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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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이 LAD에 도착한 건 오후 1시경이었다. 사무실에 조 씨와 레나가 기다리고 있었고, 지원이 들어오자 조 씨는 에너지바를 건넸다.


“몸은 좀 괜찮아? 어디 부러졌다던가…”


“기껏해야 피하장갑 좀 찌그러지고 끝인 것 같아. 아니, 피부도 좀 찢어졌네.”


지원은 옷을 살짝 들춰 자기 옆구리를 살폈다. 실리콘 피부가 찢어져 내부에 검은 빛 피하장갑을 드러내고 있었다.


“좀 흉하지만 여유롭게 수리 받을 시간은 없어. 딱히 통증은 없으니 일단 그 마지막 작업이나 들어보자고.”


조 씨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사실 마지막 작업은 이미 미세스 리가 오는 동안 레나가 끝냈어. 서류의 명의만 바꾸면 되는 일이었거든.”


지원은 다른 의자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그럼 날 굳이 여기까지 부른 이유는 뭐야?”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어서 그래. 신입 해커야, 따지고 보면 레나의 직속 후배지.”


그 말에 레나도 놀란 눈치였다.


“후배? 그런 말 안 했잖아.”


“이렇게 알려줘야 재밌지, 안 그래?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에 레나와 지원 모두 깜짝 놀랐다. 마치 면접장에 처음 온 사람처럼 쭈뼛쭈뼛 들어온 여자는 여자라기보다 소녀에 더 가까웠다. 보라색 긴 머리칼과 탄자나이트처럼 빛나는 보라색 눈을 가진 여자는 세 사람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알리사 안드리예브나 초이 입니다…”


지원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벌벌 떠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제 막 어린 티를 벗었다 싶은 소녀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22살인 레나보다 어려 보였다.


“알리사… 뭐라고 했더라? 아무튼, 너 소련인이야? 아니면 고려인?”


조 씨가 대신 설명했다.


“카자흐스탄계 고려인이야. 뭐, 따지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냥 ‘최란’라고 불러주세요.”


“…전혀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 치고, 혹시 몇 살인지 물어봐도 될까?”


“44년생 19살이요.”


지원도, 레나도 몹시 당황했다.


“19살? 그럼 이제 갓 성인?!”


“나보다 어리잖아! 조 씨, 어디서 이런 애를 구한 거야?”


“이야기하자면 좀 길어. 아무튼, 새 용병이야. 알리사, 표정 풀어.”


그 말에 알리사는 용기를 내서 미소를 지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남극 한 가운데에 파묻힌 빙하조차 흔적도 남김없이 녹여버릴 듯한 미소가 어찌나 강렬했는지 지원은 순간 넘어가버릴 뻔했다는 것을 겨우 자각했다.


“뭐, 그래. 잘 부탁해.”


레나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더니 알리사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우리 후배! 언니가 온 힘을 다해 도와줄 게! 모르는 거 있으면 말만 해.”


알리사는 매우 당황한 얼굴이었다.


“네?! 네…”


지원은 한숨을 쉬었다.


“저거 또 시작이네…”


그러다 문뜩 무언가 떠올랐는지 지원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조 씨, 이사 가기 전에 할 일이 생각났어.”


“뭔데 그래?”


“전에 이야기했지? 내 집 근처에 자리 잡은 조폭 새끼들.”


“드래곤… 어쩌고 하는 놈들 말이야?”


“그래, 이제까지는 귀찮아질 까봐 시비터는 놈들만 손을 봤지만… 떠나는 김에 완전히 박살을 내버려야겠어. 경찰청 데이터베이스를 좀 찾아보니 등록도 안 돼 있을 정도로 작은 규모인 것 같아서 말이야. 그 새끼들, 무능하기 짝이 없지만 그런 건 잘 찾아내거든.”


“그것도 나쁘지 않지. 혼자 갈 거야?”


“나 혼자서도 충분할 건데…”


지원은 알리사 옆에 섰다.


“이 녀석 교육도 시킬 겸해서 써도 될까?”


“상관없어. 어때, 알리사?”


“네… 한 번 해볼 게요.”


“미안한데 조 씨, 당신은 나 좀 따라와 줘. 꼬마랑 짐 싣고 새 집으로 데려다 놔. 난 쓸어버리고 갈 테니까.”


“알았어. 레나, 알리사 해킹 준비시켜 둬.”


“맡겨 줘! 알리사, 해킹은 어디까지 해 봤어?”


지원은 주차해 둔 오토바이를 타고 조 씨와 함께 집으로 이동했다. 집에 도착하자, 준용은 이미 짐을 다 정리한 채 대기 중이었다.


“꼬마, 새 집까진 이 아저씨가 데려다 줄 거야. 지난번에 봤지?”


준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 씨가 물었다.


“가구는 어쩔 거야?”


“화물 드론을 불렀어. 이런 동네도 오긴 하더라고. 존나 비싸지만 말이야. 꼬마, 먼저 가. 금방 따라갈 게.”


조 씨가 지원의 차를 몰고 사라지자, 지원은 집주인에게 가볍게 작별인사를 나눈 다음 총을 들고 조폭들의 근거지로 움직였다. 머무는 동안 살피면서 알아낸 그들의 본거지는 지원의 집에서 2블럭 정도 떨어진 짓다 만 쇼핑몰이었다. 지원은 알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알리사입니다!”


“알리사, 내 시야로 보고 있는 거 맞지?”


“네, 짓다 만 건물이 보여요.”


“안에 CCTV가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 볼래?”


“잠시만요…”


약간의 침묵 후, 알리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8개 정도 있어요. 1층에 4개, 2층에 4개. 출입구는 그쪽 하나뿐이에요.”


“그럼 적은? 대략 몇 명 정도야?”


“한 30명 정도 있었어요.”


“완전 소규모 조직이네. 어디 다른 조직 하청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레나가 끼어들었다.


“알리사가 탐색하던 중에 따로 찾아봤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하부 조직이라면 상부 조직이랑 관련된 것들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거든요.”


“그럼 다행이고. 혹시 모르니 통신망 차단 가능 하지?”


“네, 해볼게요!”


“레나, 네가 도와줘.”


“네.”


“진입한다.”


지원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당당하게 정문으로 걸어 들어왔다. 입구 가까이 서 있던, 만화 ‘북두의 권’에서나 나올 법한 외투를 입고 있는 조폭 둘이 지원을 보고 총을 겨누려던 순간, 두 발의 총성과 함께 둘 모두 미간에 구멍이 뻥 뚫려 쓰러졌다.


“총 소리다!”


“침입자야!!”


지원은 엄폐물 뒤로 숨었다.


“레나, 네 말대로야. 이 자식들 무기도 그렇고, 누구 하청은 아닌 게 확실해. 알리샤, 할 수 있으면 저 녀석들 해킹해 봐. 너 마음대로 해보라고.”


“네!”


그 순간, 대구경 샷건을 든 조폭이 순식간에 지원의 눈 앞에 나타나 총을 겨눴다.


“이 씨발련…!”


그 순간, 놈의 총이 통째로 폭발하며 놈의 양 팔과 얼굴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돼… 됐다!”


“잘 했어, 알리샤. 그렇게 하면 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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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보라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