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도 세워지지 않은 길, 그 어둔 길을 걸어
조금 멀리서 날아오는 불빛과 암순응의 도움으로
매번 걷던 길을 자세히 발로 보아 걸어나간다
이 길 앞에 무엇이 있었는지 전부 기억한다
낮에 오면 보게 되는 풀들의 조밀한 모양새
어느 곳에 어떤 풀이 있었는가 떠올려본다
散이란 흐트러놓는다는 의미를 가졌으며
또 策이란 지팡이라는 의미를 내포하여
나 홀로 흐트러지는 지금이 산책이었겠다
때로 다시 가로등이 우두커니 낮게 서 있는
모퉁이에 다다라서 밝을 적도 있다마는
그곳에서도 나 홀로 어둔 한 구석에 숨어버린다
사람은 이다지도 없는 곳이어서 두려우나
나라는 독립체가 갖는 자유가 정말로 기뻐버려서
그 깊은 어둠 속 풀벌레 노래 따라 걸음을 디딘다
낮에는 보지 못하는 아름다움은 화려는 덜하다만
드밝은 풀빛이 햇빛 사이로 쏟아질 수가 없다만
그보다 못하다고만 볼 수야 없는 것이 아닐까 한다
깊고 흐릿한 밤 속 하늘에 뜬 작은 달빛에 따라
이 수풀의 어둠 한복판을 꿰뚫어 보고 있자하며는
어둑시그레한 길이 다붓하게 정온 속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