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실내에서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시청각실은 올 때마다 의문이다.


왜 이런 냄새가 나는 걸까.


여기도 청소하는 담당이 있을 텐데.


시아는 아직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점심 먹고 천천히 오는 거겠지.



"나는 점심 같은 거 안 넘어가던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오늘, 친구한테 고백을 한다.


자칫 서먹해질까 두려워하던 망설임을 뒤로 하고.



"잘 되겠지."



한점 추측은 아닌, 바람일 뿐이다.


잘 됐으면 좋겠단 바람.


하지만 만약 거절이라도 하면... 대화도 못 나누는 사이로 떨어지는 건가?


불확실함을 실고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때 이변이 일었다.



'파앙.'



시청각실의 너른 실내를 비추던 전등이 앞에서부터 하나씩 꺼져갔다.


순차적으로.


덕분에 시야가 침침해졌다.


의아한 것은 소리다.


왜 전기가 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필라멘트가 터지는 소리람.



'하여간 이 학교 참 고물 투성이야.'



친구인 철수 말이 떠올랐다.


틀린 점 없었다.


정말 고물 투성이였다.


때가 뒤룩뒤룩 낀 의자며 책상도 그렇고.


무심코 시청각실에 비치되어있던 의자를 손으로 훑었다.


시청각실의 의자는 영화관의 관람석과 똑닮은 의자였다.


팔걸이가 있고, 약간은 눕힐 수도 있고.


뒷 좌석으로 갈수록 높이가 올라가는 걸 보면, 앞에 있는 무대를 잘 볼 수 있게 설계한 모양이었다.


꼭 연극의 극장 같이 생겼었다.



"뭐야 이거."



손으로 훑던 팔걸이에서 미끌미끌한 게 묻어나왔다.


액체 같다.


물인가?


물치고는 끈적했다.


을씨년스럽게 이 뭐야.



'철컥.'



냄새를 맡으려던 순간에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철크덕.'



두번.


시간 차를 두고 하나씩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문을 당겨보니 확실히 잠겨있었다.


어느 녀석이 밖에서 멋대로 문을 잠근 거람.



"이봐요! 이봐요, 안에 사람 있거든요!"



쿵쿵쿵. 문을 두들겼다.


당겨도 보고 밀어도 보았다.


5분간 고성을 질렀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참, 시청각실이 방음이 잘 되는 구조였다.


괴이할 정도로 적막했다.


창문도 없었다.



"시아를 기다릴 수 밖에 없나."



시아와 만나기로 했었으니 필시 와줄 터.


들어오다가 문이 열리지 않는 걸 확인하면 열쇠를 구해오든 하겠지.


그때 나가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사를 앞에 두고 이런 방해가 들어오다니.


짜증도 나고 지치기도 하였다.


그렇잖아도 긴장하여 몸이 피로했던 측면도 있었다.


다리를 쉬어줄 겸 적당한 의자를 하나 잡고 앉았다.


발끝에서 '물컹' 하는 감촉이 전해졌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이라도 있었으면 플래시를 켜는 건데."



불평을 해도 바뀌는 건 없다.


손으로 더듬더듬 확인했다.


어느 정도 탄력이 있고, 말랑말랑하고, 끝을 헤아려 나아가면 단단한 부분도 있었다.


말랑말랑한 부분에는 방금 팔걸이와 유사한 감각의 액체가 묻어나왔다.


그 뒤에는 고무 특유의 감촉이.


이거 실내화인가?


그렇다면 실내화의 위는? 말랑말랑하던 부분은?


오싹한 생각이 스쳐지나가 서둘러 더듬어보았다.


복사뼈, 정강이뼈, 종아리, 무릎뼈.


알았다, 이거 사람이다.


무척 작은 체구의 사람.


초등학생 어린이 정도인 듯 하다.


깨닫자마자 오한이 돋았다.


지금 나는 의자에 앉아서 발을 내린 것이었다.


바닥에 뒹구는 다리는 옆으로 비스듬히 나지 않았다.


의자를 향해 정면으로 나있었다.


즉, 이 다리의 주인은, 상반신을 의자 아래에 처박아놓은 상태였다.


맨정신의 인간이 이런 기행을 저지를 리는 없었다.



'시체인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바닥을 확인했다.


어렴풋한 시야 너머로 부자연스러운 상반신이 있었다.


고통스러운 자세로 꺾여있었다. 곁에는 단검도 한자루 놓여있었다.



"어어어...!"



벌떡 일어나 뒤로 피했다.


죽은 건가? 죽은 게 틀림 없었다. 정말 시체였던 건가?


방금 만지던 매끈매끈한 액체는 피였던 걸까.



[아. 아.]



시청각실에 달려있던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섞인 발음이 떨어져나왔다.


느리고, 어설픈 발성.


노이즈가 가득하여 사람의 것으론 믿기 힘든 음질이었다.



[봤... 니?]



불투명한 기계음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봤, 겠지.]



아니야. 본 적 없어.


그리 반응해야 할 것 같았다.


입이 얼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고개만 저었다.


처음엔 주춤주춤, 그 다음엔 강하게.



[분명히, 봤을... 거야.]


[콩.]


[콩.]


[콩.]



뭘 두드리는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느릿느릿 말을 하며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성의 주인은 그런 소음을 추가로 보내주었다.


소음은 규칙적이었고 위협적이었다.



[곤란, 한데. 봤으... 면.]


"안, 봤어. 안 봤어요. 아무것도!"



떨며 겨우 입을 놀렸다.


내 말이 들릴 리는 없었다.


스피커란 놈은 일방향으로만 전달되는 장치가 아니던가.


스피커는 아무 말도 않았다.


무언가 결심은 한 모양이었다.


앞쪽에서 쨍그랑하는 소리가 들렸다.


전등이 깨진 걸까.


쨍그랑

쨍그랑




....


유리 소음은 한발자국씩 가까워져왔다.


닫혀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출구까지 달음박질을 했다.


몇번을 시도해도 안 열리는 건 안 열리는 것이었다.


문과 씨름하는 새에 유리 깨뜨리기란 불쾌한 오락이 내 근처까지 다가왔다.


유리가 전부 깨지면 나를 깨는 건가?


그 일념이 대단히 무서웠다.


이윽고, 하늘에서 알 수 없는 부스러기들이 떨어져내렸다.



*



바짝 쫄은 걸까.


이름 모를 사내 놈은 문을 열어젖히고 달아났다.



"아아악! 우아아악!!"



꼴 사나운 비명도 질렀으니 한동안은 조용하겠지.


시아한테 고백이나 하려고 하니 그런 꼴을 당하는 게다.


퉤엣.


내 콩알만한 어린 몸을 일으켰다.


몸에 묻혀뒀던 기름을 털어냈다.


피라고 여겼겠지.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으니.


히히.



"클린."



마법소녀, 참 편하다.


'클린' 한 마디면 깨졌던 전등이며, 기름 묻은 다리까지 한번에 원상복귀니.


폭발 마법으로 깼던 전등은 대강 정리가 되었고, 후다닥 구해왔던 기름도 대충 정리됐고.


더 뭐 있더라?


맞다, 스피커!


방송실에 녹음기 켜둔 채였다.


방송실로 향했다.



"설마 이런 부탁까지 들어줄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교장에 대한 인식도 쇄신할 때가 온 것일런지.


녹음기를 거두었다.


오래된 물건이라 기계음이 섞여 있는 게 불만이었다.


되려 그 점에 떨었으니 플러스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교장 덕에 다른 사람은 방송실에 없었다.


마음 편히 교실로 내려왔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던 지라 시아도 교실에 있었다.


뭐가 불안한지 자꾸만 주위를 살폈다.



"왜 그래요 언니?"


"으응,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는데 코빼기도 안 보여서."



발칙한 여자였다.


그딴 겁보 놈의 뭐가 그리 좋다고 걱정까지 해주는가?


겁에 질려 집까지 줄행랑을 친 녀석인데.



"언니 괜한 생각말고 일어나요, 우리."


"나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시청각실도 가봤더니 없고."



시아가 침울해하였다.


그러니까 네가 왜 침울해하냐고.


너 걔랑 사겨?


여자친구야?


속으로 천불이 끓었지만 이만 갈고 말았다.



"급한 일이 생긴 거겠죠.

가요, 언니."


"그래그래 '언니'. 지금 일어나야지."



시아의 친구로 보이는 여자였다.


이름이... 지희라던가


내가 시아랑 대화를 하는데 끼어들었다.


너는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친구로구나.


의기소침하여 입을 다문 시아 대신, 지희가 계속 떠들었다.



"시아야, 그런 애 잊어버려.

불러놓고 안 왔으면 관심 없단 거야."



오호.


분위기 파악은 못 하지만 괜찮은 친구였다.



"애초에 걔 은근 비실비실하게 생겼잖아.

성격도 찌질한 면이 있고."



안목이 있는 친구로구나.


마음에 든다, 너.



"남자면 좀 결단력도 있구 밀어붙여야지.

맨날 남 눈치만 보는 애가 뭐가 좋아."



야, 너, 이야. 키야.


사상이 무척 마음에 드는구나.


어쩜 그리 옳은 말만 하냐?


지희라고 했지?


내가 책임지고 기억해두마.


기특한 여학생이 시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 탈의실 가야지.

다음 시간 체육이라고."



못내 아쉬워하며 시아가 자리를 박찼다.


지희를 두고, 마음이 맞는 아이라고 생각하였다.


덕분에 탈의실까지 향하는 그 짧은 새에 기쁘게 조잘댈 수 있었다.


지희는 날 어린 아이로 보고 귀여워했다.


입때껏 죽이 잘 맞던 지희와 마찰이 생긴 건 탈의실에서였다.



"체육복 갑갑해서 싫은데."



시아의 불평을 듣고 나와 지희가 돌아봤다.


아직 더위가 잔존하여 선택한 반팔 체육복.


자칫 속이 보일까 염려스러운 흰 체육복은 특정 부위가 팽팽하게 당겨져있었다.


어느 부위인지는 한 눈에 들어왔다.



"또 커진 거 아니야?"


"사춘기도 다 지나가는데 설마."


"어디."



지희가 시아의 흉부에 손바닥을 가져다대었다.


지희는 그대로 몇번인가 세게 주물거렸다.


시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 아야, 아 따거! 좀 살살 만져."


"스흡. 조용히 해봐."



지희는 몰두하는 것인지 눈을 감고 손을 놀렸다.


앗, 저 녀석.


나도 아직 못 만져본 시아 가슴을.


지희가 손을 떼며 말했다.



"이 충만감! 작년보다 더 커졌네.

언제까지 커지려고 그래."



저 녀석 못 하는 말이 없네?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저런 거슬리는 행동을 할 줄은 몰랐다.


더욱 거슬리는 건 시아의 반응이었다.



"하지 말라니까! 아픈데, 정말."



지희는 시아에게서 떨어지면서 뭔가를 품에 감추었다.


검은 색의 가느다랗고 작은 무언가였다.



"하루이틀도 아닌데, 슬슬 익숙해질 때 아니야?"


"하루이틀도 아니니까 그만 좀 해."



입으론 그만하라는 둥, 아프다는 둥 칭얼거리면서 낯은 웃는 빛깔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네.


넌 나한테만 그렇게 단호했던 거냐?


내 고백 거절할 때의 그 매정함은 누구한테 팔아먹었어?


반나체로 끈적하게 달라붙어있는 둘을 노려보았다.


지희가 날 보더니, '흥.' 하는 냉소를 보내주었다.


아하, 알겠다.



"너도 싸가지구나?"



말하자면, 지희와의 평화는 짧았던 셈이었다.


*


원본은 이쪽.
오늘 백업 깜빡할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