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낼 소설임다.

진지하게 피드백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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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에 극심한 피곤함을 내 몸에 삼키어, 내가 걷는 건지 아니면 기어가는 건지도 모른 체 캄캄한 저녁을 지나가고 있었다. 저녁이라 잘 보이지도 않았고, 게다가 사방에 짙은 안개가 끼어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짙은 눈으로 앞을 보며, 내 죽어가는 감각과 오직 잘 보이지 않던 운만으로 길을 걷는다. 늦은 시간이라 사람은 잘 없을 테지만, 이 시간에 지나가는 사람은 보통 평범한 사람이 아니기에 정신을 놓아선 안 된다. 하지만 오늘은 유독 정신을 잘 잡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노예는 반드시 필요한 걸까?


그 노예가 바로 나일까. 작은 회사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걸레짝과 같이 너덜너덜해진 내 몸을 어떻게든 더 써먹으려 애쓰는 그놈들, 그래서 피곤함은 쌓아지고 정신은 죽어간다. 정신이 죽으면 육체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난 왜 이 위험한 공간을 나가지 못하는 것인가?

나에겐, 사랑스러운 내 애인이 있다. 그리고, 그 애인의 뱃속에는 따뜻하고 작은 생명이 곤히 잠들어 있다. 애인은 이런 사랑스러운생명을 떠올릴 때마다, 항상 웃으며 배를 쓰다듬곤 했다. 이 아이도 그녀의 사랑을 느끼는지 항상 뱃속에서 활기찬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발로 차고, 심장 소리는 어찌나 크던지.

이 아이가 세상에 시원한 울음소리를 내며 맞이할 때, 우리의 처지가 곤란하고, 또 가난해선 안 된다. 그래서, 난 일을 하는 걸까. 아이에게 늘 좋은 모습과, 또 행복한 나날들을 보여주고 싶다. 그 선과 도덕이 아이에게 쌓아져, 나중엔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그날까지, 난 일해야만 한다.


내가 죽기 전에….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다. 난 돈을 모아야 한다. 그녀와 그를 위해 난 일해야 한다. 아무리 적은 월급에 날 기계처럼 대해도 난 일해야만 한다. 그들은 나에게 돈을 준다. 돈이라는 내 생명의 이음줄을 준다. 그래서 난 살아간다. 세상에는 필요한 게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아무리 내 자신이 잔인하다고 외친다 한들, 살기 위해서 난 일하는 것, 그뿐이다.

돈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돈이 없다면 우리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며, 살아도 별 의미가 없다. 늘 바닥에서 하루를 지내고, 구걸하여 얻는 더러운 돈으로 배고픔을 겨우 해결한다. 그리고 다시 저녁이 되면 어두운 길거리에서 홀로 쓸쓸히 웅크려 힘들게 잠에 든다.

내가 돈에 소홀히 하며 거지꼴이 된다면, 내가 내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은 과연 무엇인가? 열심히 살아라? 나처럼 되지 말아라?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난 적어도 자식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남고 싶다. 그런 자식도 가정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한 나를 보고 감동하겠지.

돈이 없다면 자식에게 의미를 줄 수 없다. 오직 가진 자만이 세상을 똑바로 볼 것이며, 나머지 들에게 의미를 줄 것이다. 없는 자는 겉눈으로 세상을 볼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욕망에만 갈망하고, 본능에만 충실한 것들이 될 것이다.


집에 왔다. 현관문에 도어락이 조용한 복도에 버튼 소리가 크게 울리며 순간 나를 흠칫하게 했다. 그리고 힘없이 문을 열어 현관 앞에 거실을 본다. 신발을 벗어 옆을 돌아보니 아내가 티브이를 켜놓은 채 쇼파에 앉아 잠들어 있었다. 난 티브이를 끄고 잠든 아내를 깨웠다.

“…. 이제왔어?”

“응, 할 일이 많아서.”

“뭐, 배고프지 않아?”

“괜찮아, 그냥 피곤하기만 하네.”

“그래… 먼저 들어갈께.”

아내는 말을 남기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힘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나도 힘없이 추웠던 저녁에 지켜준 코트를 벗는다. 작은 한숨 소리를 내쉰 채 거실을 한 번 돌아본다. 오직 티브이가 있는 거실만 불이 켜진 체, 나머지는 쎄하게 불이 꺼져있다. 그리고 아내가 지나간 공간을 한 번 봐본다. 온기가 남아있는지도 모를 그 느낌을 생각해 본다.

그녀와의 사랑, 그걸 다시 생각해 본다. 처음 그녀와 만나고 우정을 쌓아 언젠가 그 우정이 극에 달하였을 때, 우리는 그 사랑만을 믿으며 서로를 더 알아가려 했지, 손을 잡으며, 키스도 하고, 그 후에는 더 한 것도 했다. 물론 섹스도 했다. 그래서 내 사랑스러운 아이가 그녀의 배 속에 있는 거니까.

하지만 생명이 생기고 나서, 왜인지 그녀와 나에 대한 관계는 내가 일에 취업한 일 이후로, 점점 약해지는 것 같았다. 시간, 삶에 사랑이 들어갈 시간이 부족하다. 오직 물질적인 생각만을 하여 이보다 더 나은 미래만을 생각하고 쫓아가니, 정작 감정을 생각하려는 시도는 점점 줄어들었다.

물론 이건 이 사회에서 당연하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우리 인생의 사랑이란 따뜻함이 전부는 아니기에, 어쩌면 그런 감정들이 때로는 세상을 이겨낼 견고하고 차가운 갑옷을 둘러야 할 것이다. 그래야지 세상을 좀 더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성욕이든 정이든 나이를 먹으면 점점 묵혀지기 마련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당연하듯 대하는 시기가 다가오는 것이다.

난 그것을 알고 사회에 임한다. 아무리 감정을 가진 대상을 잔인하게 대한다 한들, 난 그 타박에 버티고 낡은 몸으로 보수를 받는다. 이젠, 솔직히 말하면 이젠 그녀와 사랑을 나눌 힘도 거의 사라진 듯싶다.

옷을 갈아입고, 이빨을 닦고 그녀와 같이 한 침대에서 잠에 든다. 먼저 깊이 잠든 아내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신경 쓰며 조금씩 이불을 내 곁으로 끌어와 내 몸을 덮게 한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배게 아래로 떨어트리면, 칙칙한 천장을 잠깐 본 체 눈을 감으며 하루가 마쳐진다.


핸드폰이 진동하며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햇살도 내 눈에 안착하여 하늘을 보라는 식으로 내 눈을 찌르기 시작한다. 난 손을 더듬거리며 침대 옆 서랍에 있던 핸드폰을 잡고 얼굴 위로 올리며 알람을 끈다. 실눈으로 겨우 떠서 다시 감았다 떴다 하며 이불에 덮인 내 몸의 따뜻함을 느껴본다. 아침은 오늘따라 더 추웠기 때문이었다.

이불을 치우고, 따뜻함에 나오자 오들거리는 몸을 이르키고 침대에 잠깐 앉았다. 아직 잠이 덜깨서 그런지 이 포근함을 잠깐만 느끼고 싶었다. 그때 아내가 침대에 누은 채로 내게 말을 걸었다.

“일어났어?”

“응.”

“밥은?

”누워있어. 내가 차리지 뭐.“

”… 고마워.“

아내는 다시 눈을 감고 옆으로 몸을 들어 다시 잠에 청했다. 아내는 아직 직업이 없다. 이런 무직에 가뜩이나 임신까지 해서 한동안은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난 그런 아내를 가끔 부러워 했으나, 그녀 역시 하루하루가 생명을 품는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하고 있기에, 그런 아내를 존중했다.

터벅터벅 방에서 빠져나오고, 덜 떠진 눈으로 냉장고를 향해 간다.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바로 앞에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별로 먹을 건 없어 보인다. 거기서 김치 하나와 멸치볶음을 하나 꺼내고 식탁에 놔둔다. 주걱을 하나 가져와 전기밥솥을 열어본다. 

순간 뿌연 연기가 내 얼굴을 향해 돌진해, 하마터면 화상을 입을 뻔했다. 놀라 난 어정쩡하게 뒤로 물러갔다. 아내가 어제저녁에 밥을 준비했나 보다. 난 밥을 퍼 식탁에 반찬들과 같이 놔두었다.

그리고 퍼먹고, 그릇들을 싱크대에 놔두어 물을 붓고, 몸을 씻으려 옷을 다 벗은 채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끔 목욕하려고 밖에서 다 벗은 채 욕실에 들어갈 때가 많은데, 예전에는 아내가 내 몸을 봐도 이상은 없었지만, 왜인지 요즘엔 아내 모르게 나 혼자 욕실에 들어가는 게 더 좋았다. 점점 이런 점점 변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것일까. 아님 감정을 나누지 못해 사이가 나도 모르게 후퇴해지고 있는 걸까.

샤워기에 물을 틀어놓고, 잠깐 기다린다. 아직까진 차가운 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차가움이 몸에 닿으면 그 차가움이 내 몸에 기분 나쁜 전율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여 몽롱했던 기분들이 순식간에 놀라 달아났다. 그래서 난 차가움이란게 싫었다. 그럼에도 마음엔 차가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차가움이랑 똑같은 건 아니다. 

그건 살려고 바둥대는 내 의지의 한 종류였다. 결국 내 마음속의 차가움도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살려는 의지, 꺾어 내리지 않겠다는 그 차갑고도 불타오르는 의지, 사람들은 그것이 무척이나 차갑다고 별 좋아하지 않을 것이지만, 아직 그들은 세상을 잘 알지 못한 이들이다.

세상은 지금의 날씨만큼 차갑다. 그래서 난 따뜻함을 추구했고, 그 따뜻함이 세상과 맞물러 차갑고도 뜨거운 영원함이 됬으면 싶었다. 그건 예상대로 쉽지는 않았고, 여전히 난 그 영원함을 찾으려 세상에 뛰어들고 있다. 차가운 서리에 베이고, 뜨거움에 데인다. 이해하기 위해서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아봤다. 

하지만 아직 난 세상의 영원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채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분명 영원함을 얻으면 상처는 서리에 굳고, 따뜻함으로 녹아 다시 새살이 솟아날 것이다. 하지만 난 이걸 갈망한 체 계속 치임과 쓰라림만 당하고 있는 것일까.

하얀 연기를 품은 방의 문을 열어 연기를 해방시키고 난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늘 같은 코트와 외출 할 옷이었다. 한 손에 가방을 들어 내 어깨에 멨다. 그리고 벽에 설치된 거울을 한 번 보았다. 변하지 않는 내 모습이었다. 늘 같은 내 모습이지만, 마음은 많이 헌 듯했다. 마음이 늙으면 몸도 같이 늙는다는데, 난 아직 멀쩡한 게 무섭기도 했다.

“잘 다녀와.”

“응.”

금방 일어난 아내가 내 출근 모습을 보고 말했다. 아내는 피곤한 눈으로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도 그런 아내에게 미소를 보이며 현관문을 열어 그대로 나갔다. 문을 열자마자 추운 바람들이 내 몸을 휘감았다. 눈을 잠깐 감았다가, 다시 뜨고, 태양 아래 무척이나 빛나는 푸른 하늘의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다르게 오늘 하루도 정말 화창하구나!


회색으로 뒤덮인 아파트를 내려가고 보이는 건 까만 아스팔트 길과 그 옆에 주차된 차들. 알록달록한 차들 속에서 내 차는 없고 대신 커다란 버스를 타고 간다. 서둘러 추운 날씨에 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어간다. 뛰어가면 바람이 날 주저 없이 괴롭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런 것에 신경 쓰면 결국 늦는다는 사실을 안다.

볼이 빨개친 채 정류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버스에 타고 있었다. 난 서둘러 내 지갑에 카드를 꺼내 그 줄에 끼어들려 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왔을 때, 난 능숙하게 내 카드로 버스 이용료를 냈다. 옆을 돌아보았지만 의자에 빈자리는 없었다.

조용히 버스에 있는 봉을 잡아 흔들거리는 버스와 같이 흔들거리며 지나가는 밖의 풍경을 보았다. 서 있었는지라 밖의 풍경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날씨 하나는 은은한 푸른색이었음을 알았다. 그 푸른색이 세상을 집어삼켜, 온통 다 푸른색으로 물든 것 같았다. 본래 색깔이 조금 남아있어도.

그렇게 반 쯤 정신을 놓고 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고개를 들어 그 광경을 보고 바로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멈춘다는 버튼을 누르고, 문 앞에 서 내릴 준비를 하였다. 물론 카드도 한 손에 든 채. 매일 하던 일이지만, 왜이리 이 순간만큼은 쓸데없이 긴장이 될까 싶었다.

그렇게 지잉 하는 소리에 문이 열리고, 난 카드를 다시 기계에 댔다. 하지만 반응이 오지 않았다. 난 “얼레?“라며 순간 작은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다시 대보는데도 안 되더니, 한 4번쯤 대서야 됐다고 소리가 울렸다. 사람들도 지금 내리려고 많이 있었는데, 난 뒤에서 죄송하다는 소리와 함께 부랴부랴 그 버스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사람들의 불만이 상상되는 시선을 상상하니, 부끄러웠지만 그것을 뒤로한 채 난 내가 다니는 공장에 도착했다. 입구로 들어가는데, 옆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몰려있는 것이 이번의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했고, 왜 이곳에서 사람들이 모이는지 싶어서 그들을 지나가며 구경했다. 그때, 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형식이!”

“응? 아니 규태 형님?“

”마침 잘 만났네. 혹시 말이야, 우리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네? 형님 지금 뭐 하시는데요.“

”나야 지금 시위중이지.“

”시위요?“

”그래, 시위 말이야.“

”아니, 왜 갑자기 시위를 하고 그래요?”

“그게, 어제 영인이가 일 때문에 입원했데, 어제 타이어 그 많은 거 옳기고 갑자기 허리가 아프다면서 하도 지럴하더니, 결국 그게 크게 번졌나봐. 어제 허리가 완전히 금가버려서 쫌 입원을 해야 한다고…”

“영인이 형이요? 그런데 그게 왜요?”

“걔가 어제부터 허리 때문에 빨리 집좀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도, 그 놈들이 허락을 안해줬나봐, 그래서 허리가 더 나가부렸고… 그래서 영인이 완전 화나부러서 이참에 불만있는 얘들 모아서 시위나 하나 하자고, 막 그리 말해서 말야.”

“그래서, 결국 시위를 하게 된거여요?”

“그렇지, 지금 한 바탕 할려고 다 준비하고 있지 않냐. 이참에 잘됬어. 사람을 개처럼 부리는데 월급은 개 좆만도 안주고, 걔네들이 우리 한 번 꼬장 피워봐야 정신 차리겄지.“

형 뒤에 보이는 사람들은 전부 붉은색의 옷들을 입기 시작했다. 그들의 의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영원히, 가슴속에 타오르는 그 한 가지의 색, 그것이 차가우면서도 영원히 타오르는 그 색중에 하나이다. 그들은 각자 자기들만의 불만들을 느끼고 움직이는 해결할려는 의지를 가지며 움직이고 있는 걸까.

그들은 자신들이 잘못 하다간 잘릴 위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전파된 분노 하나로 진정한 노동의 권리를 취하려 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옳다. 하지만 사회적으론 옳지 않다. 위는 그런 행위를 정말 보기 싫어할거다.

그 커다란 눈을 부라리며, 그들의 행동에 되려 성낼 것이다. 그들이 자초한 일인데도 말이다. 오직 이익과 더 많은 이익을 우선으로 원하는 사회가 저지른 일인데도 말이다. 사회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은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만 있었는가!

감성과 이성의 싸움. 그래서 그들이 시위를 일으켰다.. 만일 그들이 기계로 변했다면 모를까, 결국엔 형도, 그들도 사람이라서 사회의 순리에 반항하려 하는 것이다. 인간의 지성과 힘. 그들이 세상에 반항할 수 있는, 그들의 얼마 없는 무기다.

“야. 너두 우리랑 같이허라.”

“네? 제가요?”

“그래, 너도 아내랑 이제 곧 자식까지 생긴다매. 그러니께 돈좀 더 벌어야 하지 않겄어?”

“네…”

“그니께, 이 일이 성공하면 이것보단 일하는게 더 수월하게 될거야.”

“네.. 근데 이런건 형님이 대신 해줘도..”

“에이, 우리론 부족할지도 몰라서 그래. 화력을, 그래, 화력을 더 키워야지 임마.”

솔직히 형의 말은 솔깃했다. 나도 내 몸을 잘 챙기지 못한 채 많이도 아프고 쩔쩔매던 경우가 많았다. 어젯 저녁만 해도 몸이 거의 걸레짝이 되어 집에 돌아오지 않았나? 그럼에도, 내 정신이 죽어가는 위태로운 상황에 돈을 받아도, 내가 내 정신을 위해 쓸 돈은 거의 없었다. 이게 현실이라고 늘 주구장창 되뇌었지만 늘 고통스럽기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늘 궁금해했던 건, 과연 이런 고통을 아버지는 어떻게 해결하셨는가였다. 아버지도 나랑 같이 한 공장에서 일을 하셨는데, 내 어릴 적에 남던 기억은 저녁에 아버지가 늘 웃는 모습으로 밖에 달려오는 어린 나를 반기며, 항상 웃음기로 날 전염하신 게 떠오른다. 비 온 날이든, 눈 오는 날이든.

아버지는 어떻게 버티셨을까. 이 고통스러운 사회가 내 마음에 계속 바늘과 칼을 맞대어, 계속 헐어버리게 만드는데, 아버지는 그 속에서 어떻게 행복과 기쁨을 만들어 내셨을까. 그저 부성애라는 마음 하나로 날 반기셨을까. 내가 자라 훌륭한 어른이 될 거라는 그런 희망과 꿈으로, 내 그런 어린 모습을 보면 그런 미래들이 그려져서 그런 것일까.

그래서 가끔식 어둑어둑한 길을 걸어갈 때, 이런 생각을 마음 속에 깊게 외쳐보곤 했다.


아버지! 이 덜 자란 사람으로만 절 보시고 떠난 아버지!

이 사회가 너무 불확실해서, 이젠 살아야 한다는 희망만 품고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전 어찌해야 할까요!

아무리 노력하고 기회가 와도, 그때쯤엔 저라는 존재가 사라질 것 같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께서 제가 큰 사람을 꿈으로 가지시라 하셨지만,

전 아버지가 가지시던 웃음을 저도 가지고 싶다는 생각만, 그런 소박한 희망만

힘들게 갈망하며 꿈꾸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더 큰 이익이라면 웃음을 얻을 텐데, 더 큰 편안함이라면 웃음을 더 얻을 텐데. 형은 그런 나약한 정신력을 건드는 악한 존재 같았다. 내가 그들과 같이 합세하면 나중에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도 모르지만, 난 지금 절박했다. 왜인지 모르게, 갑자기 찾아온 위험한 기회에 난 이 기회라도 잡고 싶다고… 마음이 외쳤다. 그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진정으로 절박하다면 지옥에서 썩은 동앗줄이라도 잡아라. 그것이 정녕 쉽게 끊어지게 보여도 우리를 올릴 수 있는 조금의 기회라도 있으면 망설임 없이 올라타라. 실패를 두려워 말고, 그로 인해 얻을 이익을 생각해라.


결국, 난 형의 무리에 합세했다. 내 미래와, 그리고 내 자식과 아내의 미래를 위해 말이다. 나도 그들과 같은 의지의 옷을 입었고, 서서히 시위가 시작되는 규태 형이 확성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왔다. 확성기도 빨간색이었다. 그리곤 뒤로 돌아 무리들을 향해 외쳤다.

“자 가보자잉! 내가 외치면 너희들두 덩달아 외치는 거여!”

형이 구호를 외치자 내 주위에 있는 무리가 덩달아 외치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 외쳐야 하는데 이 순간이 뭔가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잘해 보지 않았던 터라, 목소리가 잘 나오지도 않았다. 되려 나온다 해도 떨리는 목소리일 뿐.

근데 불행히도, 오늘은 유독 날씨가 더 추웠다. 바람이 쉬지 않고 불어댔지만, 그들은 그럴 때마다 격렬하게 소리쳤고, 또 움직였다. 무리 안은 정정껏 구호를 외치며 열기를 뿜어댔지만, 밖은 그 열기를 쉽게 이겨내며 우리를 추위에 떨게 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더 격하게 움직이면서 추위를 이겨내고자 했다. 하지만 겨우 나온 땀방울들은 바람 때문에 쉽게 말라버리고, 내 손과 얼굴도 점점 차가워지며 불쾌한 건조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가 과연 사회랑 싸우는지 날씨와 싸우는지. 의문점이 들었다. 서로가 옹겨 붙음에도 추위는 사라지지 않고 되려 이상한 냄새만 더 불쾌하게 날 뿐이었다. 서로가 오들오들 떨었으며, 앞에 서 있던 형도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는지 ”젠장.“이라며 짜증을 내고는 떠는 몸을 붙잡으며 결국 우리 무리 사이로 들어갔다.

“우리가 그깟 돈 더 얻을라고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나.”

누군가가 무리 사이에서 말했다. 이 소리를 듣고 나도 시커먼 연기가 나오는 공장을 향해 보았다. 불이 켜진 공장 안에 사람들은 우리 같이 반항하지 않으며 따뜻한 곳에서 힘든 일을 하고 있겠지. 어쩌면 우리의 삶에 이익이라 함은 순종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저 돈 몇 원을 더 얻기 위해, 이런 개고생과 불운을 겪어야 한다는 게 싫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반항은 우리가 저지른 일이란 것을. 처음의 불행과 고생을 시행한 것도 다 우리의 탓이다. 결국 우리는 시작한 지 몇 시간 안. 되이고 해산했다. 쓸쓸히 서로가 떨면서 돌아가는 그들과 나를 보자니, 참으로 한심해 보였다.

그 붉은 옷을 벗고 다시 코트로 갈아입어,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다시 일을 하고 들어가자니 너무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난 이미 시위에 참가한 사람이다. 이 시위가 오늘 하루만에 끝난 건 절대로 아닌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인지 난 다신 시위에 참가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저 오늘 시위를 했을 때 난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봤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이상하게 보았고, 또는 안타깝게 보았다. 흥미 있게 앞으로 계속 가면서도 고개를 뒤로 돌아 우리를 계속 보던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선의 공통점은, 우리를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리를 구경하며 신기하게 보았다. 조용하던 공장에서 뜬금없이 사회에 반항하며 격한 움직임을 하는 우리, 그건 동물원에서 구경꾼들을 향해 격한 반응을 하는 동물에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저 재미만 선사한 동물만 되었을 뿐일까. 아니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우리의 의지를 전달할 수 있었을까?

그것보다. 난 더한 두려움이 있었다. 반항하다 걸린다면, 오직 끝날 순간만 남는다. 난 오늘 진행한 시위를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저 월급을 올릴 거라는 그런 내 탐욕적인 생각으로 들어갔지만 첫 날부터 이런 실패로 돌아간다면, 난 다음 공장에 들어갈 때 어떤 민낯으로 들어가야 하나?

해고될까 두려웠다. 차라리 그런 탐욕에 들어가지 않는 게 나았다. 내가 시위에 참여한 것을 알게 되면, 높은 확률로 짤릴지 모른다. 난 그게 두려웠다. 내가 짤린다면 난 어디로 돈을 벌어야 할까. 그저 그 시위 한 번으로 내 아내와 뱃속의 아기에게 실망감을 던져주었을지도 모른다.

그 기회를 잡은 내가 바보였다. 난 순간의 욕심에 속았다! 아직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들이 우리를 보았는데, 위쪽으로 안 흘러갈 리가 있을까? 난 내일도 내 직업이 살아있을까 무서웠다.

문을 여는 소리가 이전보다 더 강했다. 이젠 손을 떨지 않고도 문을 열 수 있었다. 아내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부엌에 국을 끓이고 있었다. 아내는 빨리 온 나의 모습을 보고 말했다.

“어머, 웬일이야 이 시간에?“

“어… 아냐 그냥,  몸이 좀 아파서..“

“좀 아프면 지금 국 끓이고 있는데 와서 한 번 먹어봐.”

“응. 고마워.”

코트도 벗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앉아 국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지난 몇 시간 동안 뭘 먹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차가워진 손을 볼에 갖다 대기도, 옷 속에 넣기도 하며 조금이나마 차가움을 식혀본다. 하지만 그리 쉽게 차가움이 사라지진 않았다. 그리고 아내가 탁자에 국을 놔두었다.

끓이고 있다는 국의 정체는 바로 콩나물국이었다. 아삭아삭한 콩나물이 따뜻한 국 위에서 둥둥 떠다니다가, 다시 가라앉기도 했다. 난 그 국이 담긴 뜨거운 그릇을 몹시 차가워진 손으로 만져본다. 열이 순식간에 손으로 전파되며 차가움이 따뜻함을 만나는 순간, 이 순간에 절정 비슷무리 한 것을 느꼈다. 

국은 노란색이다. 숟가락을 들어 그 국을 한 번 떠서 마셔본다. 콩나물 국 특유의 밍밍함이 입 안에 감돈다. 그렇다고 그 밍밍함을 싫어하진 않는다. 우리는 전부 극적인 것을 좋아했고, 또 몸에 베어버렸으니, 난 삶에 조금의 안정을 위해 이 심심하고 소박한 맛을 좋아했다. 그리고 따뜻함. 그래, 우리의 삶이나 모든 삶에는 하나같이 모두를 진정케 하는 게 바로 따뜻함이다.

한 번 그 작은 맛을 음미하고, 또 같이 콩나물을 먹어본다. 오독함과 아삭함이 조화롭게 미각을 꾸미며 작은 짭짤함과 작은 고소함이 또 날 느끼게 만든다.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있으면 좋으련만. 이런 작은 것들도 나의 행복을 만드는데, 아주 쉽게도 만드는데.

“뭐해. 코트는 벗고 먹어.”

아내가 웃으며 내 코트를 벗겨주었다. 순간 난 따뜻함에 정신이 팔려 아내의 선의를 모르고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려,

“아냐, 내가 할게.”

라며 집었던 코트를 다시 잡아 옷장으로 걸어놓았다. 그리고 온 김에 옷까지 갈아입었다. 아내는 잠시 의아심의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탁자에 앉던 내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걸어왔다.

“있잖아. 우리 아기 태어나면, 이름을 뭘로 지을까?”

“글쎄. 그건 왜.”

”가끔식 고민을 좀 해봤거든.“

”이름이야 나중에 태어나서 지어도 되지.”

“그래도, 이제 곧 태어날텐데… 미리 지어주고 싶네. 자기는 우리 아기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어?”

“행복하게만 자라면.”

“에이, 좀 구체적으로 대봐. 행복은 나도 바라지.”

“구체적으로… 글쎄, 그냥 성공만 해가지고 잘 살면 좋겠네.”

“그럼, 우리 애도 벌써 격하게 움직이는데, 뭔가 될 놈 같아. 그치?”

“….”

사회의 성공이란 그리 쉬운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누구나 꿈을 바라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들이 본 목적은 환상에 꾸며진 것, 진실은 바로 저 너머에 있다. 그곳은 바로 지겹도록 뗄 수 없는 현실이다.

꿈은 현실을 거쳐 간다. 그렇기에 순수했던 꿈이 사회의 공기를 맞아 뾰족해지고, 거칠어진다. 그 사람들의 한숨과 땀과 눈물에, 꿈에 다가가던 사람들은 흉측하게 변한 꿈에 놀라 그 꿈을 포기하기도 한다. 

성공이 쉬운 건 줄 아나? 결코 아니란 것을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이 그 흉측함에 대응하기 위해 일하고, 공부하고, 또 성실히 살아간다. 그리고 겁 없이 게으르고 무모한 자가 그 꿈에 맨몸으로 다가가다 쓰디쓴 아픔을 보는 것이다.

그 가시와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그만큼을 뛰어넘은 아픔과 힘듦을 느꼈는가. 차라리 심각할 때는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았을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현실은 정말 악한 존재다. 우리는 사회를 거쳐 악해지고, 또 나약해진다. 우리는 확실히 거대한 존재지만, 그 거대한 무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또 그보다 더 거대한 사람들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진다. 그건 당연하다.

우리 모두가 꿈에 대해 확신을 못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성공을 확실하게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더 갈망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거다. 난 그런 아이들을 수많이 봐보았고, 나도 지금 마찬가지다.

이 아이가, 나의 유전자를 얻은 이 아이가, 과연 세상 밖에서 나와 그 어두운 곳에 꾸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그 속에서 영원토록 어둠을 본 체 가상의 빛을 생각하여 그 빛에서 꾸리던 해방과 힘을 현실에도 생각하고 있는 아이라면, 과연.

넌 자란다. 넌 자라서 세상을 본다. 세상은 네가 본 어둠이랑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구나. 그래서, 네가 빛을 만들어야 하는 거야. 어둠 속에서 자기 스스로 빛을 만들어 내야 하는 거야. 그게 희망이고 그게 의지야. 그것이 인간이 오랫동안 살아남은 증거지.

순간 밤이 왔고, 난 늘 똑같이 한 침대에서 잠에 들었다.


아침에 어제의 시위를 인식하고 회사에 출근하는데, 꼭 나 자신이 첩자가 된 느낌이었고, 또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만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지나갈 때마다 가방끈을 꼭 잡고 부들거리며 지나가야 했다.

그렇게 내 작업실로 왔을 때, 한 사람이 내 등을 쳤다. “어이”라는 소리와 함께 난 순간 놀라 큰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다름 아닌 영인 형, 규태 형과 같은 나이 때의 사람이었다.

“어젠 괜찮았는감?”

“어제요?”

“그래 어제, 어제 밖에서 같이 시위하고 덜덜 떨었던디 몸은 괜찮아?”

내가 시위에 참가했다는 소리를 형에게 듣자 난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도 지나가면서 날 봤을 확률은 높긴 하지만, 이렇게 말해주니 순간 당황했던 거다. 

“.. 괜찮아요.”

“다행이네. 당분간은 검사장 눈에 띄지 말고.”

“네? 왜요?”

“왜냐니? 너 모르냐? 이번에 규태가 시위 주도했다가 짤렸다고 소리 들렸는데, 그래서 이번에 시위한 놈들 싹 다 없센다는디?”

맙소사!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내 미래와 내 앞길이 서서히 어둠으로 스며들고, 또 난 다시 쓰러져 땅바닥에 기어가며  살아야 하는 건가? 이 말을 들은 이상 더는 일을 하지 못했다. 왜냐면, 모두가 날 조사하는 감시 카메라 같아서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난 그 말을 듣고 떨리는 몸을 붙잡아 그냥 밖으로 나가버렸다. 가방을 감싸고, 앞만 보고 달렸다. 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할까? 앞으로 반항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싹싹 빌어볼까? 생각했지만 이미 내 몸은 회사 밖으로 나가 도로에 차들이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만이 있는 공간일 뿐이었다. 난 이제 다시 들어갈 용기도 나지 않아 그대로 버스 정류장에 기다려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덜컹거리는 버스에 탄 나는 버스보다 더 흔들렸다. 서 있을 힘이 남아있지 않아서 옆에 있는 의자에 가가스로 앉았다. 그리고 계속 뛰는 심장을 인식한 채 난 눈을 감으며 이 모든 것에 부정했다.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버스에 내리고 내가 힘없이 걸어가며 도착한 곳은 술집. 거기에 들어가서 얼마를 마셨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콜로 적신 쓰레기 같은 정신을 가지고 나올 때는 달도 보이지 않는 저녁이었다. 난 하늘을 보며 걸어갔다. 휘청이며 걸어갔다. 내 앞으로의 처지를 느끼고자 바닥을 기어가며 갔다… 바닥은 무척이나 차가웠지만, 내 볼은 뜨거웠다. 그래서 난 차가움을 몰랐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아내는 벌써 잠들어 있었다. 불도 거실은 빼고 전부 꺼져있었다. 난 고개를 돌려 거실에 있던 내 소파를 보았다. 소파는 낡았다. 아니, 내가 생각한 낡기보다 더 낡았다. 그 소파가 점점 낡다 못해 거의 썩어가며 변하고 있었다.

불 꺼진 부엌을 본다. 어둠이 돌아가며 날 향해 웃음 지었다. 식기구들은 쨍그랑거리며 귀를 시끄럽게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시위를 했던 강렬하게 외쳤던 시위의 구호들이 들렸다. 난 귀를 막아서 신음소리를 냈다. 이제 더 이상 들리고 싶지 않다고, 연신 되뇌었다.

난 힘겹게 아내가 잠든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불이 꺼진 체 서리가 노래하는 고요만 남았다. 방은 추워서 아내는 이불을 덮고 있었다. 난 춥지 않았다. 난 지금 더웠다. 얼굴이 붉게, 그리고 몸은 휘청이며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은 달빛이 비추어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녀의 배도 같이 보았다. 그리고 난 무심코 그녀의 배에 얼굴을 갖다 댔다. 배는 따뜻했다. 그 안에서 심장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게, 고요하게 두근거렸다.

차가운 방 안에서 난 따뜻하고 불타오르는 생명을 느꼈다. 그것이 내 얼굴에 스며들어 온몸에 전파시켰다. 난 배를 더 감싸 안았다. 심장 소리가 더 명확하게 들렸다. 난 그 심장 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래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여보.. 여보 뭐해? 아퍼.“

아내가 말했지만 난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심장 소리를 들을 뿐이었다. 그 작고 가여운 소리를 듣자니, 이런 작은 불씨가 거대한 차가움으로 사라질까 생각했다. 그러자 눈물이 났다. 난 아내의 배 위에서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여보, 여보 왜 그래?”

아내가 나를 흔들며 날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난 느끼지 못했다. 그저 이 따뜻한 불씨만 잡은 채 계속 흐느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