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떻게 된거지? 분명히 나는 죽었다. 정확히는 내가 어렸던 시절 부자까지는 아니어도 행복했던 우리 집안을 지옥에 빠트린 그 사기꾼을 처참하게 죽인 뒤에 자살했었다.

 

절친이라고 믿었던 아빠를 배신하고 사기쳐서 해외로 도망친 그 자식을 10년동안 찾아다닌 끝에 놈을 죽인 뒤에 나한테 남은 것은 없었다. 놈을 죽여봐야 날 빼고 동반자살당한 엄마와 동생이 살아돌아오지 않는다. 돈은 말할 것도 없다.

 

어차피 나는 이 생에 미련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자살하기 전에 우리들의이라는 만화책을 모두 빌려보고나서 자살했었다. 

 

그랬는데. 왜 내가 살아난걸까? 신이 나한테 준 선물인걸까? 

 

나는 그 사실을 며칠후에야 알았다. 일단 먹고 살기위해 취업했던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거대로봇이 뉴스로 보도되는 걸 보고 알고 말았다.

 

'지어스.'

 

확실하다. 곤충이나 갑각류같은 생물에 더 가까운 저 거대로봇. 분명히 다른 세계의 인간이 조종하는 로봇을 쓰러트려서 이 세계를 지킨다는 로봇이었다. 나는 알바를 끝낸 뒤 바로 정보란 정보들을 있는대로 긁어모았다. 거기에서 내가 안 정보는 단 하나.

'정체불명의 로봇, 5번이나 등장하다.'

 

5번... 나는 그 말을 듣고 머리속에 떠오른 게 있었다. 6번째 파일럿인 혼다 치즈루는 지어스를 움직이면서 자신을 강간하고 범했던 사람들을 죽이고 마지막에는 선생은 커녕 인간말종 그 자체인 하타가이 모리히로를 죽이려다가 자신의 언니였던 이치코의 만류로 그 녀석을 죽이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뭐 그렇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 자식은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정부를 협박해 풀려났고, 치즈와 키리에의 연관관계를 토대로 추리해 자연 학교 리스트를 유포해 남은 파일럿들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도 정치가 비서로 전직해 문교부 장관 자리까지 노리고 있었던 것까지.

 

왜 이렇게 세상은 쓰레기들만을 아끼는걸까. 정말이지 화가 난다. 하지만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치즈루를 미리 말리는게 좋을까? 아니. 내가 말린다고 해도 해결이 될까? 

 

아니면 내가 그 선생을 먼저 죽일까? 어차피 난 사람을 잔인하게 죽였다. 아니. 그러면 치즈루는 더 폭주할거다. 분명한건 지어스가 가동되기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거다. 

 

나도 치즈루처럼 저런 가족이 있었는데.

...

가족... 그래. 치즈루의 가족들은 너무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이었다. 사람이 좋은 건 죄가 아니야. 하지만... 따지고보면 아빠도 사람이 너무 좋아서 우리 집안을 망친거다. 그래. 따지고보면 치즈루의 언니가 치즈루를 말리는 바람에 죽어야할 쓰레기가 버젓이 살아남아서 피해자들을 만들었잖아? 

 

그리고 저런 병균을 살려둬서 더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거다. 내가 되살아난건 이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겠지. 그건 너의 위선이자 자기만족, 변명이라고. 

 

부정할 수 없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해. 어차피 나는 한번 죽었던 목숨이다. 흔한 환생물이나 빙의물처럼 내가 살아남거나 인생을 성공시킬 생각은 없다. 

 

그래서 나는.

 

"으어어억... 대체... 우리한테 왜 그러는거..."

"무... 무슨 짓이에요?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당신들한테는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요. 그러니까."

 

"고통없이 바로 끝내드릴께요."

 

지금 혼다 가를 죽이고 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걸까. 아빠를 등치고 사기친 그 인간말종을 죽이기위해 단련했던 육체는 여전했다. 택배기사인척 하고 짐을 든 덕분에 치즈루쪽의 아빠가 아무런 경계를 하지 않고 문 열어줘서 쉽게 칼로 찔러 죽일 수 있었다. 

 

그 아이의 엄마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표정을 지은채 멍하니 서있다가 내가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렇게 두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달려들어서 엄마쪽의 목을 베어죽였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치즈루의 언니, '이치코'를 죽였다. 비록 그 인간말종을 죽이지못하게 했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선량했던 여자였다. 그래서 단 한번에 목을 그어 죽였다. 그녀는 자신들의 가족을 파멸시킨 나를 원망하듯이 바라보고는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어... 어째서..."

"왜... 우리 가족을... 치즈루가... 기다리고 있는..."

"미안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그대로 죽어주세요... 그게 맞는 일이에요..."

이치코는 그렇게 나를 원망하는 말을 하다가 눈빛이 꺼졌다. 그리고는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이제 남은 건... 치즈루. 네가 하기에 나름이다. 

 

나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기위해서 들어가다가 거울 속에 비친 피범벅이 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결국 세수를 하는 걸 관뒀다. 내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들고는 경찰에 자수했다.

"네. 여기 경찰이죠? 제가 사람을 죽였는데요. 주소는..."

나는 그렇게 경찰한테 붙잡혔다. 그리고 이틀 후.경찰서에 갇힌 나는 원래라면 흉악범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었지만 몰래 갖고 있던 만엔짜리 지폐 몇장으로 경찰을 매수해서 간신히 뉴스를 접했다. 지어스가 사람들을 죽였다는 뉴스를 접한 나는 사망자 명단에 낯익은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망자 :  하타가이 모리히로 

 

드디어 죽었다. 그것도 처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었다는 아나운서의 말로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내가 죽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