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 포함한 억까가 너무 많아서 조금 많이 늦었음.



희미해지는 감각 속,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죽는다.

천천히, 더욱 깊은 심연 너머로 빠져들고 있었다. 사방이 고요했다. 반쯤 잃은 정신 사이로 생각이 비집고 들어왔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어도 부모님께 한마디 불평하지 않았다.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 하나만으로 죽어라 노력했다. 뺄 수 있었던 군대도, 억지로 신청해서 입대까지 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부모님 보려고 휴가를 쓴 게? 버스가 끊겨 읍내로 걸어갔던 게? 내가 빠른 속도로 뒤로 달려오는 차를 피하지 못한 게?

억울했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죽는다는 감각만이 더욱더 서늘하게 다가올 뿐이었다.

나락의 끝에 다다르자, 모든 것이 편해졌다. 그러던 와중, 손에 집히는 무언가. 본능적으로 움켜쥔 손에, 꺼져가던 신경들이 끌려들어 왔다.

눈이 뜨이자, 빛이 내려왔다. 나는 손을 뻗었다. 푸른 강물 너머 일렁이는 달이 유난히 선명했다.


"이... 돌대가리 새끼!"

호통과 함께, 주먹이 짓쳐들어왔다. 한대 후려맞은 뺨이 얼얼하게 고통을 호소했다. 다시금 눈을 떠 고개를 바로 하니, 이번에는 발길질이었다.

"사람을 차로 쳐? 그것도 술 처먹고?"

아버지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한 듯, 근처에 있던 화분을 내던졌다. 화분이 깨지는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울렸다.

할 말은 없었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척, 멀쩡한 척 하기 위해 괜히 턱을 들어 올렸다. 속으로는 날뛰는 오만가지 생각을 누르려 애쓰며.

"밤 시골길이라 CCTV도 없었고, 불어난 물에 사라져서 찾기도 힘들..."

또 시작이다. 바닥을 구른 나는, 다시금 일어섰다. 아버지의 눈에는 피가 고여있다 싶을 만큼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게 문제냐? 술 쳐먹고 사람을 쳤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 않기는, 지금도 미칠 것 같다. 그때 그 군바리의 얼굴과 부대 마크가 머릿속에서 선명히 재생되고 있었다.

술에 취해 제정신도 아니었는데, 스쳐오는 찬바람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서늘했다. 길가에 쓰러져 신음하던 그 사람을, 끌어내 절벽으로 던졌다. 전날 쏟아지는 비에 불어나 세차게 휘몰아치는 계곡 너머로 사라지는 걸 보자마자 다급히 운전대를 붙잡았다.

"너 어떡할 낀데... 앙? 니 어떡할 거냐고!"

멱살을 붙잡아 올린 아버지는, 핏발 선 눈으로 날 노려보았다. 지금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들키면, 끝장인 거다. 알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온몸이 박살 날 듯 아팠다. 하지만 목숨만은 붙어있었다. 낮게 깔린 회색빛 구름 너머로, 달이 희미하게 빛났다.

"커헉... 컥..."

힘겹게 강둑으로 기어오른 나는, 돌부리를 잡고 가드레일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내 흙에서 뽑힌 돌부리는, 힘없게 떨어졌다. 내 몸과 함께.

다시금 구르고, 물살에 휘말리며 나뭇가지들과 쓰레기들이 몸을 할퀴며 지나갔다. 그렇게 다시금 기어 나온 내 손에는, 피 한 방울은커녕 상처 하나조차 남지 않았다.

그 대신 언제 손바닥에 박힌 건지도 모를, 보석 하나. 나는 몇 번인지 모를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크어어억! 커헉..."

겨우 도로가로 올라왔다. 축 처진 몸과 물에 젖은 군복이 귀신을 연상케 하는 꼴을 만들어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텅 빈 도로가다.

휴대전화는 강물에 쓸려가 주머니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철퍽철퍽, 군화에서 빠져나오는 물이 도로를 적셨다.

"여기는... 어디야?"

얼마나, 어디로, 언제 동안 물살에 휩쓸렸는지도 알지 못했다. 기억을 헤집어도, 빛나는 헤드라이트와 군부대를 알리는 도로 표지판뿐.

그보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집으로? 부대로?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어딜 갈 수 있을까.

그렇게 한참을, 굽이친 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러던 와중, 우거진 수풀과 나무 사이로 거대한 호수 비슷한 것이 나타났다. 순간 머릿속을 스친 기억. 부대가 머무는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면, 저곳은 화광 댐일 것이다.

"나... 얼마나 멀리 온 거야?"

댐은 이미 밀려온 쓰레기에 뒤덮인 상태였다. 내가 깨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저 사이에 있었겠지.

돌아가야 할까? 발걸음은 저절로 내가 온 방향으로 바뀌어 향했다. 

그때, 굽이친 도로 너머로 엔진음과 함께 불빛이 비쳤다. 불빛...! 몸이 저절로 가드레일 옆 수풀로 날 이끌었다.

차량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접근하는 외제 승용차 한 대, 차량은 드리프트 하듯 끼이익 거리는 소음을 만들어내며 도로를 질주했다.

불빛이 순간 시아를 가렸다. 23서 6785, 어째서인지 차량 번호판이 각인된 상태로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어?"

23 서 6785, 23 서 6785, 23 서 6785,23 서 6785, 23 서 6785, 나는 저 차를 알고 있다. 23 서 6785, 내 마지막 기억 속에 그 검은 차다.

돌아가야... 할까?  나를 치고, 강가에 내다 버린 그 차량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박혀 매몰된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는 대신, 저 차에 탄 그 새끼를, 끝장내고 싶었다.

나만 당하는 건 이제 지쳤다. 23년을 이렇게 살아왔다. 사람을 쳐놓고 그대로 강으로 갖다 버리는 놈을 내 눈앞에서 도망가도록 두고, 다시 돌아가라고?

그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 다시 한번 부활했다. 이건... 기회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차량을 따라 도로를 달렸다. 저 멀리 멈춘 차량은 댐 주차장에 멈춰 섰다. 불어오는 바람에, 찢어진 옷자락이 휘날렸다. 나는 댐으로 향했다. 부대로 복귀한다는 선택지는 머릿속에 지위진지 오래.


지역구 의원인 아버지의 이전 직함은 한국수력원자력 화광 수력본부 본부장, 이전에 화광댐을 관리한 적 있었다는 소리.

"그래서 다시 말해봐라, 네가 친 게 누구라고?"

굳게 잠긴 철창문을 열며,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나는 머릿속에 기억을 짚어가며, 답했다.

"군인이요. 머리를 짧게 잘랐고 가방을 메고 있었어요. 부대 마크는... 13사단이었나?"

기긱거리는 소리를 내며, 철창문이 열렸다.  기나긴 댐 위를 늘어선 조명들이 비추었다. 

"그놈 시체만 찾고, 돌아가는 기다. 여기 관리하는 놈에게는 잘 말해뒀다. CCTV 그런 거 지금 안 돌아가니까, 빨리 찾으라, 알긋나?"

나는 손전등을 켜, 강에 떠밀려온 쓰레기들을 비추었다. 숲 하나가 떠밀려온 게 아닌가 싶은 만큼 나뭇가지들이 빽빽이 밀려왔다.

찾으면 어떻게 꺼낼 생각인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일단 찾아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묻어야 한다. 아버지의 말대로, 여기서 들키면 모든 것이 끝난다.

혹시 몰라 반대편도 살펴보았다. 개방된 수문에서 쏟아지는 물은 널따란 강 너머로 흘러갔다. 시체는 이미 떠밀려간 게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렇다면 여기서 이럴 필요가 없다. 시체가 댐 수문에 걸려서 들키는 게 문제지 그냥 휩쓸려갔다면 도중에 시체가 가라앉아 사라지거나, 어딘가에 걸려 튀어나온다. 잠깐... 그렇다면?

"아버지... 시체 왜 찾는 겁니까?"

CCTV도 없는 시골길에서 차에 치인 것이다. 흔적이라면 이미 저 물살에 휘말려 사라졌다. 내가 들킬 이유라면, 찌그러진 차 보닛 정도.

"너 병신이가? 들키면 끝장이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 거여?"

아버지는 다시 한번 격노했다. 그걸 몰라서 물어? 이번에는 나도 할 말은 있었다.

"댐에 걸린다고 쳐봐요, 그놈 시체가 댐에서 발견돼도, 내가 쳤다는 증거 있어요? 여기서 허튼짓하다 누가 우리 이거 발견하기도 하면 그게 더 수상한데!"

댐에 걸린 시체가 발견돼 봤자다. 기껏해야 버스를 놓쳐 걸어가다 삐끗해서 휩쓸렸다고 생각하겠지. 상처 같은 것도 차에 치여서 그런 건지, 물살에 휩쓸려서 그런 건지 어떻게 알겠어?

"댐에 걸리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어요?"

순간, 벽에 밀쳐진 내 등 뒤로, 거센 물결이 일었다. 손전등에 비친 아버지의 표정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이 개새끼가... 닥치고 찾기나 해!"

이 댐에 뭔가 있는 건가 싶은 그때, 옆에서 끼익, 하고 철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누구지 싶어 나는 손전등을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비추었다. 그곳에는, 무언가 있었다. 사람도, 귀신도, 무엇인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몰골의 누군가는... 천천히 다가왔다. 나를 향해, 똑바로.


불어오는 바람의 감각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저 멀리, 반대편 도로까지 쭉 뻗은 댐 위로,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누가 나를 차로 친 걸까, 두 사람 다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너, 넌 뭐야?!"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던 남자는, 붙잡고 있던 바로 옆에 남자의 옷깃을 놓고는 말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듯한 얼굴이다.

"...23 서 6785"

조용히 차량 번호판을 읊자, 두 남자의 표정이 의문에서 경악으로 변해갔다.

"23 서 6785, 23서678523서678523서678523서6785, 너지? 너 맞지?"

다가가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물이 묻어났다. 두 남자는 혼비백산과 함께 댐을 내달렸다. 나는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서두를 필욘 없었다. 어차피, 다시 돌아올 테니.


내가 사람을 치였다는 감각은, 살면서 느낀 그 어떤 것보다 더 소름이 돋았다.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 흔들리는 시선과 섬광, 그리고 헤드라이트에 비친 그 얼굴, 그것들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웬 미친놈이 다 있나?!"

하지만... 그 기억이 내 눈앞으로 살아서 돌아왔다. 순간 모든 것이 멍해졌다. 꿈 치고는 너무 생생했고, 현실 치고는 너무 거짓말 같았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반대편이다. 나는 다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텅 빈 댐 위를 공허한 조명이 비쳤다. 

사라졌다. 물에 다 젖은 상태로, 중얼거리며, 내게로 다가오던 그 자식이, 사라졌다. 

대체 뭐야, 뭐 하자는 거야, 누구 놀리나? 미치겠다. 등 뒤에서, 나타날 것만 같다. 애초에 내가 쳤는데, 그때 던졌는데, 죽었는데, 씨발.

"가, 갔나? 대체 뭔 미친놈이..."

아버지는 앞뒤를 번갈아 쳐다보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차라리 미친놈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차에 치이고 불어난 강물에 던져진 사람이 돌아온 꼴인데.

"뭐 하나? 빨리 찾으라! 니 살인자로 뉴스에 공개되는 꼴 보고 싶나? 니 지금..."

나는 달려갔다. 미친 듯이 달렸다. 말이 안 된다. 차라리 감옥에 들어가고 말지.

나는 다급히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스마트키에다 열쇠를 박으려 들었다. 정신 차리고 똑바로 앞을 보니, 누군가 날 끌어내렸다.

"미친놈 만났다고, 너까지 미치나? 내 몇 번을 말했어? 들키면, 다 끝장이라!"

또 똑같은 소리. 끝장이면 끝장인 거지 뭘 징징대. 어차피 아버지는 이거 아니어도 끝장날 건수 많은 인간이잖아? 이 댐만 하더라도...

"너만 끝장이 아니야, 주변 사람들 다 불나방으로 끌어들인다. 사람 친 건 닌데, 나랑 니 주변이 다 깜방 간다고...!"

아하, 아버지는 역시 내가 사람을 친 것보다 그걸로 본인이 나락 가시는 게 두려우셨군요. 뭐가 그리 두려우실까? 나는 내가 차로 치고, 증거인멸 하겠답시고 절벽에서 갖다 버렸던 사람이 제일 무서운데.

다시 한번,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아까와 달랐다. 내 목숨을 구하러 오셨나? 아니면 끊으려 오셨나.

"어?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손전등을 든, 댐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아직 내 목숨은 끊어지지 않을 모양이다.

"아니, 당신 내가 누군지 몰라? 나, 여기 댐에서..."

아버지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댐 관리인을 향해 또 똑같은 소리를 했다. 눈치도 없는 양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젠장..."

저 멀리, 저승사자가 내게로 다시 오고 있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저승사자. 내 손으로 만들어낸 저승사자가 그 곳에 있었다.

"야, 야! 니 어디 가는...?"

어두운 밤길 도로를 미친 듯이 내달렸다. 아슬아슬하게 서커스를 하는 느낌이다. 휘청거리는 차량을 또 간신히 조정했다.

댐이 만들어낸 거대한 호수를 따라 도로가 나있었다. 목적지 없이, 그저 한없이, 계속해서 도로를 달렸다.

그때, 반대편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불빛, 나는 핸들을 꺾었다. 그리고 그 꺾은 핸들을 또 다른 손이 붙잡았다.

"안돼...!"

절벽에서, 바리케이드로 앞 유리의 풍경이 시시각각 바뀌어갔다. 핸들을 붙잡고 있던 손은 어느새 2개에서 3개가 되어있었다. 

나는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뒷자리에서 손을 뻗어 핸들을 붙잡고 있던, 완전히 젖어 시궁창이 된 군복을 입고 있던 남자는 입이 찢어질 듯 웃고 있었다.

그때 그 장면이, 그 군바리가, 다시 머릿속에서 부활했다. 차량은 저항하지도 못한 채로 호수를 향해 돌진했다.


"화광 댐 인근에서 추락한 차량의 인도 작업이 이제 막 완료되었습니다. 차량 내에서는 20대 이 모 씨의 시신이..."

뉴스에서는, 누군가의 부고가 전해지고 있었다. 부고의 주인공은... 지역 국회의원의 유일한 장남인 이 모 씨,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의 아들이기도 하다.

"너... 너 뭐야?!"

남자는 뒷걸음질 치다 책상을 짚으려 헛손질했다. 엉덩방아를 찐 남자는 마친 귀신이라도 본 표정이었다.

"나?"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충청북도 충주시 용산동 베스트 빌 102동 301호? 13사단 47보병여단 3대대 2중대 소속 소총수 상병? 아니면, 당신네 아들이 차로 쳐서 한번 죽였던 사람?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손바닥에 박힌 보석이 시시각각 바뀌어가는 뉴스 화면에 맞춰 반짝였다.

"곧 뉴스에 나올지 모르는 사람."

무엇으로 나올지는 모른다. 살인범일 수도, 탈영병일 수도, 실종자일 수도 있고, 아니면 셋 다 일지도.

"이... 미친 귀신같은 놈!"

이 보석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이전처럼 사는 게 병신 짓처럼 느껴질 만큼.

손아귀에 쥔 모가지에 힘을 더했다. 괴로운듯한 신음이 TV 뉴스 소리와 겹쳐졌다. 조금 더... 조금 더...!

순간, 손바닥에서 무언가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세상이 사라졌다. 차마 반응하기도 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