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런 날에도 나는 방에 쳐박혀 게임이나 하고있다.

저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도 자신과 같은 친구가 수없이 있는데

내 목에 걸린 목줄의 끝은 내 오른손에 쥐어졌으니

이것을 가지고 내 끝을 맺기엔 세상은 너무 아름다워졌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 한줄기 밝은 빛을 남겨서 누군가 나를 기억할수 있기를

눈송이처럼 저기저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작은 빛에 누군가가 웃어보였기를

눈을 감고 밧줄을 놓으니 몸이 튀어오른다.
눈에는 핏줄이 서고 혀는 길게 삐져나온다.

서서히 의식을 잃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며 눈 앞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한다

나의 새해는 여기까지다… 여기… 까지다… 버러지같은 인생의 목줄에서 나는 해방이다
라고 말하지만 눈치없는 눈물은 하염없다

하얀 이불을 감싼 세상은 나만 남겨두고 모두가 행복한 것만 같다. 막상 살을 비집고 들어오는 추위는 날 위로한다.
하얀 입김이 얼어붙는다. 홀로 이 차디찬 세상과 하나가 된 듯한 기분. 고작 불어온 바람으로는 한때의 기분을 쉬이 물리지 못한다.

그런데, 필름 다음 필름이 이어지듯이, 컷이 끝나고 새로운 컷이 시작되듯이, 나는 고개를 들어 새로운 풍경 아래 놓여졌음을 느꼈다.

그 풍경은 사방이 눈으로 뒤덮인 설원이었다

새하얀 풍경 사이로 한 아이가 다가온다. 그리운 얼굴이다. 아이만이 아니다.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의 실루엣.
 힘겹게 눈을 지탱하는 오두막 지붕.
 창가 너머에는 아이의 부모가 앉아있는데, 시선을 아이에게 고정한 채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아름답던, 그 시간에 얼어붙어 다시는 내게로 오지 않을, 15년 전 겨울.
 주마등인가. 
 우스운 시간여행인가.

 그런 생각에 빠져있던 내 앞에 어느새 어린 내가 서 있었다.

어린 내가 말했다.
두려움은 형태가 없는 괴물이야! 마음을 혼란하게 해 나쁜 결과를 불러들여!

철부지.. 걱정도 고민도 나에겐 한 없이 작아 보이는 꼬맹이가. 그런 말을 하고 있으니, 그저 웃을 뿐이었다. 푸흐흐.. 하하하.  하염 없이 웃자 그새 당황한 아이는 눈치를 살피더니 이윽고 같이 웃었다. 웃고 말았다. 그야 잊고 있었으니까. 걱정도 고민도 끌어안은 채 즐겁게 하루, 하루를 살았던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실컷 웃고, 막연하게 하늘을 올려봤다.
옛 추억과 상념은 예상보다 쓸만한 조미료였던지라 이 따분한 단색적인 맛의 여가 행위도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연... 날려볼래?"

같이 누워있던 아이가 몸을 세웠다.
돌발적인 유혹이었다.

"없잖아."
"잘 봐. 여기 있잖아."

아이의 말마따나, 어느샌가 연이 아이의 손에 들려있었다.
가오리연이었다.

그의 관이 땅으로 들어가던 날은 바람과 햇볕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얼어버린 강 위로 하늘에는 연이 가득하고 새하얀 별천지가 열린 날이었다. 
아주 오래전 방에서 신세 한탄을 하던 그날처럼.

"연... 날려야지. 연."

콩 콩 콩.
겨울 어느 날, 마을 무덤가에 느닷없는 말소리가 울렸다.
땅 아래에서부터 난 소리였다.

"연. 내 가오리연."

관 하나가 흔들거렸다.
콰앙-.
흙에 범벅된 손이 튀어나왔다.
시퍼렇게 물들었지만 아직은 살갗이 남아있는 손이었다.

"연, 연을 날리자...."

이윽고 내가 다시금 땅에 발을 디뎠다.
'내' 가 아니게 된 채로.
썩어 어눌하게 된 뇌로 추억의 문장을 꺼내 되새김질했다.

"두려움은... 형태가 없는 괴물... 이다."

날아올린 연은 생각보다 더 두꺼웠다.
손에서 도망가려는 연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나폴거렸다.
구름 높이까지 차올라 나란히 떴다.

"높구나... 이렇게 높이 뜰 줄이야."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구름처럼 옛 시절 기억은 아득했다.
한 발짝 디딜 때마다 눈 속으로 파묻히는 발이 현실감을 들게 했다.

실이 팽팽하게 당겨져 일자로 놓였다.
연이 더 멀어졌다. 내다보이는 하늘마저 가릴 정도로.

"빌린 가오리연... 슬슬 돌려줄까?"
 
손 하나를 놓았다.
고개를 돌리니 어린 나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하늘을 허옇게 물들인 별들 중 하나가 되어 유성우로 떨어져 내렸다.

무수한 별폭죽이 그의 관을 밀어냈다.
난생 처음 유성우를 지켜보는 나의 옆으로 처음 보는 감촉이 닿았다.

차가웠다. 사무치게 차가웠다.

빗발치던 유성우는 겨우 멎었다.
입고 나온 외투의 끝으로 손을 여밀려다 도로 밀어냈다.
찬바람을 쐰 손마저 시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