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의 골목인 9구에 산다. 나이는 38세 젊다면 젊고, 늙다면 늙은 나이다. 이 세계는 돈만 있으면 영생이 가능하다.

날개의 높으신 분들은 특이점이란 걸 사용해서 영생을 누린다 던데... 나는 언제쯤 날개에 입사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어차피 나는 뒷골목의 주민. 힘도 명성도 명예도 없는 이름없는 피아니스트.

한때 나는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믿었다. 내가 피아노를 잡았을 적 부모님이 감탄하신 모습에 자신감을 느껴서 일까.


기쁨에 젖었던 난 본격적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루...이틀...1달...1년. 


미안하지만 자네는 음악에 소질이 없는 모양이야. 다른 길을 찾는게 좋을듯하네.


선생님으로부터 1년만에 재미없는 연주라고 악평을 듣고 재능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후 출세길을 놓쳐 버린 채 14년 넘게 단란 주점에서 볼품없이 피아노 연주나 하는 신세다.


울적한 맘을 달래려 술집으로 향할 때 거대한 빛줄기가 우뚝 솟아올라 찌부드드한 하늘을 밝게 물들였다. 

밝은 빛은 3일동안 도시를 뒤덮었고, 3일째 되던 해 어둠이 드리웠다. 


하루의 정적이 찾아왔을 때 사색이나 옛 기억에 잠기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내 재능이 언젠가 인정받으리라 믿는다.

비록 헛된 희망이지만서도.


내가 누구로 대체 되든 상관없다. 어차피 내 인생을 글러먹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피아노를 놓지 않는다.

나는 피아노를 좋아하고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나만의 작은 연주를 지키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어이. 여기 테이블에 술 한잔. 이 보개들! 같이 술이나 한잔 하자고!


취객인가. 그러든가 말든가. 


술집의 놈팽이가 술에 취한 채, 친구들과 함께 비틀거리고 있다. 뒷골목에선 으레 흔한 광경이다만 돈을 받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나로썬 심기가 거슬린다. 허나 나는 그저 흘려넘겼다.


그때. 놈팽이가 다가와 나를 밀쳤다. 


형편없는 솜씨군. 내가 연주하는게 너보다 더 잘하겠다. 


비루한 자존심으로 지켜왔던 내 자리다. 양보할 수 없다. 이건 내 마지막 남은 정체성이자 삶의 목적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헛된 희망일 뿐이다. 점주가 나타나 내 뺨을 때렸다. 손님의 요청이니 비켜라.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내주었다.


놈팽이가 치던 곡은 내가 방금 전 친 곡과 똑같았는데도, 가끔 취미로 쳤다던 놈팽이의 연주가 주점 내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나의 마음조차 빼앗아가 버렸다. 한낱 한량에게서도 재능에서 밀려버린 것이다.


나는 더이상 견디지 못해 뛰어가 그를 밀치고는, 온몸이 건반에 박히고 꺾이도록 피아노에 몸을 처밖아댔다.


"손님들이 연주를 무시한 게 밉지 않았고, 점주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은것도 밉지 않았다.  

후원자 덕에 높이 올라간 동기들이 밉지 않았다. 다만, 나는 피아노가 좋았기 때문에 피아노를 치며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 도시에선 그게 허락되지 않았다. 좋아하는 마음으론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이며, 나답게 살아갈 자유가 없고

왜 멸시받아야 하는, 그렇게 평가받아야만 하는 이 도시가 혐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