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질 듯 머리가 아파져 왔다. 두통이 오면서 현기증 오고 가고 있었다.

지금 상태를 표현하자면 책 같은 것을 차 안에서 읽어 멀미로 인해 토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일어나려 했지만, 무언가에 짓눌린 듯 무거워진 몸은 일어나기를 거부하고 있었고,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속에 맴도는 메스꺼움은 목소리를 내는 것을 막고 있었다.

눈을 뜨려 했다. 어떻게든 눈을 뜨려 할 때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몰려오는 현기증은 양 눈을 다시 감게 만들어 주었다.

비몽사몽인 상태라서 내가 꿈을 꾸고 있는지 깨어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을 때, 귓속에서 콧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했는데, 라라라-하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소녀의 목소리가.

'요정인가...'

소녀의 목소리는 혼잡하던 현기증이 조금씩 가라앉아 어지러움이 사라져 가는 느낌이 생겼다.

저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일까? 저런 목소리를 가졌으니 분명히 아이돌 아니 여신과 같은 외모겠지? 라는 궁금증이 오고 갈 때쯤 저벅-저벅 하는 내 쪽으로 걷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눈앞에 등까지 내려온 순수한 핑크색 머리카락의 네추럴 웨이브 머리카락의 앰버색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눈 떠진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깨어났다는 것에 기뻐하는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꿈속에서 나올 듯한 아름다운 소녀가.

만약 진짜로 이게 꿈이라면 평생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은 눈앞에 소녀를 영영 못 만날 거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녀를 따라 미소를 짓는 것을 답해 줬을 때, 소녀는 병을 꺼내더니 빨간색의 연고 같은 것을 내 볼에 묻히기 시작했다. 발랐을 때의 따끔한 느낌으로 인해 아야! 하는 비명을 외쳤을 때 소녀는 눈을 크게 뜨면서 무언가를 말하였다.

아직 비몽사몽 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아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밝은 핑크색 입술에서 나오는 달콤한 목소리가 나를 편안 하게 해주고 있었다.

약을 바른 뒤 소녀는 내 얼굴을 들더니 자신의 무릅위에 눕히게 했다. 포근함이 머리 밑으로부터 전달되면서 눈동자를 올려보니 소녀는 핑거리스 장갑을 낀 검지를 입술에 댄 뒤 쉿-하는 소리를 내었다. 한쪽 눈을 감은 체 미소를 지으면서.

핑크색 머릿결의 미소녀에게서 나오는 향기로운 향은 단순히 긴장을 풀지 않았다. 마치 그동안 그리고 최근 일로 인해 쌓인 피로를 한 번에 풀라는 듯 서서히 잠이 몰려오고 있었고.

스르륵 눈이 감겨질 때쯤 입안으로 액체가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달콤하면서도 왠지 모를 쓴맛에 눈을 떠보니 소녀의 손에는 병이 들려 있었다. 밝은 녹색의 액체가 들어간 약병이.

팍! 하고 소녀를 밀쳐낸 뒤 뒤로 물러갔다. 저 이상한 약병을 들고 있는 소녀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최대한 떨어지면서.

"쿨럭! 쿨럭!"

도망치는 와중에 약물이 기도 쪽으로 넘어갔는지 기침하게 되었다. 기침하는 와중에 고개를 들어보니 소녀도 크게 당황했는지 양손을 벌리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니 어깨를 훤히 드러낸 흰색의 민소매 비슷한 상의와, 금색의 테두리가 그려진 붉은색의 약간 짧은 스커트를 입은 소녀가 눈앞에 보였었다. 화염과 비슷한 색의 붉은색 망토를 입은 그녀의 옆구리를 자세히 보니 MMORPG 혹은 이세계물 라이트 노벨에서나 볼 수 있는 여러 색의 약물이 담긴 약병과 커다란 두께의 책 한 권이 끼어져 있었다.

혹시 쟤 이세계 판타지 마법사 코스프레 하는 중인가? 흉내 낸단 치고 나한테 이상한 색이 담긴 약물을 먹이려고 했고.

"쿨럭-뭐 먹이려고 쿨럭! 한거야!?"
"....?"
"아까 전 나 누워 있을 때 뭐 하려고 했어!? 수상한 짓 하려 했지!?"
"................?"

소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기울였다. 아까 전부터 무슨 얘기를 하냐는 듯.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던 소녀는 검지로 입을 가리키면서 무언가를 말하였다. 그것은 한글이 아니었다. 영어인가… 라고 생각하면서 불어? 독어? 심지어 일어가 아닌가 라고도 생각했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태어나면서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언어라는 점이다.

"정말 중증이네..."

이세계 코스프레를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이 세계 언어 코스프레까지 하고 있어. 평소에 이 세계 라이트 노벨이나 웹툰을 보면서 살아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 것을 떠나 자세히 보니 균형이 잘 잡혀 있는 몸매를 가진 소녀였다. 가느다란 팔다리를 비롯해, 매끄러운 라인을 가진 허리는 그녀의 매력을 더욱더 돋보이게 해주었고. 저런 몸을 가지고 있으니 코스프레가 가능하겠지만.

"저기 그러니까..."

나도 일단 말 한마디 해보기로 하였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아무 말이라도 말이다.

"곤니치와? 헬로우? 나는 이세계 출신의 용…. 사? 여신에게 선택받아서 지구에서 여기로 전생…. 했어."

....처음 보는 여자애에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람. 오타쿠에게는 오타쿠들만의 방식으로 대화해야 효과가 있을 거로 생각해서 온갖 말을 해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쟤 지금 뭐 하나? 라고 말하는 표정뿐이었다.

하고 난 뒤 엄청나게 뻘쭘해지는 느낌이었다. 처음 보는 여자애에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이러다가 이상한 이미지 박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참 동안 내 얘기를 들은 소녀에게서 흐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지로 머리를 톡톡 치면서. 한참 동안 고민한 뒤 소녀는 손가락을 딱 친 뒤 싱긋 미소를 지었다. 무언가가 생각이 났다는 듯.

소녀는 바닥에 놓인 여러 주머니가 달린 가죽 가방속에 손을 넣었다. 한참 동안 뒤지고 뒤지다가 찾았다! 라고 말하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무언가를 꺼내었는데...

"테이블?"

가방속에서 테이블을 쑤욱-하고 꺼내는 것이다. 사람이 앉아서 밥 먹을 정도 크기의 미니 테이블을. 처음에는 내가 잠이 들깨서 헛것이라도 본 건가 했을 때, 탁! 하고 테이블이 바닥에 놓이는 소리는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여러 크기의 약병들을 비롯해 악연(藥器)으로 보이는 돌 위에 허브로 보이는 풀들을 놓기 시작했다. 안경을 쓴 뒤 소녀는 자기 옆구리에 차던 책을 펼쳤다. 페이지 몇 장을 넘긴 뒤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악연에 허브를 놓고 갈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악연에 갈아놓은 풀을 빈 약병에 넣은 뒤, 투명한 색의 액체를 넣어서 흔드니 서서히 새로운 색으로 물들여져 갔다.

보기만 해도 찜찜해 보이는 탁한 파란색으로.

음음! 하면서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약병을 보이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마치 먼지가 들어간 듯한 색깔과 비쥬얼의 파란 약물이 담긴 약병이 내 얼굴에 가까이 오려 할수록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갔다.

소녀는 포기하지 않고 자석에 끌린 쇠처럼 내가 뒤로 물러가도 바짝 쫓아오고.

한참 동안 반복된 행동을 하다가 소녀는 멈춰 섰다. 내가 약물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소녀는 아까 전처럼 검지로 이마를 톡톡-친 뒤 약병의 뚜껑을 열었다.

검지로 약병을 가리킨 뒤 자신의 하얀 목덜미의 위아래를 검지로 쓱 긋고 나서 한 모금 마시는 소녀. 저 푸른색 솜털이 듯한 비주얼의 약물에서 쓴맛이 나는 지 구겨진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는 한 발짝 다가갔다.

천천히 한 손을 뻗으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약병을 내 손에 건네주는 소녀. 솜털인지 곰팡이인지 모를 약물을 바라보니 이거 마셔도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카락 소녀는 자신의 앰버색 눈동자로 약병을 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른 마시라는 듯…. 이라기보다 뭔가 기대로 가득 찬 표정? 반짝이는 눈동자로.

한번 심호흡을 크게 하였다.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운 뒤 숨을 크게 내뱉은 뒤 약물을 입에 넣으니, 쓴맛을 비롯해 은근히 달콤한 향이 느껴지는 약물의 맛이 느껴졌다. 무언가의 찜찜함으로 뱉을지 라는 충동이 생겼지만, 나를 위해 약을 만들어 주고 어떻게든 안심시키려고 직접 마시기까지 내 눈앞에 있는 소녀를 보면서 결국 목구멍으로 넘기게 되었다.

설마 죽기까지야 하겠어? 라는 생각과 함께.

"으아! 써!"

쓴맛이 내 입 바닥과 천장을 지배했다. 약물의 쓴맛이 공기가 되어서 내 입 밖으로 나오는 느낌을 받는 와중...

짝! 짝! 짝!

축하해-라고 말하는 듯 나한테 박수를 치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었다. 정말로 기뻐하듯 해맑은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면서 한 손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예쁜 여자애에게 잘했다고 칭찬받으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마시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약이 쓰다는 것과 약의 향이 입과 코로 나오는 거 외에는 딱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괜히 무서워했네. 바보처럼. 예쁜 여자애 앞에서 남자 답지 않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라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

주변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 무거운 추가 들어간 듯 서서히 머리가 무거워져 갔다.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으려 했으나...

"너...너!"

소녀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손을 뻗자, 내 무릎의 힘이 풀려지면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려 하면 두통을 더불어서 서서히 몸이 무거움은 더욱더 심해져 가면서 결국 내 몸은 땅하고 부딪히고 말았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서히 흐려져 가는 시야에는 나한테 약을 먹인 핑크색 머릿결 소녀의 하얀 다리가 천천히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쓰러졌다는 것을 확인한 뒤.

걷는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공포를 느꼈다. 나한테 무슨 짓을 저지르는 거지? 설마 마취용 약을 먹이게 한 뒤 나를 들고 대기하던 트럭에 넣어서 장기들을 꺼내기 위해 이 짓…을...?

의식이 서서히 멀어져 갔다.

저벅...

소녀의 발이 내 얼굴 앞에 멈춰 서면서 내 눈이 스르르 감겼다. 어떻게든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눈동자를 위로 올리려 했지만, 그 또한 허락해 주지 않았고.

눈이 감겨져 어둠만 보였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소녀는 지금 내 앞에 서 있다고. 쓰러진 나를 바라보면서.

무서워… 속내를 모르는 미소녀의 유혹에 빠져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 건가.

누가…나 좀…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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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썼던 내용을 다시 리메이크 하는것이 보통 머리 아픈게 아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