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땅에 여자로 전생되고 어언 20년.


말인 즉슨, 스승님에게서 독립한지도 벌써 5년째란 거다.


세월 참 빠르다.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는, 깡촌 오지의 그것과 한없이 닮은 삶.


독립해서 뭐 하고 살꼬- 하던 고민은 맥없이 해결되었다.



"사람이 인시寅時에 생겨 사람이 나옵고, 만물이 묘시卯時에 나와 짐승이 되었사오니!"



이 일이다.


이 일하고 돈 번다.


책을 읽어주고 돈을 받는 일.


운도 좋게, 한글소설이 유행하던 시기에 환생했는데

전생한 이 육신은 목소리도 달콤하여 찰떡 같은 적성이었다.


기막힌 행운이었다.



"'성인군자의 아비인 기린도 토끼의 아래이며, 날짐승의 왕인 봉황도 토끼의 아래란 말이오!

어찌 토끼에게 자그마한 재주 한둘 쯤 없겠소?' 라고 토끼가 진언하니, 용궁이 떠들썩해졌다."



참고로 지금 읽어주는 건 수궁가다.


며칠간 이 마을에서 지내며 이런 저런 책을 읽어줬다.


그그저께랑 그저께는 조금 마이너한 소설.


오늘이랑 어제는 유명한 소설.


전부 인기가 괜찮아, 퍽 기뻤다.



"대사간인 자가사리 이르기를,

'토끼는 본디 간사한 족속이라 들었사옵니다. 바삐 간을 꺼내야 옳은 줄 아뢰옵니다.' 라 하였다."



물론, 페이가 높은 부잣집에서 불러주지 않은 점이 아쉽긴 했다.


하지만

승자는 언제나, 세상이 어떠한가가 아니라

어떠해야 하는가를 논하는 법이다.


서민 상대면 서민 상대로 돈 벌이를 하는 방도가 또 있다.



"용왕이 그 말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입을 뗐다.

'과인이, 이, 이, 이, 이....'"



첫째가 절단신공이다.


내 낭독에 눈을 빛내던 처녀도,

관심 없는 척 뒷짐을 지던 노인들도,

새참을 먹으며 이야기를 듣던 청년들도,

하나가 되어 날 바라보았다.


나는 짐짓 모르는 얼굴로 하던 말만 되풀이 했다.



"'과인이, 이, 이, 이, 이, 이, 이....'"


"저 양반 왜 저래? 왜 고장난 물레방아처럼 구는 게야?"



누군가의 질문에, 한 노인이 깨달음을 얻고 한탄했다.



"저 여편네가 돈에 눈이 멀었구나."



노인이 동전을 던졌다.


세 푼. 오늘 많이 끊어먹었단 걸 떠올려보면 후한 인심이었다.


노인을 시작으로 다른 이들도 동전을 던졌다.


어째 눈에서 무시무시한 안광들이 쏟아졌다.


'한번만 더 끊으면 네 허리를 끊어먹겠다.' 하는 눈이었다.


흥, 그러시든가.


밥벌이 수단이 그것 뿐인 줄 아나?



"... 그리하여 토끼는 몸을 부지하고 산중으로 달아났으니 미련한 자라는 한숨만 푹푹 쉬더라."


"끝났나?"


"끝났나보네."


"기다려보게. 기억하기로 휘둔-엔딩 (輝遁-円딩) 이 있었으니께."



바삐 완결까지 날아갔다.


이야기의 끝에 도달하니 관중들이 하나둘씩 일어섰다.


고객을 놓칠 수 없는지라, 급하게 호통을 쳤다.



"그리, 고! 여기!"



뒤에 있던 짐꾸러미에서 비단으로 감싸뒀던 걸 꺼냈다.


동그랗고 납작한 물건이었다. 똑같이 생긴 걸 여러 개를 꺼냈다.


한 알당 크기는 내 주먹 정도.


서민을 상대로 돈을 버는 두번째 방법이었다.



"뭐시당가 저건?"


"자 이게! 용왕님이 탐내던 토끼의 간! 토끼의 간 되시겠습니다!"


"둥그스름한데? 간 맞아?"


"약과 아니여?"



뜨끔했지만 밀어붙였다.



"약과 아닙니다.

토끼의 간 몇십개를 모아서 뭉쳐놓은 거라 이리 둥그런 것입니다!

용왕님도 갈구한던 바로 그 물건!

효험이 장난 아닙니다!

저도 주마다 하나 먹고 있는데...."



짚신을 들어다 바닥을 보여주었다.


닳고 헤진 바닥을.



"이렇게 신발 바닥이 닳도록 전국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저도, 이 약 한번 먹었다 하면 원기가 팔팔 솟습니다!

제가 직접! 토끼를 잡아서 간을 모아다 만든 거니 출처도 확실합니다!"


"그래?"


"그렇다고?"



군중이 수군거렸다.



"글쎄, 진짜라니까요!

연중 전국 팔도를 떠도는데, 어찌 지치질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래. 아녀자 몸인데."


"먹기만 했다하면 절름발이도 일어서고 환자도 병치레를 끊는 귀한 물건입니다.

본래 간이 건강에 필수적인 장기란 말입니다.

그런 간을 한데 모아다 약으로 만들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음...."


"맞는 듯도 하고."



다들 반신반의하였다.


좌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러고보니 내, 간장肝腸이 소양의 기운이라 보신에 좋단 말을 주워들은 적이 있던 것두 같고...."


"자네가 그걸 어찌 아나?"


"저 친구, 젊었을 때 도사 되겠다고 설쳤잖나.

그때 들었겠지."


"하모 그럭저럭 사실인갑네?"



어이쿠, 좋은 조짐이다.



"얼마요? 가격은."


"이게 금액으로 따지자면 도통 비싸기는 한데,

내가 특별히 여기 모인 사람들한테만-."



여기까지 왔으면 껌이다.


한 알당 1냥씩 받아먹었다.


20 알 팔았으니까 2관이다.


그외의 다른 물건도 이것저것 팔아 도합 3관 2냥을 벌었다.


쌀 150kg 남짓이 5냥이니까, 짭짤하게 번 거다.


토끼 간으로 만든 약을 빼면, 청나라발이라던 부적이 제일 잘 팔렸다.


듣기로 귀신 쫓는데 그만이라는데, 나도 솔직히 믿지는 않는다.


세상에 귀신이 어딨어.



"이보시오, 참말로 믿을 만한 게요?"



돈을 세는 와중에 젊은 아낙이 물었다.


과장되게 큰 한숨을 던져주었다.



"여자는 의심이 많은 생물이라더니 옛말 틀린 게 하나 없구료."


"아니 저는... 혹시나 싶어서 물어본 거죠."



아낙이 입맛을 다셨다.


"즈그도 아녀자면서 여자 어쩌고 면박 주기는-." 하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렸다.


짐을 정리해 들어올렸다.


책도 다 읽어줬으니 가봐야겠지.


오래 있으면 위험하기도 하고.



"저기다! 저기 있다!"



지친 허리를 이리저리 둘러보니 저 멀리에서 흙먼지가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누구인지 알기는 어려웠다.


흙먼지가 시야를 방해했다.



"저기 그 약팔이 녀석이 있다!"



범상치 않은 멘트라, 눈을 부라리고 봤다.


허리에 방망이, 적색의 오랏줄.


머리엔 관모.


앗.... 앗, 앗!


나졸이다!



"저는 슬슬 가보겠습니다."



'저는' 에선 느긋하게 시작하던 문장을

'가보겠습니다' 에선 나는 듯 서둘러 읊었다.



"벌써 가는감?"


"예, 해 지기 전에 산 넘어야죠."


"차라리 하루 밤 자고 다음날 넘지 그러나."


"신세 질 수야 없는 노릇입니다."



속사포처럼 빠르게 답했다.


"그럼 이만!" 이라고 인사를 남길 때 쯤엔, 그 급한 말씨 때문에 '그...만' 으로 들릴 지경이었다.


뒷쪽에서 "저 놈 잡아라! 도망가게 두지 마!" 라며 소리치는 나졸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리가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눈치 못 챈 게 천만다행이었다.



*



가끔은 '당당한 일을 고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늘 같은 날은 특히 그러했다.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는 가을.


쫓기듯 지하로 달아난 태양 덕분에 가을밤의 공기가 자못 쌀쌀했다.



"해 졌다고 나졸들도 물러가준 건 고맙지만...."



산에선 빛이 없으면 길이 안 보이니 큰일이었다.



"쥐뿔 안 보이네."



이를 어쩐담?


어둑어둑한 길을 감에만 의지하여 나아갔다간 사고가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야영을 해야 하나?


산에서?


쉽지 않은 고민이었다.


야생 동물이라도 만나면 야단이 아닌가.


마침 이 근처에 그렇게 많다지 않나.



"범... 만나기 싫은데."


"범이야! 사람 살려!"



여성의 비명이 들렸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저 여인네는 왜 밤 중에 산을 넘어서... 밤에 산을 오니 산군을 만나지."



쯧쯧.


혀를 차며 소리 난 방향으로 발을 돌렸다.


멀지 않은 거리였다.


가서 보니 입은 옷이 독특했다.



"무복이네? 무당 놈이로구만."



얼굴이 찌푸려졌다.


스승님이 예전에 이르기를, "무당이란 작자들은 조금만 세상살이가 어려워지면 금새 손을 놓고 신한테 기도나 하는 나태한 자들" 이라 하신 적이 있었다.


말의 정도가 과하기야 하지만, 나도 무당은 좋게 생각 않는다.


운세 어쩌고 하는데, 운세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무슨 하늘이 정해준 것이라고.


그래도 사람은 사람이었다. 무당도 어쨌든 사람이다.


그리고 범 앞에 사람이 놓여있었다.


절벽을 뒤로 하고, 여성은 절벽으로 몰아붙여져 있었고, 범이 여성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범의 뒷통수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었다.



"어디 보자...."



차고 있던 팔찌를 빼서 하늘로 던졌다.


스승님께 교육 받은 이래로 한번도 쓴 적이 없으니 가물가물했다. 


분명 손가락을 이런 식으로 꼬아서... 이렇게던가?



"변해라!"



언령 한번에 팔찌가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였다.


분신술은 자신이 없었는데 의외였다.


자세히 보면 사람과는 다른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있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겠지.


어둡기도 하고.



"저 여인에게 가서 내 말을 따라하도록 해라.

내 몇가지 물을 게 있으니."


[내 몇가지 물을 게 있으니.]


"아니 지금 건 따라하지 말고."


[아니 지금 건 따라하지 말고.]



끙. 이래서 분신술은 쓰기 싫었는데.


손가락질로 범 앞에 놓인 여인을 가리키자, 그제서야 분신이 그녀에게 달려갔다.


길고 조용하던 대치에서 벗어나, 범이 그녀를 물려던 순간이었다.


분신이 범의 뒤로 접근하였다.



"이렇게!"


[이렇게!]



허공에 주먹을 내리쳤다.


분신도 따라서 주먹을 내리쳤다.


퍼억-.


뜻하지 않은 습격에 당황한 산군이 "캐앵!" 하며 폼 안 나는 울음소리를 토했다.



"변해라!"


[변해라!]



땅을 한바퀴 굴러 둔갑술을 펼쳤다.


분신도 따라서 변했다. 짐승의 모습으로.


이번에도 분신쪽은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호랑이는 뒤를 돌아,

감히 식사 준비 중인 산군의 뒷통수를 때린 게

어느 무례한 백성인지 확인하였다.


호랑이는 곰으로 둔갑한 내 분신을 확인하였다.


나는 내심 긴장했다.


들키나? 역시 들키려나?


귀가 4개에, 꼬리가 고양이 꼬리처럼 길쭉했다.


범은 고개를 갸웃하며 분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들켰... 나?"


[들켰... 나?]



무심코 새어나온 말을 분신이 모방하였다.


아차. 혼잣말하는 습관 좀 없앨 걸.


아무래도 사람 말을 하는 곰이면 들통이 나게 마련일 테다.



"크릉?"



산군도 묘하다는 듯 얼굴을 가까이 하고 분신의 냄새를 맡았다.


좋지 않은 징조라 재빨리 범의 머릿통에 꿀밤을 몇대 쥐어박았다.


주먹으로, 있는 힘껏.



"캥? 캐앵? 깨개앵!"



연달아 몇방 쥐어박으니

처음엔 매섭게 의심하던 눈도 강아지처럼 순한 눈이 되었다.



"낑끼힝!"



호랑이는 싱겁게 달아나고 말았다.


호랑이의 야식 거리가 될 뻔한 여성을 보았다.


여성의 표정은 복잡미묘하게 일그러져있었다.


새로운 맹수가 나타났으니 절망해야 하는 상황인지,

금수가 사람 말을 하고 귀가 4개이니 관찰 탐구를 할 상황인지 헷갈려하는 눈치였다.



"그, 괜찮으시오?"


[그, 개 찾으시오?]


"네? 개, 개는 찾은 적 없는데요...?"



발음이 샜나?


분신이 엉뚱한 말을 구사했다.



"아니, 다친 덴 없으시오? 이리 보여보시오."


[안이 다친 덴 없으시오? 이리 보여보시오.]


"예? 예헤엣? '안' 이요?"



여성이 기겁하며 옷섶을 여몄다.


당황한 여성의 손을 따라, 여성의 사람 머리만한 가슴이 분주히 움직였다.


새삼 여성의 찢어진 저고리를 살펴보았다.


흉부의 크기를 따라 위로 들떠있는 저고리는

그 찢긴 틈새로 여성의 흰 살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엄청 크네, 가슴두르개 안 했나?



"어, 어찌 위험에 처한 아낙네에게 몹쓸 짓을 할 뜻을 품으셨습니까.

사람인지, 짐승인지, 신령인지 모르겠으나, 힘 있는 분이시라면 마땅히 옳은 일에 장지壯志를 두셔야지 않겠습니까!

아녀자를 겁탈하는 일이 아니라!"


"아나, 이보시오! 내 장지라곤, 그대에게 물을 게 있다는 것 뿐이오!"


[안아보시오! 내 자지라곤, 그대에게 묻을 게 있다는 것 뿐이오!]


"그런 천, 천박한 말씀을...!"



끝이 없겠군.



"돌아와라! 돌아와!"


[돌아봐라! 돌아봐!]


"돌아오라고!"



소매를 크게 펄럭여 분신을 거두었다.


분신은 도로 팔찌가 되어 내 팔에 감겼다.


"이보시오! 말 좀 들어보시오!" 하며 무당 여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당 여인은 멍하니 날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계시던 그... 신령한 맹수께서는 어디로 가시옵고-."


"분신이오. 내 도술 좀 썼소."



무당이 그렇잖아도 불그스름하던 얼굴을 더욱 붉게 물들였다.


무당이 얼굴을 감싸쥐었다.



"보아하니 그쪽도 여인이시거늘, 어찌 요술로 다친 이를 희롱한단 말이십니까!"


"내가 언제 희롱을... 그런 거 아니오."


"이제 시집도 못 가게 생겼습니다. 꽃다운 방년의 처녀이거늘!"



무당이 시집은 무슨 시집.


계속 말이 삼천포로 새고 있었다.


무례한 언동은 무시하고 본론을 다짜고짜 들어가는 게 차라리 빨라보였다.



"내, 길을 물으려는 생각이었소.

범한테 사고를 당하게 생긴 여인이 있으니 마음이 동해 구한 것이고.

보아하니 정신머리는 말짱한 듯하니 묻겠소.

근처에 가까운 마을이 어디 없소?"


"마을... 이요?

근처라면 북쪽에 하나 있어요."


"거기서 온 길이요. 다른 마을은 없소?"


"남쪽 마을인 '봉남 마을' 이 제일 가깝지요.

동쪽에도 '산회 마을' 이 있지만 봉남 마을보단 거리가 멀고요."



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봉남峰南인가 보구나.



"그럼 남쪽은 어딘지 아시오? 해가 지니 방향을 모르겠소."


"남쪽이라면 음...."



가슴 큰 여인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산통이었다.


진짜 무당이네.



"설마 그걸로, 그, 방위를 보겠다는 건-."


"쉿. 말 거시면 집중력이 흐트러지어요."



흔들흔들.


무당이 산통을 흔들었다.


흔드는 동안 무당의 비대한 흉부도 흔들렸지만, 애써 무시하였다.


뭘 보냐며 저걸로 때리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저승행일 테니까.


무당이 달빛에 산가지를 비추어보았다.



"저쪽이네요."



신용도 안 가고, 신용하고 싶지도 않은 방법이었다.


기껏 물었는데 '못 믿겠소' 라고 면전에 말하기도 뭣하였다.



"알았소. 고맙소. 그럼 가보겠소."



일단은 다시 발을 뗐다.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으로 가서 다른 방도를 갈구할 작정이었다.



"예, 잘 부탁드리겠사옵니다."



무당이 옆에 놓여있던 나무 막대기를 집어들며 말했다.


자세히 보니 세련되게 깎여있었다.


지팡이였다.



"잠깐만, 뭘 부탁한다고?"


"그야 저도 봉남 마을에 볼 일이 있으니 그리로 가야지요.

함께 가시지요."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밤이라 표정이 보이지 않는 게 참 다행이었다.



"내가 젖 봐서 참는다...."


"뭐라고요?"




*



사람은 첫 인상만으로  알 수 없는 생물이었다.


무당 여인은 의외로 싹싹한 성격이었다.



"드세요. 출출하시죠?"



이런 식으로 자기 먹을 주먹밥을 양보해주기도 하고.


우린 금새 친해졌다.


여자는 나를 '도사님' 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대했다.


전생 초기, 사부님 밑에서 도술을 공부했던 건 딱히 거짓도 아니기에,

좋을 대로 냅두었다.


다음날 점심에 마을 입구까지 도착했을 땐, 이미 충분히 친숙해진 다음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린 건 산에서 내려가는데 길을 헤멘 탓이었다.



"여기가...."



정문엔 장승이 서있었다.



"마을이네요."


"마을인가보오. 이름이-."


"봉남마을이잖아요."


"봉남."


"아으음."



신음을 뱉으며 무당이 자리에 쭈그려앉았다.



"왜 그러시오?"


"잠시, 잠시 몸이 무겁고 현기증이... 나서요."



아이고, 이런.



"밤새 산을 돌았으니 몸살이 났나보오.

달리 아픈 곳이 있소?"


"속이 울렁거립니다... 배도 아프고요."



무당은 말하길 힘들어하였다.


숨이 찬 건가?


그보다 배라.


배... 복통?



"혹시 그거, 그, 저기.... 가슴이나 배가 부풀어오르는 느낌은 없소?"


"있습니다만, 짐작 가는 일... 이라도 있으신지요?"


"달거리 아니오?"



무당 여인이 날 째려보았다.


뭐. 같은 여자끼리 이 정돈 물어볼 수 있잖아.


어쨌거나 나도 지금은 여자니까.



"시기... 가, 아닙, 니다."


"그러면-."


"음으읏-."



여자가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깜짝 놀라 쓰러진 여자를 들쳐업었다.


열은 없는 것 같은데.


감기도 아니고, 달거리도 아니고. 대체 뭐야?


증상으론 임신 같기도 한데 설마 무당이 남자랑 정을 통했을 리도 없고.



"앗, 거기 나그네!"


"그만! 움직이지 마라!"



입구로 들어가려니까 저 멀리에서 나졸들이 달려왔다.


"한시가 급하오!" 하고 무시하려니까 날 붙잡았다.



"어허! 꼼짝 말란 말이 안 들리는 게요!"


"아니, 무엇 때문에 그러시오?"


"위에서 명이 내려왔소."


"무슨 명!"



나졸 하나가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종이엔 내 얼굴이 그려져있었다.



"약팔이를 하나 잡아들이란 명이오."


"약팔이 이름은 박달이.

눈이 크고, 목소리가 고운 게 큰 특징이라 하오.

누구랑 닮지 않았소?"



... 아.


아아.


경위를 귀에 담은 나는, 탄식을 금할 길이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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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주의는 첫짤로 갈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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