장 싼 교내 식당에 가는 수 밖에..."


"아, 자판기로 하자."


"뭐? 일단 알겠는데.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거야? 식사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 않아?"


재형은 급히 말을 돌린다.


"아, 결계 고장났을 때 너랑 웨니랑 자판기 같이 가면서 친해졌잖아. 그때 메뉴가 뭐였더라?"


"아마 핫도그였을걸? 아닌가. 타코야끼였나?"


"핫도그였어."


"오늘은 뭐 나올까?"


"아마 금요일이니까 브리또...?"


"음... 브리또라. 너 매운 거 잘 먹냐?"


"아니. 네가 더 잘 먹지."


「매운 건 질색인데...」


태창현과 이재형은 잡담을 하며 자판기가 있는 제 2원반으로 향한다. 조그마한 옛 연식의 교량을 지나, 자전거 도로가 있는 트랙을 따라서 걷는다. 백색 석재 타일로 잘 빚어진 거리와 보석수로 된 가로수, 소담스러운 돌탑 장식이 눈에 띈다. 가로수 곳곳에 작년 겨울의 크리스마스 전구 장식이 아직 철거되지 않은 것이 보인다.


이어선 자판기다. 세 대가 줄지어 서 있어, 각각 음료, 레토르트 식품, 간식이다.


또, 학생들이 몇 명 몰려있는 것이 보인다. 모두 1학년으로 보인다. 무슨 일일까?


"저리 가! 내가 먼저 줄 섰잖아!"


"내가 여기 먼저 자리 잡고 있었던 건 기억 못하고?"


"꺼져. 줄 먼저 슨 놈이 가지는 거지."


"어쨌건 양보 못해."


"너나 나와!"


좋지 않은 기류. 1학년이면 보통 저렇게 싸우는 경우는 드물다. 인성 검사를 마쳐야 입학할 수 있기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다는 것은 정말로 이유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태창현은 그 싸움에 다가갔다.


"이야~ 훈련 시키면 딱 좋을 맛있어 보이는 1학년이네 그래. 카카카."


자판기를 둘러싼 1학년들의 어깨를 가볍게 걷어내고 태창현은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야. 거기, 왜 싸우냐?"


다소 진지한 표정이었기에, 후배들은 겁을 먹었다.


"으, 으악! 무서운 선배다!"


"뭐, 뭣? 아니아니, 무슨 일로 싸우냐고 묻잖아."


"히익..."


"야, 태창현. 그렇게 인상 쓰니까 애들이 무서워 하잖아. 안그래도 금발 태닝 양아치 상이면 부드럽게 다가갔어야지."


"뭐야, 그런 문제였냐."


태창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재형은 머리를 짧게 민 여학생에게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아카데미에 이제 식량 공급이 끊길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결계가 망가진 탓이 크겠네."


"네. 선배 말대로 보안 결계가 망가진 뒤로 매일 아침 식당에 들어오는 보급이 더는 오지 않고 있어요."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재형에게 다툼의 이유를 답해주었던 원블럭컷의 여학생은 언짢은지 눈길을 피했다.


"뭣? 결계가 망가졌어? 그럼 난 어떻게 복귀했냐고! 임마!"


"뭐야, 너도 그럼 몰랐던 거야?"


"태창현. 이번엔 내가 살게."


"상남자는, 한 입으로 두말 안한다. 내가 사기로 했잖아?"


"됐어. 이 1학년들 불쌍해서 어떻게 해. 넌 얘네 다 사줄 수 있어?"


"그 정도로 여유 있지는 않지... 나도 모으는 중이니까."


매운 맛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는 자판기의 브리또를 일곱 개 샀다. 다섯 명의 1학년생들에게 나눠주고, 재형과 태창현은 그곳을 빠져나왔다.


동봉된 급속조리팩 안에 브리또를 넣고 돌출된 끈을 당긴다.


정제 테르밋 반응이 시작되고, 레토르트 브리또가 그 속에서 익어갔다.


매콤한 냄새가 포근히 올라온다. 눈이 매울 정도다.


혀가 데일 정도로 뜨겁고 매운 브리또를 먹으며, 이재형은 다음 할 일을 생각한다. 


「정비도 하고, 슬슬 동기화실에 들러야겠어. 윽. 더럽게 맵네 이거.」


"우왓! 이 환경 호르몬 맛과 어우러진 매콤함. 아카데미 최고 인기 상품 인정이다."


재형은 내심 그가 남자 유하나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입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닥쳐... 쓰읍."


이재형과 태창현은 아시아계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