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력을 모르는 책, 글귀를 읽으려 보니
문장마다 서늘한 금빛이 서렸다.
손끝에서 부딪은 껄끔한 향기,
단어 한 가락부터 벼린 창술을 지녔다.
무딘 혓치에 내린 눈꽃과도 달리
마디마디를 지지는 혈화와도 달리
달리 그러나 또 같이 그러다가 이젠 여직 아녔대는 듯
사뿐히 돌아 앉은 곳에는
어디에든 스러질 듯한 독문이 그려진 무대야,
저자도 마땅치 않은 책에서부터 글씨를 뵈려 애쓰니
눈가에는 언젠가 시린 침이 돋았다.
표지를 지우고 마딧통만 남긴 허름한 귀퉁이는
페이지가 기어 들어간 도랑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