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넷이 탄 차는 비를 쏟아내기 일보직전인 하늘 아래 아스팔트 위를 달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형과 머리가 하얗게 샌 중년의 병인(病人), 콧수염을 기른 군인형의 남성과 아무 말도 없이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탄 차 안의 공기는 유난히 이상했다.


"콘스탄틴, 그 아이를 굳이 독일로 데려가야겠나?"


병인의 말에 내 옆에 앉아있던 남성이 대답했다.


"자기 스스로 독일로 데려가달라고 간절히 빌었는데 어떻겠습니까, 형님. 계속 이 나라에 있다가는 자신이 죽을 것 같다고 해서 이 아이를 거두는 겁니다."


그렇다. 나는 내 고향을 떠나 독일로 가려고 이 차에 타고 있다. 


"제 조카, 아니 이제 곧 제 아들이 될 아이니 제가 도맡아 키우겠습니다."


"이 아이의 친부로서 말하는데, 이 아이가 혹시 너의 일을 이어받겠다고 스스로 말했나?"


그 말을 들은 내가 남자 대신에 말을 꺼냈다.


"예, 아빠. 제가 직접 말했어요."


군인같이 생긴 남자를 노려보던 병인-나의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가장 끔찍한 고통을 겪은 너가 굳이 네 삼촌의 일을 이어받겠다고 나서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겠다."


그의 말투는 나의 선택을 탓하는 거라 생각할 수 있는 말투였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동정하는 눈빛인 것 같았다. 10대 시절의 청춘과 꿈을 억압으로 제대로 펼칠 수 없게 되고 심신에 상처를 입은 걸로도 모자라 가해자의 정당한 처벌을 받지 않는 모습을 보고 폐인이 된 내가 스스로 전쟁터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말을 했으니까 그 걸어가는 대상이 정상인이라도 걱정하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하물며 그 대상이 폐인이라면 더더욱 걱정스러울 것이다.


"아빠의 걱정은 이해가 되지만, 이미 제 마음은 독일로 향해 있습니다. 그 개자식과 같은 국적으로 사느니 독일로 가서 새 삶을 살겠습니다."


"그래도...."


"그 늙은 돼지(독일에서는 가장 심한 욕이다.)들은 단지 쾌락을 위해 저를 희생양으로 썼어요. 같은 나라에서 같은 국적을 산다는 것도 싫고, 비참한 허물을 쓰는 것도 싫어요! 이렇게라도 안하면....."


말을 하다가 무언가가 갑자기 올라오는 듯한 느낌 때문에 고통스러운 감각이 온몸을 짓눌러 도중에 멈췄다. 한동안 켁켁거리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자, 눈물 몇 방울이 눈에서 시트로, 그리고 바지로 떨어졌다. 그러다가 설움을 못 이기고 통곡을 할 뻔 했으나, 간신히 삼키고 할 말을 이어갔다.


"위안이 될 수가 없을 것 같다고요....."


이 말을 끝으로 다시 눈에서 눈물이 계속 나와 얼굴을 적셨다. 아무리 말을 그렇게 했지만, 고향을 떠나는 것이 쉽지 않고 무엇보다도 마음 전체가 무더기가 된 상태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택했던 것이라서 그런지 눈물이 이전에 흘렸던 것들보다 많이 나왔던 것 같았다. 그렇게 소리없이 울고 있는 채로 차가 계속 나아가다가 공항에 도착하자 내가 들고 온 짐을 트렁크에서 꺼내 정문으로 간 뒤에 형과 아버지의 배웅을 받았다.


"잘 가라. 이ㅎ... 아니, 미하엘.(Michael)"


"여기서 받은 상처, 독일에서는 잊길 바란다. 전(前) 아들아."


"안녕히 계세요, 아버지. 그리고 잘 지내셔, 형님."


둘에게 답례를 하고 중년의 남성을 따라 공항에 들어선 뒤에 출국수속을 하고 비행기에 탔다. 예액한 비즈니스석에 앉고 나서 자리에 앉자마자 끔찍한 기억들이 비행기를 타는 것을 막기 위해 약을 먹은 뒤에 비행기의 안내방송을 들으며 비행기에 몸을 맡기며 몇 시간을 날아가다가 착륙하기 전이 되자, 안내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안내방송이 뭔가 이상했다. 


"코만단트(Kommandant, 독일어로 지휘관), 코만단트!"


어느 남성의 목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차 안에서 특수부대처럼 무장한 사내 3명과 함께 그들의 군장과 동일한 채로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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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쓰던 <미하엘>의 설정을 조금 갈아엎어서 수능 끝나고 새로 만들려 하는데 기다리기 너무 힘들어서 미리 프롤로그 한 번 써보았습니다. 그나저나, 리메이크본의 제목은 뭘로 하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