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하나밖에 없는 기회요, 나비의 날개짓이 폭풍이 되어가듯이 큰 반전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요.

말은 지금 급히 뛰어가오. 한손에는 횃불을 들고 간단한 봇짐을 매고서 달리는 주인을 위해서 말이오.

찰박거리는 말발굽 소리, 기운 없는 주인의 숨소리, 그들을 쫓는 무언가의 소리... 이 모든 것이 빗소리에 파묻혔고,

산 밖의 마을 주민들은 그저 비가 그치길 계속 기다릴 뿐이오. 그 빗속의 내막을 모른 채로 기다리고 있소.


"허억... 허억... 젠장할... 이걸 이대로 그들에게 줄 수 없는 노릇인데!"


말은 계속해서 달리고 있고, 주인은 계속해서 말에게 의사전달을 하오.

그들의 동행은 첫날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었소. 하지만 지금보다 더 뛰어나게 합을 맞출 날은 없을 것이오.


"말아... 계속 달려라...! 이 편지를... 왕께 전해드려야하니까!"


주인의 되새김 속에 말은 더욱 기운차게 달렸고 불쑥 튀어나온 무언가에 놀라 자빠지기 전까진 그를 따라잡을 일이 없었소.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말은 갑작스레 튀어나온 나뭇잎에 눈이 가려 길을 잘못 들어섰고 그 탓에 주인이 떨어졌다오.

말은 떨어졌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방향을 잘못 잡은 채로 앞으로 달려 결국 절벽으로 떨어졌지.


이 일로 인해, 나라의 왕은 반란 사실을 모르고 반란에 휩쓸려 사망하며, 반란을 일으킨 자들은 서로 왕권을 욕심내다 결국 다른 나라가 침략하여 그 나라 자체가 망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뚝)


책상에 앉아있던 남자는 카세트 테이프를 끄며 앞에 앉아있는 여자를 쳐다봤다. 어쩌면 노려본 걸지도 모른다.


"이건... 들어본 적 있는 내용입니다. 어릴 적에 편지와 쇠뇌라는 이름으로 알려져있었던 거 같은데요."


여자는 천진난만한 목소리를 내며 활짝 웃었다.


"네, 그거 맞습니다. 편지와 쇠뇌. 지금은 이름이 조금 달려졌지만 말이죠. 아이들이 읽기 힘들다고 석궁과 편지로 바뀌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않나요? 쇠뇌라는 정식 이름을 버리고 석궁이라는 근본 없는 이름으로 바뀌다니... 이렇게 바꾼 이유가 뭔지 참..."


남자는 여자가 일전에 건넨 명함을 보다 이름을 읽고 웃음이 날뻔 했지만 참으며 몸을 뒤로 젖혔다.


"제르헨 비... 비숑양, 그래서 제게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제 이름이 웃긴건 저도 알아요! 아빠가 태어났을 때 비숑처럼 귀엽게 자랐으면 해서 지은 이름인데 이거때문에 얼마나 놀림을 받았는지 아세요? 적어도 웃진 말아주세요. 그정도는 저도 아니까요. 진짜 괴롭단 말이예요!"


"이거 참... 죄송합니다. 이 내용은 제 동료들에게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다시 한번 물을게요. 더러운 이상현상 처리 전문반인 우리를 찾아온 이유가 뭡니까? 특히 고귀한 경비대장 나으리 따님께서 말이죠. 그 잘난 경비대를 데리고 나가 이상현상을 잡기엔 그 일이 더러워 보여서 그렇습니까? 아니면, 당신들도 못하는 일 가지고 우리도 못하는 꼴을 보며 안심하려는 겁니까. 그것도 아니면 저희가 못하는 걸 보고 조롱거리로 만드려고 하는 겁니까?"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제르헨의 뒤에 있던 갑옷을 입은 사람들은 칼을 들어 남자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칼은 꽤 관리를 잘한 것처럼 매섭고 날가롭게 손질되어있었고, 남자는 이대로 목이 그어지면 과다출혈로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의 죽음엔 관심이 없는 것처럼 가만히 투구를 쓰고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죽일 거면 죽이십쇼. 당신들이 왕께서 명을 하사받은 지휘부대라는 이유 하나로 살아있는 것이지. 이대로 저를 죽이면 여기 버러지같은 삶을 살고 있는 다른 놈들이 복수하지 않겠어요? 우리는 언제나 그런 거처럼 옹졸하고 찌질하며, 나약한 주제에 겁도 없이 까부니까요. 저를 죽이고 제 뒤에 있는 버러지들까지 전부 어쩌면 이 건물, 이 골목, 이 지역에 있는 모든 버러지들마저 상대할 자신이 있다면 죽이십쇼. 어차피 기사도 정신 아니겠습니까. 제 주인이 욕을 먹으니 칼을 뽑아 협박... 어째서 당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의 행동과 다른 거 같죠? 당신들은 일반적인 시민들을 대상으로도 이런 기사도 정신을 내포하고 있는 건 아닐 것이라 믿는데 말이죠."


"이 개자식이!!!"


목에 칼을 댄 기사는 화를 참지 못한 듯이 그 상태로 그으려고 하자 옆에 있던 다른 기사가 그의 손을 잡으며 소리쳤다.


"지금 그럴 상황인가! 아가씨께서 이 자에게 의뢰를 하러 왔다. 그렇다면 이 자 또한 아가씨의 손님이다. 아가씨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해서 손님을 죽일 정도로 우리가 엉망이었나! 이 일은 추후, 너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적어도 나와 아가씨에게 말이지."


"...."


두 기사는 다시 제르헨의 뒤로 돌아가 아까전의 자세를 다시 잡았고, 남자는 자신의 눈앞에서 펼친 일을 보고 두 사람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잘들 노네. 기사도에 미친 놈들'


"잘들 노네. 기사도에 미친 놈들이라고 하기엔... 둘 다 맡은 일을 잘하고 있는 거니까 함부로 대하지 말아주세요."


남자는 제르헨의 말을 듣고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이 지역 사람들 말고는 이상자를 보기 힘든데 이거 운이 좋은 것 같네요. 순혈주의자가 가득한 곳에서도 그런 부류가 있긴 한가보죠?"


제르헨은 아까 전과 달리 침착하게 남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마치 기사가 말한 손님을 대하는 것처럼 이전의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같음은 사라지고 사교회에서 볼법한 거짓된 미소와 과장된 눈웃음으로 그를 마주봤다.


"저는 그저 돌연변이일뿐... 앞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사과드립니다. 일단 제 의뢰를 들어주시겠나요? 저는 셈버데 나라의 경비대장인 제르헨 헤세의 딸인 제르헨 비숑입니다. 제가 당신께 의뢰를 드리는 이유는 말의 주인이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말의 주인? 그게 무슨 소리죠. 말의 주인이라 함은... 이야기 속에 있던 그 주인을 말하는 겁니까?"


"네. 그는 나라의 경계 밖에 있는 흐린 숲에서 나와 말을 찾는 것처럼 휘파람을 불며 돌아다닙니다. 그 휘파람 소리에 말들은 하나 둘 마구간에서 나와 그에게 다가가죠. 그리고 그는 말을 찾는 듯이 뛰쳐나온 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한마리만 두고 보냅니다. 하지만, 그 말에게 쇠뇌를 발사해 말을 죽이고 다시 숲속으로 사라지죠."


"참으로 듣기만 해도 이상하군요. 그 숲을 조사는 해보셨습니까?"


"네. 처음 그 일이 일어났을때 발자국을 따라가며 걸어갔지만, 숲의 입구에서 발자국이 끊겨있었고 조사를 하러 들어간 기사들 중 일부는 실종, 일부는 정신병이 걸린 채로 나와 밖에서 대기 중이던 기사들을 죽이는 일이 발생하여 그 뒤로 들어가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흴 택한 거로군요. 우리보고 가서 죽으란 말이냐!"


남자가 책상을 세게 내려치자 제르헨의 뒤에 있던 기사들은 동시에 칼을 꺼내려고 했지만, 제르헨의 손짓에 다시 칼을 집어넣었다.


"아닙니다. 그저 어떻게 된 일인지 경위만 알고싶을뿐,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범인도 찾기 힘들겠죠."


"마음이 바뀌었다. 그건 이상현상이 맞지만, 우리가 관여할게 아닌 것 같군. 다른 노력조차도 하지 않고 자기들에게 손실이 일어나니까 자기들의 손으로 처리하기 귀찮아 우리에게 맡기고, 연약한 딸이라면 쉽게 뭘 하진 않을거라 생각해서 딸까지 보내는 비열함... 그게 왕국을 지키는 경비대장의 생각이라는 걸 잘 알았다. 너희를 상대하지 않을테니 좋게 헤어지는 것도 방법이지."


제르헨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남자가 일어나려고 하자 다급히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하지만, 지금은 제가 경비대장 대리를 맡고 있습니다."


"어째서지?"


"첫 조사때 실종된 기사들 사이에 저희 아버지도 존재합니다. 그 날 이후로 제가 임시로 경비대장 직을 맡았지만... 조만간 다른 분에게 넘겨야겠죠. 저는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고, 그렇다보니 바깥 일을 전혀 모릅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가 제게 알려준 지식과 믿을 수 있는 아버지의 동료 기사분들 덕에 큰 일 없이 버텨왔지만 조만간 있을지 모를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기엔 제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죠."


"...."


남자는 아무 말 하지 않은 채로 자리에 앉았지만, 당황한 내색이 보였다. 그 일이 있었다는 걸 미리 말해주지 않은 앞의 여자에게 불만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비난 섞인 말과 조롱을 한 건 변함 없는 사실인지라 그는 좌불안석한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 뚜렷이 보일 정도로 불안함을 보였다.


"그렇게 불안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아버지의 일 또한 그렇지만, 외지에 계신 여러분들과 수도에 살고 있는 저희의 첫 교류로서 앞으로도 주된 교류를 위한 디딤돌이 되길 바라며 찾아온 것입니다. 아무래도 인식이 좋지 않다보니 저희도 믿을만한 분을 찾다 겨우 찾은 것이라... 아마 이대로 헤어지게 된다면 수도에 있는 저희뿐만 아니라 도심에 있는 많은 이들이 외지에 있는 여러분들을 매우 좋지않게 보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 됩니다."


"외지라고 하더라도 저희도 경계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외세의 침략이 시작된다면 저희가 먼저 피해볼게 뻔하기에... 이런 교류도 나쁘지 않겠군요. 앞선 실례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제 불찰입니다. 사과드립니다."


남자가 고개를 숙이자 제르헨은 살짝 놀란 모습을 보였지만 이내 다시 사교성이 가득 담긴 얼굴이 되어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실종된 기사들의 생사여부만 알려주면 이 일을 크게 책잡진 않을 겁니다. 아무래도 저희간의 소통 문제였으니까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흐린 숲은 위험하기에 저 혼자 다녀올 예정입니다. 그러다보니 준비시간과 활동 기간이 많이 길어진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하군요."


"이해합니다. 3개월을 드리죠. 저희의 재량으로 정할 수 있는 기간이 3개월입니다. 이 이후로는 왕께 서신을 보내어 허가를 받아야하고 왕께서 정한 기간을 넘길 경우 아무리 몇백년간 이어져온 저희 제르헨 가문이라고 해도 명을 어긴 대가가 있을테니까요."


"예, 그정도면 충분합니다. 3개월 내로 만족할 만한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아, 계약하기 전에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남자는 주머니에서 계약서를 꺼내며 제르헨을 쳐다봤다.


"제 이름은 퍼브입니다. 스커지 퍼브."


"스커지 퍼브.... 그쪽도 이름이 이상한건 마찬가지네요."


제르헨은 일이 끝난 듯이 다시 천잔난만한 목소리를 내고 입을 가리며 웃었다. 퍼브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매섭다고 느꼈고 그럼에도 아직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웃으면서 계약서를 그녀에게 건넸다.


"자동 내용 기록 계약서입니다. 원하시는 바를 전부 생각한다면 알아서 적어주죠."


"아, 설마 제가 저 뒤에 있는 기사님들 몰래 다른 내용을 넣어주길 바라는 건가요? 하하 무섭네요~ 그렇게 유도하면서 나중에 협박하려는 거죠? 정말 그렇다면 실망이예요."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일단 적어주시길 바랍니다. 적어도 협박하지 않겠다고 여기서 초대왕이신 빅토리아 캘빈왕의 이름 아래에 약속을 하죠."


"그렇게까지 진심이면 좋습니다."


제르헨은 가만히 계약서를 잡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계약서에 글씨들이 점점 빼곡히 쓰여지기 시작했고 뒤에 있던 기사들은 신기한 광경을 보는 것처럼 몸을 기울여 적히는 과정을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제르헨이 눈을 떠 계약서 안의 내용을 읽어보고 만족한 듯이 퍼브에게 건넸다.


퍼브는 천천히 내용을 읽다 문득 흐리게 써진 내용을 보게 되었고 자세히 보자 제르헨이 부탁하지 않을 법한 한 줄이 적혀있었다.


'만일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죽이고 죽었다고 말해주세요. 이왕이면 쇠뇌로 죽이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야 제가'


퍼브는 암살의뢰를 맡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인지 몰라 궁금했었다. 적어도 살아있는 사람을 죽이는 일은 좋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내용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암살의뢰를 맡는 사람과 맡기는 사람 모두가 미쳐야 이런 의뢰가 돌아다닐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제르헨을 노려봤다. 어쩌면 쳐다봤을지도 모른다. 제르헨은 조용히 손가락 하나를 펼쳐 입에 대며 눈웃음을 지었다. 


천진난만한 모습도, 사교성이 짙은 얼굴도 아닌 불안함과 두려움, 부정, 공포, 좌절, 씁쓸함이 섞인 모습과 펼친 손가락을 떨면서 

마치 도와달라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고, 퍼브는 이 일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과 얘기하기 전에 카세트 테이프로 편지와 쇠뇌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를 한꺼번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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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내용은 나중에 이어서 씀.

작명 센스는 언제쯤 나아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