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m.youtube.com/watch?v=5VlKkVhzh98

(브금은 선택사항)(대략 2:10 부터)



202X년 12월 겨울. KCTC 훈련장. 

델타 고지를 눈앞에 두고 납작 엎드린 2분대 박 이병. 

진한 화약내음과 공포탄 총성들이 그의 정신을 홀린다.

전투의 치열함과 떨리는 그의 몸은 마치 지면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실전과 같은 훈련'.

그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뺏고 뺏기던 고지전 속에서 선봉 소대는 전멸했고,

적의 화망과 포탄 낙하 속에서 3소대는 고립되었다.

전입 온 후 고작 한달만에 치루게 된 KCTC.

억울하다는 푸념은 동기들의 죽음으로 사라졌다. 

이번엔 내 차례라는 생각에, 가슴이 옥죄어 오기 시작한다.


소대장은 최종 명령을 하달한다.

돌격을 외치는 순간,

박 이병의 눈앞은 흑백으로 물들었다.






1951년 351 고지. 앳된 나이의 국군 장병들이 

구형 철모와 M1 소총으로 무장한 체 처절한 질주를 감행한다.

한명 한명의 절규하던 낯빛은 생기를 잃고 고꾸라진다.

전우의 시신을 뛰어넘어 달리는 소대장.

이내 지천이 한차례 흔들리며, 그의 형체는 사라졌다.

수습된 시신더미를 허망하게 바라보는 연대장과 참모진들.

고개를 떨구는 주임원사. 발치에 놓인 누군가의 반지를 바라본다.





이내, 파노라마가 흐른다.


1950년, 인천 해안을 돌파하는 미 해병들과 장진호의 해병들.


1951년, 지평리 전투에서 사이렌을 울리는 프랑스군 병사.


1952년, 저격능선전투에서 부상병을 부축하는 에티오피아군 선임하사.


1953년, 김화 351 고지를 사수하는 태국군 장교.


영국군, 네덜란드군, 그리스군, 남아공군, 캐나다군, 필리핀군, 터키군, 뉴질랜드군, 호주군, 콜롬비아군, 룩셈부르크군, 벨기에군의 처절한 혈투들이 차례대로 비춰진다.



(서서히 잦아드는 음악)




시기는 다시 2023년 12월.

고지를 탈환한 3소대와 포반은

적의 반격 징후가 없음을 확인하고 주저앉는다.

거대한 노송에 몸을 맡기고 숨을 헐떡이는 박 이병.


그때, 모두의 무전기가 울리기 시작한다.


(치직... 치지익..)


모두의 몸이 일순간 얼어붙으며 선임들이 웅성인다.


"적 포탄 낙하?"

"포탄 소리가 아닌데?"

"MOPP 발령?"

"설마 또 역공이야?"

"아 제발.. 진짜 더 이상은..."











'.. 훈련종료. 훈련종료.

14시 45분 부로,

9사단 28연대의 전투훈련을 종료합니다.'





델타 고지 일대에 탄식과 환호가 울려퍼진다.

박 이병은 그대로 주저 앉아, 하늘을 올려본다.

소나무의 나무가지엔 주인 모를 둥지가 놓여있었다.


그의 등에서, 방탄복 너머로 느껴지는 묵직하고 거친 노송의 촉감. 낯설지만은 않은 이 묘한 기운에, 

차가운 숨을 들이킨다. 누가 이 풍경을 보고 있었을까. 

나와 같은 풍경을 보고 있었을까.


알 수 없지만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기운을 받아들이며

선임의 손을 잡고 일어선다.


그렇게 누군가의 끝은, 나의 시작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