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6일,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오늘은 삽교천 행사가 있는 날, 그 행사가 끝나고 저녁 6시쯤, 궁정동에서 대행사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차승철과 박준희는 삽교천에 나를 부르지 않을 거다. 그러나 궁정동에는 부를 거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그러나 다들 삽교천에 중정부장인 나도 갈 것으로 생각했는지 박형준이 들어와서 물었다.


“부장님, 오늘 삽교천 행사 가실 예정이십니까?”


“나는 가고 싶은데, 차승철 실장이 못하게 할 거야.”


“그 사람이 뭔데 부장님이 오고 못 오고를 결정합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마침, 차승철 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받았다.


“김 부장.”


“아, 차 실장. 무슨 일이오?”


“오늘 삽교천 행사, 김 부장은 자리를 지켜주시오. 또한, 부산, 마산에 이 빨갱이들을 확실하게 중정에서 처리해주시오.”


그러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역시 차승철이었다. 본인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리다니. 차승철의 두 번째 전화를 기다릴 차례였다. 그동안 나 또한 준비를 해두어야겠지. 전화기를 들어 정성하 참모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 총장, 나 김현규입니다.”


“김 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전에 식사하려다가 못 했죠? 오늘 7시쯤 궁정동에서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그때 식사하시죠.”


군을 움직여줄 정 총장은 이제 궁정동에 있다. 그리고 김진섭 제2차장보를 불렀다.


“김 차장보, 6시 30분까지 궁정동으로 가게.”


“알겠습니다, 부장님.”


김진섭이 정성하 총장과 식사를 같이하며 시간을 끌어줄 동안, 나를 도와줄 사람은 박형준 대령과 박성호 의전과장이다. 이 둘에게 계획을 지금 알릴 수는 없다. 실제 10.26 때처럼, 이따가 궁정동에서 그들에겐 계획을 알릴 셈이다. 실제 사건과 다른 점은, 김현규보다 내가 치밀히 준비했다는 것과 나는 무조건 남산으로 갈 것이라는 것이다.


한 3시간가량 지난 후, 차승철 실장에게 두 번째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김 부장, 오늘 6시에 궁정동에서 대행사가 잡혔으니 꼭 참석하시오.”


역시나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버렸다. 나는 금고에 있는 발터 PPK 권총 한 정과, 중정부장으로서 지급받은 리볼버 한 정을 챙겨 궁정동으로 갔다. 박준희보다 먼저 도착해 그 두 권총을 금고에 숨겨두고 박준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김경원 비서실장이 와서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나누던 중 김경원에게 꾸며낸 차승철의 쿠데타 음모를 슬쩍 흘렸다.


“형님, 요즘 중정에서 조사중인 수상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수상한 움직임? 그게 무엇인데요?”


그 때, 박준희와 차승철의 차량이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이따가 얘기하자고 말한 뒤 박준희를 맞이했다.


“각하, 삽교천 준공식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어, 김 부장도 서울 지키느라 고생했어.”


박준희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 만찬장에 도착했다. 비빔밥, 칼국수, 전복 무침 등 호화로운 30첩 반상이 놓여있었다. 가난하던 그 시절 그렇게 호의호식하는 독재자라 생각하니, 그를 가난에서 구한 영도자라 치켜세우기 참 민망하다는 걸 느꼈다. 연회는 시작되어 술 몇 잔을 마시니, 다들 취기가 오른 듯했다. 그러던 중 박준희가 물었다.


“신민당 건은 어떻게 됐어?”


“김영수 총재 제명 후, 사표 선별수리 문제 때문에 신민당 주류가 다 돌아섰습니다.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각하, 그 새끼들 국회의원 하기 싫은 새끼 없습니다. 탱크로 확 밀어버려야 합니다.”


차승철의 헛소리를 뒤로하고 박준희에게 말했다.


“신민당 주류는 강경파로 돌아섰고, 정윤기는 비주류입니다. 주류의 협조 없이 정윤기 체제는 힘듭니다.”


“삽교천은 공기도 좋고 깨끗하던데, 신민당 그놈들은 왜 그래?”


“각하, 그 새끼들 다 밀어버리면 됩니다. 중정은 부마사태도 그렇고 요즘 하는 게 뭔지 원…”


차승철의 과격 발언이 계속되자 김경원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말했다.


“김 부장, 김 부장 칵테일 마는 게 참 맛있는데 말이야.”


“맞지, 김 부장이 말아야 술이 술맛이 나지.”


차승철은 그 와중에도 나를 비웃었다.


“김 부장, 비록 물러터진 면이 있어도 술은 잘 맙니다.”


김경원은 차승철을 잠깐 노려보고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김 부장, 그 칵테일 어떻게 만드는 거야?”


“술과 물, 얼음의 비율이 중요하죠. 우선, 술 한 잔에 물 두 잔을 섞고, 얼음을 적당히 넣어주면 됩니다.”


그렇게 담소를 나누고 시간은 6시 30분, 차승철이 박성호가 데려온 여대생 성재영 양과 가수 임수진을 데려왔다. 역시나 색욕을 밝히는 독재자가 아니랄까 봐, 박준희는 왼쪽엔 임수진, 오른쪽엔 . 그러나 다들 앉히고 술을 마셨다. 그리고는 술에 취해 나를 포도대장이라 부르며 놀고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 이 시간이면 정성하가 . 그러나 다들 나는 자리를 나섰다.


밑으로 내려가 가동으로 가니 정성하 총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갑자기 대행사가 잡혀서 말입니다. 일단 김진섭 차장보와 대화 나누면서 식사하시지요. 이 친구가 국내 현안은 저보다 더 잘 알 겁니다.”


그리고는 금고로 가 권총 두 정을 꺼낸 뒤, 주머니에 넣고 박형준과 박성호를 불렀다.


“부장님, 무슨 일입니까?”


나는 권총을 꺼내어 보여주며 말했다.


“일이 잘못되면 우리는 다 죽는다. 오늘 해치운다. 참모총장도 와있다.”


“각하도 포함되는 겁니까?”


눈치 빠른 박성호가 내게 물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경호원이 7명이나 되는데, 다음으로 미루시지요.”


“아니다, 보안이 샌다. 일을 마치면 차승철 짓으로 돌릴 거다. 박 대령, 그때 지시했던 차승철 조사한 거 있지?”


“네, 부장님.”


“그걸 활용할 거다. 똑똑한 애들로 세 명 정도 준비해서, 박성호 너는 정용혁 경호처장과 안지석 부처장을, 박 대령은 나머지 경호원들을 처치해.”


“지금 바로는 안됩니다. 30분 뒤에 하시죠.”


“그래, 나는 연회장에 있을테니 준비가 되면 불러라.”


내가 연회장에 돌아오니, 박준희는 TV를 보고 있었다. 뉴스에는 김영수와 리처드 윌리엄스가 회동을 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그걸 본 박준희는 TV를 끄라고 한 뒤, 내게 말했다.


“김 부장, 깡패 똘마니들만 있는 거 말고 제대로 된 부마사태 사진을 만들어봐.”


“네, 각하.”


“김영수 말이야, 정무수석이 말려서 구속을 안 시켰더니만 저거 보라고.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법대로 하겠다는데, 미국 놈들은 범죄자 안 잡나?”


“각하, 김영수를 제명했는데 또 처벌한다면 국민들은 김영수를 동정할 겁니다. 이미 처벌받았다고 다들 생각합니다.”


그러자 박준희는 역정을 냈다.


“정보부가 좀 무서워야지! 잡아들일 놈은 딱딱 잡고!”


박준희는 그러고는 기분을 삭이기 위해 임수진에게 노래를 청했다.


“임 양, 노래 한 곡 듣지.”


임수진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은 7시 35분이 되자 박형준이 나를 불렀다. 부속실에 가니 박형준이 있었다.


“박 대령, 준비됐나?”


“네, 부장님.”


나는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연회장에 들어가니 임수진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노래의 1절이 끝나자 나는 박준희에게 말했다.


“각하, 긴급히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다음에 하면 안 되나?”


“부산, 마산 소요사태에 대한 좋은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형님, 여자들 데리고 잠시 나가 계시죠.”


“그래.”


김경원이 여자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차승철이 내게 해결책이 뭐냐고 재촉했다.


“차승철, 100만, 200만 밀자고 했지? 너 하나 죽으면 끝나!”


발터 PPK 권총을 꺼내 팔에 한 발, 차승철이 쓰러지자 머리에 한 발을 쏘았다.


“뭐하는 짓이야 이게!”


“너도 마찬가지야, 이 새끼야!”


차승철 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총을 바꿔 박준희를 쏘았다. 총에 맞은 박준희는 그대로 엎어졌다. 나는 총을 차승철의 손에 쥐여준 뒤 다시 한 번 머리를 겨눴다.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경호실장 손에 뒤져봐.”


그리고는 박준희의 머리를 향해 총을 쏘았다. 총소리를 들은 박형준이 경호원을 처리하고 올라왔다.


“부장님, 경호원들은 처리했습니다.”


나는 리볼버를 건네며 말했다.


“그 총으로 내 팔을 쏘게.”


“네? 부장님?”


“차승철과 싸웠는데 내가 멀쩡한 게 말이 되나. 어서!”


박형준은 총을 받아 내 팔을 쐈다. 그리고는 그 총을 차승철에게 쥐여주었다. 나는 식탁보를 빼서 팔을 묶어 지혈한 뒤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 김경원과 마주치자 김경원이 물었다.


“김 부장, 무슨 일이야? 총소리가 들리던데? 팔은 또 왜 그러고?”


“아까 수상한 움직임이 있다고 했죠?”


“그렇지.”


“차승철이 쿠데타를 계획했습니다. 계획을 폭로하니 총을 빼 들어 각하를 쐈고, 저는 차승철을 사살하긴 했으나 각하는 이미 절명하셨고, 전 이렇게 다쳐버렸습니다.”


“이젠 어쩌게?”


“각하를 병원으로 모셔주십시오. 사실, 제가 각하가 대행사에 부르시기 전에 정 총장과 약속을 잡아 지금 정 총장이 여기 있습니다. 저랑 정 총장이 중정으로 가서 남은 차승철 잔당을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나는 가동으로 달려가 정성하 총장을 찾았다. 정 총장은 식사 중 만신창이가 된 내 모습을 보고 놀란 듯했다. 나는 일단 옆에 있는 주전자에서 물을 들이켠 후, 정성하에게 말했다.


“정 총장, 비상사태입니다. 일단 따라오시죠.”


그렇게 정 총장을 박형준을 시켜 차량으로 안내했고, 나는 박성호에게 현장 뒤처리를 지시하고 김진섭에게 각료들을 중정으로 부르라고 지시한 뒤 정 총장과 같이 차를 탔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는 엄지를 치켜세운 후 말했다.


“이분께서…”


그리고는 엄지를 내리며 말했다.


“돌아가셨습니다.”


“아니, 어쩌시다가요?”


“차승철이 쿠데타를 꾸몄습니다.”


“김 부장, 그런데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는 겁니까?”


박형준이 총장에게 말했다.


“남산으로 모시겠습니다.”


“남산이라뇨? 군을 움직이려면 육본으로 가야죠.”


“사실, 군도 여기 엮여있습니다. 자칫하면 반란군에게 붙잡힙니다. 중정에서도 군은 통솔할 수 있으니, 중정으로 오시죠.”


“알겠습니다. 근데, 군 누구가 차승철과 움직입니까?”


“전두한 보안사령관과 노태원 9사단장 일행으로 추정됩니다. 일단 이 두 사람을 중정으로 부른 후 체포할 예정입니다.”


“그래요.”


그렇게 나와 정 총장을 태우고 차는 중정을 향하여 달려갔다. 비록 아직 할 일이 산더미이지만 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아마 곧 전두한과 노태원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은 순조롭게 풀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