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法師)》



날은 추웁다. 기필코 서곽(西郭)에는 스라린 겨울의 냉기가 스미여서 이제서야 길죽한 방한모를 드리우는 부인의 모습이 꽤나 거닐고 있었다. 하면, 두 손을 입가에 비비적대고 옷 몸을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시간을 때우던 걸인 하나가 기어코 눈을 부라리며 바닥에 널부러지는 것이다.


저체온증이런가, 한적하였던 불상사에 아무도 동요하지 않았다. 걸인의 위에는 소복소복 뽀오얀 눈이 쌓이기 시작한다. 이제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광장의 뒷골목에서 걸인은 죽어 있다. 옆 찻집의 등불이 밝을락 말락 조금씩 점멸하는 것은 남서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의 향기를 기꺼이 실감토록 하였다. 그리하여 입가에 자그마한 거품을 물고 졸도한 걸인의 손에 거진 흑백의 그림이 한 장 겹히여 있었는데, 얼마나 묵필을 덮어 쓴 것인지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해괴할 정도였다.


"이것을 좀 보십시다, 보십시요... 보십시다."


어느 구석에서 법사(法師)라고 하는 괴이스러운 것이, 주뼛주뼛 머리를 들이밀고 걸인의 품에 안기었다. 잇슨보시(一寸法師)와 같이 짧고 뭉툭뭉툭한 몸뚱이를 억지로 구부리며 걸인의 품을 뒤척이는 모습은 꽤나 볼품이 없다. 괴인은 사팔뜨기였다. 조만간 꿈쩍도 않는 한쪽 눈자위를 어떻게든 부라리며 앞뒤로 목을 꺾고「ー보십시다」하는 말을 무미건조히 반복하였다. 그러다가 가끔씩 빈 주머니를 들썩이거나 백설으로 덮힌 바닥을 통통 두드리는 것이 흐름의 한 토막이다.


서곽의 사람들은 소년을 법사(法師)라고 부른다. 기묘하리만치 저 밑바닥을 향해 굴곡하고 있는 곱사등이 소년의 별칭이 요시우라(吉浦) 거리의 법사라고 불리우는 까닭은, 단지 소년이 자신을 법사라고 칭하였기 때문이다. 이름과 가족, 출생은 전혀 기억할 수 없지만서도 한결같이 소년이 읊어대던 것은, 자신이 어느 촌에서 온 법사라는 것 뿐이다. 하면 소년의 그리운 자칭(自稱)조차 어느 정도는 제정신이었던 너무 멀찍한 과거의 일이어서, 지금에 그 소년이 본인을 무어라고 소개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우오—."


법사는 차가운 걸인의 시체에 온 몸을 파묻고는 위 아래로 고개를 저었다. 두 손을 치켜들고, 가끔은 거적데기 사이로 꾸깃꾸깃한 양 발바닥을 간신히 욱여 넣기도 하며, 곧 자작나방의 어린 송충이와 같이 한기에 저린 제 몸을 식히고자 한다. 그러나 걸인의 몸에서 다시금, 따사로운 백방(白房)의 열기가 피어 나는 일은 없었다.


법사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두렵고도 동시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감흥적인 너울 같은 것이어서, 어느 순간 가슴의 한 구석까지 퍼뜻 밀려오곤 하였다. 그것은 변변치 못한 잡설에 사로잡혀 어찌저찌 제 목숨을 영위하고자 하였던 어느 법사로 하여금 깊은 체념에 잠기게 하였던 것이다.


"보십시요..."


요시우라(吉浦)의 법사(法師)라 불리우던, 한 때 카사베(笠部)의 잇타(一田)라 불리우던 곱사등이 소년은 회상하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무심코 떠오르는 것은 어떤 노인의 잔영이었다. 물론 그 이름과 출생은 기억나지 않는다—. 또는 "어떤 부모가 자신을 불가사의로 하여 내었는가?" 하는 그러한 것은 너무 오랜 시절의 일으로, 이제는 기억할 수 없다.


단지 소년을 데려다 키우고자 하였던 것은 카사베(笠部) 마을의 어떤 노인이었다. 카사베 마을이라는 것은 세토우치(瀬戸内) 근처의 작은 산촌이었는데, 가끔 아랫목이 유독 삐죽빼죽한 전통 모자를 드리운 사람들이 눈가에 밟힐 정도로 벽촌이었다. 그리하여 종종 도심에서 마을 쪽으로 오고 가는 행락객의 요란한 마차 소리가 들려올 때면 카사베의 아이들은 꼭 합이라도 맞추었던 것인지 노래를 읊으며 가는 길을 배웅하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곱사등이 소년은 거의 죽어가는 노인을 뒤로 하고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묘기를 선보이며 푼돈을 쥐었다. 팔을 이리저리 치켜들며 양옆으로 목을 꺾어대는 기괴한 모습은, 카사베의 아이들로 하여금 꽤나 즐거운 경험을 자아냈을 터이다.


몽톡한 동전을 꼬옥 쥐고 노인의 품으로 돌아가던 소년의 감정은, 틀림없이 열망 또는 뿌듯함이라 불리우는 그것의 형태와도 닮아 있었다. 그러므로 소년이 촌극(村劇)을 멈춘 것은 노인이 폐병으로 인생을 마친 이후의 일이다. 


"보십시다—. 이 법사의 무대로 부디 보아 주십시요..."


마을에서 쫓겨난 소년은 멀리 도심을 찾아 요시우라(吉浦)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소년은 법사(法師)가 되었다. 과거 카사베의 아이들이 그를 잇슨보시(一寸法師)라 불렀기에, 소년은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하곤 하였을 뿐이다.


그리하여 소년은 곧 죽는다. 유일하게 법사의 연극을 보며 웃음을 하였던 요시와라의 걸인은 방금 죽었다. 딱한 연민이런지, 언젠가 소중한 동전 한 닢을 법사에게 슬쩍 던져 주고는 조용히 잠에 들었던 때가 있다. 법사는 걸인의 왼손에 걸친 흑백 그림 속의 소년이 곧 자신의 형상과 같은 모습임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림 속의 소년은 이곳저곳 몸을 비틀이며 떨어진 동전을 줍고 있었다.


날은 추웁다. 서곽의 하늘에 희뿌연 달꽃이 피고자 하는 듯 하다. 이토록 서늘하였던 눈보라는 소년의 온 거죽에 닿이고 또 에였다. 옆 찻집의 등불은 여전히 백안(白眼)을 껌뻑이며 연극의 결말을 알린다. 소년은 높이 거적데기를 드리우며 염불(念佛)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