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팔이 '달이' 호송 중이오!"


"길을 비키시오!"



나졸 둘이 신나서 나와 무당을 끌고 갔다.


나는 발버둥쳤다.


결단코 어딜 내놔도 부끄러운 내 이름 때문이 아니다.



"이럴 시간이 없다니까! 환자가 있잖소!

의원을 찾으러 가야 하오! 이거 놓으시오!"


"일단은 관아에 갔다가 찾던가 하시오."



관아에 가면 영락없이 옥에 갇힐 텐데

'일단' 은 무슨 '일단' 이람.



"사내 대장부들이 아녀자를 이리 끌고 가도 되는게요?

어찌 시집도 안 간 처자를 이리 거칠게 대한단 말이오!"


"어사님께서 이르시기를, 도주의 우려가 짙은 자라 하였다."


"각별히 유의하라고 하셨지."



어사?


암행어사할 때 그 어사?


맙소사.


내가 약 좀 팔았거니와, 관리까지 파견을 한다고?


세상이 요지경이로구나.



"아, 이봐! 멈추거라, 멈춰!"



날 보더니 한 여자아이가 멀리서 뛰어왔다.


엿을 쭙쭙 빨고 있던 10살 남짓의 붉은 머리 꼬마였다.


두다다다 달리는 아이를 따라, 아이의 댕기가 경박하게 흔들거렸다. 


그러고보니 요새 사람들은 머리가 총천연색이다.


어찌된 까닭인지 모르겠다.



"이 여인의 이름이 무엇이더냐!"



묘하게 시건방진 말투와 묘하게 시건방진 낯짝이었다.


뛰던 품새도 어쩐지 팔자걸음에 가까웠다.


아이가 나졸의 바짓끄댕이를 잡았다.


나졸 하나가 순순히 답했다.



"성이 박, 이름이 달이. 약팔이 요술쟁이다."



요술이라니, 무례한!


스승님이 들었으면 입을 세조각으로 쪼개버렸을 언행이었다.



"그 전기수하던 여인이더냐?"


"그래, 그렇지."



친절히 응대해주는 한 나졸과 달리, 나머지 한명의 나졸은 벌레 씹은 인상이었다.



"이 놈 꼬맹이, 어른 무서운 줄을 모르느냐?

어른이 일 하는데 와서 귀찮게 굴지 말고 썩 꺼지지 못해!"



그리 호통을 치자 친절하던 나졸이 제 동료에게 작게 말했다.



"이 친구야, 댕기를 보게."



슬쩍 보니 적발 꼬마의 머리는 앞가르마를 하고 옆머리를 뒤로 모아 댕기로 묶은 모양새였다.


그 나이대 아이들에게 드물지 않은 머리였는데, 댕기만은 독특하였다.


댕기가 양갓집 애들 쓴다는 댕기였다.


어떻게 아냐고?


약팔이래도 장삿치인데, 알아야지 그럼.


불만을 토로하던 나졸은 기세를 꺾지 않았다.



"아니 양반집 여식이래도 안 되는 안 되는 걸세.

자네는 일을 그렇게 비굴하게 하나?

여봐라 꼬마야. 관의 일인데 이리 붙잡고 있어서야 되겠느냐?"



꼬마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정말 이 여인이 박 달이라고?"


"그렇단다."


"이 어리석은 것들아! 당장 풀어주지 못하겠느냐!"


"뭐야?"



황당한 내용에 나졸들이 놀랐다.


자그만 붉은 머리 아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감히 이런 식으로 귀인을 대접하느냐!"



나졸들은 서로 멀뚱이 쳐다보았다.



"뭣들 해! 볼기짝에 불이 나야 오랏줄을 풀겠느냐!"



이거... 내 얘기야?


내 오랏줄?


나 석방?


진짜로?


왠 꼬맹이의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수상할 정도로 위압감이 있었다.



"그렇게 말한대도 우린 관청의 지시대로 하는 거고."


"관청에선 어사님이 이 여인을 꼭 잡아오라고 지시하셨다 하고."


"어사님은 다시 임금님한테 명을 받았다 하시니."



요는 왕명 비슷한 거란 뜻이었다.


"어휴, 이 우민들!" 이라며 꼬마가 소매를 이리저리 뒤적였다.



"이방이 말 안해주더냐? 하여간 그 대머리놈 때문에 정말!"



꼬마 아이가 손에 든 건 빼곡히 글자가 쓰여있는 종잇장이었다.



"주상이 손수 써주신 사목이 보이지 않느냐!"



얼핏 보니 이리 해라 저리 해라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목은 칙서의 제자 같은 건가.


닮은 구석이 있네.



"아니면 이것까지 봐야 믿겠느냐!"



꼬마가 소매에서 또다른 물품을 꺼냈다.


이번엔 마패였다.


말이 4개!


세상에, 어지간히 높으신 분이로군.


이 혼란한 상황을, 나졸은 빠르게 파악했다.



"죄, 죄송합니다. 천한 눈이라 어사님을 몰라뵀습니다!"



이 꼬마가 어사였던 것이다.


이 어린 나이에,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기이한 구석이 있었지만, 주어진 상황은 그렇게 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설마 이 조그만 애가 도둑질을 했을 리도 없고,

그렇다고 어사씩이나 되는 양반들이 중요한 물건을 두개나 땅에 떨어뜨렸을 리도 없고.



"그 여인 오랏줄, 곤란."



마패와 사목을 번갈아가며 정신없이 보고 있는 나졸들에게, 꼬마가 말했다.



"어이! 오랏줄 빨리 안 풀어드리고 뭐하는 거야!"



떨떠름한 분위기로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나졸들은 방금까지의 득의양양한 기세는 간데없이, 나와 무당을 묶었던 오랏줄을 손수 풀었다.



"후우, 이 정돈가."



한마디하며 꼬마가 소매 속으로 마패와 교지를 거두었다.



"저, 저기 어사님."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졸 하나가 꼬마에게 말을 붙였다.



"이 여인이 도대체 누구시길래 어사님께서는...."



그래, 내가 누구길래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거야.


나도 좀 알고 싶었다.


난 그냥 싸구려 도술 좀 쓰는 약팔이인데.


꼬마가 말하는 걸 보니 내게 원하는 게 있는 모양인데,

요새 시대에 도술이 도움이 될 리도 없었다.


도술로 잡을 거면 조총을 쓰는 게 낫지.


훨씬 쉽고, 훨씬 간단하고, 훨씬 실력자를 구하기도 싸고.



"그것도 모르느냐?

귀를 빌려줘봐라."



내 호기심은 짐작 못하였는지, 꼬마는 나졸들에게만 귀띔을 하였다.


꼬마의 키가 심히 왜소하였기에, 나졸들은 허리를 숙이고 꼬마는 까치발을 들어야했다. 


어떤 내용인데. 왜 날 원했던 거야.


약 판 것 때문에 걸린 게 아닌 거야? 진짜로?



"그러한 연유이니라."



꼬마의 비밀스런 설명을 듣고, 나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해가 갑니다만...."


"당초에는 왜 잡아오라 하신 겁니까?"


"잡아오라니. 그저 나는 모셔오라고 했는데."


"듣고 보니 그러셨던 것도 같고...."


"이보게."



붉은 머리 꼬마가 내게 다가왔다.


체구가 작아서 그런가.


땅에 짚신이 쓸리는 소리가 무척 앙증맞았다.



"자네 나 좀 보지."


"그건 곤란...."



반말과 존대 중 어느 쪽으로 답변을 해야하는지 망설였다.


얘가 정말 어사인 거 같은데 존대를 해야할 듯도 싶고.


그치만 생긴 건 애잖아?


모르겠다, 저쪽도 초면부터 반말 찍찍 갈기는데 알 바인가.



"그건 곤란하오."


"어째서?"


"환자의 병세가 좋지 못하오.

의원에게 데려가야 하오. 응당."



"오호라" 하며 꼬마가 탄식했다.



"가까운 의원이라면 내가 알고 있으니 따라오거라.

잘 됐구나. 그 주변을 들를 셈이었으니."



*



어느샌가 정신을 잃은 무당 여인.


무당을 의원에게 보이고 아랫방에 눕혀놓았다.



"감기며 뭐며, 다른 증상도 좀 보입니다만

아무래도 이건-."


"아무래도 이건?"


"임신이로군요. 축하드립니다."



무녀란 녀석이 참말로 남자와 정을 통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혼인도 안 하고.


설마설마했는데.



"제정신이 아니로구만."


"무당이란 작자들이 제정신일 리가 있느냐."



잠자코 있었더니 아이가 떡을 내밀었다.



"어디서 나온 게요? 이건."


"앞에서 파는 걸 사왔다. 안 당기더냐?"


"감히 말로 청하진 못해도 내심 바라고 있었소.

이 사람이 여기 드러누웠으니 자리를 뜨기도 거시기니했고."



덥썩 받아다 입에 넣었다.


특별한 장식은 없이, 기름칠만한 흰 떡이다.


물었더니 이빨이 보드라운 떡 속으로 말려들어갔다.


이 얼마만에 먹는 떡이더냐.


이 꼬맹이는 좋은 꼬맹이였다.



"먹으면서 듣거라."



좋은 꼬맹이가 읊었다.



"내 주상 전하의 명에 따라 봉남 마을에 가는 중이다."



나 잡으러 온 게 아니었다고?


봉남 마을이라.


봉남 마을에 무슨 일이 생겼나.



"최근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는 겐데, 일이 좀 복잡하게 됐느니라.

데려갈 녀석을 놓치기도 했고. 다른 인재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 양반은 무슨, 내가 신인 줄 아나.


무슨 사태인지, 데려갈 녀석이 누구인지, 다른 인재가 누구였는지.


일언반구도 없는데 무슨 수로 이해하라는 겨.


그래도 묵묵히 들었다.


일단 떡이 맛있었으니까.



"가만 보니 떠돌이 중에서 박 달이라는 처자가 있었는데,

정보를 훑어보니 몹시 마음에 들더구나."



내가 마음에 들었다고?


뭔진 몰라도 기쁘구만.


나도 밥 잘 사주는 부자 꼬맹이라면 마음에 듭니다.



"그러니 말인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

봉남까지."


"콜록, 봉, 콜록콜록! 콜록! 봉남이라 했소?"



놀라서 사레들리고 말았다.


봉남을? 가자고? 함께?


어사 꼬맹이는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



"안 되는 게냐?

간다면 마패도 있으니 편히 말로 갈 수 있을 터인데."


"그게 아니... 콜록! 나, 콜록, 나리! 봉남을? 여기, 가... 봉남이잖, 콜록! 콜록콜록! 잖소?!"



떡 먹다 사레들리니 죽을 맛이었다.


나리가 냉수를 한잔 주었다.



"여긴 봉남이 아니라 산회 마을이네."



이런 씨!


더 멀리 있다는 그 동쪽 마을이잖아.


앓아누운 무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산에서 오래 걷더라니만!



"이 선무당이...!"



무당은 자고 있었다.


통증 때문인지 '끙끙' 신음을 흘리며.


아픈 사람에게 화를 내도 답이 없다.



"아이고 저 화상!"


"그래서, 자네 생각은 어떤가?

동행해주겠나?"


"나는 어디든 마을에 있기만 하면 되는 입장이오.

봉남이든 산회든.

이미 산회에 이르렀으면 굳이 봉남으로 발을 옮길 이유가 없소."



정중히 거절하였다.


마음 한구석으론, 만난지 얼마 안 된 이 환자를 모른 척 두고 가기 미안하단 까닭도 있었다.



"하기는 약팔이니, 한동안은 여기 있어도 되겠지만."


"그렇소. 나는 이야기꾼이니."


"본업은 약팔이가 아니었나?"



작은 붉은 꼬맹이가 눈을 크게 떴다.


도대체 날 뭐라고 생각했던 걸까? 얘는.



"나리, 내 본업은 이야기꾼이오.

책 읽어주고, 돈 받고."


"그런가... 자네가 파는 약이 그리 효능이 좋다던데."



'피그말리온 효과겠지.'


목구멍까지 올라온 문구를 집어삼켰다.


어차피 이 시대 사람에겐 말을 해도 모를 터.



"따라가도 도움도 안 될 것이오. 부족한 몸이니."


"그 점은 걱정 말게. 자네라면 필시 도움이 될 걸세.

부탁하네."



그리 말해도 영 내키질 않는다.


'허허' 하고 꼬맹이가 한숨을 쉬었다.


실망하여 등을 숙이는 꼬맹이.


꼬마를 따라서, 꼬마의 작은 한복이 앞으로 숙여졌다.



"자네 도움이 없으면 곤란한데."


"미안하오."


"별 수 없는 건 별 수 없지."



못내 아쉬워하며 꼬맹이가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꼬맹이의 발이 '폴짝' 소리를 냈다.



"당분간은 이 마을에 있을 듯하니, 마음 바뀌면 내게 오게나."


"주막에라도 가서 지내실 생각이오?"


"주막은... 평민도 아니고.

이 고을 사또네한테 신세를 지고 있다네."



그래도 되나?


어사랬으니까 안 받아주면 조정에 찌른다, 이건가?


어지간한 진상이로군.



"마을에서 지낼 거라면 모쪼록 조심하게.

자네도 대상이 될 수도 있으니."


"대상? 무슨 대상 말이시오?"


"그, 왜, 시장가에 떠도는 소문 있지 않나."



멀뚱멀뚱 꼬맹일 바라보았다.


꼬맹이가 제 머리를 손으로 쳤다.



"참! 자넨 이 마을 방금 왔지!"


"... 방금 왔소.

오자마자 나졸들한테 호송 당한 것이 아니오."


"내 깜빡했네. 히히."



치매냐고.



"거창한 건 아니고-."



방을 나서려다던 꼬맹이가, 도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을에 해괴한 게 돌아다닌단 소문일세."


"해괴하다 함은?"


"귀신이나 요괴 같다는 게지."



'거창한 거', 맞는 것 같은데?



"마을 처자만 골라다 노리는 놈으로 알려져있네."



처자? 그럼 나하곤 상관없는 거 아닌가?


따지려다가 앉아있는 내 치맛자락을 보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환생하고 20년인데 아직도 헷갈린다.


나야말로 치매인가.


꼬맹이의 말뜻은 밤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



[이보게.]



밤 중에 몸이 답답하여 마을 산책을 나섰다.


조심하라곤 해도

그게 낮에 조심해야 하는지, 밤에 조심해야 하는지,

집안에 있길 꺼려야 하는지, 아니면 밖에 있길 꺼려야 하는지,

일절 모르는데 내 어쩌겠는가.


이리저리 고뇌하다가, 그저 하고픈 대로 하기로 정했다.


산보 중에 보니, 어두운 달빛을 맞으며 남의 집을 두들기는 사람이 있었다.



[이보게. 비 맞은 나그네일세.]



빛이 없으니 그림자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크기는 사람처럼 비쳐졌다.


약간씩 발음이 꼬이는 점으로 짐작컨대, 취객이겠거니 할 뿐이었다.


목소리로 보아서는 젊은 남자였다.


남자는 비라도 맞았는지 걸을 적마다 찰박찰박 소리를 냈다.



[이보게에.]



철퍽철퍽.


물 소리 때문인가.


저 나그네는 어쩐지 불쾌감을 유발하는 구석이 있었다.



[하룻밤만 재워주게.]



취할 거면 곱게나 취하지, 에잉.


혀를 차려다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이보게. 다들 자는가?]



나는 어제밤부터 오늘까지 쭉 깨어있었다.



[이보게.]



비는 온 적이 없었다.



[내 부탁하지 않나!]



'나그네' 가 머리로 문을 들이받았다.


흑색으로 일관된 나그네의 그림자가 몸을 길게 뻗었다.


사람 몸이 저렇게 길고 단조로운 형태이기도 했던가?



'우지끈'



한지로 덧붙인 문은 나그네의 무쇠 같은 머리에 두동강이 났다.


나그네는 그 안으로 달려들었다.


두려워 제자리에 얼어붙은 내게는 불길한 소리만 들렸다.



'와그작'


*


ts챈 대회 출품작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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