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때 아빠가 죽었다.
아빠의 장례식은 비가 많이 오는 그런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빠가 묘지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찾아와 같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날 눈물을 흘렸는지 기억하지 못 한다.

아빠는 언제나 허풍이 많은 사람이었다.
언제는 자기가 악마를 잡았다고 하고,
또 언제는 자기가 악마와 함께 다녔다고 했다.

모순된 말을 많이 좋아했다.
그 때문에 엄마랑 이혼한 것도 있지 않았을까
엄마는 결국 아빠한테 나를 맡기고 홀로 떠났다.

아빠의 사인은 암이었다.
하도 허풍을 많이 부려서인지 구강암부터 시작되어 폐암으로까지 전이됐다고 의사선생님이 그랬다.

아마 거짓말을 많이해서 신이 벌을 내린 거라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거짓말을 너무 하긴 했으니 말이다.

장례식장에서 본 엄마의 모습은 불안과 후회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아닐수도 있겠지만 내겐 그렇게 보였다. 정확하게는 그러길 바란 거다.

아빠의 죽음 이후로 나는 엄마의 집에서 살았지만 엄마는 내가 알아서 크길 바랬는지
18살이 된 지금까지 돈만 주고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어쩌면 아빠의 딸이라서 아빠의 모습이 보여 내가 싫은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 아빠의 묘에 찾아간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고요함이 대신 인사해주는 것 같았다. 하긴 엄마도 일하러 나갔으니 조용한 게 당연하지.

"아빠가 있었으면 지금쯤 퇴마 문양의 탈을 쓰고 나타나서 잘갔다오라고 했을텐데..."

이제와서 눈물을 흘려봤자 소용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아직도 아빠의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닦으며 문을 열었다.

봄, 3월 14일... 내 생일이자 아빠가 돌아가신 날, 나는 아빠의 묘 앞에서 처음으로 악마를 만났다.

.
.
.

검은 뿔, 하얀 반곱슬머리, 메마른 몸에 창백한 피부와 걸맞지 않은 수려한 양복

묘 앞에 있는 악마의 모습은 아빠가 내게 말하던 악마의 모습이었다. 자신이 함께 다녔다고 한 그 악마 말이다.

"누구...세요...? 6년동안 찾아오신 분들과는 다른 분 같은데..."

악마는 말없이 꽃다발을 든 채로 아빠의 묘를 보고만 있었다.

"저기..."

내 말이 시작하기도 전에 악마는 기묘하면서도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 이반 에덴, 그대는 마지막 계약을 내게 말해줬지. 그대의 딸이 18살이 되기 전 그대가 죽는다면 그대의 딸이 18살이 된 그 날부터 그녀의 악마를 찾아줄 때까지 내가 대신해달라고 말이야. 그런데 말이지..."

악마는 나를 평가하듯이 위아래로 흝어보다 눈을 찡그렸다.

"계약하기엔 너무 연약하잖아."

"...."

틀린 말은 아니었다. 훈련 시간때는 언제나 하급 마물로 여겨지는 슬라임마저도 잡지 못했으니까.
그렇기에 아빠의 말이 더욱 거짓말같이 느껴졌다. 힘이 유전된다는데 내겐 그런 힘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말이지... 신기하네."

악마는 어느새 내 눈앞으로 다가와 붉은 눈으로  나를 마주봤다.

"히익..."

"겁 먹지마. 자질이 있는 지 확인하는 거니까."

악마는 나를 노려보며 손을 뻗어 내 볼을 문질렀다. 차갑고 한이 깃든 기운이 손을 따라 뒤따라오는 기분이 들어 소름이 끼쳤다.

"도대체... 누구신데... 이렇게까지..."

"말했잖아. 나는 이반 에덴, 네 아버지의 마지막 계약을 끝내려 온 악마라고. 역시 그 아버지에 그 딸인가..."

살짝 따가움이 느껴지더니 악마의 손톱에는 피가 맺혀있었다. 그리고 내 볼에는 땀이 아닌 무언가가 흐르는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으윽... 그거 제 피죠...?"

"말 더듬이인가? 아니면 쑥스러워서 그런가? 왜 말을 길게 하지 못해. 어디까지 그의 자식이라고 티를 낼 거야?"

악마는 피 묻은 손가락을 빨더니 웃으며 내 양쪽 어깨를 꽉 잡았다.

"음! 맛있어. 그래 오랜만에 먹으니 추억이 돋는 구나. 당분간 너를 도와주지. 단, 조건이 있다."

"뜬금없이... 무슨 조건이요...?"

"내 이름은 허풍쟁이 칼, 내 마법을 쓰고자 한다면 한가지 허풍을 부려야 할거야. 즉 거짓말을 하라는 거지."

거짓말... 학교에서는 마법을 쓰려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한다고 들었다. 거짓말은 내 의식을 속이는 일이니까 마법을 쓴다면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다.

"믿을 수 없어요. 당신이 뭔데..."

"믿을 수 없다라... 그럼 믿게 만들어주지."

악마는 하늘을 보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비로 홍수를 만들고 바람으로 토네이토를 부르며 햇빛으로 가뭄으로 만들고 불씨로 건물 한 채를 태울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홍수다!"

일정한 박자에 맞춰 주문을 외우는 듯한 말을 끝내자 거센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악마는 알고있었다는 듯이 우산을 펼쳐 내게 건넸다.

"자, 이러면 믿을 수 있겠어? 내가 악마라는 걸."

"..... 우연이겠죠. 소나기 예보도 있었으니까요."

"그대는 일기예보를 믿으며 우산따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으윽... 정말로 아빠가 당신을 부른 거예요?"

"물론, 나는 계약을 아주 잘 따르는 악마니까. 어차피 계약은 맺어졌다. 오래 전, 그 날에 말이지. 네겐 선택권이 없어."

"....?"

우산을 들고 있는 내 손등에는 퇴마 문양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당황한 내가 악마를 보자 그는 혀를 내밀어 같은 문양을 보여줬다.

"계약이... 언제...?"

"너가 여태 약했던 이유는 아마도 나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네 아빠가 너의 힘을 막은 걸지도 모르겠어."

"그럴리가 없어요. 아빠가 정말로 저를 위했더라면... 왜 제게 말해주지 않은 거죠?"

"그야 그는 거짓말이 일상이었으니까. 적어도 딸에게는 거짓된 말로 잘못 말하고 싶지 않았겠지. 내 조건은 허풍이다. 허풍은 과하면 뇌가 미쳐서 그렇게 믿게 되지. 뇌는 그때부터 진실을 구분하지 못해. 오로지 자신이 하는 말을 믿을 뿐이다."

"아빠가 그렇다고 저를..."

악마가 다시 박수를 치자 거짓말 같이 비가 그치고 맑은 날씨가 되었다.

땅도 언제 비가 내렸지도 모르게 메말라있었고 묘비와 우산에도 비를 맞은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진실이 거짓이 되는 순간이 여럿 있으면 더 미치기 쉽지않겠어? 너에게는 특별히 거짓말을 해도 뇌가 미치지 않도록 도와주지."

"아빠는요. 아빠한테도 그래주셨으면...!"

악마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악마의 조건은 간단하지만 결국 파멸로 이어진다.' 이걸 알면 좋을텐데 말이야. 내가 너를 미치지 않게 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

악마는 내 어께에 팔을 올리고 귓가에 입을 대며 속삭였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 이브..."

"히끅...."

악마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우산은 어느새 꽃다발이 되어 내 손에 들려있었고 나는 아빠 묘비 앞에 그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나는 대답이 없을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그 악마가 하는 말은 어디까지 진실이예요...?"

대답이 없을 걸 아니까 기다릴 생각이 없었던 나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생길 일을 모른 채로 말이다.

=================================

소재 생각나서 써봄
더 안 쓸 수도 있음