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있다. 다른 벽이랑 같은 하얀 벽이 있었다.

하얀 벽은 무언가를 꿈꿨다. 자신이 무지개 색의 아름다운 벽이 되었으면 함을 말이다. 하얀 벽은 자신의 무의 평범함을 싫어했다. 난 남들의 눈에 아름답게 보이며 존경의 대상이 되길 꿈꿨다.

그때, 한 예술가가 페인트 통들과 붓을 들고 왔다. 벽은 예술가를 보고 내심 기대를 하였다. 예술가는 벽 앞에 서서 붓으로 페인트 벽을 페인트 칠하기 시작했다. 

벽은 차가운 페인트의 느낌과 예술가의 부드러운 손길에 내 자신이 뭘로 변할까 기대했다. 자신의 꿈처럼 무지개가 될 수 있었고, 아님 여러 그림들이 그려진 하나의 작품이 될 수도 있었다.

예술가는 오랜 시간 끝에 하얀 벽을 아름다운 무지개 색 벽으로 만들어 주었다. 벽은 이 모습을 보고 기뻐했다. 사람들이 혼자만 꾸며진 벽을 보고 시선을 주기 시작했다. 벽은 의기양양했다.


옆에 하얀 벽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무지개 색 벽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무지개 색을 과시했다. 자신이 이렇게 변한 걸 자랑스러워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벽을 보고 지나가는데, 한 사람이 그 벽에 다가갔다. 벽은 그 사람을 보고 날 더 구경하라며 또 내심 기대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벽에 무언갈 붙이고 돌아갔다.

벽에 붙인 건 한 광고 전단지였다. 벽은 이 전단지를 보고 뭔가 거슬렸다. 그 전단지가 자신의 무지개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방해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벽에게는 떼어 낼 손이 없었다. 그렇다고 격할 몸짓을 할 힘도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벽을 계속 쳐다보고 지나갔다. 벽은 어쩔 수 없다며 그저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다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사람 역시 자신에게 전단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벽은 이제 방해거리가 두 개라며 짜증을 부렸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날 엉망으로 만든다며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벽은 힘이 없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벽을 보자, 벽은 그냥 넘어가자며 한 숨 자기로 했다.


잠에서 깨니, 뭔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가 자신의 몸에 많이도 달라붙은 느낌, 그리고 깨달았다. 무지개 벽은 순간 전단지로 가득 찬 벽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벽은 놀랐다. 금방이라도 이것들을 떼어내고 싶어 소리를 질러 보기도, 도와달라고 외쳐보기도 했다. 움직이고 싶었지만 힘이 없었다. 벽은 점점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옆에 하얀 벽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무지개 색 벽은 경악했다. 하얀 벽보다 더 아름다움을 원했던 벽이 이젠 하얀 벽보다 더 끔찍해진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벽은 자신을 보이지 않게 하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이런 벽을 더 보기 시작했다. 무지개의 벽으로 생긴 시선과, 전단지로 생긴 벽으로 생긴 시선은 별 차이가 없었다. 벽은 고통스러웠다.

벽은 후회했다. 차라리 아름다움이 없었으면 이런 끔찍함도 없었을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끔찍함은 전부 사람들의 시선으로 부터 온다는 것을 벽은 몰랐다. 다수의 시선을 받는 자에겐, 반드시 그것을 망치는 소수가 있었다.

벽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잠에 들기를 바랬다. 그리고 이 악몽이 다시는 찾아오지 말기를 바랬다. 그리고 조용히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들을 지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들은 벽에게 전단지를 붙인다. 벽은 저지할 수 없다. 벽은 그게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여러 사람들이 벽 앞에 섰다. 그리곤 벽에 달라붙은 전단지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벽은 드디어 살았다며 안도했다. 하지만 벽에 전단지가 떼어남과 동시에 예술가가 칠해놓았던 페인트 색 마져도 떨어져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벽은 색만 점으로 존재하는, 색들이 다 떨어져 지저분한 벽이 되었다. 벽은 초라해 보였다. 

옆에 하얀 벽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벽은 한 숨을 쉬었다. 결국 순간의 아름다움이 돌아온 대가는 바로 이런 초라함 이라는 사실에 벽은 절망했다. 다른 벽들을 볼 눈이 되지 않았다. 자신을 과시한 순간들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름다움이라 함은 영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것도,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영원이라 함은 없는 것을…. 왜 난 몰랐는가.“




이윽고 머나먼 시간이 지났다. 모든 벽들이 낡고 있던 색도 전부 서서히 사라질 때 쯤, 한 예술가가 한 벽 앞에 섰다.

색이 칠해진 벽은 좋아 보였다. 옆에 하얀 벽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