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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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2년 12월 20일, 갑작스러운 한파에 겨울비까지 몰아 닥치던 날 도봉구와 의정부시 사이의 공원. 도봉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모인 가운데 지원은 구석 낡은 관리사무소 뒤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더럽게 춥구만. 이런 날에 밖에서 대기는 왜 시키는 거야?”


옆에 있던 경찰이 말했다.


“아까 과장님께서 ‘의정부에서 위험 인물이 탈출했으니 출동해라’고 하셨습니다.”


“그걸 몰라서 묻냐? 정작 그렇게 말한 과장은 지금 따뜻한 경찰차 안에서 푹 쉬고 있고, 우린 이 야밤에 겨울비에 찬바람까지 맞으면서…”


지원은 공원 구석에 비적비적 돌아다니는 노숙자들을 흘겨보았다.


“저 약쟁이들이나 보고 있는 실정이잖아. 연말에 이게 무슨 개짓거린지…”


“어차피 저 양반도 내년 3월이면 다른 곳에 가잖습니까. 그럼 이제 반장님이 승진해야죠.”


“못하는 말이 없네, 난 아직 경감이거든? 계급부터 올려주고 그런 말 하던가.”


그리고,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 덩치 큰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곤충의 겹눈과도 같은 두 시각 사이버웨어는 노이즈 낀 화면처럼 끝없이 흔들리고 있었고, 감각을 차단했음에도 BDV를 낀 지원은 남자가 가진 끝없는 분노와 주체할 수 없는 욕망, 거칠지만 안정적인 숨결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남자가 터덜터덜 다가간 곳은 주차되어 있던 경찰차 중 하나였다. 차 안에는 당시 지원의 상관이던 형사부장이 합성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뭐야? 이봐 당신, 여긴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그 순간, 남자는 커다란 산탄총을 들어 쏴 버렸다. 굉음과 함께 형사부장의 피와 살점이 반대편 문짝과 유리창과 함께 쏟아지자, 지원을 시작으로 주변 경찰들이 일제히 총을 뽑았다. 순식간에 총알의 비가 그에게 쏟아졌지만, 그는 우두커니 서서 총알을 고스란히 맞았다.


“광인이다! 특공대 불러!!”


“젠장, 과장님이 당했어!”


그 광인이 산탄총을 등에 끼운 다음 입고 있던 점퍼 사이에서 소총과 기관단총을 드는 순간, 지원은 황급히 소리쳤다.


“숙여!”


놈은 빠르게 압도적으로 정확하게 총을 쏴서 미처 숙이지 못한 경찰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지원은 코트 깃을 세우고 응사했지만, 도저히 총알이 박히지 않았다.


“우리 무장으론 절대 저 새끼 못 이겨! 특공대는?!”


“아직 몇 분 더 있어야…”


폭발과 함께 그 경찰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권총을 잡고 있던 손이 지원의 발치에 떨어지자 지원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더니 다시 놈을 바라보았다. 놈의 왼손 자리에 있던 유탄 발사기가 들어가더니 다시 왼손이 되어 홀스터에 있던 기관단총을 붙잡았다. 그 순간, 지원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놈의 왼손을 향해 총을 쐈다. 총탄이 정확히 기관단총의 방아쇠를 맞추자, 놈의 총은 2조각이 나버렸다. 그때, 그녀 옆에 있던 젊은 경찰과 반대편의 다른 경찰이 산탄총을 들고 달려들었다.


“됐다! 씨발 새끼가! 죽어버려!!”


“이 멍청아! 함부로 나서면…!”


자신에게 달려드는 두 경찰을 본 광인의 오른손이 갈라지더니, 가장 가까이 있던 경찰이 순식간에 허리가 잘려 나갔다. 피가 광인과 지원에게 채 묻기도 전에 놈은 다시 팔을 휘둘러 미처 멈추지 못한 다른 경찰을 세로로 베어버렸다. 지원의 얼굴에 피가 튀자 그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닌자 블레이드… 아주 이것저것 다 때려 박았구만!”

‘도대체 약점이라는 게 없는 건가…? 저런 괴물을 상대로!’


놈이 지원에게 손바닥을 펼치자, 지원은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방금 전까지 지원의 머리가 있던 자리를 시뻘건 닌자 블레이드가 찔러버리자, 지원은 그 즉시 총을 갈겼지만 닌자 블레이드조차 총알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광인은 블레이드를 거두더니 자신에게 달려들던 경찰에게 발차기를 날려 머리를 쪼개버렸다. 지원은 이미 베여버린 뺨의 피를 훔쳤다.


“전원! 놈에게서 거리를 벌려라! 곧 특공대가 온다. 또한 놈이 어떤 사이버웨어를 달고 있는지 우리는 몰라! 신중하게 거리를 벌리고 접근하지 마라!”


그 순간, 광인은 입고 있던 점퍼를 스스로 벗어 던졌다. 놈이 지원에게 등을 보이고 있던 탓에 지원은 그의 맨 등을 그대로 보았고, 이내 경악했다. 놈의 척추 자리에 설치된 회색 사이버웨어를 지원은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뒤로 몸을 던지며 그 부분에 총을 갈겼다.


“산데비스탄! 전원 산개해…!”


광인의 시점으로 보고 있던 지원은 세차게 쏟아지던 비가 빗방울이 보일 정도로 느려지는 것을 보았다. 광인의 신체 역시 따라 순간적으로 뒤틀리더니 왼팔에서 닌자 블레이드를 꺼내 경찰들을 스쳐 지나갔다. 무려 12명의 경찰을 이미 베어버린 광인은 마무리를 하듯 기관단총의 남은 총알을 지원에게 쏟아 부었고, 동시에 산데비스탄이 종료되자 놈의 뒤편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비와 함께 내렸다. 


놈이 워낙 마구잡이로 총을 쏜데다가 산데비스탄 특유의 사격 시 오류로 상당수의 총탄이 빗나갔고 그나마 지원을 노린 총탄의 대다수는 코트에 막혔지만, 두 발의 총탄이 각각 다리 사이버웨어의 왼쪽 무릎 관절과 골반을 꿰뚫었다. 지원은 피가 흐르는 오른쪽 골반을 잡고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광인에게 총을 갈겼지만, 놈은 터미네이터처럼 전혀 망설이지 않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왔다. 놈이 총을 재장전하고 겨누는 순간, 한 차례 총성과 함께 놈의 돌격소총이 산산조각 났다. 광인이 다시 산데비스탄으로 순식간에 자리를 벗어나자 그의 머리 위로 그림자와 함께 직사각형 홀로그램 표시기가 나타났다. 지원은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참… 빨리도 나타나네…”


마침내 경찰특공대의 비행정이 도착한 것이었다. 광인은 총과 유탄발사기를 비행정에 갈겼지만, 검게 도색되어 호버링 중인 비행정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광인 들만큼이나 사이버웨어로 무장한 특공대원 하나가 말했다.


“저기 광인이다. 저 여자는 뭐야?”


옆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여자의 거미 같은 인공 안구가 빛났다.


“경찰이야. 신경 쓸 필요 없어.”


“사이버웨어를 지져버려.”


“군용 방화벽이야.”


“우리도 군용이다. 강하!”


여자와 광인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산데비스탄 척추가 스파크를 일으키더니 연기를 뿜었다. 광인 역시 허리가 반대로 꺾이며 비틀거렸고, 곧바로 래펠을 타고 특공대가 강하해 그를 둘러싸고 연이어 총을 쐈다. 쏟아지는 경기관총들의 사격에 놈은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다 이내 쓰러졌고, 그 중 하나가 총구를 그의 머리에 들이밀었다.


“여긴 SOU 델타, 목표를 제압했다. …확인.”


그는 총구를 놈의 인중에 붙이더니,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지원은 BDV 플레이어를 벗었다. 조 씨가 물었다.


“기분이 어때?”


“별로 좋지는 않아. 뭐랄까… 내가 느끼는 감각은 전혀 없는데도 내가 광인이 돼서 죽인 느낌이야. 게다가 내가 나를 보는 그런 장면은 더 별로고.”


“그럴 만하겠지. 그런데 말이야, 사실 내가 그걸 보여준 이유는 다른데 있거든.”


“다른데?”


“이건 그 당시 내보내려 했다가 보도지침에 걸린 기사야. 인맥으로 받아왔어.”


조 씨가 보낸 기사를 지원은 적당히 훑었다.


“의정부시 연구소에서 탈출한 광인 사살… 그래서 뭔데?”


“연구소에서 난 느낌이 왔어. 뭔가 신박한 사이버웨어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 말이야!”


“그게 사이버웨어일 거라는 보장은?”


“저런 광인이 만들어질 정도면 사이버웨어 말고는 달리 뭐가 있겠어?”


“그것도 그렇지. 그래서, 훔치게?”


“잠입해서 괜찮은 게 있으면 훔쳐야지.”


“일단은 보류하자. 내일 새벽에 구룡시장에 가야 하거든.”


“거긴 왜?”


“꼬마가 자기 스승이라는 사람과 연락을 했어. 삼성 경호부장 출신이라는데… 도박을 걸어보려는 것 같아.”


조 씨는 의문을 표했다.


“기업 놈이잖아. 믿을 수 있는 거야?”


“꼬마는 믿을 수 있다고 했어. 그러니 나도 걸어 보는거지. 그나저나…”


지원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꼬마는?”


“옆방에서 TV보고 있어.”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옆방 문을 두드렸다. 별 반응이 없자, 지원은 문을 열었다. 최근 인기를 끄는 예능이 나오는 가운데 뒤쪽에선 레나와 알리샤가 소파에 앉아 과자까지 먹으며 시청 중이었고, 그 앞에 준용이 앉아서 가만히 TV를 보고 있었다. 얼핏 보면 어느 가정집 같은 광경에 지원은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집이냐? TV 다 봤으면 가자.”


준용은 지원을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무심코 리모컨을 눌렀다. 채널이 바뀌자 뉴스가 흘러나왔고, 준형이 공식 석상에서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지원이 황급히 소리쳤다.


“볼륨 높여!”


준용이 다시 리모컨을 만지자 TV 속 준형의 말이 확실하게 들렸다.


“…저는 지금까지도 지난 사태에 대해 완강히 부정하는 고려그룹에게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하지 않았다면! 현장에서 발견된 고려그룹 사병 복식은 무엇이며, 현장에서 사살된 전직 고려그룹 사병이자 평안도 출신 병사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단언컨데, 대한민국에서 아버지가 사망해 가장 이득을 보는 자들은 고려그룹 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버지 이지호 선대 회장의 이름을 걸고! 나 이준형은 당신들에게 천벌이 내릴 것임을 선언합니다!”


지원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알리샤를 제외한 다른 모두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이름이 장물도 아니고, 막 걸어도 되는 건 줄 아나?”


“진짜 전쟁이라도 일으키려는 걸까요…?”


“형님은…”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돼.”


“형님은 언제나 저런 식이었어요. 저돌적이지만 그 만큼이나 지능적으로 책임을 남들에게 전가하는 것에 능했죠. 정말… 고려그룹과 전쟁을 벌일지도 몰라요.”


그 말에 모두가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오로지 알리샤만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한 듯 물었다.


“형님…? 그럼 저 아이는 설마…”


레나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중에 다 설명할 게. 언니, 잘 가요.”


“조 씨, 일이 잘 풀리면 연락할 게. 의정부 건은 그 다음에 보자고.”


“일이 잘못 풀리면 연락해. 금방 달려갈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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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달려왔고, 앞으로 완결까지 열심히 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