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



로비에서 주인님에게 한차례 혼난 후, 건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건물 밖에는 햇볕을 이불 삼고 아스팔트를 배게 삼아서 자는 여자 아이가 있었어요.


강아지 귀에 강아지 꼬리. 코스프레인 걸까요?


코스러치고 많이 작아보였습니다.


가슴은 크지만, 그쪽도 저보단 작아보였고요.


후훗, 허접한 가슴이로군요.


아이인 걸까요?


주인님이 마침 잘됐다며 "저길 봐라." 라고 하였어요.



"쟤 뭐하는 족속 같냐?"


"길을 잃은... 코스프레 치장꾼이요."


"네 눈엔 그렇게 보이는구나."



주인님이 그리 말하며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주인님의 구두가 숙면 중인 아이를 툭툭 건드렸어요.


아이의 동물귀를요.



"내 눈엔, TS 녀로 보인다."


"TS 녀요?"


"이 귀, 가짜치곤 퀄리티가 높지 않더냐?"



아이는 낑낑거리기만 할 뿐 깨지 않았어요.


주인님은 뜻대로 되지 않아 열 받은 것인지 아이의 강아지 귀를 있는 힘껏 짓밟았어요.


그러자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어요.



"깽! 깨갱! 왕왕와왕! 깨갱, 끼잉낑낑!"


"봐라. 가짜였으면 이리 아파하겠냐?

틋녀캐피탈에서 진행한 TS 화로 여자가 된 게다.

그 과정에서 옵션인지 뭔지로 수인 속성이 추가된 것이고."


"그런데 왜 이런 곳에...

캐피탈에서 TS 됐으면 방금 같은 시설에서 교육 받고 있어야 하지 않아요?"


"보통은 그렇지. 한번 밖을 보면 얘기가 달라지거든."



깨자마자 죽일 듯 달려드는 강아지 수인.


주인님은 그런 여자 아이를 간단히 제압하였습니다.


목을 붙잡아서요.


목이 졸리면서도 반항하고자 턱주가리를 위아래로 딱딱 부딪히는 수인.


강아지 수인을 무시하며 주인님은 태연히 말을 이었습니다.



"샀다가 버린 게지."


"캉캉캉! 캉크르릉 왈왈왈멍멍! 컹컹!"


"버리면 갈 곳도 없으니 길바닥에 나앉는 게고."


"캉캉! 와왕왕왕!"



주인님이 양복에서 빵을 꺼냈어요.


놀랍게도 빵을 보자 아이가 갑작스레 조용해졌습니다.



"캉, 깨갱...."


"손."


"멍."


"발."


"멍."


"엎드려."


"왕."



그리 사납게 짖던 아이가 아주 순종적인 아이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아이는 인간이 아니라 개 한마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이렇게 한번 길가에 떨어지면 배를 채울 일도 없으니 비굴해지는 거고."



충격적이었고 어쩐지 공포스러웠어요.


눈을 돌리고 말았어요.


그러자 주인님께서 "어허." 하며 꾸짖으셨어요.



"눈 떨구지 말고 똑바로 봐. 주인에게 버림 받은 애들은 이리 되는 게다."


"... 예."



경고였어요.


저도 주인님에게 버림 받으면 이런 꼴로 몰락하리라 하는 경고.



"긴장 말아라. 너만 잘하면 저런 꼬락서니론 안 떨어질 테니."


"예."


"가자.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다."



주인님이 빵을 담장 위에 고이 올려두었습니다.


얌전하던 강아지 수인이 담장을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처절한 아이의 발돋움에 빵이 제 몸을 허락할 듯 말 듯 하였습니다.


아이의 손이 닿을 높이는 아니었습니다.


아마 불가능하겠죠.



"저, 저기 제가 할 일은 무엇인가요?"


"그거야 가면 알 일이지. 일단은 집까지 가는 게 우선 아니더냐?"



아차.


제가 또 궁금증을 서둘렀습니다.


혼이 나리라 눈을 질끈 감았더니 주인님의 장갑이 제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너무 걱정은 말아라.

기본적인 가사일이 대부분이니."



밤일은 메인이 아니란 뜻일까요?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느 정도 걸어, 캐피탈에서 거리가 멀어지자 주인님이 모자와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어요.



"그럼, 집에 들르기 전에 빵집이라도 갈까?"



이런.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목소리가 부쩍 중성스러웠지만 제 첫인상이 잘못 되었었나 봐요.


영락없는 여성 분이십니다.


젊은 여성 분이에요.


안심입니다.


가사일 정도만 하겠군요.



"주인님께선 빵을 좋아하시는 건가요?"


"내 빵은 아니고, 네 빵."



저한테 빵을?


갑자기?



"방금 빵 두고 올 때 유심히 보더만.

먹고 싶은 거 아니었어?

넌 이제부터 내 거니 배불리 먹여야지."



아하.


오해였군요.


그래도 기쁜 오해입니다.


빵이라. 마침 배가 고프던 참이었어요.



"주인님 혹시 소, 소시지 빵도 되나요?"


"소시지 두개 빵도 된다."



세상에.


주인님 상냥하신 분인가봐요.


견마지로로 봉사해야겠습니다.


주인님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어요.



"잘 지내보자."


"네!"


"캉캉! 왕왕멍멍멍! 내 빠앙! 내 빵이...!!"



뒤에서 강아지 수인의 절규가 들려왔습니다.


저 녀석, 말도 할 수 있었네요.




주인님 댁에 와 일을 한지 몇년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고 긴장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아침은 네가 만들었댔지?"


"예."



예를 들면 주인님과의 대담이나 식사를 가져다 드릴 때.


언제 꾸짖으실지 언제 칭찬해주실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단 점이 특히나 그래요.



"손바닥을 내밀거라."



쭈뼛쭈뼛 지시대로 하였습니다.


주인님께서 "네가 한번 들어보거라." 라며 스푼을 쥐어주셨어요.


아 이거 혼나는 패턴이에요.


떨며 스프를 긁어 입으로 넣었습니다.



"맛이 어떠냐? 네가 먹기엔?"



맛 같은 건 몰라요 주인님.


제가 먹은 건 한 숟갈의 스프가 아니라 한 숟갈의 겁이니까!


혀에 남아있는 건더기를 토대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습니다.


짠가? 과하게 짜진 않은 것 같아요.


맵거나 쓴가? 둘다 적당한 것 같아요.


스프에 식초를 넣거나 하진 않았으니 신 맛도 안 날 거에요.


단 맛은 주인님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이셨으니 다소 감돌아도 되겠지요.


그렇다면 주인님께서 느끼시기엔 아마도....



"맛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확실해?"


"제, 제겐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니?"



주인님은 불안하게 운을 띄웠어요.


다행히 이어지는 말은 낭보였습니다.



"잘 했다.

내가 먹기에도 맛있었어.

많이 늘었구나."



주인님이 머리를 쓰다듬으셨습니다.


3초 이상 연속되는 쓰다듬.


혼내는 게 아니네요. 진심의 쓰다듬이셔요.


기뻐라!



"손."


"네 주인님."


"반댓손."


"네 주인님."


"턱."


"예 주인님."



차례로 주인님의 손 위에 요구하신 부위를 얹었어요.


주인님이 턱을 고롱고롱 만져주셨어요.


"가봐라." 라고 하시길래 스프를 담았던 접시를 들고 물러났어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어요.


참. 아침을 안 먹은 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겠네요.


주인님께서 남기신 스프를 긁었어요.


맛있어요. 과연.


주인님 댁에 와 일을 한 몇년 동안 중 제일 맛난 스프 같네요.





*



<마마>



"아버지, 제가 약혼녀 데려왔을 때 기억나세요?"


"기억 나지. 내 불같이 화냈었던 걔 말이지?"


"네. 화류계였던 걔요."



수수께끼에 쌓인 틋녀캐피탈의 지도부에 대하여 두 가설이 있다.


첫째, 인간 병기 양성이 목적인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수뇌부란 설.


둘째, 조직 폭력배나 깡패가 그 지도부란 설.


현재 두번째 설이 사내 정설인데, 이유란 별 게 아니다.


엮이는 인종들이 깡패며 화류계며 카지노 딜러며 하는 인간들이니까.


전 약혼녀와는 직장인과 직장인으로 만났다.


몸은 음탕한 아이였지만 마음은 순수한 아이로 비쳐졌다.


순조롭게 연애하던 우리는 아버지의 결사반대에 무너졌다.



"그때 알고 반대하신 거에요?"


"유녀란 건 알고 있었지."


"그거 말고요."


"그럼 모르겠는 걸."



저게 시치미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원.


당시의 나는 단순히 화류계라 반대하는 줄로만 알았건만,

최근에 소식을 듣기론, 걔, 빵살이 하고 있다고 한다.


결혼 사기로.


아버지는 아직도 머그컵을 못 꺼내 고생 중이었다.



"아버-."



말을 하려다 끊었다.


까치발을 하고 바둥거리던 아버지가 잠시 손을 멈추고 날 보았다.


뭔가 어제까지와 똑같이 부르기 싫었다.


어쨌거나 어제보다 한발 더 아버지를 알게 된 셈이었으니까.


살짝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았다.



"아, 아빠."


"왜? 도와주려고?"



낯간지스런 소리를 아빠는 그런갑다 하고 넘어가주었다.


말없이 머리만 끄덕였다.


나도 꼬맹이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지금의 아빠보단 키가 컸다.



"끼잉. 으으읏."



까치발을 드니 컵에 손이 닿았다.


머그컵을 꺼내 건네주었다.


하늘색.


신선한 색깔이로다.



"여기요. 아무래도 몸이 바뀌니 좋아하는 색깔 같은 것도 영향을 받나보죠?"


"응?"



아버지가 컵과 나를 번갈아보고 허허 웃었다.



"아니, 이건 색깔이 아니라 무늬가 마음에 들어 쓰는 거다."



밤이라 잘은 보이지도 않는 무늬였다.


구름 무늬인가?


며칠 더 아빠와 엄마 곁에서 휴가를 보내고 회사 근처의 숙소로 돌아왔다.



"가면서 출출하면 먹어라."



거절해도 우겨넣는 게 어미인 모양이다.


엄마가 삶은 감자 몇개를 넣었다.


여자 몸 된 이후론 감자가 싫어졌다.


아직 말 안했구나, 나.


돌아오니 비가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다.


실상 엄마 아빠 집에서 내 숙소까진 거리가 멀지도 않은데 여기만 비가 내리는구나.


기묘한 광경이다.


기묘한 날씨 위에 평범한 광경도 있었다.


강아지 수인 여성이었다.


아마 캐피탈에서 TS 시킬 때 옵션으로 달아놓은 거겠지. 강아지 수인 기능은.


그럼 저 녀석도 틋녀인 셈이었다.


우산조차 없이 꾀죄죄한 복장.



'길틋녀인가?'



가끔 틋녀캐피탈에 돈을 주고 구입한 틋녀를 길에 내다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질렸다, 처음에 원했던 거랑 다르다, 식비가 너무 많이 나간다 등등 변명은 가지각색이다.


길에 내다버려진 애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할 엄두도 못내고 길에서 한평생을 살아간다.


거지가 되어서.



"우으... 멍! 멍멍!"



귀 따가워라.


담장을 자꾸만 긁더니 성질껏 안 되는 일이 있는지 컹컹 짖었다.


수인이랍시고 지능까지 개 수준으로 격하시킨 걸까?


대체 담장에 뭘 원하는 걸까 넌지시 살펴보았다.


아차, 담장 위에 누군가가 빵을 올려두었구나.


먹다남은 빵인 걸까. 빵에는 연한 하늘색으로 상한 부분이 군데군데 있었다.



"으으, 안 닿아... 배고픈데."



수인의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빗소리에 파묻혀 크게 나진 않았다.


나보다야 컸지만 강아지 수인은 단신이었다.


담장 위는 아무리 폴짝폴짝 점프를 해도 닿지 않았다.


어쩐지 데자뷰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흐잉, 차라리 고양이였으면...."



강아지 수인 틋녀가 훌쩍거리며 점프를 멈췄다.


분한 듯 응시만 하였다.


빵을.


사람 말을 알아들으려나 싶었다.



"얘."



강아지가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리 와." 하니 갸우뚱하면서도 천천히 다가왔다.


알아듣는구나. 지능은 사람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가보다.



"배고프니?"


"네. 아니, 응.... 아니, 네."



존댓말이냐 반말이냐.


너도 고민이 많구나.


엄마가 줬던 봉투를 품에서 꺼냈다.


감자 한알을 내밀었다.



"자."



강아지 수인은 의아한 듯 나와 감자를 번갈아 보았다.



"자."



한번 더 말해도 변화가 없었다.


침을 흘리는 걸 보면 싫은 건 아닌 듯한데.


참. 부잣집 틋녀들은 아예 애완동물처럼 기른다던가.


그럼 명령어도 애완동물처럼 하겠지?



"먹어."



그제서야 강아지 틋녀가 감자를 물었다.


허기가 졌던 걸까.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감자 부스러기가 묻은 손바닥을 핥는 모습이 처량했다.


몇개를 더 내밀었다.


역시 주린 개처럼 정신 없이 먹어치웠다.


배가 부르니 내가 마음에 든 걸까.


다가와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영락 없는 강아지였다.


비에 젖은 모습이 추워보였다.


내 숙소는 미안하지만, 두 사람이 쓰기엔 좁았다.



"가져."



우산을 쥐어주었다.


숙소까진 걸어가도 금방이었다. 뛰면 더 금방이고.


빗속으로 사라지려니 강아지가 컹컹 짖었다.


저저 어정쩡하게 우산 드는 폼하고는.



"그만 짖어! 인근에서 시끄럽다 난리 치겠다!"



빗소리에 묻힐까 두려워 언성을 높였다.


강아지는 아랑 곳않고 계속하였다.


당분간 인간 관찰이란 걸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아쉬워서 그래? 내일 또 올 게! 먹을 거 들고!"


"이름... 존함을 알려주세요!

은인의 존함을 알고 싶습니다 멍!"



존함?


캐피탈에서 일하는 내가?


정신 차려라. 널 틋녀로 만든 게 나일 수도 있는데 뭔 놈의 존함이야.



"이름 같은 거 없어!"


"그런 사람이 어딨어요!"



일리가 있었다.


빗소리가 여전히 소란이라 큰 소리로 말했다.



"정 부르고 싶으면 아빠라고 불러!"


"아빠, 아빠... 아빠."



강아지가 몇번 다짐하듯 되뇌였다.


틋녀가 내 가는 뒤통수에 크게 외쳤다.



"네 엄마! 살펴가세요!"



저 녀석, 역시 지능은 개이리라.


틀림 없이.


*


어제는 백업 깜빡함.
이번화 원본은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