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곳에서 빛의 존재는 위대하다. 

 돌아오고 몇 주가 지났던가. 입원하는 동안 적어두었던 터무니없는 글을 읽으면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약을 먹고 나서는 강박사고가 들어오지 않는다. 생각들이 내 주위를 돌며 쪼아대던 것들이나 그곳에 상처가 난 것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무언가도 이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비로소 검은 망토를 걷어내고 본 모습을 보니 아무것도 없는, 외롭고 초라한 무언가였다. 병동에서 나오고 하루 이틀쯤 되었을 때는 밀려있는 것들을 하느라 바빴지만, 그것도 잠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놀거리들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흥미는 사라졌으며 외롭고, 따분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럴 때면 순식간에 사고들이 들이닥쳐 뇌 내를 풍비박산 내놓곤 했지만, 그것도 이제 없다는 것이다. 이게 약의 영향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면,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게 가치가 있는지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나의 수기이다.

 

"김주영 씨"

 

 "아, 네"

 

 갑작스럽게 내게 말을 걸어온 그녀는 겉보기만으로도 간호사 중 고참인 줄 알 수 있는 나이대로 보였다. 오늘 의사 선생과 이야기 한 것으로 끝난 줄 알았던 나는 피로를 꽉 입에 물고 그녀와 대화를 시작했다. 

 

 "혹시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 괜찮습니다."

 

 "혹시 여기 오게 된 계기가 뭔가요?"

 

 갑작스럽고도 당황스러운 질문이다. 대강 의사 선생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도라는 강한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약한 화살과 같은 물렁물렁한 그녀의 질문은 마치 공적인 질문과 같은 느낌은 들지 않게 하려 노력함이 역력했다. 마치 '나는 네게 진심을 다하려해'라는 말을 대신하여 질문으로 묻는 느낌이었다.

 

 "군대 안에서 버티는 것이 힘들어 왔습니다."

 

 "주영 씨가 힘들었었던 부분을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요?"

 

 "가만히 있으면 여러 생각들이 들며 화가 나서 땅을 치거나 자해를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한 것 때문에 참지 못해 여기에 왔습니다."

 

 꽤나 당당히 내 의견을 전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정신병원에 온 환자에게 진심을 다해 물었지만 그로인해 상처받은 눈을 하고 있었다. 괜히 그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있는 방에는 나를 포함하여 총 4명이 있다. 아저씨 하나와, 인면어를 닮은 젊은 사람, 사회에서 인기가 많을 것만 같은 사람까지 있었다. 사회라는 단어가 사회생활을 하며 가면을 썼던 기억을 물에 둥둥 떠다니는 시체처럼 올라오게 한다. 하지만 여기서까지 그런 더러운 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락에서 못 빠져나와 허우적거리는 이 사람들과 섞이고 싶지 않았기에, 이들과 대화뿐 아니라 쳐다보지도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조금 지나자 의사가 와서 상태가 어떤지 등을 물었다. 주기적으로 올 것이며 나는 다른 환자에 비해 중증이 아니기에(이 부분은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기존에 영화와 같은 미디어에서 본 바로 정신병원의 높으신 분들에게 괜히 입을 놀려서 험한 꼴 당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음을 상기하며 함부로 행동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침이 되자 젊은 간호사 한 분이 와서 물었다. 여자라는 존재에 대해서 민감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여자를 대할 때에는 대부분 부끄러움이 먼저 나타나도록 했었는데 이는 지금 생각하면 이성에게 호감을 쌓으려고 하는 내 밉보이는 수 중 하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주영 씨, 잠은 잘 주무셨나요.”

 

 “네”

 

 “일어나셨을 때 입이 마르셨었을 거에요.”

 

 “아뇨. 괜찮습니다.”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는 간호사분은 마지막 점호 차례였던 나에게 의무를 다하고는 문밖으로 나갔다. 어째서 나에게 입이 말랐냐고 물어본 것일까. 분명 입이 마르긴 했다. 하지만 먼저 어째서 이를 알았냐는 생각이 올라오기보다는 이따금 자고 일어나면 입이 마를 때가 있었기에 이 때문인가 싶었다. 약이라는 특별한 이유가 없이 말이다. 

 특별이라는 단어가 나를 상기시켰다. 

 혹시 내가 똥을 싸는 사건만으로도 특별한 주체가 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어느 누가 그랬듯,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관심을 준다는 등의 말이다. 하찮은 나는 무엇 하나 가지고 있지 않기에 내게 관심은커녕 욕이나 돌아오겠지만, 그렇더라도 글을 쓰고, 관심받고 싶은 이 기분은 가시질 않는다. 

 나는 머리를 정리하고 조금 쉬는 동안 아침 식사가 준비되자, 사람들이 병동의 가장 큰 방으로 모인다. 이곳 또한 내가 머무른 방과 같이 바깥과 통하는 창문이 빛만 볼 수 있도록 블러처리가 되어있었다. 침실 밖으로 나가자 어제 보지 못했던 병동의 인원들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팔에 자해 상처가 비처럼 쏟아 내린 듯한 아이나, 탈색한 머리와 뚱뚱한 몸뚱이를 삼킨 조현병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간이 적게 된 식사를 조금 먹고, 아침 약을 받아먹는다. 지금은 어색한 이 루틴에 나는 며칠 안 가서 이에 적응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와중 날파리 떼처럼 움직이는 생각들, 이에 대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졌었다고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게 정신병동까지 와서 끔찍하게 서 있는 산송장들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는 날파리 떼들은 나를 쿡쿡 찌르더니 그 강도가 살이 뚫려버릴 정도로 강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만약 살이 뚫렸었더라면 그 아픔을 상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아픔은 겪어보지 않았기에 대강 상상하는 대로의 자그마한 고통이 뚫려있는 살가죽 안으로 파고들어 온다.

 

 (쾅)

 

 이렇게 나를 잠식해 가는 생각을 떼어내기 위해서는 어딘가를 내려치는 행동이 필요하다. 금방 나를 괴롭혔던 생각이 내 행위를 보고 웃음을 지으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피곤하다. 어젯밤부터 들려왔던 아저씨와 어떤 젊은 사람과의 코골이 굉음의 합창이 나를 자지 못하도록 내 눈꺼풀을 꽉 붙들었었다. 그때 내게 충동이 갑자기 찾아와 침대를 내려쳤었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는 동안 내 상태를 살피려 의사가 왔다. 병동 생활은 어떤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내게 물어보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코골이 때문에 힘들어서 잠을 못 잤고 그 때문에 화가 나서 침대를 쳤다는 이야기를 했다. 의사는 위협적인 본 행동들은 좋지 않다며 자제하라고 말하며 나의 모친이 병동에서 읽을 책을 가져왔다고 곧 반입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내일부터는 검사를 하게 될 것이라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 타인이 하는 말에 스스로가 지레짐작하는 것에 지친 나는 이런 검사를 통해서 알지 못하는 나의 부분을 확정 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보다 더 기뻤던 것은 지능 검사이다. 흔히 IQ라고 하는 지능 지수를 측정할 것이라는 생각에 좋은 결과를 가지는 나를 상상하며 기뻐했다. 

 갑자기 온 의사 선생에게 방을 옮겨달라고 이야기 못 한 것을 간호사에게 부탁하니 안된다는 말이 돌아왔다. 어떤 이유가 있는지 인기척 없는 옆 방을 살펴보자 내 동나이 대의 어떤 남자가 있었다. 분명 이유가 있어서 그 남자 혼자 있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뒤를 돌자마자 안 된다고 대답한 간호사에게 반항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갑작스럽게 날파리 떼와 같은, 혹은 검은 망토로 나를 갇히게 하는 것만 같은 생각들이 나를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새로운 행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침대를 친다든가 하는 전에 있던 것이 아니다. (물론 이것 또한 계속하고 있지만) 바로 약을 달라고 간호사에게 요청하는 것이다. 약을 먹으면 감정이 나아지지만, 그게 약을 타는 본 이유가 아니다. 나를 쑤시는 기분 나쁜 생각들이 말하길 그저 나는 아픈 척하는 것이라며 나를 쏘아댄다. 여기까지 와서 아프지 않으면 그것 또한 이상할 뿐 아니라 내가 아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라고 말이다.

 

 책이라는 것은 정말 별거 없는 사람도 별거 있어 보이게 해주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 이유로도 읽곤 하는데,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읽으며 이따금 올라오는 생각의 주의를 줄거리로 바꾸곤 했다. 마치 불타오르는 듯한 감정의 고점을 몰입이라는 대상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이다. 빠르게 달리는 물을 이용해서 전기를 생성해 내는 발전소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 물은 흐르지 않으면 썩어버려서 해충의 모태가 된다. 들쭉날쭉한, 기복이 심한 내 감정이 그러했다. 

 거의 다 본 책을 잠기는 눈 때문에 아쉽게 정복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만큼 아쉬운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에, 억지로라도 눈을 부릅뜨고 책을 다 읽었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독서란 그저 적개심의 바다에 빠져들기 전에 잠시 머무는 섬 하나에 불가하다는 것을 말이다. 

 침대에 눕자마자 졸음이 몰려온다. 하지만 약의 영향인 건지 낯선 잠자리 때문인 건지 눈만 끔뻑 끔뻑거리고 있다. 집에서 편하게 잤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몸을 비틀면서까지 잠에 들려고 한다. 

 

 어째서인지 발이 차가운 것을 느끼고 깨어났다. 분명 양말을 신고 잤었을 텐데 차가운 걸 보니 잠결에 양말을 벗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다시 잠에서 깨어나니 양말이 벗겨져 있다. 이때부터 다른 누군가가 고의로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정신병동이 지니는 순수하지만 악의가 있는 분위기가 의심이 들게 한다. 누가 그런지 모르기에, 양말을 벗긴 사람을 찾으려 자는 척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 양말을 벗긴 사람이 인면어를 닮은 그 이였음을 알게 되자 나는 그와 다르게 병의 이름도, 더 나아가 병이 존재하는가조차 모른다는 것을 상기했다. 이번 일을 크게 불려 나를 관찰하는 이들에게 확실함을 심어주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는 계산을 빠르게 하고 그에게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거에요?"

 

 "아니.."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었잖아요."

 

 "….."

 

 "아니 씨발 지금 뭐 하는거 냐고 물었잖아. 네가 내 양말 벗긴 거지."

 

 "왜.. 욕을하고 그러세요."

 

 "이 씹새끼야 네가 내 양말을 멋대로 벗겼으니까 그렇지!"

 

 "왜 욕을 하고 그러시냐고요!"

 

 "이 씨발년이!"

 

 방안의 모두가 깨어났다. 나는 그와의 트러블을 크게 만들기 위하여 뒤가 침대임을 확인하고 그를 밀쳐버렸다. 

 

 "어미 뒤진 새끼가!"

 

 "개새끼야!"

 

 그가 말했다. 침대에 넘어진 그는 거대한 몸뚱아리에 붙은 팔다리를 그 누운 그 자리에서 허우적대며 공격했다. 이대로 더 가다간 나도 위험해질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지금 뭐 하시는 거에요! 일단 둘 다 진정하세요."

 

 당직 남자 간호사가 마침 좋은 타이밍에 와 큰 싸움은 면할 수 있었다. 자초지종을 씩씩거리며 각자 설명하고 그와 나는 각각 다른 독방으로 격리되었다. 

 이렇게 내가 꾸민 일이라도 마음이 몰두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그치기가 힘들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특히 감정적인 부분에서 그러하였는데 누군가 찌르면 터져버리는 풍선 같았다. 터지는 그 순간, 누구보다도 강한 인상을 남기지만 결국 쭈글쭈글하고 초라한 풍선 조각만이 남는다. 그 초라함이 너무 싫다. 그 초라함을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들어왔지만 역으로 정신병원에 와서까지 그걸 고치려 하는 내 모습을 보니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인 인생을 보면 나를 지워가는 과정의 중간이라고 느꼈다.

 

 새벽이 지나서 낮이 되자 여러 테스트를 치렀다. 그중에는 가장 기대하던 지능 검사가 있었고 이에 대해서 성과를 내는 것을 바랐지만 시간이 부족했기에 아쉬웠다. 사실 이런 것들은 병풍일 뿐이다. 오늘 새벽의 사건 이후 침실로 돌아가며 본 사람들의 눈초리가 달라진 것이 가장 눈에 띄었다. 15살 정도까진 항상 있었던 일이다. 그 이후에서야 겸손한 척을 하며 나를 감춰왔지만, 어떤 일을 일으키고 남아있는 부산물인 시선은 항상 나를 향해있었다. 이를 다시 마주치며 본래의 나를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지나가며 내 혼잣말로 욕을 하는 것을 들었다. 분명 욕을 들었을 당시에는 기쁜 감정이 내 머리속을 둥둥 떠다녔다. 내 머릿속에서는 분명 분노한 그가 매우 큰 망치로 내 머리를 내려찍는 것을 반복해서 보였기에, 그저 한마디 욕을 하고 간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렇게 생각할 게 나는 그의 부모를 욕했고 상황상 다른 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를 내팽개쳤다. 분명 먼저 시비를 건 것은 그이지만 손해는 그가 훨씬 컸다는 것이다. 분명 그랬었다.

 

 하루가 지나고는 그렇게 생각했던 게 달라졌다. 약을 먹어도 먹어도 화가 자꾸 올라온다. 또 화가 꺼지면 저기 인면어를 닮은 사람이 내 뒤통수를 큰 망치 같은 것으로 후려치지 않을까.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운 삶을 만든 부모에 대한 원망, 그 부모의 부모···결국 첫 사람을 만든 신에 대한 원망이 자꾸만 떠오른다. 마치 주어진 망치는 하나뿐인데 수없이 많은 두더지가 쳐도 쳐도 올라와 어디를 내리치던 소용이 없듯이, 약을 먹어도 먹어도 어차피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마치 육지의 판이 갈라져 지진이 나서 생긴 충동의 격렬함이 자꾸만 나를 흔들며 괴롭힌다. 가까이에서는 새까만 날파리들이 날아들며 생각의 시야를 천천히 가리려 한다. 더 이상 못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원래 있던 다인실에서 1인실에 들여보내 달라 하자 간호사가 수긍하며 들여보내 줬다. 나는 여기서부터 내 받은 생각의 고통을 증명하고 나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머리에 띠를 매고 미친 사람처럼 벽을 발로 차며 주위를 가리는 날파리들을 떼어내려 노력했다. 그 와중에도 날파리는 '너 다시 돌아가기 싫잖아. 더 아픈 척해.'라며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나를 찔러댄다. 그러던 와중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또 떠올랐다. 같잖은 자신의 방식을 글을 통해 나타내어 누군가의 환심을 사려는 행위는 고등학교 때에 시작되었다. 웃기게도 당시 글쓰기 대회에서 떨어졌을 뿐 아니라 어찌저찌 보게 된 점수는 ‘0’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부끄러웠는데 그때의 나에게는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지우려 침대에 눕자마자 내가 받지 못한 상을 받은 그가 생각이 난다. 공부도 잘했던 그가 대회에서의 상을 받고 나는 하찮은 것 하나를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분하고 힘들며 고달팠던 감정은 그저 감정으로서만 남았으며, 이는 곧 알약으로 조립한 미사일에 격추당한다. 더 이상 나에게 감정적인 과거의 생각이 닿지 않는다. 어쩌다 흘러온 파편 따위가 이런 감정이 있었다는 정도만 전하는 정도였다.

 

 검은색과 흰색을 섞으면 회색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빛의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추운 온도 탓에 보라색을 띠는 것만 같은 천장은 마치 병동의 그림자가 가지는 검은색과 겨울의 막막하고도 올곧은 흰색을 섞어놓은 것 같다. 흰 양말을 잡아당겨 생긴 흰 실의 사이사이 붉은 구멍이 마치 환자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병실 6일 차, 의사 선생으로부터 무언가가 배달되었다. 이틀 전에 부모에게 전화로 부탁한 가벼운 옷가지와 부족했던 책이 이렇게나 빨리 올 줄 몰랐기에 약간 놀람과 함께 맞이할 수 있었다. 

 몸의 상처, 얕게 긁혀 스프링처럼 보이는 이것은 마치 선물 포장을 손톱으로 뜯을 때마저 뜯지 못하고 기이하게 물결무늬가 수직으로 끝없이 늘어진 듯한 모양이다. 이는 내가 그와 다툼이 있었을 때 생긴 상처인데 어제 봤을 땐 잠잠하더니, 오늘 씻고 보니 다시 눈에 띄는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부모가 가져온 톨스토이의 책 중 하나이다. 책을 읽고 난 후, 내 안의 생각들이 책 제목을 보고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잡음들이 있었어도 결국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중 주인공에게 나타난 천사가 남긴 교훈이 내게도 영향을 미쳤다. 인면어인 그가 불쌍해 보이고 당장이라도 화해하고 안타까운 운명을 가진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서 그에게 손을 내밀자 그는 받아들였고 책의 가르침에 더 한 발짝 다가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인면어인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무엇이라도 약간의 놀라움이 있다면 금방 까무러칠 얼굴 같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는 항상 변태 컨셉의 유튜버를 떠올렸는데, 그러한 얼굴로 괴기한 행동이나 소리를 낼 때면 특히 때려죽이고 싶었다. 그를 회칼로 1칸씩 자르거나 망치로 머리를 내려찍거나 하는 생각들이 최근 들어가시지 않았다. 최근에는 그런 생각이 들 때에 곧장 약을 먹었기에. 오늘 아침, 그를 얇게 자르거나 드라이버를 통해 스크류 모양으로 내용물을 빼는 생각을 무감각하게 하며 나는 이런 인간이구나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또 그는 현실적으로 죽는 연기를 잘할 것만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 문뜩 가슴이 큰 조각칼 같은 것으로 파여 피를 토하고, 얼굴이 시뻘게져 죽어가는 그를 상상하니 너무나도 현실적이며, 그 배역에 더욱더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아침이 되자 기대하던 간호사가 조회를 왔다. 이틀에 한 번씩 조회를 오는 저 간호사에 대해, 성욕보다는 완벽한 타인에 불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망상 속에서 결혼하고 사귀고(아이는 낳지 않는걸 가정했을 때) 하는 것 보다 그녀의 높은 사회적 지위와 이성의 추종자를 만드는 행동은 그녀를 남자로 쌓인 높은 산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말도 안 되는 그녀와의 만남보다도 그저 나와는 급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계급과 규율을 통해 겉과 속을 강제로 합치는 단체생활은 내게 너무나도 버겁다. 속을 얽매이며 너는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나를 못살게 구는 이곳의 공기는 한 분자 하나하나로 고통스럽게 한다.  

 낮 시간이 되자, 간호사 한 분에게 피아노를 칠 수 있냐고 물었다. 아침마다 환자들이 원하는 곡을 스피커로 틀어주는 병동의 루틴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음악을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나는 신청하는 것을 항상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듣고 싶은 곡들이 남들과 나누면 좋지 않을 것들뿐이었기에 신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에 음악이 들려올 때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나누는 상상을 하며 부끄러움과 고양되는 감정을 느끼곤 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피아노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곡을 구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피아노가 대령 되고, 남들 앞에서 한 손으로밖에 치지 못하는 꼴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워 결국 피아노 건반 몇 개 이외에 다른 것을 쳐보지 않았다. 내 차례가 끝나고 다음 차례였던 조현병 환자(염색을 하고 몸집이 꽤 있는 여자였다)가 피아노를 능숙하게 치기 시작했다. 그녀가 피아노를 치는 실력은 나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머릿속에 맴도는 음표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뽐낼 가치가 없는 것이었어도 뽐내고 싶었다. 다행히도 내 실패의 불상사가 가져올 분위기의 정체를 조현병 환자가 자신의 실력을 통해 환기시켰기에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내 얼굴은 상기되었으며 약으로 잠시나마 억제하여 자유롭고 평화롭던 내 목장에 쌓아둔 피 묻은 단풍들이 새로운 자극의 바람에 휘날려 내게 휘몰아칠 준비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살갑게 흰색으로 페인트칠 된 벽이 저녁노을에 같이 동조한다. 마침 톨스토이의 이야기 속 성경의 내용을 보며 조물주가 주인공 자신과 같이 낮은 자도 돌아보았다는 부분에 감명받고 있었다. 그때 자신이 여기 있다고 손을 흔들 듯 해가 창문의 블러 비닐의 찢어진 부분을 지나 내게 빛을 비춘다. 

 멈춰있는 듯하여도 가장 작은 시계의 시간 바늘처럼 해는 움직인다. 그 시간이 오래 걸릴 듯, 영원할 듯 보여도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가 사라지더라도 달이 되어 내 양심이 빛을 내는지 해는 볼 것이고, 이는 내 의가 아닌 그저 빛을 바라보고 해가 주는 빛을 더 널리 비추는 것이라 생각했다. 

  톨스토이를 읽기 전, 『만엔원년의 풋볼』과 같이 몰입을 필요로 하는 글을 읽었기에 톨스토이는 읽으면서도 너무 싱겁고 가벼운 동화 같이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성경에서나 들을 무언가로 시작해 나의 주제, 낮고 더러운 스스로를 다시 일깨워 양심의 해를 다시 붙들어 오기까지 했다. 분명 이런 이야기는 아이를 교육하거나 할 때 보여줄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과 연민 같은 진부한 교훈은 너무나도 많이 퍼져있어 자극적인 것만을 찾는 어른들이 이를 없애고 멸시하는 지금, 살아가는 현재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기본 소양 혹은 개념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어두운 내 방으로 돌아가 욕과 방탕을 즐길 뿐이기에, 다른 것에 의존하며 피를 보지 말고 해를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고기를 많이 먹은 땀은 지독하고, 채소를 많이 먹은 것은 달콤한 향기가 난다고. 젖은 내 발 냄새를 맡으니 달콤했다. 더 깊숙이, 코가 양말에 닿을 정도로 맡으니 원래 있었던 내 발 냄새의 흉한 잔향이 묻어 나오긴 했지만. 방금 어머니와 통화하며 느꼈던 도스토예프스키가 어찌나 감성적인 검은 색을 띠던지, 톨스토이는 얼마나 교훈적이고 사랑의 빛을 풍기는지, 그들을 각각 어둠과 빛으로 여기며 무라카미 류와 하루키를 비슷한 예시로 들었다(내 기준으로는 그들이 서로 반대된다고 생각했다). 내겐 기억하는 평생동안 발에서 썩창내가 진동했기에 고기나 좋은 것만 먹이시려던 어머니의 인자한 노력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발 냄새로 어머니에게 감사한 점을 알다니 웃을 일이지만 말이다.

 

 머리 주변에 생각 날파리가 지잉하고 날아다닌다. 인면어인 그와 평화를 맺은 이후, 저녁마다 하는 탁구에 참여하기로 했다. 인면어인 그에게 져 버린 이후 어린아이가 힘드냐 묻자 별로라는 대답을 하였는데, 인면어 닮은 이가 이 때문에 기분 상한 듯하여 이후 나는 그에게 잘했다며 칭찬했다. 하지만 그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내게 물었다.

 

 "이렇게 멀쩡한데 여기 왜 온 거에요?"

 

 그가 던진 질문의 의도가 긍정적인 것인지 무엇인지는 처음엔 알지 못했다. 그저 곤란한 질문이었음을 확신한다. 그러자 날파리, 혹은 프랑켄슈타인의 머리 위의 안테나의 전파같이 생각의 요동이 있었다. 날 엿먹이려고 그런 질문을 한 건지, 혹은 좋은 의미였는지, 내 상태를 알고 이러는 건지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에 잡힌다면 패배한다고 느껴 빛으로 도망쳤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도망칠 곳이라도 있었지만 그에게는 도망칠 곳이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이 날은 비가 왔다. 기존에 방문한 사설 병원에서 날씨에 따라 기분이 변한다는 것을 말하자 의사가 비웃었던,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에서 도망치기 위해 도착한 곳은 또 다른 망상의 세계다. 인면어, 그는 괴상한 말투와 행동을 통해 이곳의 위험성을 알려주고 나를 이 병동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내가 만든 청결 원칙주의에 따라 손과 발을 씻으면서도 옆에 자고있는 다른 환자의 심기를 건들까 봐 두렵다는 생각이 든다. 발을 수건에 닦고, 다시 손을 씻으면서 이러다 진짜 그에게 공격당하는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 병동의 음모와 계략 속에서 그가 왜 왔었냐는 물음만 뇌리에 남아서 후회를 외치며, 차곡히 쌓여있는 병동의 시체 중 한 개체가 되어, 다시 이곳에 올 누군가의 선택을 후회하게 하는 도구가 되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모두가 저 빌어먹을 색 때문이다. 하늘이 오줌이라도 갈겨 저리 샛노란지, 점심부터 저녁까지 분위기를 온종일 잡칠 생각인 건가. 나올 기미가 없던 변을 포기하고, 변기에 들러붙은 다른 낯선 이의 체취를 물로 잠깐씩 씻으며 침실로 향했다. 또 손을 씻고 발을 닦고 손 씻는 행위를 느끼며 나는 생각보다 행동을 먼저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내 부끄러운 부분부터 시작하여 슬리퍼를 거꾸로 신은 것까지 저 날씨가 전부 까발렸다. 우중충한 저 하늘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너무 기쁘다. 생지옥 같았던 어제처럼 끝없이 이어진 휴대용 단두대와 밤낮이 수시로 바뀌는 사람이 있는 이곳에서 작별할 날이 하루 줄어 화요일이 되어서이다. 어제 느꼈던 정수기에 박아 온수가 흘러 아픔을 느끼거나 앉아있는 의자가 박살나 엉덩이에 콰당하게되는 상상을 말해주니 내게 의사선생이 강박증의 증상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보다 하루라도 수감 기간이 줄어든 것이니 너무나도 기뻐 인면어인 그에게까지 강박증인 것을 말했다. 그는 강박증을 모른다고 했으나 그건 상관없다. 나는 내 지옥 같은 하루가 하나 줄어들었다는 것과 IQ 고득점의 가능성에 대한 열망으로 꽉 차 있다. 오렌지 나무(『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참고)의 껍질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난 내 원초적인 자만의 욕심이 재능을 의미하는 제제의 새를 데려온 듯했다. 그 기분이 끊이지 않을 무렵 3일남은 퇴소일을 되뇌고, 그 이후에 즐길 거리를 떠올리다 보니 벌써 그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식어버린, 얼음이 내는 추운 증기처럼 날아가 버린듯하다.

 

 화장실에서 대변이 나오지 않아 샤워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그때 어시스트 선생이 내 이름을 부르고, 갑작스러운 나는 무슨 연고인가 들으니 검사가 끝났고, 강박이 맞으며, 내일 오전에 퇴원해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온 세상 행복이 나를 둘러싸 춤을 추는 것만 같다. 그러한 기쁨을 이어 샤워를 끝내고는 곧장 몇 분전 어머니가 통화 중 현실적인 군대 문제와 정신병을 가진 사람으로써의 문제를 언급하자 마음 한편서 화가 올라왔다. 이럴 때 위로나 공감은커녕 그런 말을 하는 어머니에게 원망이 든다. 강박은 이를 되뇌게 하여 마음의 절반 이상까지 화가 잠식하게 하고는 현실적인 문제 직시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이제 끝이라고 생각이 들 무렵, 다시 빛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