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한 장면을 그립니다

탁월한 비유는 아니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소설은 영화고 시는 사진이라 이해하면 알기 쉽습니다.

그리하여 누군가는 시를 영원한 현재라 부르기도 합니다.


문학은 작가의 심상 세계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잘라낸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작가의 내면 세계를 외부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작가의 업이자 평생의 과제입니다.


내면세계를 인상적으로 타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시는 텍스트를 이용한 예술이기 때문에 텍스트의 장점을 극한으로 끌어내야 합니다.

시가 언어의 정수라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붙여진 것이겠지요.

텍스트의 장점은 텍스트가 일종의 기호라는 것인데요.

기호이기 때문에 텍스트는 개개의 경험에 의존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사과를 먹는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런데 이 사과는 어떤 사과일까요. 독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사과이기 때문에 독자의 수만큼 사과의 형상이 있습니다. 모두 똑같은 모양의 사과를 떠올릴 수 없거든요. 이게 기호화된 언어의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타인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나의 경험을 반추하는 작업이 선행됩니다.

그게 문학의 특징이고, 문학이 일반적인 글과 다른 이유입니다.

논문은 완전히 이해하면 다시 그 논문을 볼 필요가 없지만, 문학은 읽어도, 읽어도 새롭습니다. 나의 내면이 변화하면 해석도 달라지기 때문이죠. 텍스트가 기호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문학의 위대한 점입니다.


그렇다면 시는 기호의 성질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을까요.

제 생각엔 시어와 묘사가 주된 기교 같습니다.

김기택 시인의 '먹자골목을 지나며'로 예시를 들어볼까 합니다.


먹자골목을 지나는 퇴근길
돼지갈비 냄새가 거리에 가득하다
냄새를 맡자마자 어서 핥으려고
입과 배에서 침과 위산이 부리나케 나온다
죽은 살이 타는 냄새임이 분명할 텐데
왜 이렇게 달콤할까
이것은 죽음의 냄새가 아니고 삶의 냄새란 말인가
필시 그 죽음에는 오랫동안 떨던 불안과
일순간에 지나온 극도의 공포가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 냄새에는 그런 기미가 전혀 없다
오로지 감칠맛나기만 해서 천연덕스럽고 뻔뻔스럽다
정말 이것이 죽음의 맛일까
비리고 고약한 냄새인데
혀와 위장이 잠시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죽음을 품어 아름다워지고 풍요해진 산처럼
한몸 속에 삶과 죽음을 섞어놓으려고
서로 한 곳에서 살며 화해하게 하려고
혀와 위장을 맛의 환각에홀리게 한 건 아닐까
지글지글 타고 있는 것이 고기이건 시체이건
돼지갈비, 그 환각의 맛과 냄새에서
잠시도 벗어날 수 없는 먹자골목'



화자는 퇴근길에 먹자골목을 지나고 있네요.

거리에는 돼지갈비 냄새가 가득합니다.

그 풍경을 후각과 함께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는 한 장의 사진이니까요. 시인은 지금 먹자골목에서 고기 굽는 냄새를 맡고 있습니다.

화자는 먹자골목에서 고기 굽는 냄새를 포착합니다.

한 장면으로 삼을 객관적인 '대상'이 있는 거죠.

그리고 이 대상에 대한 '느낌'을 말합니다. 죽은 살이 타는 냄새인데 왜 이렇게 달콤할까?

제 생각에 대부분의 시는 이런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한 장면으로 보여줄 대상을 묘사하고

그에 대한 느낌을 써내립니다.

그래서 시는 텍스트지만 이미지의 예술입니다. 대상이 있어야 하거든요.

대상은 텍스트이기 때문에 기호화되고

기호화된 대상을 독자는 자신의 경험에 반추하여 해석합니다.

독자마다 자신만의 먹자골목이 있는 셈이죠.

모두가 먹자골목을 떠올리지만 먹자골목은 독자의 수만큼 존재하기 때문에 독자의 해석은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때 작품은 작가보다 독자가 더 잘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얘기는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그렇다면 이런 글은 어떤가요.

'쓰레기는 바닥에 버리면 안 된다.'

물론 독자들의 수만큼 독자가 떠올린 쓰레기의 형태도 각양각색일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은 독자의 내면세계에 관여하기가 어렵습니다.

김기택의 시는 특정 대상과 느낌만을 전할 뿐 무언가를 지시하지 않습니다.

작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도울 뿐 트인 시야로 독자가 무엇을 할지 그 이상 관여하지 않습니다.

대상을 포착하고 느낌만을 전합니다.
그것에서 무엇을 얻어갈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듯한 사양이 있습니다.


행동을 강제하는 지시와 교훈은 독자에게 때때로 폭력적이지 않은지.

그런 생각이 들어 몇 자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