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검 만져봐도 되나요?"

 도로시가 나를 막는다.

 "안된단다. 안전상의 이유로."

 그렇지만 나는 저 검을 만져보고 싶었다. 이렇게나 역사적인 검이, 그리고 엄청나게 자세하고 사연있는 유물을 눈 앞에서 본다는 것이 나는 즐거웠다. 그래. 박물관에 가면 이보다 훨씬 더 오래된 유물들이 있긴하다. 그러나 그것들이 어떤 사연을 지니고 있었는지 그렇게 와닫지는 않는 법이었다. 아니면 내가 상상력이 부족한 탓인가? 그리고 나는 도로시가 댄 이유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자신의 주인집에 있는 물건을 외부인, 그것도 학생에게 넘겨주기가 걱정이 되었던 탓이겠지.

 "저를 막지마요. 저를 막는다면 현택에게 가서 사랑을 고백할거에요."

 도로시의 표정이 확 변한다.

 "너 그냥 아무말이나 내뱉는구나?"

 "처음 아무말이나 한 건 당신이었다구요?"

 "나를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그런식으로 부르지마. 그냥 누나라고 불러줄래?"

 "그래요. 누나. 가슴에 큰 걸 달고다니시는군요. 도대체 뭘까요? 마치 우람한 믹서트럭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 너는 하나의 포크레인 같구나. 그런데 삽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내 눈에 안보이는 이상한 비율의 포크레인 말이야."

 이때 창가에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밖을 쳐다보니 덩치 큰 새 한마리가 풀밭 위에 쓰러져있는 것이 보였다.

 "또 책방벽에 새가 와서 부딧쳤네."

 "안됐네요."

 "또 토끼들의 밥이 되겠구나."

 "그렇네요.... 토끼들이요?"

 이 집의 가정부는 약간 캐쥬얼 정장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저게 주인의 취향일까? 아니면 이 사람이 그냥 입고싶은대로 입은걸까? 어느쪽이라고 해도 둘 다 별로였다.

 "너는 이 동네 사람이 맞니?"

 "저 저번주에 이사왔거든요."

 "그렇다면 모를수도 있지. 여기 마을은 토끼들의 공원이 있단다."

 "마치 일본 나리타에 사슴 공원이 있는 것 처럼요?"

 "나리타가 아니라 오사카 나라에 있단다. 어설프게 아는 척 하지마렴."

 "그래도 사슴공원을 알고 있다니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그 지식을 어필하려는 적극성에는 상을 주고 싶구나."

 그러고보니 진짜 유리창 너머로 토끼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저 멀리 우거진 산 아래의 지면과 풀숲을 보고 있으니 하얀 것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헛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저에게 포크레인이라고 한건 사과해주셔야겠어요. 성희롱입니다."

 "너가 먼저 성희롱하지 않았니?"

 "증거를 가져와주세요."

 "우리 집에는 소리가 녹음되는 CCTV가 있단다. 경찰이 CCTV를 조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CCTV를 조작해서 나에게 유리하게 증거를 편집할 수도 있지. 너에게 유리한 것은 없단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오히려 당신은 이 집에서 미움받고 있는 사람일 거고 저의 신고를 계기로 벼르고 있던 집주인이 당신을 내쫓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토끼들이 새 시체에 다가와서 그것을 먹어치우는 상상을 했다. 그건 썩 유쾌한 상상은 아니었다. 그래. 그것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불쾌한 일이 또 있었다. 갑자기 같이 나가서 장을 보고 오자는 말에 나는 그녀가 운전하는 차에 타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토끼들이 대량으로 도로에 출몰했다.

 "넥슨은 토끼를 풀어라!"

 "이상한 소리하지 마세요 누나."

 순간 차가 덜컹거렸다.

 "아 밟았다."

 "아."

 "괜찮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토끼가 물론 죽은것은 슬픈 일이야. 그렇지만 토끼 한 마리때문에 인간인 내가 장을 보는데에 지장이 생기고 시간이 지체되는건 손해잖아? 나도 가야할 길이 있는데 막연하게 기다릴 수도 없고. 물론 너도 '토끼도 가던 길이 있었어요.' 라고 항변하고 싶겠지. 지금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면 그 가야하는 곳에 가지 않고 어째서 멈추어 서 있었냐는 의문이 든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면 토끼가 잘못한거야. 물론 너는 '그렇다면 토끼는 가고싶은 곳에 도달할 때 까지 한시도 멈추어있지 말란 말인가요?' 라고 반박을 하고 싶겠지. 그렇다면... 너가 이긴거야. 나는 진거고... 그렇지만 깔려버린 토끼는 아마 다른 토끼들이 먹어치울 거니까 청소부들이 치우게 될 걱정을 하거나 혹은 공공기관에 신고해야 하나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단다."

 "토끼이야기 제발 그만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상상만해도 기분나빠. 그 토끼에 대한 모욕이에요."

 내가.. 그 친구를 눈으로 식별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긴 하나 나는 그 녀석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이 마을에는 토끼들이 많나요?"

 "너 TV도 안보니? 하긴. 여기 이야기는 크게 뉴스거리도 안되었어.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뉴스를 잘 안보잖아. TV를 안보고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것들을 보지. 사회적인 관심이 파편화가 되어서 이런 화젯거리가 대중들에게 집중 포착되기가 어렵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이야깃거리의 파편화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되요. 진작에 '이민시에 요즘 토끼들이 많다던데'라는 소문이 나야할 정도라구요. 근데 이렇게나 많다구요."

 "사실 다른 이유도 있어. 이 토끼들이 갑작스럽게 등장한게 아니란 말이야. 대략 5년에 걸쳐서 점차적으로 늘어났어. 그 책 알지? 누가 내 치즈를 훔쳤을까? 당연하게 창고에 치즈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어느날 갑자기 치즈가 안보이니까 '내 치즈를 누가 옮겼나? 라고 생각하잖아? 마찬가지로 토끼들이 한두마리 보였는데 우리는 '음 토끼가 공원에 있군'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며칠 뒤에 보니까 조금 더 있어서 '새끼를 쳤구나' 싶었는데 어느날 보니까 토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더라고. 그제서야 '이렇게 토끼들이 많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토끼들의 새끼들이 또 새끼를 쳤구나. 마치 피보나치 수열처럼 말이야." 라고 합리화하면서 넘기는 이민시 시민들이 대다수였던거지. 그래서 기자들마저 이걸 기사거리할 의욕조차 내지 못했던거야. 기껏 누군가가 기사를 작성하면 상사가 '이런 뻔한 걸 적는건 언론인으로서 부끄러운거야!'라면서 한소리나 쳤겠지. 뭐 이게 정론은 아니고 이민시에 오래 거주한 하나의 시민으로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거지."

 "누나. 되게 장황하시네요."

 도로시가 편의적으로 상정한 5년이라는 시간은 다수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진행하기에 충분함과 동시에 어떤 사실이 널리 퍼지고 상식이 되기에는 너무 짧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토끼들에게 둘러쌓여있는 현택을 상상하고 있었다. 좋은 것과 좋은 것을 합친다면 아무래도 더 좋은 게 되니까 말이다. 그 도도한 눈빛. 병들어버린 세계관. 그 정신병자 녀석이 토끼들에게 둘러쌓여있다니. 안된다. 아무래도 내버려둘 수 없다. 그러나 차가 점점 속도를 내고 있었는데 나는 길가의 토끼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 우리 차에 깔리지 않기를 바라고만 있게 되었다. 차라리 심심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